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부모 가정 아이들의 탁월한 점 세 가지!

by 뿌리와 날개

오늘은 지난번 싱글맘 필수시청 영상 <청승 떨면서 좋은 엄마라고 착각하고 있는 건 아닐까?>에 이어서 한부모 가정의 아이들이기 때문에 가질 수 있는 탁월한 점에 대해서 이야기해 볼까 한다.


지난번 영상에서는 싱글맘이 절대 모성애와 혼동해서는 안 되는 세 가지, 아빠 없는 아이로 만들었다는 죄책감, 아빠가 없으니까 내가 더 잘 챙겨야 한다는 집착 그리고 자기 생활은 다 포기하고 아이만 바라보고 살면서 집에서 우울하게 청승 떨면 안 된다는 이야기를 했다.


세상만사는 다 동전의 양면 같아서 각도를 다르게 보면 불행도 행운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아는가? 오늘은 그래서, 우리 한부모 가정의 아이들이 아빠가 없는 대신 그로 인해 어떤 강점을 가질 수 있는지에 대해서 살펴보자.








첫 번째, 한부모 가정에서 자란 아이는 감사할 줄 아는 아이로 큰다.


남들은 태어나서부터 당연하게 다 있는 엄마나 아빠가 우리 아이들에게는 없다. 그러다 보니 만 두 돌이나 세 돌 밖에 되지 않아도 아이가 생각을 하기 시작한다.


왜 나는 아빠가 없지?

왜 나는 엄마랑 둘이 살지?



그럴 때 엄마는 우리 아이의 “아빠 없다”는 말에 가슴을 쥐어짜며 우는 대신 조금 담담해져야 한다.


그러게 말이야.
그래서 세상에는 당연한 게 없는 거 같아.

넌 아빠가 없지만 대신 엄마가 있잖아?
세상에는 엄마가 없고
아빠만 있는 아이들도 있어.

또 세상에는 엄마아빠 대신
할머니 할아버지나
이모, 고모, 삼촌이 키워주는 아이도 있고,

그런 사람도 없으면
고아원에서 자라거나
입양으로 새 부모님을 만나기도 해.

세상에는 정말 다양한 형태의 가족이 있거든.
그래도 너랑 나랑 둘이서
함께 살 수 있으니까 얼마나 좋아?

엄마는 너랑 살 수 있어서
너무 좋은데?



이 정도로 이야기하면 아이가 처음에는 조금 시무룩했다가도 금세 얼굴이 편다. 이렇게 아이가 우울해할 때마다 수시로 그걸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엄마가 방향을 잡아주면 되는 것이다.


그러려면 엄마가 먼저 마음이 단단하고 긍정적이어야 한다. 나도 처음에는 아이가 아빠 없다고 하면 가슴에 비수가 꽂힌 것같이 울컥해서 목이 메기 일쑤였다. 그러나 언제까지나 그렇게 울먹이며 살 수는 없지 않은가. 그래서 마음을 고쳐먹으니 아이를 상대하는 일이 한결 수월해졌다.


생각이나 말하는 방식도 습관이기 때문에 평소 엄마가 이런 자세를 가지고 있으면 언제 어느 때 아이가 물어와도 긍정적인 답변을 해줄 수 있게 된다. 내가 어떻게 마음을 달리 먹게 되었는지는 또 다른 영상에서 설명하기로 하자.


아무튼 이렇게 엄마가 긍정적이고 확고한 관점을 갖고 아이를 대하면 아이도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지금 만 8세인 우리 아들은 아빠 생각이 나서 아쉬워하다가도 대화 끝에 스스로 결론을 낸다.


그래도 이렇게 엄마가 있으니까 참 좋다.

엄마가 아니었으면 나는 혼자였을 거 아냐.

엄마, 나랑 살아줘서 고마워.



이런 말을 할 정도로 자란 것이다. 나는 그럼 이런 아이를 끌어안고 감동해서 운다.


엄마가 더 고마워.



한부모 가정도 여느 가정과 똑같이, 어쩌면 상대적인 결핍이 있기에 그 반대급부로 사랑이 더 넘치기도 한다.


이렇게 소위 말해 보통의 가정에서 자란 아이들은 일상 속 엄마, 아빠의 존재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지 않고 당연하다고 생각하면서 크는 동안 한부모 가정의 아이들은 ‘왜 나는 다른가’에 대해서 끊임없이 생각하기 때문에 사고력이 또 남다르다. 머릿속이 복잡하니까 정서가 불안한 반면 인지능력은 발달하는 면이 있는 것이다.


자연주의 심리치료를 하는 전문가의 말에 따르면 일각에서는 이것을 생존본능의 일환으로 보기도 한다고 했다. 평범하지 않은 가정에서 자란 아이들의 경우에 머리가 유난히 비상한 케이스들을 종종 보게 되는데 불안정한 환경을 극복하기 위해 지능이 발달하게 된다는 것이다. 흥미롭다.


하지만 한부모 가정의 아이들에게서 이런 탁월함을 끌어내려면 싱글맘, 싱글대디인 우리가 먼저 아빠 또는 엄마 없는 아이로 키운다는 죄책감을 버릴 수 있어야 한다. 아이 앞에서 당당해야 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두 번째, 한부모 가정에서 자란 아이는 문제해결능력이 강하고 이것은 다시 자기 효능감과 독립심으로 이어진다.


나는 이것이 싱글맘으로 아이를 키우게 되면 가질 수 있는 최대 아웃풋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정작 싱글맘인 나는 어린 시절 부모님의 보호 속에서 온실 속의 화초처럼 자라며 독립심을 기르지 못했기 때문이다. 나의 부모님은 맞벌이 부부였기 때문에 동생과 나는 대부분의 시간들을 거의 방임상태로 컸다.


그러다 보니 딱히 부유한 살림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부모님의 보상심리로 인해 물질적으로 부족함이 없이 크게 된다. 부모님의 성정 역시 부성애와 모성애가 강하고, 바라는 것 없이 우리에게 희생적이고 헌신적이었다. 어렵고 힘든 일들은 언제나 엄마아빠가 대신해 줬기 때문에 동생과 나는 고생을 거의 모르고 자랐다.


그래서 나는 훗날 우리 부모님이 그랬던 것처럼 나를 잘 돌봐줄 남자를 골라 결혼하게 된다. 그리고 매우 의존적인 결혼생활 끝에 나이 스물아홉에 인생이 한번 박살 나는 경험을 한다. 그리고 다시 태어나서 이렇게 잘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엄마아빠가 이 말을 듣는다면 고생시키지 않고 키워줘도 지랄이냐고 하겠지만, 그게 그렇다. 부모님이 거친 환경을 잘 막아주면 자녀가 어른이 되어 세상을 스스로 살아가는 일이 버겁다. 세상은 부모님 품처럼 안락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게 콩깍지가 씌어 나를 위해 헌신하던 전남편도 결국은 아빠같이 든든한 남자가 아니라 때로는 나에게 의지해 기대고 싶었던 연약한 한 인간이었다는 사실을, 나는 이혼을 통해 깨닫게 되었다.


아무튼, 이 녀석들이 아빠 없이 엄마랑 둘이 살다 보니 어쩔 수 없이 파트너 역할을 해야 하는 상황들이 온다. 아이가 어릴수록 어디 떼어 놓고 다닐 수가 없으니 한 몸 같이 붙어 다니지 않는가? 그런데 혼자서 아이 데리고 사는 게 여의치가 않다 보니 두더지 게임을 하듯 끊임없이 문제가 발생한다.


여기 이 문제를 막아놓으면 저기서 또 다른 문제가 튀어나오고, 그 문제를 해결하면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하는 식으로. 그래서 아이는 언제나 엄마 곁에서 엄마가 난관에 봉착하고, 사태를 파악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일상을 보는 일이 다반사다.


그 과정에서 아이가 도울 수 있는 일도 생긴다. 처음에는 엄마가 “이것 좀 잠깐 잡고 있어 봐, 저것 좀 갖다 줘.” 로 시작을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스스로 도울 일을 찾는다. 엄마가 도움이 필요하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그리고 엄마를 도우면서 스스로 뿌듯함을 느낀다.


그러다 보니 아이는 자연스럽게 문제해결능력들을 하나씩 습득하게 된다. 이렇게 어려서부터 쌓인 경험은 자기 효능감으로 이어진다. 8살밖에 안된 아이지만


나는 못해!

안돼!



이런 말보다는


이렇게 해보면 되지 않을까?

굳이 그렇게
비효율적으로 할 필요 있어?

이건 어때?



사고방식이 이런 식으로 능동적이다. 그리고 아이의 이런 생각들은 다시 독립심으로 연결이 된다. 혼자 할 줄 아는 게 많아지니 당연한 수순이다.


몇 년 전 옆집 싱글맘 모녀와 다 같이 수영장을 간 적이 있다. 볼러바겐이라고 애들 태워서 끌고 다니는 손수레가 있는데 아이들이 거기에 타고 있었다. 그런데 지하철 문이 열리고 타려는데 볼러바겐이 조금 커서 문에 걸리게 되었다.


문이 열리고 닫히는 그 짧은 순간 엄마들은 아직 상황 파악이 되지 않은 상황에서 당황하고 있을 때 갑자기 다섯 살, 여섯 살 먹은 우리 아이들이 벌떡 일어나 내리더니 한 명은 앞을 잡고 한 명은 뒤를 잡은 뒤 그 볼러바겐을 번쩍 들어서 탔다. 엄마 둘도 황급히 따라 탄 뒤 문이 닫혔고, 이 순식간에 일어난 상황에 대해 얼떨떨해하다가 둘이서 동시에 박장대소를 했다.


와…

우리 아이들,
진짜 대단하다!


누가 시키지도 알았는데 그 찰나에 자동으로 상황을 파악하고, 문제해결방법을 찾고, 둘이서 협력해 결국 해낸 것이 아닌가! 이 일화는 그 집 엄마와 나 사이에서 두고두고 전설로 회자되고 있다. 지금도 생각하면 뿌듯한 순간이다.


아이를 혼자 키우면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다. 한 번은 우리 아들이 만 3세 9개월 때 집 열쇠구멍에 열쇠를 꽂아놓고 그냥 나온 일이 있었다. 참고로 독일은 아직도 열쇠로 집 문을 따고 들어가며, 열쇠구멍에 열쇠를 꽂아놓고 자면 도둑이 들어오지 못해 안전하다는 말이 있다. 그래서 항상 열쇠구멍에 열쇠를 꽂아뒀었는데, 그날은 깜박하고 아침에 그냥 문을 닫고 나온 것이다.


그 추운 겨울날 일을 마치고 녹초가 된 몸으로 아이를 픽업해 집에 돌아왔는데 열쇠가 없다는 것을 알았을 때 정말 하늘이 무너지는 줄 알았다. 왜냐하면 독일에서는 열쇠수리공 부르면 기본 사백에서 오백 유로 정도 하기 때문에 열쇠 보험이 따로 있을 정도라고 들었기 때문이다.


참고로, 영상을 제작하며 정확한 정보를 위해 요즘 시세를 찾아보니 150유로, 현재 환율로 20만 원 정도 한다고 한다. 하지만 인건비가 워낙 비싼 나라이다 보니 실제로는 상황에 따라 천차만별이며, 출장 거리나 시간 외 수당(밤, 주말, 휴가 시즌 등)이 추가되는 경우 부르는 게 값이라고 보면 된다.


어쨌든 나는 그동안 말로만 들었지 진짜 이런 일이 닥치리라고는 상상도 해보지 못했다. 갑자기 돈 들어갈 일이 가장 무서울 때라 쏟아지는 눈물을 꾹 참고 여기저기 전화를 돌리기 시작했다. ‘누가 어떻게 아는 사람 좀 없나, 도와줄 수 없나.’ 하고 말이다.


우리 아들이 그전까지는 배가 고프네, 춥네, 피곤하네 하며 한창 투덜거리던 중이었다. 그런데 내가 전화를 돌리는 순간부터 쥐 죽은 듯이 조용해졌다. 아이가 아는 것이다. 엄마가 지금 난관에 봉착했고, 집중해야 된다는 것을.


그렇게 정신없이 전화를 돌리고 있는데 1층에서 누가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지쳐서 바닥에 누워 쉬고 있던 아이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더니 계단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한쪽 귀로는 통화를 하면서 다른 쪽 귀로는 저 녀석이 뭘 하러 가는지 들어봤더니 글쎄, 별로 친하지도 않아 인사를 시켜도 잘하지도 않던 2층 사는 아저씨에게 말을 거는 것이 아닌가.


- 아저씨, 우리 엄마가 집에 열쇠를 놓고 나왔거든요. (상황 설명)

- 그래서 못 들어가고 있어요. (문제 인식)

- 우리 엄마 좀 도와주세요. (문제 해결/ 도움)


그래서 아이는 결국 그 아저씨 손을 잡고 3층까지 올라왔다. 나는 그때 정말 놀랐다. 이것이 과연 만 3세 아동이 할 수 있는 일인가… 그 당시 나는 유치원에서 프락티쿰 일을 하면서 정말 많은 아이들을 보던 중이었다.


그전까지 나는 내 아이만 키워봤기 때문에 우리 아이가 느린지 빠른지, 똘똘한지 맹한지 별 개념이 없었다. 그냥 아이들은 다 우리 아이 같을 줄 알았던 것이다. 그런데 유치원에서 일을 하다 보니 우리 아이가 진짜 나이에 안 맞게 야무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결국 그 2층 사는 아저씨는 큰 도움이 되지 못했다. 하지만 다행히도 내 친구가 아는 열쇠업자를 소개해줘서 80유로에 열쇠를 딸 수 있었다. 비상금을 다 털었다. 돈은 꼭 모아놓으면 깨지고 모아놓으면 깨진다는 것을 그때 배웠다.


그렇게 집에 들어갈 때까지 총 3시간이 걸렸다. 그 사이 우리 아들은 12월 한창 추웠던 날씨에 입고 있던 스키바지에 오줌을 두 번이나 쌌다. 급하다고 하길래 아이 데리고 1층까지 내려가기도 힘들고 길거리 아무 데서나 누일 수도 없어서 그냥 바지에 싸라고 했더니 순순히 말을 듣고 그렇게 한 것이다.


세 살짜리 아이는 그렇게 오줌에 흠뻑 젖은 스키바지를 입은 채 졸리니 그 차가운 바닥에 누워 곤히 잠이 들었다. 아직 동네에 친한 이웃도 없었고, 근거리에 잠깐 들어가 아이를 맡길 만한 친구도 없던 때였다. 그 모든 고생을 어린 몸으로 함께 해낸, 우리 아들은 그런 아이였다.


지금까지 살아오며 아이와 이런 일을 수도 없이 겪었기 때문에 나는 우리 아들이 비록 8살밖에 안 됐지만, 어디다 내놔도 살아낼 녀석이라는 걸 안다. 그런 강한 믿음이 내 안에 있으며, 아이 역시도 내가 자신을 그렇게 믿고 있다는 것을 말하지 않아도 느낀다.


그래서 우리 아들은 정말 독립적이고 야무지다. 남자아이들이 늦다고 하지만 그것도 케이스바이케이스다. 밤기저귀 떼기 전에 기저귀를 사러 간 적이 있는데 필요한 사이즈가 매대 맨 위쪽에 있어서 내 손이 닿지 않았다. 아이가 보더니 나더러 목마를 태워달라고 했다. 그럼 자기가 꺼내겠다고.


그래서 진짜 그렇게 기저귀를 자기 손으로 꺼낸 아이다, 빈이는. 지금도 쓰레기봉투를 묶어서 밤에 문 밖에 내놓으면 부탁한 적이 없는데도 아침에 학교 가는 길에 들고 내려가서 쓰레기통에 버려준다. 심지어 나에게 화가 나서 툴툴거리고 나가는 날에도 쓰레기봉투는 들고나간다.


싱글맘이 아이를 키우면 이렇게 독립심이 강한 아이로 자랄 수 있다. 그리고 이런 독립심을 기르기 위해 선행되어야 하는 것은, 엄마가 ‘아빠 대신 내가 다 해줘야 한다’는 집착을 내려놓는 것이다.








세 번째, 한부모 가정의 아이들은 상당히 자유롭고 용감하게 자라며 이것은 결국 행복한 삶으로 이어진다.



모든 아버지가 다 엄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아버지가 없다 보니 가정 내에서 엄격함이 덜한 것은 사실이다. 물론 엄마가 엄하게 키울 수도 있지만 이것에 대한 강력한 부작용은 나중에 따로 빼서 영상을 제작하도록 하겠다.


본래 고전심리학에서도 어머니의 역할은 세상에 대한 믿음과 무조건적인 사랑을 주는 것이고, 아버지의 역할은 세상에서 살아가기 위한 규율, 규칙과 조건적인 사랑을 바탕으로 성취감을 끌어내는 것이라고 한다.


그렇다 보니 아버지가 없는 아이들은 얼핏 세간의 시선에서 보자면 산만하고, 천방지축일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성격을 성숙한 방향으로 잘 다룰 줄 안다면 어디 한 곳에 얽매이거나 두려움이 없이 자유롭다는 뜻도 된다.


너무 엄한 아버지 밑에서 자란 아이들이 억압으로 인해 때로는 타인에게 폭력적이거나 스스로에게 폭력적인 자학증세를 보이기도 하지 않던가. 그것처럼 모든 환경은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서 단점이 부각될 수도, 또 장점이 부각될 수도 있다. 싱글맘의 아이들은 부드러운 여성성에 기인한 타고난 자유로움이 있다.


또 하나는 강인한 여성상에 기인한 기백이다. 우리 아이들의 주양육자인 엄마는 불행한 결혼생활이라는 일생일대의 난관을 만났을 때, 그리고 이러한 삶에 개선의 여지가 없다고 판단됐을 때 우울증이나 자포자기, 의존에 빠져 불행한 결혼생활을 허울만 유지하는 대신 행복을 찾아 적극적으로 박차고 나오는 선택을 한 사람들이다.


호부 밑에 견자 없다는 말을 아는가? 훌륭한 아버지 밑에 못난 자식 없다는 뜻이며, 자식은 부모를 보고 배운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 험한 세상에서, 더군다나 동양문화권에서 여자 혼자 몸으로 자식을 데리고 당당하게 살아간다는 것 자체가 여러분은 이미 호랑이 같은 기개를 갖고 있다는 말이다.


우리 아이들 역시 기본적으로 이런 면을 갖추고 있다. 살다가 구렁텅이에 빠졌을 때 내가 나를 건져내야 한다는 것, 그런 어려움을 겪었을 때 내 삶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을 잘 건사하고 살아나가야 한다는 것을 싱글맘, 싱글대디인 부모와 살아가는 내내 체득하며 무의식에 각인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보다 더 훌륭한 가르침이 어디 있을까?


그렇기 때문에 한부모 가정의 우리 아이들이 이렇게 자랄 수 있으려면 우리는 집에서 우울하게 청승 떨며 늙어가서는 안된다. 당장 나가서 춤도 추고, 남자친구와 데이트도 하고, 친구들과 맛있는 것도 먹으러 다니고, 재미있는 취미생활도 해야 한다.


우리에게 오늘보다 젊은 날은 절대 오지 않는다. 오늘이 우리가 앞으로 살아갈 날들 중에서 가장 젊은 날이다. 그러므로 한 살이라도 젊을 때 본인의 인생을 즐겁게 살아야 한다. 그러면 우리 아이들은 알아서 당차고 즐겁게 살아갈 것이다. 부모로부터 보고 배운 것이 그것이기 때문이다.


If life gives you lemons,

make lemonade!




삶이 레몬을 던지면, 시다고 불평 말고 레모네이드를 만들라고 하지 않던가!

오늘부터 당장 레모네이드를 만들자!





언제나 우리 한부모 가정의 여러분을 응원합니다!

아래 링크를 클릭하시면 본문의 내용을 생생한 영상으로 만나 보실 수 있습니다. 놀러 오세요!


https://youtu.be/iY77o--yN0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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