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실

by 뿌리와 날개

독일인 남편을 따라 결혼과 동시에 독일로 넘어와 3년 간 결혼생활을 했던 경험자로서 국제결혼의 신혼기를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그것은 "상실"이었다.


말 그대로 상실!


내가 가장 먼저 잃어버린 것은 언어였다. 하루아침에 독일 땅에 터를 잡긴 했는데, 나는 할 일이 없었다. 남편은 이제 막 사회생활을 시작한 신입사원이었고, 언제, 어느 도시로 로테이션을 돌지 몰랐기 때문에 우리는 언제든 이사를 갈 수 있도록 대기해야만 했다.


남편이 출근을 하고 나면, 퇴근하는 시간까지 집에서 남편을 기다리며 주로 혼자 시간을 보냈다. 혼자 독일어 공부를 했고, 한국 드라마를 봤고, 한국인 친구들이나 가족들과 카톡으로 언제나처럼 연락을 주고받았으며, 남편이 올 시간에 맞춰 저녁을 차려놓고 기다렸다.


남편이 돌아오면 반가웠고, 더 이상 장거리 연애를 하며 서로를 그리워하지 않아도 된다는 기쁨을 마음껏 누렸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3개월쯤 지났을 무렵, 문득 깨달았다.


남편이 출근하고 나면 돌아올 때까지 나는 한 번도 내 목소리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을....


그래서 나는 기동성을 원하는 남편의 못마땅한 눈길을 뒤로하고 기차로 30분 떨어진 더 큰 도시 어학원에 독일어 수업을 다니기 시작했다.








내가 두 번째로 잃어버린 것은 일상이었다.


학교나 회사, 그 어디에도 적을 두고 있지 않았던 나는, 남편 외에는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도시에서 외톨이였다. 아마 소속감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이었다면, 그것을 소속감의 상실이라고 했을지도 모른다.


나는 그래도 가정을 꾸리는 것이 그 당시 가장 원하던 일이었기 때문에 소속감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다만, 주말이 와도 좋아하는 친구와 강남에서 만나 영화 한 편 보러 갈 수 없다는 것, 벚꽃이 피는 계절인데도 더 이상 여의도에 갈 수 없다는 것, 심심할 때 서점에 들러 새로 나온 책들을 둘러본다거나 밤 10시에 먹고 싶은 게 있어도 배달을 시킬 수 없다는 것 같은 소소한 일상들이 사라졌다는 것이 조금 아쉬울 뿐이었다.


비교적 무던한 성격이었던 나는 그 모든 것들을 예민하게 받아들이기보다는, 새로운 일상에 적응하려고 노력했다. 어학원에 다니며 부지런히 사람들과 번호를 교환했고, 누군가 만나자고 하면 독일어가 부담스러워도 거절하지 않았다.


하지만 어설픈 독일어, 인종마저 다른 낯선 이들과의 짧은 교류가 20년 넘게 일궈온 나의 편안했던 일상을 대체할 수는 없었다. 남편이 없는 시공간에서 나는 언제나 외톨이였다.








남편이 직장에서 점차 자리를 잡아가는 동안 나도 역시 독일어를 배우고, 주변의 한국인들도 만나며 나름 적극적으로 해외 생활에 적응을 해나갔다.


그러는 사이 우리는 세 번 도시를 바꿨고, 두 번 나라를 바꿔 이사했다. 아기를 낳은 지 한 달 만에 다시 독일로 돌아왔을 때, 우리는 어느새 결혼 3년 차 부부가 되어있었지만 삶은 여전히 불안정했다. 우리 둘 다 아무런 연고도 없는 낯선 도시에서 다시 시작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낯선 도시, 갓 태어난 아기, 여전히 독일어로 일상생활이 어려운 아내와 새로운 직장에 적응하기 바빴던 남편.


남편과 처음으로 갈등의 골이 깊어져 답답한 마음에 무심코 집을 나섰던 그날, 쌀쌀했던 그 밤의 기억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아무 생각 없이 집을 나섰는데 연락할 곳이 없었다. 한국이었다면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나 지금 속상한 일이 있으니 어디 어디에서 보자 하고 나가면 그만인데, 핸드폰을 아무리 들여다봐도 지금 이 순간, 만날 수 있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몸은 떨어져 있어도 지난 3년 간 매일같이 연락하며 그렇게 거리감을 크게 못 느끼고 살았던 가족, 친구들이었기에, 누군가 필요한 지금 이 순간 내 곁에 있어줄 수 없다는 사실에 처음으로 그들이 한없이 멀게만 느껴졌다.


혼자서 어디라도 가보자 싶어 버스정류장으로 갔다. 30분에 한 대 오는 버스를 기다리며 영화를 볼까 싶어 영화관도 검색해보고, 카페를 갈까 싶어 근처 카페도 찾아봤는데 아무 데도 갈 수가 없었다.


태어난 지 한 달 된 아기와 이 도시로 이사와 반년이 지난 그때까지 집에서 아기 키우며 젖 먹이고, 기저귀 갈고, 삼시세끼 따순 밥하느라 정신없이 살던 나는, 남편과 함께가 아니고서는 시내에 거의 혼자서 나가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30분에 한 대 오는 버스를 몇 대나 보내며 탈까 말까 수없이 망설이다, 결국 용기가 안나 다시 정류장 의자에 주저앉았다. 하늘을 보니 어느새 깜깜했다.


밤바람이 찼다. 이렇게 서러운데도 내가 갈 곳은 결국 내 마음도 몰라주는 남편이 있는 집 밖에 없었다.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아....

이 독일 땅에 나는 혼자구나.


남편하고 다투다 속상한 마음에 집을 나와도 어디 갈 곳도 없고, 마음 털어놓을 곳도 없는 내 신세. 친정도, 친구도 없는 내 신세.


그랬다. 그날 그 버스정류장에서 새까만 하늘을 머리에 이고 내가 깨달은 것은, 남편이 없으면 나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결혼이민 3년 만에 나는 더 이상 예전의 자유롭고 독립적인 내가 아니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지금 여기서 뭘 하고 있는가.


그때부터였다. 이 의존적인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찬바람과 눈을 맞으며 유모차를 끌고 밖으로 나가 닥치는 대로 뭔가를 하기 시작한 지.




사진출처 : Sharomka/Shutterstoc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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