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탄ㅣ독일이민&취업
11년 무경력 싱글맘의 독일 취업기 제3탄 시작합니다.
2탄에서 말씀드렸던 7년 전 잡센터 담당자와의 면담을 통해서 저는 움슐룽이라는 제도를 알게 됩니다. 2년 교육비를 시에서 지원해 주는 직업 재교육 제도라고 했죠. 사실 원래 제가 작년 잡센터 담당자에게 소개받은 잡 아카데미는 3개월 코스고, 그 안에 이력서 및 자소서 쓰기랑 모의면접을 마치고 여기저기 회사에 지원한 뒤에 합격해서 나갔어야 합니다.
그 기한이 2022년 11월까지에요. 그런데 그 사이에 제가 또 싸돌아 다니다가 움슐룽을 알아와 가지고, 심지어 제 담당자는 그런 거 저한테 알려주지도 않았는데 애먼 데 가서 알아와서 왜 나한테 7년 전에 이런 거 소개 안 해줬냐고 오히려 되묻는 바람에 제 담당자가 좀 황당해했었다고 했잖아요.
사실 저는 독일의 관공서 어딜 가나 을이고 언제나 아쉬운 소리를 해야 되는 입장입니다. 늘 누군가에게 요청을 해야 되고, 허락을 받아야 돼요. 그런데 7년을 관공서 여기저기 쫓아다니면서 항상 저를 프레젠테이션 하고, 또 그걸 바탕으로 제가 원하는 것을 얻어내는 일을 하다 보니까 나름 내공이 생기는 거예요.
뭐랄까, 밀고 당기기를 잘한다고 해야 하나? 이게 수주 따내는 거랑 좀 비슷한 거 같아요. 따본 적은 없지만. 그리고 이런 일의 바탕은 결국 다 스토리텔링이더라고요. 그렇게 기승전결에 맞게 스토리텔링을 잘하면 상대가 설득이 돼요.
그러면서 어느새 우리 사이에 갑과 을의 관계가 사라지고, 오히려 저를 도와주고 싶어 하게 되는 거죠. 아, 말하다 보니 진짜 이것도 한번 날을 잡아서, 영상을 찍어볼까요? 독일 관공서나 하여간 독일 어디서든 원하는 거 얻는 법? 여러분들도 이것 때문에 정말 고생 많으실 거 아니에요, 매번.
아쉬운 소리 하러 다녀야 되고 기한 잡혀있는데 거절당하면 피 마르고 하는 거. 외국인의 신분으로 남의 땅에서 산다는 게 정말 만만한 게 아닙니다. 하하! 원하시면 찍어드릴 테니까 댓글창에 알려주세요!
아무튼, 그렇게 제가 대화의 흐름을 끌어가는 입장이 되면 그때부터는 내가 부탁을 하고 그 사람이 나한테 사인을 해주는 갑과 을의 관계가 아니라 ‘나는 성장을 위해 당신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고, 당신은 그걸 뒷받침해 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다’라는 관계가 재설정이 됩니다.
그렇게 대화를 풀어나가면 상대는 내 위에서 권한을 행사하는 사람이 아니라 나를 위해서 권한을 행사하는 사람이 돼요. 제 잡센터 담당자도 그래서 원래는 저를 3개월 취업 교육 시켜서 내보냈어야 하는데, 마지막에는 오히려 저한테 움슐룽을 적극 권하기에 이르는 거죠. 기초생활수급자로 눌러앉을 심산이 아닌 바에야 사실은 제가 하기 해달라고 졸라야 할 판에 말이죠.
일단 움슐룽의 기회를 잡아는 놨지만, 지난 영상에서도 말씀드렸듯이 저는 그때 직업 재교육을 받는 것에 대해서 고민이 정말 많았어요. 저는 그럴 때 엄마랑 통화해서 많이 물어보거든요.
엄마랑 저랑 비슷하면서도 다른 게 하나 있다면 저는 좀 몽상가적인 기질이 있고, 그러니까 글을 쓰겠죠? 저희 엄마는 매우 현실적인 사람이에요. 그래서 엄마랑 상의를 하면 제가 못 보는 현실적인 면을 엄마가 많이 메꿔줄 수 있기 때문에 발란스가 맞아요.
그런데 이거는 부부상담하고는 또 다릅니다. 독일남편 하고 문제 있는 거를 한국 부모님한테 상담하시면 안 돼요. 정서가 달라서. 진짜 이렇게 해서 피 보는 사람을 여럿 봤기 때문에.
외국생활하시고 독일에 대해서 잘 아시는 부모님이 아니라 그냥 한국에서 나고 자라서 보통 한국사람들처럼 살아오신 부모님들이라면 여러분께서 혼자 생각하시고 결정하시는 게 맞아요, 독일 사람과의 부부관계나 이런 인터내셔널 한 가정문제는.
아무튼 엄마는 저희가 어떻게 살아왔고, 현실적으로도 상황이 어떤지를 다 아니까, 움슐룽을 하더라도 느긋하게 마음먹고 3년에 걸쳐서 천천히 하라고 하죠. 그런데 저는 나이가 많은 게 걸리잖아요. 시간 가는 게 하루하루 아까운 거예요. 삼십 대 다르고 사십 대 다른데.
그리고 그렇게 3년을 투자해서 그럼 거액을 버느냐? 아니죠. 그냥 입에 겨우 풀칠하고 삽니다. 그냥 고용형태가 좀 더 안정적으로 변할 뿐이에요. 그렇다고 공부가 또 쉬운 것도 아니라고 했죠? 직업 재교육인 만큼 매 학기마다 수업을 이수하고 따야 하는 자격증들이 또 있습니다. 기업에서 필요로 하는.
그럴 거면 그냥 대학공부 하다 만 걸 계속하지 왜 또 딴 데 가서 엉뚱하게 삽질을 시작하겠어요. 그리고 제가 공부하는 걸 꺼리는 데에는 또 나름의 이유가 있어요. 제 아들이 틱이 있다고 했잖아요. 그게 저의 대학 입학과 시작됐고요, 학기가 진행될수록 아이의 정서발달에도 문제가 왔습니다.
당연하죠. 사람이 하루에 쓸 수 있는 에너지는 한정적인데 저는 아침 4시 반부터 일어나서 그 에너지를 독일어 공부와 대학수업을 따라가는데 일단 다 쓰고, 그다음에 나머지는 장 보고, 빨래하고, 청소하고, 요리하고, 애 먹이고 씻기는데. 그러고도 에너지가 남으면 수업을 따라가기 위해서 예습, 복습을 해야 됩니다.
매 학기 과제 제출 날짜, 시험 날짜는 따박따박 돌아오는데 아이는… 뭐 좀 내버려 둔다고 당장 어떻게 되는 게 아니잖아요. 벌써 네 살, 다섯 살 그랬으니까 기저귀도 떼고. 그러니까 맨날 방치되는 거예요. 방치가 별 겁니까? 엄마가 이따 해줄게. 잠깐만, 엄마 이것만 하고. 그러면서 책상에 두세 시간 앉아있는 거예요. 애는 놀아달라고 조르다 포기하고, 그게 방치죠.
싱글맘이 돈 번다고, 일 한다고 애를 내팽개치면 자식이 어떻게 망가져가는지는 제가 언제 한 번 또 영상을 찍겠습니다. 아, 영상 찍을 게 정말 많네요. 제가 할 말이 많다니까요!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으면, 자식 망가지는 거 순간이에요.
제가 그걸 위기의식을 느끼면서 처음 확인한 게 대학 입학과 함께 틱이 시작되면서부터였고, 대학 다니면서 제가 처음으로 심리학에서 1,7이라는 성적을 받았을 때. 한국으로 치면 A정도예요. 대략 1.0이 에이플러스, 2.0이 B플러스라고 보면.
그때까지 제가 받은 최고의 성적이었는데, 저도 성적에 욕심이 나니까 열심히 했죠. 시험 직전에 백지에 예상문제 120개를 뽑아서 문제와 답을 네 번을 썼어요. 한 번 쓰기 시작하면 세 시간이 걸리거든요, 120문항이니까. 그걸 네 번을 써서 달달달달 외워서 시험을 봤죠. 그런데 그렇게 해서도 1.0을 못 받고 1.7을 받은 거예요.
그런데 그 시험 끝나고 한 달 동안 아이가 저를 얼마나 때리는지 맞아서 코피도 한번 났고요, 제 두 정강이에 피멍이 시퍼렇게 들었습니다. 이거에 대한 이야기는 또 길어요. 그때 아이가 학교를 갓 입학했었거든요. 학교 생활은 당연히 엉망이었고요. 그때도 정말 미치는 줄 알았습니다.
그리고 코로나 터지면서 록다운으로 집에 있는 애 데리고 비대면 수업을 하게 되죠. 그거 딱 한 학기하고 나니까 아이가 틱이 3개로 늘더라고요. 음성틱, 운동틱 이렇게 나눠지잖아요. 그게 다 종합적으로 세 개가 늘고. 다른 것도 말로 표현할 수가 없죠. 만 6세 때 일이에요.
독일에서는 저 정도면 정서장애 진단받고 아이를 특수학교로 보낼 수 있습니다. 제가 특수학교에서 프락티쿰을 네 달 하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본 게 있기 때문에 그때 정말 위기의식이 컸고요. 그런데 그러면서도 먹고사는 문제가 달린 일이다 보니 포기가 안 돼서 한 학기를 더 질질 끌었는데..
마지막에는 정말 아이가 제 인생의 커다란 짐처럼 느껴지는 거예요. 제가 뭐만 하려고 하면, 그것도 놀고먹자고 하는 일이 아니라 먹고살아야 되니까 어쩔 수 없이 우걱우걱 해야 되는 일들을 정말 겨우겨우 해나가는데도 아이의 정서발달 문제로 하다 멈추고 하다 멈춰야 하는 일이 6년째 계속 반복되니까 정말, 미칠 거 같은 거예요. 이건 아니다고 생각을 했죠.
살다가 문득 길을 잃어버리면, 내가 지금 왜 길을 나섰는지 그 본래 목적을 상기하셔야 합니다. 목적지만 보고 달리다 보면 왜 달리기를 시작했는지 사람이 잊어버려요. 저는 제 아들이랑 잘 먹고 잘 살려고 취직이 하고 싶은 거였고, 그래서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그 짓이 6년이 되니까 자식이 제가 공부하는데 짐이 되고 있잖아요? 이게 지금 맞는 겁니까? 아니죠. 주객이 전도된 지 오래였습니다. 자식을 잃고 제가 돈을 손에 쥐면, 명예를 얻으면, 남의 부러움을 사는 커리어를 쌓으면 그게 다 무슨 소용입니까? 저는 그런 거 필요 없거든요. 이 독일 땅에 피붙이라고는 제 속으로 낳은 이 녀석밖에 없는데.
그렇게 손을 떼게 된 대학공부였기 때문에 저는 움슐룽으로 그런 걸 반복하고 싶지 않았어요. 그래서 엄마랑 그렇게 상의를 하면서, 어떻게 해서든지 최대한 지금 가진 거를 바탕으로 무난하게 적당하게 아무 데나 취직을 하는 게 낫다는 결론으로 가는 거예요.
그런데 엄마 말이 다 맞고, 나도 자식 가진 입장에서 그렇게 해야 되는 게 맞는 건 아는데 그때까지도 아직 완전히 포기가 안되더라고요. 말씀드렸듯이 저는 가을이 와야, 날씨가 선선해져야 이 포기라는 걸 하게 됩니다.
그러다가 이 잡 아카데미에서 저를 또 다른 전문가와 매칭을 시켜주게 돼요. 담당자 하나가 딱 붙어서 저를 도와서 구인광고 리스트도 뽑아주고 이것저것 찾아봐주기는 하는데 제 전공이 여기서는 너무 특수하니까요. 중문과를 나온 한국인 싱글맘이 독일 중소도시에서 글로벌한 일을 찾는다는 게 이게 그냥 꿈입니다, 꿈.
이게 독일은 4년제 나왔다고 해서 그냥 대학 나온 걸로 아무 데나 사무직에 지원하는 게 아니라 반드시 전공이 정확히 맞아떨어져야 돼요. 그래야 지원 자체가 가능하고, 회사마다 그래서 원하는 전공자들을 적어놔요. 저야 어차피 중문과 출신 뽑는 데다 없기 때문에 그냥 아무 데나 다 넣었지만, 아무 데서도 연락이 안 왔단 말이에요.
심지어 아시아랑 공업용 볼트, 너트를 취급하는 그런 무역회사가 하나 있었는데도 응답이 없었어요. 정식 채용공고가 없는데도 또는 채용기준이랑 안 맞는데도 그냥 넣어보는 걸 Initiativbewerbung이라 그래요. 그냥 한번 해보는 거죠. ‘나 이렇게 있는데 너네 한번 나 써볼래?’ 이런 거.
그래서 제 상황이 너무 어려워 보이니까 제 잡 아카데미 담당자가 이 분야에서 유능하다는 분을 소개해준 거예요. 이게 제가 현실을 완벽하게 깨닫게 되는 두 번째 상담이었죠.
이 분은 50대 중반 정도 되는 독일여성분이셨는데, 원래 기업체에서 인사담당으로 15년 정도 근무를 하시다가 이 잡 아카데미 쪽으로 넘어와서 10년 넘게 일을 하고 계신 거래요. 그러니까 취업의 신 같은 거죠. 제 이력서를 쫙 보시더니, 제일 먼저 앞으로 어디서 살 건지를 물으시더라고요. 독일에 남을 건지, 한국으로 돌아갈 건지.
그때까지 저는 아직 마음을 못 정했고, 정 안되면 최종적으로 프랑크푸르트로 이사 가는 것도 최악의 경우에 생각을 했었고, 먹고사는 게 해결될 수 있다면 한국행도 오픈해 놓은 상태였기 때문에 모르겠다고 했어요, 아직.
그랬더니, 한국으로 돌아갈 거면 이 이력서로도 한동안 대충 비벼는 볼 수 있고, Weiterbildung이나 간단한 움슐룽같은 걸로 어떻게 커리어를 조금 만들어볼 수는 있겠지만 독일에서 정착할 생각이면 무조건 움슐룽을 하라는 거예요. 그러면서 자기 이야기를 해주더라고요.
자기 남편이 아프리카에서 왔는데 거기서 국제정치를 전공했대요. 독일 넘어와서 그 학력을 공식절차 밟아서 인정받는 데까지 몇 년이 걸렸고 돈도 엄청 깨졌대요. 벌써 20여 년 전이니까. 그런데 영어랑 독일어가 완벽하고 성적도 그렇게 좋았고, 심지어 석사까지 마쳤는데도, 또 학력인증까지 받았는데도 취직이 안되더래요.
남편이 자기가 배운 걸로 여기서 취직하려고 정말 많이 노력했는데도 결국은 길이 없어서 다시 대학을 들어갔답니다. 그래서 법을 공부했대요. 한국은 전문대 2년 4학기, 대학은 4년 8학기잖아요. 독일은 둘 다 똑같이 3년 6학기예요. 이름만 달라요. 전문대는 FH(Fachhochschule), 대학은 Uni(Universität).
그래서 학사만 있으면 좀 뭔가 이상해요. 공부를 하다가 만 느낌, 6학기 밖에 안되니까. 그래서 보통 대학을 가면 석사 4학기까지 해서 총 10학기를 마치고 마스터를 달거든요. 그래야 이제 대학 나왔다고 하는 거예요. 예전에는 이 학사랑 석사를 합쳐서 디플롬이라고 했어요. 그렇게 하나의 학위가 있었던 거죠.
그런데 미국식 학제가 들어오면서 이렇게 바뀐 거예요. 그러니까 한국의 이런 학사제도(Bachelor)는 독일에서 나 대학 나왔다고 하기가 참 애매한 거예요. 3년도 아니고 5년도 아닌 4년이면서 학사니까.
아무튼, 그래서 독일에서 다시 학사, 석사까지 해서 결국은 그 옛날 아프리카에서 공부했던 거랑 합쳐가지고 2년 전부터 기업에서 국제법 전문 변호사로 일을 하면서 돈을 벌기 시작했다는 거예요.
드디어 자기가 공부한 걸 바탕으로 욕심에 맞는 일을 하고 사니까 남편 입장에서 행복하기는 하는데 옆에서 그 길을 전부 다 같이 걸어온 자기가 지켜본 봐로는 그 과정이 너무나 길고 고통스러웠다는 거예요. 취직까지 자그마치 18년이 걸린 거죠.
게다가 자기가 누구녜요. 이 분야에서 25년 된 구직 활동 전문가 아니냐고. 그런 내가 와이프로 딱 붙어서 이력서 써주고, 면접 준비 도와주고, 학비, 생활비 다 벌어다주고 애도 거의 혼자 키우다시피 하면서 뒷바라지 다 해주고, 이 사람은 구직활동하고 공부만 했는데도 자기 전공 써먹는 길을 찾는데 18년이 걸렸다 이거죠.
외국인이 독일에서 자기가 배운 만큼 대접받을 수 있는 직업으로 자리를 잡는 게 그렇게 힘든 거라는 거예요. 그런데 당신은 8살짜리 아이를 혼자 키우는 싱글맘 아니냐 이거죠. 이걸 어떻게 버틸 거냐는 거예요. 현실은 정말 냉혹한 거라고.
자기도 독일사람이고, 이 분야 일을 이렇게 오래 했지만, 외국인이 외국에서 이런 전공 공부한 걸로 취직하는 거 정말 험난하다고…. 그러면서 앞으로 10년, 15년 걸릴 수도 있는데 진짜 이 길을 갈 자신이 있냐는 거예요. 가겠다면 내가 말릴 수는 없겠지만, 정말 피눈물 나는 각오를 해야 할 거라고…
그 얘기를 듣는데 정말 뭐 어떡해요, 눈물이 또르륵 흐르죠. 그런데 말씀드렸듯이 움슐룽이나 대학공부는 더 이상 하지 않을 거라고 했잖아요. 그래서 그래도 이 이력서로 어떻게 먹고살 수는 없겠냐니까, 정 하고 싶으면 우체국 같은 데서 분류작업하는 간단한 일부터 시작해 보래요.
그러면서 틈나는 대로 회사에 이력서를 넣어보라고. 그런데, 그렇게 큰 기대는 하지 말래요. 이 이력서로는 취직이 돼도 말단 사무직 최저 시급 받으면서 언제 잘릴지 모르는 불안한 생활 밖에 못 한다고. 그니까 독일에서 늙어 죽을 생각이면 아직 정년까지 30년 가까이 일해야 할 정도로 젊으니까 몇 년 투자해서 움슐룽을 하라는 거예요.
그렇게 그 상담을 마치고 나오는데 그날 집에 와서 정말 많이 울었고요. 지금 여기 뒤에 이 카펫 보이세요? 여기 위에 엎드려서 정말 많이 울었어요. 꺼이꺼이 원 없이 울었고, 울고 또 울었고, 제가 믿고 조언을 받을 수 있는 사람들한테 전부 전화해서 하소연하고, 또 울고, 그러고도 정말 많이 울었어요. 그 하루동안.
그러고서 울 거 다 울었으니까 이제 현실과 타협을 해야 할 때잖아요. 제가 제 이력서를 꺼내서 들고 찬찬히 봤어요. 내가 기업의 사장이라면, 인사담당자라면 이 사람을 내 회사를 위해서 뽑을까? 그런데 제가 이렇게 천천히 읽어보니까 난 안 뽑을 거 같더라고요.
왜? 내 회사를 키우는데 도움이 될 만한 인재를 고용하고 싶잖아요, 사장은. 그런데 이 이력서에서는 그런 게 전혀 보이지 않더라고요. 나이, 가족관계, 국적, 다른 경쟁자들과의 비교 이런 거 다 차치하고라도 그냥 이력서만 놓고 봤을 때 전공도 달라, 경력도 없어, 필요한 자격증도 없어, 당장 업무에 투입할 수 있는 뭐가 전혀 안 보이는 거예요.
그때 마음이 섰죠. 이 길은 아니구나. 움슐룽 프로그램들이 기업에 취직하는데 최적화된 직업교육이라고 했잖아요. 그런데 하나도 제 마음에 드는 게 없었거든요. 그러니까 저는 마음은 기업에서 일을 하고 싶어 하면서도 그쪽에는 적성이나 흥미가 없는 사람인 거예요, 사실.
그 당시에 포기할 때는 몰랐는데 포기하고 난 뒤에 자기 객관화 과정을 한번 더 거치면서 이제 그걸 차차 알게 됩니다. 기업에 한 세 달 구직활동을 해봤는데 정말 한 군데에서도 연락이 안 왔거든요. 그래서 그날 이후로 회사나 기업에 들어가겠다는 허황된 꿈을 완전히 버립니다.
그다음 날부터 저는 목표를 바꿔서 사회복지 분야로 방향을 틀었어요. 그쪽으로 가게 되면 제가 살아온 이력이 어느 정도 쓸모가 있거든요. 그동안 그쪽에 관심을 안 가졌던 이유는, 제 한국에서의 전공이 그래도 사회복지 분야보다는 기업 쪽에서 더 관심을 가질만한 거라고 판단했기 때문이에요.
사회복지는 전공이 정말 명확해서 그 분야를 공부하지 않으면 지원 기회조차 없거든요. 그런데 제가 독일에서 사회복지를 중퇴했잖아요. 그럼 이제 제 한국 학위로 구직을 해야 되는데 한국의 중문과 나온 사람을 누가 사회복지에서 쓰겠어요.
그래도 기업으로 가면 당연히 사회복지 쪽보다는 돈도 많이 주고, 경력이 쌓이면 좀 가능성이 있겠지 싶어서 계속 기업 쪽으로 구직활동을 해왔던 건데 이제 택도 없다는 걸 알았잖아요. 당연히 기업이 더 잔인하죠.
그래서 어차피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전공이고, 오라는 데 없어서 아무 문이나 두드려야 한다면, 적어도 내가 지난 7년 동안 해온 일이 조금이라도 빛을 발하는 쪽이 좀 더 가능성이 있겠다 싶었어요. 지원자격이 미달이기로는 두 분야가 차이가 없으니까요.
그래서 이력서를 전면 수정합니다. 사회복지 분야에서는 제가 싱글맘인 걸 적어도 된다고 하더라고요. 오히려 적어야 하죠. 배려대상이니까. 어차피 전공자도 아니고 돈도 잘 못 버는 직종이니까 일이라도 편하게 하자 싶어서 근무시간도 제 편한 대로 적었습니다.
그리고 브런치 활동내역이랑 자원봉사 내역도 다 적어도 되고요. 비록 대학을 마치지는 못했지만 그것도 적어도 된대요. 사회복지 분야의 경험이 전무한 것보다는 그래도 나으니까요. 저는 그 분야에서 심지어 프락티쿰도 세 번이나 했죠. 추천서도 훌륭합니다.
그렇게 제 본모습대로 이력서를 완성하고 프린트해서 딱 손에 쥐고 제가 그간 살아온 이력을 읽어보니까 더 확실히 알겠더라고요. ‘나는 이 쪽 사람이 맞는구나! 나는 이윤을 추구하는 집단인 기업에서 일할 사람이 아니라 사회복지에 적합한 사람이구나!’ 그걸 깨닫고 나니까 자신감이 붙으면서 빙그레 웃음이 나데요. 그때부터 마음이 정말 한결 편안해졌습니다.
그때부터는 조금 더 수월하게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보내기 시작합니다. 이번에는 번듯한 직장, 훌륭한 급여, 전공을 최대한 살리기 위해서 모든 희생을 감수하는 그런 구직이 아니라 아이와 나의 생활을 최우선에 놓은 뒤에 그나마 장기적으로 발전가능성이 있는 일들 위주로 이력서를 보내기 시작해요.
중고등학교, 직업학교, 어학원 같은 곳에 보낼 때는 중국어랑 한국어 강사로, 아니면 각종 사회복지 단체나 관공서에 보낼 때는 Mitarbeiter로. 또 Intergrationshelferin이라고 해서 다문화가정 아이들의 학교생활을 도와주는 일도 있고, 하여간 엄청 많아요, 사회복지 분야는.
그전에 기업에 지원할 때는 대중교통으로 왕복 2시간 출퇴근도 마다하지 않고 지원했거든요. 어떻게든 시켜만 주면 내가 뼈를 갈아서라도 회사에 다 맞추겠어! 막 이런 심정이었는데 이제는 반경 3킬로 안에서 제가 편하게 갈 수 있는 곳에만 지원을 하기 시작합니다.
여러분, 거절 메일 받고 기뻐해 본 적 있으세요? 저는 그랬거든요. 그렇게 수많은 회사들에 이력서를 보낼 때는 싫다, 좋다는 커녕 잘 받았다는 이메일도 하나 못 받았거든요. 그냥 대답 없는 곳에 나 혼자 허공에 떠드는 기분?
그런데 역시 사회복지 분야는 기업보다 인간적인 게, 적어도 지원하면 절반 정도는 ‘고맙지만, 우린 관심 없어.’ 같은 거절메일이라도 보내주는 거예요. 그래서 처음에 그 거절 메일을 받았을 때 기분이 얼마나 좋던지. 뭐랄까? 투명인간 취급만 받다가 이제 좀 내 형체를 봐주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이었달까?
그리고 무엇보다 마음이 되게 흡족했어요. 왜냐하면 이제 제 이력서에는 우리 아들도 들어있고, 제가 지난 7년 동안 가치 있다고 생각하면서 해온 일들도 들어있었으니까요. 남들이 뭐라 하든 저는 그게 제 이력서를 채우고 있는 게 그렇게 든든하더라고요.
여기까지가 지난 10월 초반까지의 일이었고요. 사실 저는 이 모든 과정을 이미 2015년도에 다 알고 있었습니다. 어떻게? 제가 블로그에 제 이혼사를 오픈했을 때 전 세계 각국에서 연락들을 주셨다고 했잖아요. 독일 사는 싱글맘들이 그중에서도 압도적이었죠.
그분들께 제가 뭘 제일 먼저 물어봤겠습니까? 어떻게 먹고 사시냐였죠. 그래서 저는 이미 첫 반년 동안 이런 모든 시행착오들을 사실 그분들을 통해서 간접경험을 끝내놓은 상태였어요. 그래서 내 이력으로 가망이 없겠다 싶어서 애저녁에 포기하고 다시 대학진학으로 진로를 바꾼 거고요.
그런데 공부를 못 끝냈잖아요? 그래서 다시 원점으로 돌아온 거죠. 제가 실제로 몇 달간 구직활동을 하면서 하나씩 놓기 시작하니까 그때 그분들이 했던 말씀들이 하나도 틀린 게 없다는 걸 다시 한번 깨달았습니다.
제가 오픈한 이 취업기의 내용들이 저 하나만의 케이스가 아니라 비슷한 환경에서 결혼이민으로 독일에 넘어와 계신 분들도 다 경험을 하신 것들이에요. 그동안은 이런 걸 누가 오픈을 안 하니까 다들 잘 모르셨을 거 아니에요. 몇 년 그렇게 고생하다 한참 뒤에 어떻게 취직이 돼서 잘 다니는 사람들만 우리는 보게 되니까.
그러니까 그분들이 어떤 고생과 역경들을 거치고 결국 그 자리에 가셨는지 그 과정은 다 떼고 결과만 딱 보니까 되게 그런 것들을 쉽게 얻은 것처럼 보이고, 그분들이 탁월한 능력이 있어서 그런 것처럼 느껴지잖아요, 우리는? 그런데 그게 아니란 말이죠.
저는 이 모든 사실을 8년 전에 다 듣고도 실제로 다 경험하고 있지만 그래도 좋아요. 실망스럽기는 해도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이라 좌절스럽지도 않고, 또 사람이 말로 듣는 거랑, 내가 해보고 안 되는 건 다른 거거든요. 그렇잖아요. 저는 그 사람이 아니니까.
저는 그 당시에 이런 내용들을 들으면서 애 3살 될 때까지 조용히 애나 잘 키우라는 사람, 아우스빌둥을 하라는 사람, 아니다 대학을 가야 된다는 사람, 아니다 대학 가는 것보다 안 가는 게 낫다는 사람, 지금 있는 걸로 알바부터 하라는 사람, 대도시로 당장 이사 가라는 사람, 정말 조언을 많이 들었지만 결국은 제가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아왔고 그래도 지금까지 안 굶어 죽었고요.
무엇보다 그랬기 때문에 저는 후회가 없어요, 저의 선택들에 대해서. 논리로는 이게 옳다는 걸 알아도 마음이 따라가려면 항상 시간이 걸리거든요. 전남편을 용서하면 좋은 거 누가 모릅니까? 머리로는 알아도 이혼하면서 찌그락빠그락 하는 와중에 용서가 됩니까? 맨날 애 때문에 치고받고 싸우고, 전화 와서 피 말리고, 법적으로 소송 걸고 그러는데, 안 돼요.
구직도 마찬가지예요. 현실을 파악하고, 눈을 낮추고,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떨쳐버리고 새로운 일에 도전하기 위해서 용기를 내기까지 마음이 단단해질 시간이 필요하단 말이에요. 저는 감사하게도 환경 덕분에 그런 시간을 충분히 가질 수 있었고요.
앞으로 제 영상에 아마 마음씨 좋으신 분들이 비슷한 사례들을 많이 올려주실 거 같은데, 그런 댓글들을 보시면 감사한 마음을 가지시면서 본인에게 잘 적용하시기를 바라요. 다른 사람의 경험을 내가 간접경험할 수 있다는 건 정말 감사하고 귀한 일이거든요. 알고 삽질하는 거랑 전혀 모르고 삽질하는 거는 정말 다릅니다.
10명이 영상을 보면 그중에 한 명이 ‘좋아요’를 눌러요. 이거 ‘띡’하고 누르는 것도 겨우 10% 한다는 거예요. 돈 버는 정보를 다 나눠줘도 그중에 실행해서 진짜 버는 사람은 10% 안짝이랍니다. 요즘 개나 소나 유튜브 한다고 하지만, 그래도 주변에 유튜브 하는 사람은 나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원래 그렇대요. 실행력 있는 사람은 늘 10% 정도래요. 댓글도 그렇겠죠? 제 영상을 보고 할 말은 많지만 하지 않는 사람이 90%는 될 거예요. 그런데 그중에 딱 10%만 본인의 귀한 시간을 내서 공을 들여서 유익한 댓글을 써주시는 거예요.
왜일까요? 이타주의죠. 그분들도 저랑 비슷하신 거예요. 자신의 경험을 여러분과 공유하고 그로 인해 타인의 수고를 덜어주는 것에 대해서 가치를 느끼는 거죠. 저의 구직도 물론 중요하지만, 제 구직 영상이 그렇게 여러분께도 공감하고, 응원하고, 또 서로 정보를 교환하고, 같이 용기를 내서 성장하는 그런 장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구직자 여러분, 오늘도 그러면 힘내시고! 파이팅입니다!!!! 아자아자, 파이팅!!
그럼 다음 영상에서 또 뵙겠습니다!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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