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가족 성은 어떻게 할까?

by 뿌리와 날개

독일 사람과 결혼한다면 또 한 가지 빼놓을 수 없는 것이 가족의 성이다. 독일은 결혼할 때 성을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많은 독일의 부부가 결혼과 동시에 둘 중 한 명의 성으로 통일해서 가족의 성으로 사용하며, 대부분의 경우 남편의 성을 따른다.


타국가들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여권이 높은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기혼인데 미혼일 때처럼 성을 유지하는 독일 여성을, 나는 거의 본 적이 없다.


남편의 성을 자신의 본래 성과 합쳐 불편하게 긴 성을 사용하는 한이 있어도 많은 경우 남편의 성을 가져온다.


이름 사이에 - 가 들어간 경우가 그런 경우이며, 의사나 변호사 같은 전문직 여성 종사자들의 이름에서 많이 보인다. 이 경우 엄마만 긴 성을 쓰고 아이들은 여전히 아빠의 성만 따른다고 한다.


이것은 물론 결혼제도를 따르는 사람들이 전통적인 가치관을 가졌을 확률 또한 높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독일에서는 온 가족이 같은 성을 쓰는 것이 오랜 전통이라 가족끼리 성을 통일하는 것이 실제로 편리하기 때문이다.


독일에서 엄마와 아이의 성이 다를 경우 학교며, 병원이며 일상에서 불편한 일이 많다. 한국에서도 아이 이름이 김 XX인데 아빠 이름이 최 XX이라고 하면 당황스러운 것과 같은 이치이다.


특히 공항에서 성이 다른 아이를 데리고 상대 배우자 또는 그/그녀의 동의서 없이 출국하는 일은 거의 불가능하다. 자칫 아동 납치로 오인될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도 발생할 수 있는 흔한 경우의 수를 한번 따져보자.


1) 한국인 여성이 남편 성으로 이름을 바꾸고, 온 가족이 통일된 성을 쓰는 경우

- 엄마 Sujin Müller

- 아빠 Michael Müller

- 자녀 Marie Müller


보다시피 가장 깔끔하고 예쁘며 독일 현지에서 일상생활을 하기에도 가장 편리하다. 우편물을 받을 때나 집에 문패를 걸 때 Familie Müller (뮐러 가족)이라 쓰인 것을 보면 통일감, 소속감을 주기 때문에 편안하기도 하다. 그래서 한독 가정뿐만 아니라 많은 독일의 가정이 이런 방식을 채택한다.


이 경우 나중에 한국인 여성이 자연스럽게 남편 나라의 국적을 취득하는 경우도 많고, 애초부터 국적 취득을 염두에 두고 이런 방식을 채택하기도 한다.


2) 한국인 여성이 한국 성에 남편 성을 붙인 이름으로 바꾸고, 아이들은 남편의 성만 따르는 경우

- 엄마 Sujin Kim-Müller

- 아빠 Michael Müller

- 자녀 Marie Müller


어느 정도 나이를 먹고 정체성이 확립된 시기에 결혼을 하게 되거나, 독일의 사회 상황을 꽤 인지하고 있는 한국인 여성의 경우 이런 방식을 채택한다.


번거롭기는 하지만 자신의 주체성과 가족공동체의 소속감을 동시에 가지면서도 실생활에서 편리하다. 다만 한국 성의 발음이 너무 어렵거나 남편 성과 같이 썼을 때 영 어색하고 이상하다면 사용하기 어렵다. Hwang-Müller 나 Gwak-Müller라고 굳이 써야 할 필요가 있을까 싶어지는 것이다.


3) 한국인 여성이 한국 성을 유지하고, 아이들은 아빠 성만 따르는 경우

- 엄마 Sujin Kim

- 아빠 Michael Müller

- 자녀 Marie Müller


우리에게는 가장 익숙한 모양새다. 그러나 독일에서는 서류상 한가족으로 보기 어렵다. 학교나 유치원, 관공서에서 수시로 오해와 착각을 불러일으키며 무엇보다 공항에서 매우 번거롭다.


남편 없이 한국을 오고 갈 경우 아이와 성이 같은 남편이 기재된 혼인관계 증명서와 남편의 동의서를 늘 지참해야 한다. 자국민의 아이가 국외로 납치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이다.


4) 한국인 여성이 한국 성을 유지하고, 아이들은 아빠 성을 따르되 미들네임으로 한국 성을 주는 경우

- 엄마 Sujin Kim

- 아빠 Michael Müller

- 자녀 Marie Kim Müller


이 경우는 그냥 기념적인 의미라고 보면 된다. 엄마가 기념으로 미들네임에 본인의 성을 줬지만, 가족관계를 증명하는 기능은 할 수 없다.


그밖에도 상황에 따라 다양한 경우의 수가 더 있을 수 있다.








유럽에서 유럽 남자와 결혼해 살며 굳이 한국 성씨를 아이에게 주는 한국 여성들은 드물다. 그래서 많은 한국인 여성들은 출산 이후의 상황을 고려하여 국제결혼과 동시에 별생각 없이 남편의 성을 따르는데 동의한다.


그리고 독일에서 성은 한국보다 중요한 역할을 한다. 모든 공적인 장소에서 성이 이름처럼 쓰이기 때문이다.


한국은 성과 이름이라고 하지만 독일에서는 성을 Familienname/ Nachname(가족 이름/뒷 이름), 이름을 Vorname(앞 이름)라고 부르는 연유도 거기에 있다.


문제는 한국법의 경우, 외국에서 외국인 배우자와의 혼인을 통해 성을 바꿀 경우에도 내 신분증 역할을 하는 여권에 배우자의 성을 첨부할 수만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한국 여권을 가진 이상 내 성 자체를 독일처럼 아예 바꾸는 것은 불가능하다.


독일 성으로 바꾸고 그 성으로 일상생활이 가능해도, 한국에서 혼인신고를 하고 남편 성을 내 여권에 올리지 않았다면 독일에서는 내 한국 성이 들어간 이름과 독일 성이 들어간 이름 두 가지 때문에 늘 혼란이 빚어진다.


다른 모든 서류들은 결혼할 때 바꾼 독일식 성이 쓰이지만 은행이나 비자 발급과 같이 신용이 중요한 곳에서는 여전히 여권에 쓰인 한국 성만 인정되기 때문이다.


한국에 혼인신고를 하고 여권에 남편 성이 올라가 있다면 혼인 관계가 유지되는 동안은 일시적으로 괜찮다. 그러나 2015년 주독 한국대사관에 문의한 결과 이혼을 하게 되면 한국 여권에 쓰인 남편의 성도 다시 빼는 것이 원칙이다.


남편의 성으로 귀화를 한 것이 아닌 이상 이혼하고 나면 한국 여권에는 다시 한국식 성만 남게 되는 것이다.


이 경우 더 골치 아프다. 그동안 독일에서 남편 따라 바꾼 가족의 성으로 살아온 기간 동안 작성해온 일상의 모든 서류가 독일식 성이기 때문이다.


내가 왜 서류상 이름이 두 종류가 되었는지에 대한 증거자료를 어딜 가든 매번 제시해야 한다.


받아들여지면 다행이고, 아니면 정말 골치 아픈 문제다. 언제 어디서 법적으로 터질지 모르는 폭탄 같은 문제를 긁어 부스럼이 되지 않도록 덮어두고 최대한 조심히 사는 수밖에 없다.








독일에서는 이혼을 하고 세 달 이내에 성을 바꾼 배우자 쪽에서 성 반환 소송을 할 수 있다. 전 배우자의 성을 버리고 다시 원래의 성을 되찾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문제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아이들과 나의 성이 갑자기 달라지는 것이다. 내가 배우자의 성을 따랐는데 아이들은 배우자의 성을 따르지 않았을 리가 없으니 말이다. 생활의 불편함은 물론이거니와 아이를 혼자 키우는 것도 서러운데 성까지 달라지는 심적 부담감이 생각보다 크다.


둘째는 기존에 작성해온 모든 서류상의 이름을 다시 다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월세 계약, 은행 계좌, 가족관계 증명서, 여권, 운전면허증, 보험, 세금, 연금 등 어마어마한 서류를 갱신해야 한다. 배우자의 성으로 살아온 세월이 긴 만큼 바꿀 서류는 많아진다.


그 밖의 아이들 유치원이나 학교, 각종 모임에서 이름처럼 불리던 공식 이름인 성을 바꾸고 만인에게 선포해야 하니 상당히 불편하고 껄끄럽다. 한국에서 중년 여성이 개명하고 주변 지인들에게 새 이름으로 불러달라 부탁하는 것과 똑같다.


그래서 많은 독일 여성들은 이혼하고도 전남편의 성을 유지한다. 이미 결혼할 때 한번 개명을 통한 번거로움을 경험했기 때문에 그냥 사는 것이다. (이 경우에도 사실 골치 아픈 문제가 따를 수 있다)


이러한 수고를 피하고자 독일의 많은 동거 커플들의 경우 아이에게 처음부터 엄마 성을 준다. 앞으로 두 사람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적어도 확실한 것은 엄마인 내가 아이를 키울 것이기 때문이다.


결혼할 때 남편 성을 따르는 일이 별거 아닌 것 같을 수 있다. 혼인서약 시 "Ja(네)"라고만 대답하면 되기 때문이다. 또 한국에는 없는 문화이다 보니 온 가족이 같은 성을 쓴다는 사실이 흥미롭고 낭만적으로 느껴질 수 있다.


남편의 성을 따르는 것이 외국에서 이방인으로 사는 삶에 좀 더 든든함을 주는 것도 사실이다. 내 한국성은 정확한 발음으로 불리기도 어렵고 어딜 가든 튀는데, 남편의 성은 적어도 서류상으로나마 무난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편의 성을 따르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헤어지게 된다면 어떤 일이 생기게 될지 이 글을 읽고 한번 더 생각해보고 결정하기를 바란다.




사진출처 : Sharomka/Shutterstoc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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