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수병

by 뿌리와 날개

이민을 고려한 적도, 준비한 적도 없이 남편 하나만 믿고 넘어온 타지 생활이 몇 년을 넘어가면 이제 슬슬 힘에 부치는 시기가 다가온다.


문화심리학에서는 이것을, 허니문기가 끝난 뒤에 오는 컬처쇼크 단계라고 부른다. 처음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외국생활을 시작하면 모든 것이 새롭고 신기하다.


아무 곳이나 사진을 찍어도 풍경은 특별하고 음식은 새롭다. 팍팍했던 한국과는 다른 여유로운 삶, 말은 알아들을 수 없지만 친절한 표정의 사람들, 군중 속 평범한 한 명이었다가 이제는 이국적인 아름다움의 소유자로 어딜 가든 받는 주목, 거기에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낭만적인 일상까지.


이 허니문기는 결혼 이민자뿐만이 아니라 보통의 이민자들에게도 즐겁고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 기간을 즐기며, 덕분에 낯설고 쉽지 않은 이민생활을 비교적 수월하게 시작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나라의 언어를 배우고, 현지인과 소통하고, 여러 우여곡절을 겪으며 우리는 점차 깨닫게 된다. 아무리 외국의 풍경이 이색적이고 아름다워도 이곳은 내가 나고 자란 추억이 없는 낯선 곳이라는 것을.


삶은 여유로울지 몰라도 그 여유를 함께 즐길 내 부모님도, 형제자매도, 친구들도 없다. 현지 언어를 잘하게 될수록 느껴지는 그들과의 거리감 및 이질적인 사고방식, 어딜 가든 보호색이 없이 정글에 던져진 듯 불안하게 튀는 내 모습....


이것은 사회생활이나 현지인들과의 적극적인 교류 없이 집에서 살림만 할 때에는 잘 느낄 수 없는 부분들이다. 요즘같이 편리하고 개인적인 세상에서는 혼자서도 얼마든지 잘 놀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당신이 남편과 더 잘 살기 위해서 현지 언어를 적극적으로 배우고, 뭔가를 해보려고 현지 사회 속으로 뛰어들어 스스로 시도할 때 비로소 시작된다.


그래서 누군가에게는 이런 컬처쇼크가 결혼이민 6개월 만에 시작되기도 하고, 누군가에게는 2-3년 뒤에 시작되기도 하며, 8년이 넘도록 직접적으로 와닿지 않기도 한다.


그러나 삶은 참으로 오묘해서 아예 그런 시도조차 하지 않고 집에서만 웅크리고 살았다 하더라도, 어느 시점부터는 어떤 식으로든 어쩔 수 없이 경험할 수밖에 없게 된다.








동식물도 원산지를 떠나면 태반이 시름시름 앓거나 죽는다. 결국 살아남아 새로운 땅에 적응하고 씨를 뿌리는 개체는 그중에서도 유난히 강인한, 몇 안 되는 숫자뿐이다.


말 못 하는 생명들도 그럴진대, 고등동물이라는 우리 인간이 그 과정에서 아무렇지 않다면 그것이 오히려 더 부자연스럽지 않을까.


이 컬처쇼크 단계를 뚫고 나가지 못하면 결국 고국으로 역이민 하는 사태가 발생한다. 이민자라면 반드시 거치게 되는 당연한 과정이지만, 유독 결혼 이민자들에게는 이 단계가 심리적으로 일반 이민자들보다 더 혹독하게 느껴지는 듯하다.


왜일까? 아마도 동기부여가 상대적으로 약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민의 계기도 자의보다는 외부환경의 영향이 컸고, 이민 초기 보통의 이민자들처럼 스스로 노력해 힘들게 가꾼 삶의 터전이 아니다 보니 애착도 덜해 미련 없는 이곳에서의 고통스러운 시기가 더욱 가혹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사회생활을 하지 않는 경우, 이러한 컬처쇼크는 당연히 배우자 및 시댁과의 갈등에서 많이 경험하게 된다. 이것은 그동안의 낯선 이민생활을 견디게 해 준 남편과의 사랑이 처음으로 흔들리는 과정과 맞물려 나를 더욱 아프고 외롭게 한다.


이럴 때에는 남편에게서 벗어나 이제라도 자기만의 생활을 찾기 위해 노력을 하는 것이 좋다. 한국에서의 추억을 뒤로한 채 이제는 새로운 세상에 적극적으로 적응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파경을 맞는 많은 국제커플들의 결혼생활을 되짚어보면 이 시기에 임신과 출산을 선택한다. 이렇게 이어진 자녀의 출산이 훗날 제대로 견고하게 다져지지 않은 두 사람의 관계를 더욱 위태롭게 만드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표면적으로는 신혼생활을 어느 정도 즐긴 뒤 향하는 자연스러운 행보라고 볼 수 있지만, 내면 깊숙한 곳에서는 불편하고 두려운 마음을 남편과 나 사이에 자녀라는 끈으로 이어보려는 심리가 작용하는 것임을 부인하기 어려울 것이다.








물론 잘 적응해 오래 산다고 해서 향수병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여전히 많은 결혼이민자들이 마음 한편으로는 늘 고국을 그리워하며, 한국에 두고 온 가족 생각에 때때로 눈물짓는다.


세월이 가면서 많은 추억들이 흐릿해지고, 한국 사회도 더 이상 예전같이 친밀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그러나 자식으로서 부모님을 향한 그 애타는 마음은 해가 바뀌어도 사그라들지 않고 오히려 부모님이 연로해지실수록 더해만 간다.


만리타국에서 늘 내 아이들을 그리워하는 친정 부모님과 달리, 언제든 원할 때면 아이들을 볼 수 있는 시댁 어른들에게도 언젠가부터 알게 모르게 서운한 마음이 든다.


아이들과 시댁 어른들의 유대감은 점점 쌓여만 가는데 1-2년에 한 번 볼까 말까 하는 친정 부모님과 아이들 사이의 거리감은 세월이 갈수록 자꾸만 커지기 때문이다.


식성도, 사고방식도, 정서도 심지어 말할 때 짓는 표정까지도 더욱더 독일 사람 같아지는 내 아이들인데, 그마저도 한국에 계신 내 부모님께 안겨드리기 쉽지 않다.


그분들이 아직 정정하실 때 이 아이들을 몇 번이나 더 안아보실 수 있을까?


아무리 시집살이가 없다한들 가까이 살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시댁의 모든 대소사는 다 챙기고 참여하게 된다. 그런데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고 해가 거듭할수록 남편과 나 사이에서 한국 식구들의 존재감은 사라져만 가니 이것이 반가울 리 없다.


한국 사위 같으면 연로하신 장인 장모님께 용돈 좀 보내드리자는 말을 먼저 꺼낼 수도 있고, 정 안되면 내가 먼저 꺼내볼 수나 있지만, 여기서는 택도 없다.


내가 스스로 돈을 번다면 또 모를까, 가정주부라면 독일인 남편 돈으로 친정부모님께 용돈은 언감생심 꿈도 못 꿀 일이다.


이런 와중에 밖에서 인종차별적인 모욕이나 차별을 받고 비참함, 억울함에 치를 떠는 경험이라도 가끔 하게 되면 그 순간만큼은 사랑이고 뭐고 간에 와르르 무너지는 것이다.




사진출처 : Sharomka/Shutterstoc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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