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커플은 서로의 모국어가 다르기 때문에 두 사람이 어떤 언어로 대화를 하느냐는 매우 중요하다.
두 사람이 어느 한쪽의 나라에서 유학이나 직장생활을 하다가 만난 것이 아닐 경우, 공용어는 보통 영어나 두 사람이 만나게 된 제3 국의 언어가 된다.
언어에 그리 민감하지 않은 사람들이나, 제3 국의 언어라도 두 사람 모두 능통하게 사용하는 경우에는 그것이 큰 문제가 아니라고 여기기도 한다. 물론 기본적인 의사소통이나 정보전달만의 목적이라면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두 사람이 함께 삶을 계획하고 꾸려 나간다면 이야기는 완전히 달라진다.
결혼은 성별, 가정환경, 성격, 가치관, 의사결정 및 갈등 해결의 방식, 심지어 먹고 자는 습관까지 모든 면에서 부딪히게 될 두 사람이 공동의 목적과 미래를 위해 끊임없이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고 조율해 나가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말이 통하고 문화적 배경이 같은 한국사람끼리 결혼을 해도 사네, 못 사네 하는 것이 결혼생활인데, 그런 과정을 과연 원활한 의사소통 없이 평생 동안 지속해나갈 수 있을까?
결혼생활은 처절할 정도로 현실이며 언어는 결혼생활을 유지시켜주는 최소한의 장치이자 최대한의 수단이다. 결혼 전에 그런 두 사람의 공용어를 검토해 보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고 중요한 일이다.
먼저 두 사람의 공용어가 무엇이고, 그 수준이 어떻게 되는지 파악하는 것이 좋다. 만약 두 사람이 서로에게 모국어가 아닌 제3 국의 언어를 사용하고 있다면 다음의 세 가지를 기억해야 한다.
먼저, 현재는 이 언어가 공용어의 기능을 하겠지만 점점 그 기능이 후퇴하리라는 것이다.
모국어인 한국어도 외국에 살며 잘 안 쓰다 보면 잊게 된다. 하물며 외국어는 오죽할까.
두 사람이 함께 생활하는 나라의 언어를 공용어로 쓴다고 해도, 두 사람 모두에게 모국어가 아니기 때문에 변질되기 쉽다. 서로의 문법적 실수를 교정해 줄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여기에 함께 살며 주워 들어 익히게 된 각자의 모국어가 섞이면 그야말로 두 사람 만이 알아들을 수 있는 해괴한 언어가 탄생한다.
물론 두 사람 모두 끊임없이 공부하고 노력해 제3 국의 언어라도 공용어로 사용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가꿀 수도 있겠지만 현실적으로는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국제커플의 경우, 결혼과 동시에 한쪽 배우자의 나라에 정착하면서 두 사람 중 한 명의 모국어를 공용어로 사용하는 방향으로 발전한다.
두 사람 모두 인내와 노력이 필요하지만, 특히 새로운 언어를 다시 습득해야 하는 사람 쪽에서 많은 시간 투자와 수고를 해야 한다.
그다음은, 우리의 현재 의사소통이 동상이몽일 수 있다는 점이다.
언어는 그 말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세상에서 통용되는 하나의 약속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같은 한국어를 사용하는 사람들끼리도 말이 안 통하고, 말로 인해 오해와 갈등을 빚는 일이 흔하다.
그런데 문화적, 사회적, 역사적, 경제적 배경이 전혀 다른 두 사람이 서로에게 외국어인 제3의 언어로 대화를 하고 있다. 게다가 두 사람의 그 언어에 대한 이해도와 수준이 반드시 일치하는 것도 아니다.
과연 그 대화가 온전하다고 안심할 수 있을까?
내가 생각한 '배'는 한국의 달고 시원하며 물이 많은 배다. 내가 입으로 내뱉기로 결정한 'Pear'는 미국에서 배와 비슷한 것을 부르는 말이라고 알려진 단어이다. 독일인인 그는 다시 이것을 독일 사회에서 'Birne'라 불리는 과일로 받아들인다.
그러나 배와 Birne는 그 맛과 모양이 달라도 한참 다르다. 이것이 단순한 과일 이름이니 큰 차이가 없겠지만 더 복잡하거나 추상적인 개념이라면, 내 섬세한 감정선을 표현하는 말이라면 어떻게 될까?
많은 국제부부가 그냥 무던하게 살아가지만, 사실 세 가지 언어로 바뀌는 과정에서 내가 애당초 의도했던 본래의 의미가 어떤 식으로 변질되고 손상되어 왔을지 우리는 알 길이 없다.
안 그래도 복잡 다난한 결혼생활을, 두 사람이 외국어를 외국어로 주고받는 일상이 반복된다면 그 결혼생활이 얼마나 많은 잠재적인 문제와 오해를 안고 있을지 고민해봐야 한다.
마지막으로, 공용어를 통해 느낀 상대방과 모국어를 통한 그 사람의 인격이 다를 수 있다는 점이다.
남편의 독일어를 조금씩 알아듣기 시작하면서 나는, 중국어로 대화할 때는 한없이 자상하고 귀여운 사람이었던 내 남편이 생각보다 카리스마 있고 권위적인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제3 언어였던 영어를 공용어로 결혼생활을 했던 국제결혼 경험자는, 남편 나라 말을 알아듣기 시작하면서 재치 넘치는 줄로만 알았던 남편이 평소에 얼마나 인종차별적 농담을 즐겨하는지 알게 되어 놀랐다고 했다.
두 사람 모두에게 외국어인 언어로 대화할 때 언어의 주된 기능은 내용 파악에 한정된다. 화자와 청자 모두 의사전달과 내용 파악이 우선이라 뉘앙스나 맥락, 행간과 같은 언어의 섬세한 기능은 배제되기 쉬운 것이다.
외국어로 변환되는 과정에서 사용자의 성격도 함께 순화가 되며, 들을 때 내 머릿속에서 다시 나의 성격과 말투를 거쳐 또 한 번 변환되니 말에 반영되는 상대방의 실제 인격을 파악하기란 쉽지 않다.
예를 들자면 이런 식이다.
그가 실제로 하려던 말 : 제기랄, 그딴 식으로 하느니 차라리 때려 치라 그래!
그가 공용어로 한 말 : 이런, 그런 식으로 할 거라면 차라리 그만두는 편이 나을 거야!
내가 머릿속으로 받아들인 말 : 아이고, 그럴 거면 차라리 관두는 게 낫지!
그러나 그 사람의 모국어를 알아듣게 되는 순간 그 사람의 순화되었던 인격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그가 모국어를 할 때 선택하는 단어나 맥락의 뉘앙스, 일상에서 내뱉는 모든 말이 그가 태어나서부터 지금까지 형성해온 그의 인간성을 정교하게 반영하기 때문이다.
한국인 배우자를 데려오면 부모님이나 집안 어르신들이 그 됨됨이를 봐주실 수 있지만 외국인 배우자를 맞이하는 데에는 그런 도움을 받기가 거의 불가능한 것이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 사람의 됨됨이를 파악하는 것은 순전히 내 몫이 된다. 그런데 그마저도 외국어의 외국어라는 두 번의 장벽을 넘어야 한다면 이것은 상당히 심각한 일이다. 잘 생각해 볼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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