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을 좋아하는가? 외국인과 국제결혼을 고려하고 있다면 이제부터 싫든 좋든 양쪽 나라의 법과는 친해져야만 한다.
양국의 가족법, 그중에서도 혼인, 이혼, 재산 분할, 상속, 양육권과 친권 등에 대한 대략적 개요는 필수이며 자세하게 알수록, 많이 알수록 좋다.
현지인 남편이 당신에게 등을 돌리는 순간부터 그동안 당신을 둘러싸고 있던 두리뭉실했던 구름이 걷힌다. 그리고 나의 주변이, 나의 처지가 명확하게 보이기 시작할 것이다.
그 시작은 현지인 남편이 당신과의 동거를 거부하고 떠나간 자리를 매일같이 날아들어올 법원 서류가 대체하면서부터이다.
형사소송이라면 또 모르겠다. 그러나 적어도 민사소송인 이혼재판에서는 당신이 외국인이라 독일어도, 독일법도 잘 모르고 주변에 도와줄 사람 없이 재판을 끌어가야 하기 때문에 현지인 남편보다 불리하다는 것도 판사에게는 큰 고려사항이 아니다.
판사는 당신과 현지인 남편이 제출한 독일어 서류들을 바탕으로 상호 간 주장의 신빙성을 따질 뿐이다. 양측 변호사가 변론을 돕기는 하겠지만, 그것도 일차적으로 당신과 당신 변호사의 매끄러운 소통이 우선해야 가능한 일이다.
지금까지 언어의 중요성을 수없이 반복한 이유도 결국은 여기에 있다. 재판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결국 나를 지켜줄 방패, 상대의 공격을 역으로 받아낼 무기는 "언어와 법" 밖에 없기 때문이다.
상대방 나라의 법을 안다는 것은 일단 자신의 권리를 지키고 보호해 줄 법 지식을 다룰 수 있다는 측면에서 유용하다.
또한 무지로부터 오는 내면의 불안감을 잠재울 수 있다. 대부분의 두려움은 내가 알지 못하기 때문에 비롯된다.
그래서 우리의 결혼생활이 어떻게 흘러갈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적어도 앞으로 법이 나에게 이런 식으로 적용될 것이라는 객관적 사실을 스스로 숙지하고 있으면 이러한 두려움을 어느 정도는 떨쳐낼 수 있다.
마지막으로 중요한 사실은, 법이(특히 가정법의 경우) 그 나라 국민들의 보편적 정서를 반영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그 나라의 법을 알면, 그 나라 사람들의 사회 분위기와 정서를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이혼 시 유책주의를 채택하고 있는 한국에서는, 이혼을 하려면 사유가 분명해야 한다. 그리고 그 사유조차 민법에서 6가지로 정해놓고 있다.
- 배우자가 부정한 행위를 한 때
- 배우자가 악의로 다른 일방을 유기한 때
- 배우자 또는 그 직계존속으로부터 심히 부당한 대우를 받았을 때
- 자기의 직계존속이 배우자로부터 심히 부당한 대우를 받았을 때
- 배우자의 생사가 3년 이상 분명하지 않을 때
- 기타 혼인을 계속하기 어려운 중대한 사유가 있을 때
한국에서는 배우자가 이에 상응하는 심각한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다고 판단되거나, 유책 배우자 당사자가 소를 제기한 경우 이혼이 성립되기 매우 어렵다.
심지어 이혼하게 되더라도 유책배우자의 경우 상대방에게 손해배상을 해야 하기도 한다.
한국인의 법과 정서에서 이혼이란 객관적인 사유가 있어야 하는 일이다. 그래서 이혼을 원하는 쪽에서는 상대방의 흠을 찾아내고 그것을 객관적으로 증명해야 하며, 그렇기 때문에 잘못을 저지른 쪽에서 이혼을 요구하는 것은 얼토당토않은 일이다.
혼인빙자 간음죄가 2009년, 간통죄는 2015년에 폐지되었다. 한국은 13년 전까지만 해도 결혼하자고 꼬셔서 잠자리를 갖거나 바람을 피우면 남자를 감방에 보낼 수 있는 나라였던 것이다.
모 영화감독과 본부인의 결혼생활이 파탄 난 지 오래이고, 젊은 여배우와 사실혼 관계로 산다는 것을 전 국민이 다 아는데도 그가 이혼소송에서 패소한 것, 그리고 전 국민이 댓글로 그 감독과 여배우를 지탄하는 것.
이것이 바로 현재 한국의 이혼법과 이혼을 바라보는 한국인들의 법감정이다.
반면 독일에서는 파탄주의를 채택하고 있다. 특별한 이혼 사유가 없어도, 결혼한 당사자 두 사람 중 누구 하나라도 결혼생활을 지속하고 싶지 않으면 언제든 이혼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이혼의 사유도 물론 중요하지 않다. 이혼사유는 당사자들이 서로 물고 뜯을 때나 중요한 것이지 법정에서 혼인을 해소하는 데에는 아무 상관이 없다는 말이다.
독일 법원에서 따지고 드는 것은 두 사람이 그동안 함께 공유하고 있던 것들의 소유권을 어떻게 나눌까 하는 것이다. 동산은 어떻게, 부동산은 또 어떻게, 슬하에 자녀가 있다면 자녀는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서 공방전이 벌어진다.
이 말은, 일반 독일 국민들에게도 역시 이혼 사유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뜻이다. 내가 더 이상 결혼생활을 유지하고 싶은 마음도, 지킬 의지도 없고, 관계 개선을 위해 노력도 하기 싫어질 때 그들은 이 혼인관계를 해소하려 한다.
한쪽은 혼인을 유지하고 싶다고 해도 법원은 이미 실질적으로 파탄 난 가정을 유지하도록 다른 쪽에게 강요할 수 없다.
혼인을 유지하고 싶은 이의 마음이 존중되어야 하는 것처럼 혼인을 해소하고 싶은 이의 마음 역시 존중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결혼은 두 사람이 원할 때에 성사되어 둘 모두가 원하는 기간 동안 지속되는 계약이기 때문에, 둘 중에 하나라도 원하지 않게 되면 계약은 파기될 수 있다.
이것이 독일인의 법감정에서 바라본 결혼과 이혼이다.
그렇다면, 이혼을 원하는 모 영화감독과 이혼을 거부하는 본부인은 독일인들의 법감정에 비춰볼 때 어떤 느낌일까?
일단 영화감독은 큰 문제가 없다. 혼인을 해소하고 싶으니 아내에게 정당하게 이혼을 요구했고, 본인이 사랑하는 여배우와 공개적으로 잘 만나고 있으니 이것도 정상이다.
반면, 아내는 법을 악용해 두 사람에게 분풀이를 하고 있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두 사람의 실질적 혼인관계는 이미 오래전에 끝났기 때문이다.
상대가 거부하는 결혼생활을 강요하는 것은 집착이며, 상대와 자신, 더 나아가 둘 사이의 자녀에게도 가학적인 일이다. 진정 그를 사랑한다면 보내줘야 하며, 사랑하지 않는다면 더더욱 그를 잡고 있을 이유가 없다.
과거 그녀가 시어머니의 병시중을 들고, 자녀를 잘 양육한 것 역시 그녀 스스로의 주체적 선택이지 남편에게 원치 않는 결혼생활을 강요하는 대가로 지불한 것이 아니다.
그녀는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자신의 삶에 집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감이 오는가? 독일 남자와 결혼한다는 것은 이런 사회 분위기 속에서 자란 남자와 가정을 꾸린다는 뜻이다.
가정환경이나 타고난 성격, 살아오며 경험하고 익힌 것들에 따라 조금씩 차이는 있을 수 있으나 대다수의 독일인들은 보편적으로 이러한 정서를 가지고 있다. 당신의 독일인 남편도 크게 다르지 않다.
만약 결혼하고 독일로 이민을 간다면, 독일의 이민법에 대해서도 필수로 공부해야 한다. 본인이 독일에서 정확히 어떤 위치이며, 독일인 남편의 존재 유무에 따라 법적 지위가 어떻게 달라지는지도 인지하고 있어야 한다.
또한 영주권을 갖고 있거나 비자를 갱신하며 사는 경우, 독일 땅을 떠나게 될 때 기간에 따라 어떤 권리가 소멸하고, 어떤 의무가 생겨나는지도 잘 알아봐야 한다.
참고로 외국인의 경우, 6개월 이상 독일 땅을 떠나게 되면 갖고 있던 독일 신분증의 효력이 사라지기 때문에 관할 관청에 미리 신고를 해야 한다.
평소처럼 한두 달 한국에 머물러 갔다가 독일인 남편의 꾐에 넘어가 어영부영 한국에 머물다가 비자 문제로 곤욕을 치르는 "순진한 결혼 이민자" 아내들도 적지 않다.
그리고 이런 일은 보통 한국인 아내가 영주권을 따기 전 이민자로서의 삶이 아직 많이 미숙할 때 벌어진다. 이혼을 좀 더 빠르고 간편하게 하려는 현지인 남편의 꼼수인데 상당히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적어도 내가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는 영역에서만큼은 내 나라와 상대 나라의 법을 잘 알아두는 것이 좋다.
누누이 말하지만, 아직 사랑과 열정, 행복과 낭만이 가득할 때는 모른다. 그런데 현지인 배우자의 마음이 돌아서면 그때부터는 모든 것이 외국인인 나에게 불리하게 돌아가리라는 것을 반드시 숙지하고 있어야 한다.
국적을 바꿨다고 해서 내가 재판받을 때 외국어를 모국어처럼 술술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요, 내가 아무리 철두철미하게 계획하고 준비한다고 해도 현지에서 나고 자란 현지인 배우자만큼 그 나라 법을 잘 이용할 수는 없다.
또한, 법도 자국민에게 더 친절하다. 한국법은 한국인에게, 독일법은 독일인에게 더 유리하다는 말이다.
아이가 어릴수록 엄마에게 유리하다거나 여자가 남자보다 유리하다거나 하는 항간에 떠도는 말만 믿고 순진하게 가만히 있다가는 얼떨결에 평생 아이를 만나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소송을 해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세상에 만만한 재판은 없으며 판결이 날 때까지 안심해서도 안된다.
무엇보다 현지인 배우자의 마음이 당신에게서 돌아서면 그때부터 상대는 모든 수단과 방법, 인맥을 가리지 않고 동원해 재판을 유리하게 끌고 가려고 할 것이다. 본인의 재산과 아이를 지켜야 하기 때문이다.
이혼 과정 및 양육권 문제에 관해 정말 처절하고 피눈물 나는 사례들을 많이 알고 있다. 짐작도 할 수 없을 만큼 고통을 당하는 한국인 여성들이 많다.
우리 이혼에 관여하는 나라의 법은 곧 보험과도 같다. 그러니 남편의 나라로 결혼이민을 준비하고 있다면, 반드시 그곳의 법을 잘 숙지하고 있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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