국제결혼의 3대 필수조건

by 뿌리와 날개

언젠가 국제결혼해서 독일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정보공유 글을 본 적이 있다.


일정 수준의 독일어 시험을 통과했지만 여전히 아직 독일어를 잘 못하는데 어떡하면 좋을지 모르겠다며 독어를 어느 정도 수준까지 할 수 있어야 하는 건지 문의하는 글에 대부분의 댓글들이 이러했다.


- 괜찮아요. 천천히 하시면 돼요.

- 아유, 저보다 훨씬 잘하시네요. 그 정도면 이미 잘하시는 거예요.

- B1 정도까지만 해도 충분해요.

- 대학 갈 거 아니면 C1까지는 필요 없어요.


참으로 마음이 편안해지고 따뜻해지는 댓글들이 아닐 수 없었다. 물론 나 역시도 독일어를 전혀 못 하는 입장에서 그 댓글들을 보고 평안과 위안을 얻었다. 그러나 그것이 정말 좋은 정보의 공유였을까?


수많은 댓글 중 그 누구도 독일어로 원활한 의사소통이 되지 않는 현재의 상황이 개인은 물론 가정을 유지하는 데에도 얼마나 위험하고, 치명적인 문제인지 언급하지 않았다.








독일에서 인정하는 독일어 능력시험의 레벨을 보통 A1에서 C2까지 나눈다.


A1에서 A2까지는 기본적인 어휘 구사, 일상적이고 상당히 단순한 표현을 사용한 대화 정도가 가능한 단계이다.


B1은 상대방이 또렷한 발음으로 천천히 말해줄 경우 의사소통이 원활하게 이루어지며 익숙하거나 본인의 관심분야인 영역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표현하고 간단하게 설명할 수 있는 정도이다.


B2는 복잡한 텍스트의 핵심을 이해하고 자신의 분야에 대한 수준 있는 토론이 가능하며 즉흥적인 상황에서 막힘 없이 의사소통이 가능한 정도이다.


C1은 B2보다 조금 더 전문적이고, 더 어렵고, 더 긴 콘텐츠에 대한 내용을 정확히 이해하고 확실하게 명시되지 않은 부분들까지 맥락을 통해 유추해낼 수 있는지를 판단한다고 한다.


C2를 딸 정도면 독일에서 정치인으로 출마할 수 있다고 할 정도로 상위 수준이며, 현지 독일인보다 문법적으로 정확한 독일어를 구사한다고 보면 된다.


보통 본인이 살고 있는 도시의 시청에 가면, Intergrationkurs라고 해서 독일로 이민 온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기본적인 독일어 수업을 무료로 제공하는 프로그램이 있다.


대부분의 외국인들이 이 프로그램을 통해 독일어를 배우며 이 과정이 끝나는 B1에서 독일어 공부를 멈춘다. B2부터는 자비를 털어 공부해야 하기 때문에 단순 육체노동 이상의 직업을 원하는 외국인들이 주로 배운다.


독일에 사는 한국인들은 보통 B2-C1까지 공부를 하는데 이것은, 우리로 치면 전문대인 FH 입학을 위해서는 B2, 4년제 대학인 Uni를 가려면 보통 C1이 필요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심리학이나 의학, 법학 같은 고급 독일어가 필요한 학문을 하는 것이 아닌 이상 C2까지 공부하는 케이스는 잘 없다.








자격증 공부 및 외국어 시험에 익숙한 많은 한국인들이 1년 안에 B1까지 쉽게 따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어학능력시험 B1을 통과했다고 해서 내 독일어 실력까지 바로 B1이 되는 것은 아니다.


시험을 통과하고도 정말 그 자격증 수준의 능력이 되려면 실생활에서 꾸준히 그 수준에 상응하는 원어민과의 교류가 있어야 한다.


현지에서 아기를 데리고 혼자서 살아본 결과, 적어도 C1 수준의 문법적 이론과 어휘력은 머릿속에 기본적으로 담고 있으면서 매끄럽게 사용할 수 있어야 어느 정도 독립적이고 편안한 생활이 유지 가능하다.


그리고 어학능력시험이 전부는 아니지만, 대학에 적을 두고 있거나 독일에서 직장을 다니는 것이 아니라면 적어도 C1까지는 반드시 통과해서 자격증으로 소지하기를 바란다.


예외는 없다. 현재 외국에 살고 있다면 그 나라의 말은 잘하면 잘할수록 좋다.


이것은 비단 남편과의 원활한 의사소통이나 가정의 행복만을 위한 일이 아니라 개인의 정체성 소실을 막아주고, 더 나아가서는 생존과도 직결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국제결혼에 있어서 언어만큼 중요한 것이 운전이다.


일단 다른 것은 몰라도 면허는 반드시 있어야 한다. 아직 없다면 결혼 전에 꼭 따길 바라며, 어차피 독일에서 수동 차량 수업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한국에서 미리 수동으로 시험 보는 것이 가장 현명하다.


이미 한국 면허가 있다면 즉시 독일의 Ordnungsamt에 가서 한국 면허와 독일 면허로 바꾸기 바란다. 수동이든 자동이든 한국 면허는 독일에서 시험 없이 Klasse B로 바꿔준다.


자동 차량은 이 면허로도 독일에서 바로 운전이 가능하며, 수동 차량은 따로 10시간의 운전연수를 받아야 한다. 그럼 별도의 시험 없이 운전강사의 사인으로 수동 차량 운전이 가능하다.


운전이 중요한 이유는 특정 도시를 제외하고는 독일에서 대중교통이 서울만큼 잘 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과 달리 인구가 중소도시에 잘 분산되어 있으면서도, 또 모든 도시에 지하철과 버스가 편리하게 다니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독일인들은 만 17세가 되면 필수적으로 면허를 따며, 언제 어디서든 누구의 차량으로도 운전이 가능하도록 실질적 실력을 보유하고 있다.


특히 가정을 꾸리고 자녀를 갖게 되면 마당 딸린 집에서 아이를 키우기 위해 시내를 벗어나 조금씩 외곽으로 나가게 마련인데, 이때에는 더더욱 자동차가 필수이다.


모든 것이 근거리에 있는 서울과는 근본적인 환경이 다르다.


안 그래도 1년이면 거의 300일은 흐리고 비가 오는 독일에서 언제든 아기가 아프면 소아과를 가야 하고, 아이 등하교 및 방과 후 다양한 활동도 책임져야 하는데 엄마가 차가 없다는 것은 사실 어불성설이다.


그래서 운전을 못하는 많은 한국인 여성들이 독일인 남편에게 의지해 차를 탄다. 가까운 거리만 혼자 다니고, 좀 멀어지면 남편에게 데려다 달라하거나 데려가 달라고 부탁하는 것이다.


의존은 그렇게 시작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마지막은 아마도 결혼 이민자들에게 가장 어려운 일이 될 것이다. 바로 직장을 잡으라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언어도 안되고, 독일 생활도 익숙지 않은데 어떻게 독일에서 직장을 잡겠느냐고 생각할 것이다.


맞다. 그래서 나 역시 그 부분을 일찌감치 포기하고 천천히 독일어를 배우며 언젠가 기회가 되면 남편의 지원 하에 직업교육부터 조금씩 시작하리라 생각했었다.


그러나 스무 살 넘은 성인이 자신의 목구멍을 스스로 건사하는 일은 너무나 당연하고,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나는, 너무 많은 대가를 치르고 배웠으며 지금도 배우는 중이다.


결혼한다고 해서, 외국 남자와 결혼해 외국에 넘어와 산다고 해서 한 인간으로서 주체적으로 살아가야 하는 삶의 의무가 사라지거나 다른 이에게 넘어가는 것은 아니다.


앞선 한독 커플의 인터뷰에서도 볼 수 있듯 내가 이룰 가정이 소중하다면 더더욱, 그 가정의 평화와 안녕을 위해서 스스로 독립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시작이 바로 직장을 얻는 일이다.


남보기에 번듯하고, 멋질 필요 없다.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한국이든, 독일이든, 그 돈이 얼마가 되었든 상관없다.


다만 자신이 독일에서 혼자서도 살아갈 수 있을 정도의 경제력은 있다는 것을 스스로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현지인 배우자도 그것을 알아야 한다.








만약 당신이 최소한 이 세 가지를 아직 갖추지 못했다면 이 국제결혼은 미루는 것이 맞다.


언어가 부족하다는 것은 두 사람의 관계가 상당히 불안정하다는 뜻이며, 운전과 직장이 해결되지 않았다는 것은 당신이 아직 스스로 설 준비를 마치지 못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자신이 그런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마음속 깊숙이 불안감과 두려움을 내포한 채 국제결혼과 이민을 결정했다는 것 자체가 아직은 결혼이라는 중대사를 감당할 만큼 성숙하지 못하다는 반증이다.


그런 결혼은 설사 성사되더라도 결코 안정적으로 오래갈 수 없다. 그리고 결혼 기간 동안 미뤄온 채무의 이행이 크나큰 고통과 함께 뒤따른다.


어려울 것 없다. 각자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능력에 맞춰 이 세 가지를 준비해나가면 된다.


- 장거리 연애 중이라면 독일 이민을 미뤄두고 언어와 운전 문제부터 해결하자.

- 이미 독일로 넘어와 결혼을 준비 중이라면 결혼은 잠시 미뤄두고 동거 형태로 살며 직장을 잡자.

- 이미 결혼했는데 이 세 가지가 없다면, 출산을 뒤로 미루자.

- 이미 출산도 했다면, 오늘부터라도 독립적인 생활을 위해서 남편에게 운전이라도 배우자.




사진출처 : Sharomka/Shutterstoc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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