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최초로 국제이혼사를 공개하게 된 이유 (1/2)

아무도 안 하니까 나라도 총대 메자!

by 뿌리와 날개

독일남자와 이혼한 이야기를 세상에 공개하게 된 배경


2015년에 남편이 우리를 한국에 보내놓고 연락을 끊어버리면서 나는 하루아침에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됐다.

두 달 한국에 있는 동안 그 피가 말랐던 시간은 브런치북 “움켜쥔 결혼, 그 끈을 놓았을 때” 1,2화에 자세히 적었다.


https://brunch.co.kr/@rootandwings/208​​


남편은 우리를 한국으로 보내놓고 혼자 이사를 한 뒤에 우리를 제외한 자기 자신만 전입신고를 했다. 그래서 두 달 뒤, 우리가 독일에 돌아왔을 때 우리는 오갈 곳이 없는 신세가 되어버렸다.


그는 이사하면서 나와 아기의 짐을 모두 벼룩시장에 팔거나, 쓰레기통에 버렸다. 전입신고도 되어있지 않고, 가진 짐도 없는 우리는 더 이상 독일에 존재하지 않는, 흔적조차 없는 사람들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렇게 독일에 돌아온 지 열흘 만에 헤어지기로 결심하면서 하루아침에 길바닥에 나앉게 됐을 때 제일 먼저 인터넷을 검색했다. 독일인과 이혼, 한독아이 양육권, 독일의 이혼법, 독일에서 변호사… 그러나 필요한 정보는 없었다.


그래서 차선으로 찾은 게 국제부부 이혼, 국제이혼, 국제이혼 양육권, 국제이혼소송, 이혼소송 국제법 같은 키워드들이었다. 그러나 나오는 건 줄줄이 다 행복한 연애담, 국제결혼 프러포즈, 신혼여행, 크로아티아나 프랑스 같은 휴가정보였다.


그도 아니면 남편과 같이 한국 방문해서 맛있는 거 먹는 얘기, 서양 시부모님의 사랑받는 동양 며느리, 아기 낳고 안고 있으면 서양 남편이 나한테 뽀뽀해 주는 류의 포스팅뿐이었다. 환장할 것 같았다.


샘이 난다거나 질투가 나는 그런 감정이 아니었다. 당장 내가 죽게 생겼기에 그것은 절박함에 더 가까웠다. 망망대해 깜깜한 바다에 아기랑 둘이서 목만 내놓고 동동 떠있는 그런 심정이었달까?


그런 와중에 인터넷을 아무리 뒤져도 전부 행복 넘치는 일상, 아름답고 동화 같은 사진만 나오니 정말 미칠 것만 같았다. 당장 아기랑 살 곳은 없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 되는지 아무것도 모르겠는데, 그래서 너무나 무섭고 두려운데 아무도 알려주지 않으니까.


한편으로는 굉장히 비참했다.


다들 잘 사는데 나는
어쩌다가,
갑자기,
왜,

이 지경이 되었을까?



그러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정말 나밖에 없을까?
진짜 국제이혼을 한 사람이 나밖에 없다고?

이게 말이 돼?
한국 가정 셋 중 하나,
독일 가정 둘 중 하나가
이혼을 하는 세상인데

한국 여자랑 결혼한 서양 남자들만
가정을 충실히 지키고 산다고?



만약 그렇게 깨진 사람들이 있다고 가정을 한다면, 그들은 왜 이런 정보를 하나도 공유해주지 않는가에 대해서 생각하기 시작했다.


- 지금 저렇게 행복한 사람들이 나에게 정보를 줄 수 있을까?

없을 것이다. 그들은 아직 겪지 않은 일이니까.


- 그럼 지금 삐그덕 거리는 사람들은 나에게 정보를 줄 수 있을까?

역시 없을 것이다. 내가 사는 게 위태위태하다고 누가 인터넷 불특정 다수를 향해 밝힐 수 있겠는가.


- 그럼, 이미 헤어진 사람들은 나에게 정보를 줄 수 있을까?

그렇다. 그들은 할 수 있다.


그러자 정보를 공유하지 않는 그 사람들에게 원망의 화살이 꽂히기 시작했다. 해도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기들은 해봐서 알면서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이혼하는 단계별
프로세스 정도 만이라도 좀 알려주지.

그럼 감이라도 잡겠는데
어쩌면 이렇게 한 명도 없을 수가 있을까.


그들이 너무나 원망스러웠다. 그러면서 동시에 이런 생각도 들었다. 나라면 과연 이런 일들을 공개할 수 있을까?


- 그냥 이혼도 아니고 국제결혼이 깨졌다. 가족, 친지 사이에서 망신살만도 충분할 텐데 뭐 대단한 일이라고 인터넷에 막 공개를 할 수 있을까?

- 노출된 우리 사생활과 악플은 어떻게 한단 말인가?

- 그래서 그게 우리에게 무슨 도움이 될까?

- 그렇다면 누구를 위해서, 무엇을 위해서 그래야 하지?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아 그럼 나 같아도 입 다물고 죽은 듯이 숨어 살겠구나 싶어졌다. 나도 못하겠는 일을 안 해준다고 누구에게 원망할 수 있겠는가? 그들의 심정이 십분 이해가 갔다.


아마도 소수 관련 있는 커뮤니티에서는 어느 정도 정보가 돌긴 했으리라. 요즘은 어떤 지 모르겠지만 2015년 당시까지만 해도 국제결혼 커뮤니티는 북미 따로, 유럽도 각 국가별로 따로 있었고, 회원도 함부로 받지 않았다.


가입절차도 까다로웠다. 사적인 사진과 정보를 일정 부분 공개해야 가입승인을 해줬다. 그렇게 커뮤니티 안에 들어왔을 때에도 서로 간에 나누는 개인정보를 철저히 보호해 외부로 유출이 되지 않도록 무척 신경을 썼다.


단순 호기심에 아무나 들어와서 개인정보를 가져가면 안 되기 때문이었다. 작은 한인사회 안에서 사생활 보호를 위해 커뮤니티는 폐쇄적으로 운영되었고, 그렇다 보니 커뮤니티 밖의 불특정 다수가 그런 정보를 접하는 것은 차단되었다.


그러다가 베를린리포트라는 사이트를 뒤지고 뒤져서 몇 년 전에 독일 남자랑 이혼했다는 사람의 한 줄짜리 댓글을 발견했다. 그 사람이 다른 질문자에게 본인 연락처를 남긴 것을 보고,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연락을 취했다.


그 사람이 나에게 객관적으로 엄청난 정보를 줬다거나 살 길을 열어준 것은 아니나 당시의 나에게는 구세주와 같았다.


일단, 나 같은 일을 겪은 사람이 적어도 독일 땅에 한 명은 있구나,라는 점에서 굉장히 큰 위로가 되었다. 또한 내가 앞으로 겪을 일들을 그녀가 이미 겪어냈다는 점에서 모호한 미래에 대한 극도의 불안감이 상당 부분 해소되었다.


또 어쨌거나 지금 잘 살고 있으니 시간은 걸릴지언정 나도 언젠가는 웃을 날이 있겠구나 하는 희망이 보였다.








국제이혼 과정을 공개하기로 결정한 두 가지 이유


그렇게 아기랑 보호소로 들어가면서 생각했다.


아…
내 인생은 끝났구나!
더 이상 길이 없구나!



그런데 어차피 이렇게 망가져버린 결혼생활이라면, 이렇게 곤두박질친 채로 끝나는 건 너무 억울하고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결혼생활은 비록 망가졌지만, 이런 경험이 누군가에게는 또 타산지석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일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도록.


나 역시 결혼 전에 인터넷으로 정보를 알아봤지만 실용적이고 현실적인 국제결혼 정보를 거의 얻지 못했었다. 그래서 기왕 이렇게 된 거 나의 경험을 쓸모 있게 쓰고 싶어졌다.


게다가 아이는 이제 갓 돌이 지났을 뿐이다. 결혼생활이 망가졌다고 그만 살 것도 아니지 않은가? 앞으로 아기 데리고 살아갈 게 구만리인데, 감당해야 할 일이 얼마나 많을지 한숨이 절로 나왔다. 앞으로 펼쳐질 그 어마무시한 미래가…


그러나 내가 앞으로 겪게 될 이 개고생을 공유한다면 적어도, 앞으로 비슷한 일을 겪게 될 누군가는 나보다는 편하게 갈 수 있지 않겠나. 그녀의 아이도 내 아이보다는 덜 고생을 하리라.


그래서 결심했다. 앞으로 내가 걸을 이 개고생의 길, 낱낱이 적어서 공유하자! 그래서 다른 사람들은, 이 거지 같은 고생을 조금이라도 덜 할 수 있게!


그럼 내 이 비참한 시간들이 조금이라도 보상받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야 이런 일을 겪는 나 자신이 조금은 덜 억울할 것 같았다. 지나고 보니 이게 방어기제의 일종인 승화라는 걸 알았지만, 그 당시에는 그저 나의 이기심에서 비롯된 작은 몸부림이었다.


그렇게 2015년 6월 보호소 입소와 함께 시작된 블로그의 그 개고생의 기록들이 모여 브런치에서 8권의 책이 되었고, 이제는 유튜브로 독자들을 만나게 된 것이다.








대한민국 최초 국제이혼사 공개 “뿌리와 날개”


나는 내가 대한민국에서 국제이혼과정을 인터넷에 적나라하게 공개한 첫 번째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지금 각종 플랫폼에서 활동하는 모든 국제이혼 싱글맘들의 최초 역시 나라고 생각한다. (아니라는 근거자료가 있다면 정정할 테니 연락 주기 바란다.)

왜냐하면, 내가 만약 2015년에 그런 사람을 단 한 명이라도 만나서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면 나 스스로 이 모든 이야기를 공개하는 일은 절대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그렇게 절실하게 정보를 찾던 2015년 여름까지만 해도, 지금은 이렇게 당사자들이 쏟아지는 국제이혼사례들이 정말 단 한 건도 없었다. 있어봤자 짤막한 문구 정도.


그래서 내가 블로그를 열었을 때 정말 생각지도 못했던 전 세계 곳곳에서 한국인 싱글맘들이 반갑다고, 힘내라며 연락을 그렇게 많이 해왔다. 이렇게 자기를 드러내줘서 고맙다고 인사를 해줬고, 그 이후에도 7년 동안 블로그를 운영하면서 정말 많은 연락을 받았다.


특히 독일남자랑 이혼하거나 이별한 사람들은 백이면 백, 심지어 한국인 부부이지만 독일 거주 중에 이혼하는 커플조차도 나의 블로그를 찾아오는 듯했다. 당연하다. 독일과 이혼이라는 키워드를 넣으면 뜨는 것은 내 블로그뿐이었으니.


그래서 내가 최초라는 것에 스스로 확신하는 것이다.


나는 그때나 지금이나 같은 마음이다. 아무도 안 한다면 기왕지사 이렇게 된 거, 내가 총대를 매자! 유튜브도 그 연장선상에서 시작했다. 물론 경제적 이유도 배제할 수 없겠지만, 그게 가장 큰 이유였다면 이미 2018년도 유튜브가 한참 뜨기 시작할 때 대학에 가는 대신 유튜브를 시작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정말, 최대한으로 나를 노출하고 싶지 않았다. 타인에게 도움이 되는 선에서 최소한으로 활동하고 싶었다. 그래서 각종 인터뷰나 다큐멘터리영화출연 제의, 소소한 출판제의 등도 다 망설임 끝에 놓치거나 거절해 온 것이다.








유튜브를 하게 된 계기


2015년 블로그에서 시작된 나를 필두로 그 사이 정말 많은 국제이혼 사례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얼굴을 드러내는 유튜브에서까지도 그런 사람들이 하나둘씩 나오는 것을 보면서 언젠가는 내가 원하는 형태의 싱글맘 유튜버도 등장하기를 바랐다.


굳이 또다시 내가 그런 총대를 메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더구나 글보다도 부담스러운 영상이지 않는가? 그런데 4년을 기다려도 그 한 명이 당최 나오지 않았다. 본디 자기 마음에 쏙 드는 사람은 세상에 없는 법이다. 나 자신도 가끔 마음에 안 들어서 어쩔 줄 모르겠는 때가 있는데 남들은 오죽할까?


그래서 나는 뭔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방구석에 앉아 입으로만 불평불만 하는 일이 제일 싫다. 제일 좋은 것은 나라도 하루빨리 나서는 것이며, 그게 아니라면 나 대신 해주는 사람이 나타났을 때 힘이라도 실어줘야 한다.


그래서 나는 4년의 기다림 끝에 그렇게, 내가 듣고 싶은 말을 직접 하기로 결정했다.




아래 링크를 클릭하시면 본문의 내용을 생생한 영상으로 만나 보실 수 있습니다. 놀러 오세요!


https://youtu.be/Ma4IBeDa-8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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