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차이

by 뿌리와 날개

충분히 준비되지 않은 국제결혼에서 발생할 수 있는 문제 중 가장 흔한 것은 역시 서로 다른 문화가 부딪히며 발생하는 어려움과 그에 따른 불화일 것이다.


물론 같은 한국인끼리의 결혼이라도 남녀가 속했던 서로의 원가정에서 지금껏 당연하다 느끼고 살아온 환경이 달라 충돌하는 경우 역시 빈번하다. 살아온 환경이 서로 다른 두 사람의 결합이 결혼인만큼 이것은 일정 부분 당연한 현상이기도 하다.


그러나 국제결혼에서 유독 이러한 문제가 두드러지고 뛰어넘기 어려운 이유는, 그러한 차이 발생의 뿌리 자체가 단순히 가정환경에서만 비롯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라는 개인보다 우리라는 집단이 더 강조되는 동양의 집단주의적 문화와 내가 어디에 속해 있든 나라는 개인의 고유한 영역은 변하지 않는다는 서양의 개인주의적 문화는 겪어보면 생각보다 많이 이질적이다.


단편적인 예로,


1) 놀이터에서 5살짜리 내 아이가 다른 아이를 괴롭혔는데 사과하지 않으려고 할 때


- 독일인 배우자 : 아이 스스로 사과하도록 권유하고 기다리되, 아이가 그 제안을 거부하더라도 내가 대신 사과하지는 않는다. 안타까운 일이기는 하나 아이의 의사에 반해 강제로 요구할 수는 없다. 이것은 5살짜리 아이가 스스로 책임질만한 사안이며 뒤늦게라도 아이가 스스로 깨닫고 반성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 한국인 배우자 : 민망함에 아이가 최대한 빨리 사과를 할 수 있도록 재촉하며, 아이가 거부한다면 내가 재빨리 대신 사과한다. 그 상황에서는 누구라도 책임지고 사과를 하는 것이 당연한 도리이기 때문이다. 아이의 잘못은 곧 내 잘못이기도 하다.


2) 여럿이 함께 있는 자리에서 누군가 나를 불쾌하게 만들어 내 기분이 많이 상했을 때


- 독일인 배우자 : 이것은 상대의 비매너적인 행동이고, 나에 대한 모욕이므로 자리를 털고 일어나도 괜찮다. 그 모임의 분위기가 이후 어떻게 되든 그것은 내 알 바가 아니다. (놀랍게도 실제로 남겨진 사람들도 그러려니 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어간다)


- 한국인 배우자 : 불쾌하지만 일단 참고 어지간하면 내색하지 않는다. 내 기분이 나쁘다고 갑자기 자리를 털고 일어나는 것은 무례한 일이다. 그럼 남은 사람들이 얼마나 황당하고 불편하겠는가!


3) 배우자에게 마음에 들지 않는 점이 있을 때


- 독일인 배우자 : 그로 인해 내가 조금 불편하더라도 상대방을 존중하고 감싸주려 한다. 아무리 배우자라도 내가 이래라저래라 하는 것은 선을 넘는 행동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사랑한다면, 그 사람을 바꾸려 하는 것이 아니라 있는 자체를 사랑해야 한다. 정 힘들고 안 맞으면 내가 떠나면 된다.


- 한국인 배우자 : 함께 살아가는 데 있어 방해가 된다면 고쳐 달라고 요구할 수 있다. 나는 배우자이고 우리는 가족이므로 더더욱 그럴 자격이 있다. 무엇보다 사랑한다면, 서로 조금씩 배려하며 상대와 조화할 수 있도록 안 맞는 점을 개선해나가야 한다. 우리는 평생 함께 할 사이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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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문화 차이는 두 사람 삶의 곳곳에서, 모든 선택의 순간에서 발생한다. 문제는, 대부분의 경우 이것이 문화 차이인 줄 모르고 한참을 살아가는 경우가 태반이라는 점이다.


진짜 심각한 문화의 차이는 "나는 하루 한 끼는 꼭 밥을 먹어야 하는데, 저 사람은 아침저녁으로 물리지도 않고 빵을 먹네" 따위의 일차원적인 일이 아니라는 말이다.


진짜 문화 차이로 인한 문제점은, 어떠한 상황에서 누군가 어떤 반응을 했을 때 당시에는 두 사람 모두 아무 문제없이 자연스럽게 넘어갔지만 사실 그 반응 안에 담긴 의미와 의도, 맥락에 대한 이해가 두 사람이 서로 완전히 상반될 수도 있다는 것에 있다.


예를 들어보자.


한국인 아내가 모처럼 날을 잡아 시댁 식구들을 초대해 한 상 크게 차려 한국음식을 대접했다. 쉬는 날 하루 종일 손 많이 가는 음식을 차리느라 힘들었지만, 온 가족이 맛있게 먹었으니 마음은 즐겁고 행복했다. 독일인 남편과 시댁 식구들 역시 감사하다고 말했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이 상황에서 어떤 문화 차이를 볼 수 있을까? 표면적으로는 없어 보일 것이다. 이것이 국제결혼 신혼의 모습이다. 별 문제없다. 이국적인 음식, 화목한 가족, 서로에 대한 감사. 아름답다.


그러나 조금 시간이 흘러 결혼 생활에 익숙해지고, 이런 일이 반복되면 뭔가 미묘하게 다른 점이 느껴지며 마음이 불편해진다.


하지만 그런 사소하고 섬세한 일을 대화 주제로 삼기에는 너무 하찮기도 하고, 미묘한 표현이 오고 갈 수 있을 만큼의 언어적 교류도 안되기 때문에 보통은 그냥 지나간다.


이런 행간을 읽어야 하는 문화 차이는 대부분 한국 여성이 어느 정도 독일 문화에 익숙해지고 언어도 수월하게 할 수 있을 때 남편과의 깊은 대화 끝에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수면 위로 떠오르기 시작한다.


- 한국인 아내 : 내가 그래도 당신한테 참 잘하지? 꼬박꼬박 시댁 식구들 초대해서 맛있는 밥도 해 먹이고 말이야.


- 독일인 남편 : 그게 무슨 말이야? 우리 식구들 초대해서 밥 먹는 거랑 나한테 잘하는 거랑 연관이 있어?


- 한국인 아내 : 응? 내가 당신 가족들한테 잘하잖아. 꼬박꼬박 안부도 드리고, 번거롭지만 쉬는 날 초대해서 요리도 하고. 이게 다 당신을 사랑하니까 당신 가족한테도 잘하는 거지.


- 독일인 남편 : 당신 원래 요리 좋아하잖아. 그리고 당신이 우리 가족들 좋아하니까 초대하는 거 아니었어? 우리 가족들과 당신의 관계는 나와는 별 개지. 난 당신이 좋아서 하는 줄 알았는데?


- 한국인 아내 : 아니 물론 좋아서 하는 거지. 그렇지만 그분들이 당신 가족이 아니면 내가 굳이 마음 써가며 대접할 필요가 없지. 당신 가족이니까 그런 거잖아. 당신이 그렇게 말하니까 좀 슬프네/화가 나네/냉정하네 기타 등등. (독어에는 서운하다는 표현이 없어 당황한다)


- 독일인 남편 : 말이 앞뒤가 안 맞잖아. 당신이 좋아서 하는 거라면서 또 나 때문이라니. 당신이 좋아서 하는 게 아니라면 굳이 안 해도 돼. 그것 때문에 슬프기까지 하다면 하지 마.


- 한국인 아내 : 아니 무슨 말을 또 그렇게 해. 그리고 슬프다는 건 다른 표현이 생각이 안 나서 그런 거야. 정확하게는 한국어로 "서운하다"인데 독일어로 그런 표현이 뭔지 모르겠어서 그냥 슬프다고 한 거라고.


문화 차이로 인해 단순했던 대화가 언쟁으로 넘어가고 결국에는 본질에서 멀어진 채 한국어로만 표현할 수 있는 섬세한 감정들을 독일어로 번역해 상대를 이해시키려다 기진맥진해본 경험, 국제부부라면 한 번쯤 있을 것이다.








그렇다. 독일인 남편에게 비친 아내의 행동은, 누구의 영향도 받지 않고 순전히 본인의 즐거움에서 우러나온 행동이다.


시부모에게 잘 보이고 싶다거나, 우리 남편의 가족이니 조금 더 챙겨야 한다거나, 내가 조금 힘들더라도 가족을 위해 뭔가 의미 있고 좋은 일을 하고 싶다는 한국인 아내의 의도는 알아차리기 어렵다.


그가 나고 자란 나라에서는, 그런 문화적 맥락이 없기 때문이다.


반대로 한국인 아내에게 그런 남편의 반응은 상당히 서운하다. 물론 시댁 식구들을 좋아하는 마음도 있지만, 내가 이렇게까지 하는 것은 당연히 남편을 좋아하고 챙기기 때문이지 않는가.


이런 나의 정성과 수고를 알아보지 못하고 단순히 내가 좋아서 그 고생을 사서 한다고 생각하는 남편이 기가 차다. 그래서 남편은 그동안, 나에게 특별히 고맙다, 수고했다는 말도 하지 않았던 것이다.


친정 엄마가 한국에서 고춧가루며, 참기름이며, 미역이나 김장김치를 바리바리 부쳐줄 때에도 독일인 남편은 그것이 장모님이 돈도, 시간도 남아돌아 본인이 기쁜 마음으로 부쳐 주는 거라고 생각한다.


독일에서는, 자신의 돈과 시간이 여유가 되는 선에서 정말 온전히 주는 기쁨을 누리기 위해 선물을 하기 때문이다. 나에게 좀 부담스럽더라도 사랑하는 사람에게 잘해주고 싶어 분에 넘치는 선물을 한다는 개념을 받아들이기 어렵다.


그래서 친정 엄마의 택배에는 이런 마음이 담겨있다고 설명을 해주면, '남기지 말고 감사하게 잘 먹어야겠네. 우리가 더 자주 찾아뵙고 잘해드리자.'라는 말이 아니라, '그렇게 힘드신 거면 부담스러우니 보내지 마시라고 해'라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이것은 그가 나쁜 사람이라거나 내가 이상한 사람이라서가 아니다. 그냥 서로의 문화적 배경이 다른 것이다. 문화 차이는 이렇게 생뚱맞은 곳에서 부부 사이의 맥을 뚝뚝 끊어놓고는 한다.


그리고 앞서 말했듯이 이 정도 행간을 읽고 파악할 정도면 이미 상당히 오래 같이 살고, 서로 대화도 충분히 많이 하는 사이라는 뜻이다. 여기까지 오지도 못하고 눈 가리고 아웅 하다 헤어지는 국제 커플도 상당하다.




사진출처 : Sharomka/Shutterstoc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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