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취업, 스펙으로 나를 이길 자 누구인가!

2탄ㅣ이력서

by 뿌리와 날개

안녕하세요, 여러분! 독일 사는 싱글맘, 뿌리와 날개입니다.


먼저 저의 스펙을 말씀드리자면, 저는 한국 4년제 대학 중문과 졸업했고요. Anerkennung이라고 하죠. 저의 한국에서의 학력을 독일에서 공인받아놓지는 않았습니다. 중국 대학에서 어학연수를 두 학기 했고요.


대학 졸업하고 나서 10년이 넘도록 취업해 본 적도 없습니다. 경력단절이 아니라 무경력이에요. 독일에서 아이 키우면서 간간이 브런치랑 블로그에서 글을 쓰고, 또 상담 자원봉사를 해 온 이력이 있고요.


독일어랑 중국어는 각각 C1이 있어요. 독일에서 시험 없이 독일 면허로 교환해 주는 독일장롱면허증 하나 있고요. 영어는 옛날에 졸업요건 맞추느라 봤던 텝스 성적표가 기한 만년 전에 지난 거 하나 있고요.


그래서 전 이력서에 영어 할 줄 안다고 안 썼어요. 서울대 나온 거 아니고요. 토익이 너무 싫어서 그냥 텝스 한 거예요. 텝스는 토익보다 공부하기가 재밌더라고요.


이게 답니다. 진짜 이게 다예요. 아, 여기다가 독일에서 졸업 못한 대학교 몇 학기 다닌 거 기록. 그리고 사회복지 분야에서 관련 프락티쿰 서너 달씩 한 세 번 했죠. 참고로 나이는 30대 중후반이고요, 가족이라고는 초등학교 저학년 자녀 하나뿐인 싱글맘입니다.


기업을 대상으로 구직활동을 단 한 번이라도 해보신 분들은 감이 오시겠죠? 제 스펙이 어떤 수준인지. 한국이라고 해도 저런 이력서 들고 가면 문전박대당할 거 같아요. 그런데 독일에서 심지어 외국인 신분으로 저런 이력서를 들고 제가 감히 기업에 들어가겠다고 서류를 넣고 다녔으니 진짜, 무식하면 용감합니다.


참고로 잡 아카데미에 연결되기 전까지 제 이력서는, 제가 옆집 친구랑 둘이서 한글 문서 열어놓고 셀카 찍은 거 중에 제일 예쁜 사진 포토샵으로 잘라다가 붙여 넣고, 그냥 시간의 순서대로 쭉쭉 졸업한 초중고 및 대학을 적어 넣은, 그것도 전부 한국 소재 학교들을요.


그런 이력서를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매일같이 구직 사이트 뒤지면서 이력서를 넣고 다닌 여자예요 제가. 정말 뻔뻔하죠. 그것도 전공도 맞지 않는 걸. 독일은 되게 길이 정해져 있거든요. 그래서 전공자들만 지원을 할 수 있는데 저는 어차피 해당되는 사항이 없기 때문에 그냥 넣은 거예요.


그러면서도 이력서를 이렇게 넣어도 연락이 안 온다고 막 고민하고. 그런데 제 친구는 전공에 맞는 일을 해서 그런지 그런 이상한 이력서로도 취직 잘 만했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저도 그냥 따라 했죠.








이 어마무시한 이력서를 들고 다니다 다니다 안 되겠어서, 어느 날 싱글맘 취업지원 박람회가 열린다는 말을 듣고 오매불망 그날만 기다렸다가 애 학교 끝나자마자 손 잡고 거기를 갑니다. 이력서 이쁘게 프린트해 가지고 구겨지지 말라고 파일에 끼워서 한국에서 가져온 대학졸업장이랑 성적표랑, 독일에서 프락티쿰하고 받은 평가서랑 챙겨서 정성스럽게 싸들고 갔어요.


저는 지원가능한 회사들이 와서 프로모션 같은 걸 하는 줄 알았는데 가 보니까 1,2층 꽉 채워서 보육지원상담, 취업지원상담, 정신건강상담, 각종 자격증 취득 상담같이 한 20여 개가 넘는 팀마다 이름만 조금씩 다르지 결국은 전부 상담만 해주는 거예요.


그런 거 진짜 지난 7년 동안 이골 나도록 해봤거든요. 그래서 저는 더 이상 상담 같은 건 안 받는단 말이에요. 저는 제 이력서를 읽고 저를 채용해 줄 회사나 실제로 제가 지원할 수 있는 채용공고 리스트가 필요한 거지 상담은 괜찮아요.


그런데 그중에 하나 고용 관련 상담해서 좀 쓸만한 팀이 있길래 가봤더니 제가 4년 전에 나 이제 대학 간다고 바이바이 하고 나왔던 그 잡센터 담당자가 있는 거예요. 저는 그때 기초생활수급 벗어나서 이제 대학 간다고 정말 기쁘게, 당당하게 인사하고 나왔거든요?


근데 4년 뒤에 결국 대학 졸업을 못하고 실직자가 돼서 그 사람을 거기서 다시 보게 되니까, 진짜 만감이 교차했어요. 그 남자는 그 사이에 승진을 해가지고 그 센터장 급으로 거길 왔더라고요.


그래서 제 이력서를 보여주면서 나 기억나냐고, 4년 전에 당신이 내 담당자였다고 하면서 나 지금 구직 중인데 내 이력서 읽어 보고 이 동네 어디든 좋으니까 무역업 관련해서 일자리 있으면 알선 좀 해달라고 하니까 이 남자가 저를 빤히 쳐다보더니 어디 저 쪽으로 가서 물어보래요.


가리키는 데를 봤더니, 제가 이미 지난 7년 동안 두 번이나 가서 상담을 받았던 기관이에요. 여성고용지원센터 이런데. 그래서 나 저기 진작 가 봤다고, 두 번이나 가봤는데 별로 도움 된 거 없었으니까 당신이 좀 봐달라고 했어요.


그 남자가 그때도 일을 야무지게 잘했었거든요. 아시죠? 독일 공무원들 일 진짜 엉망진창으로 하는 거. 잘하는 사람 만나면 그래서 놓치지 말고 꼭 이름을 기억해 두시라고 했잖아요. 아무튼 그랬더니 그제야 제 이력서를 쫙 읽어보는 거예요. 한 15초 정도 훑어보더니 제 눈을 똑바로 쳐다보면서,


잘 들어.

이 이력서로 취직할 생각이면
취업 사이트에서 이 동네
아니 이 도시 단위가 아니라

전 독일을 대상으로 필터링을 해서
어디가 됐든 너를 불러주는 데가 있으면
아무 생각 하지 말고
무조건 그 도시로 이사가!

로또 맞을 확률보다는 높을 거고,
일단 되기만 하면
연봉은 잘 받을 수 있을 거야.

한국어 할 줄 아는 중문학자 같은 건
독일에서 구할래도
너밖에 없을 테니까!



그러는 거예요. 물론 친절한 존댓말로. 그래서 제가 너무 황당해서 ‘나 근데 애가 있어. 여기서 우리가 이미 7년을 자리 잡았는데 이사를 어떻게 가. 나 못 가.’ 그랬더니


이 동네?
안돼.

이런 이력으로는
너 절대 취직 못해.



이러더라고요. 아니 짐작은 했지만 그 말을 듣는데, 지난 몇 개월 동안의 노력과 희망이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전기를 맞고 전신을 관통해서 쫙 빠져나가는 것처럼 싸늘하면서 눈물이 막 차오르는데, 그 사람 많은 데서 울 수는 없잖아요. 제가 그때까지 정말 감정을 잘 컨트롤하고 있었거든요.


기초생활수급이라는 게 신청한다고 해서 바로 나오는 것도 아니고, 아이가 나이를 많이 먹었기 때문에 심사도 까다로워져서 만의 하나 안 나오기라도 하면 정말 큰일이고, 모든 서류와 영수증들이 꼬리의 꼬리를 물고(서류 패러독스라고 했죠) 얽혀있어서 이게 한번 꼬이면 진짜 다 엉망진창이 되거든요.


그래서 정신 바짝 차리고 체크해야 되는데 그 와중에 남자친구랑은 또 헤어졌고. 그래서 정말 살얼음을 걷듯이 조심스럽게 그러면서도 씩씩하게 하나씩 해나가고 있었는데 그렇게 생각지도 못하게 냉정한 말을 듣고 나니까 너무 심장이 저릿저릿한 거예요.


그래서 아시죠, 울음 참으면 막 여기 목이 찢어질 거 같은 거. 그렇게 울음을 참으면서 애써 태연한 척 물었어요. ‘나 그럼 어떻게 해야 되냐고. 애랑 앞으로 어떻게 먹고살아야 되냐고.’


그니까 이 사람이 팸플릿 하나를 꺼내서 보여줘요. 그러면서 지금 내 담당자한테 본인이 연락을 해줄 테니까 예약 잡고 만나서 이걸 해달라고 하라는 거예요. 그게 바로 움슐룽이었어요. 그때 움슐룽의 존재에 대해서 처음 들었던 거죠.


그렇게 대화를 마치고 화장실로 뛰어가서 참았던 눈물을 서럽게 쏟았습니다. 짧고 굵게. 왜냐면 금방 1층에 맡겨놓은 아이를 데리러 가야 하니까. 엄마들 대상으로 하는 프로그램에는 무조건 아이보육을 같이 해주거든요.


애가 어릴 때는 뭘 모르니까 아무 때나 울어도 됐는데 이제는 애가 커가지고 하품하다 눈만 좀 빨개져도 엄마 우냐고 그런단 말이에요. 그래서 빨리 울고 세수하고 안 운 것처럼 얼굴근육을 풀어주는데, 전 원래 울어도 티가 잘 안나거든요. 하도 사람 많은 데서 울 일이 많았어가지고 티 안 나게 우는 것도 잘해요.


근데 그날은 얼굴을 보니까 얼마나 서러웠는지 눈이랑 코랑 귀까지 다 빨개져가지고 눈물이 막 절로 흐르고 있는 거예요. 대책이 없으니까. 그때가 아직 여름이잖아요. 저는 그 뒤에도 두 달 정도 더 그렇게 울고 다니다가 내적으로 깨닫게 된단 말이에요.


그런데 그때는 잘 살아보려는 욕심도 있었고 의욕적으로 구직활동을 할 때라 심적으로 정말 힘들고 고통스러울 때였어요. 그런데 그렇게 울면서도 뭔가 속이 시원한 거예요.


저는 7년을 맨날 희망고문만 듣고 다녔다고 했잖아요. 이 사회복지 분야는 일의 특성상 여성, 특히 기혼여성 및 가족이 있는 사람들에게 굉장히 친절한 분야라 여성인력이 압도적으로 많아요. 저도 그래서 사회복지를 선택했던 거고.


그래서 제가 7년 동안 취직이 급해질 때마다 사방팔방 안 다닌 데가 없는데 담당자들이 다 여자들이었고, 특히 사회복지 쪽에서 일하시는 여성분들은 정말 타인의 마음을 잘 헤아려주고 또 긍정적인 사람들이라서 하소연하고 위로 듣고 그러기에는 좋은데, 제가 원하는 실질적인 취직에는 별로 도움이 안 돼요.


전문가라 그래서 찾아가 보면 항상 하는 말이 잘 될 거라고, 길이 있을 거라고 그러면서 맨날 탁구공 주고받듯이 저를 여기저기 연결해주기는 하는데, 이리 가라면 이리 가고 저리 가라면 저리 가서 하라는 대로 해도 결국은 남는 것도 없이 뺑이만 치는 거예요.


당연하죠. 상담이 문제가 아니라 제 상황, 제 스펙 그리고 저의 눈높이 이 세 가지가 아귀가 맞지 않아서 생기는 문제니까. 그런데 이 남자가 전문가로서는 처음으로 저한테 현실을 알려준 거잖아요. 제 스펙이 이 구직시장에서 어떤 수준인지.


사람이 안간힘을 쓰다가 진짜 바닥을 보게 되면 좀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것도 있어요. 더 이상 쓸데없는 노력할 필요가 없다는 걸 알게 되니까. 그래서 차라리 그렇게 너 안될 거라고 말을 해주니까 저는 마음의 상처를 받은 것과는 별개로 속이 좀 시원했어요.








보통 여기 사람들은 잡센터에서 부르지 않으면 절대 먼저 찾아가지 않아요. 가만히 있으면 기초생활수급비가 잘 나오니까. 잡센터에서 사람을 부르는 건 뭐 돈 진짜 없는지 재정 관련 증빙서류를 떼오라거나, 왜 돈 안 버냐고, 구직활동 하는 거 맞냐면서 한다고 하면 불합격 통보받은 증거 서류들 제출해라 뭐 이런 귀찮은 이유들 뿐이거든요.


그리고 뭐 하나라도 제대로 아귀가 안 맞으면 바로 돈을 끊어버려요. 그래서 그냥 편지함에 잡센터 이름으로 편지 와있으면 심장이 막 두근두근하고. 이거 독일에서 이혼하고 혼자 살기 시작하시면 다들 경험하시는 일이에요. 관공서 편지만 보면 심장 두근두근 하고 막 손 떨리는 거.


암튼, 그래서 다들 잡센터에서 오라고 해도 차일피일 미루고 핑계 대고 안 가고 막 그러거든요. 그런데 저는 그 일이 있고 나서 담당자로부터 연락이 오는 걸 기다리는 며칠도 너무 지루한 거예요. 하루라도 빨리 일을 해야 되니까 마음이 급해서. 참고로 연락은 모두 서신으로 옵니다.


못 참고 전화를 걸어서 채근했더니 이 담당자가 굉장히 난감해하는 거예요. 왜냐하면 제가 이미 잡 아카데미로 연결이 돼서 다음 달부터 세 달간 그쪽에서 도움을 받으면서 천천히 취업준비를 하기로 되어 있었는데 그새를 못 참고 제가 또 어디 박람회를 가서 이제는 잡센터에서 일하지도 않는 옛날 담당자를 찾아내서 뭐 이상한 길을 뚫어오니까. 정작 현재 담당자인 본인은 저한테 소개도 안 해준 옵션을요.


그래서 제가 두 가지 일을 동시에 진행했어요. 잡 아카데미를 통해서 구직활동을 하는 건 그거대로 하고, 잡센터 담당자랑 움슐룽에 대해서 알아보는 건 또 알아보는 거 대로. 여기 사람들은 항상 이런 저를 이해를 못 해요. 왜 굳이 들쑤시고 다녀서 그런 고생을 사서 하냐고 하죠.


농담이 아니라 진짜 가만히, 조용히 주는 돈 받으면서 입 다물고 있으면 편하게 살 수 있거든요. 심지어 구직 담당자들도 그런 사람들 좋아해요. 왜냐하면 제가 움직이면 자기들 서류 처리할 거, 일만 많아지니까. 그런데 저는 항상 그런 제가 부지런하고 양심적인 사람이라서 그런다고 생각을 해왔죠.


움슐룽이 참 좋은 제도이기는 한데 저는 그때 많이 망설여졌어요. 이미 한국에서 그 비싼 돈 내고 대학도 졸업을 했고, 유학생활도 했고, 그런데 그렇게 배운 거 못 써먹어서 여기서 또 대학을 들어갔는데 그마저도 이제 아기 키우면서 정말 힘들었고.


아이도 없고 젊을 때 내 나라 말로 대학 수업을 받던 거랑 싱글맘으로 외국에서 대학을 다니는 거는 정말 갭이 크더라고요. 결국 마치지도 못했고. 그런데 여기서 또 움슐룽을 시작한다? 시작하면 또 3년인데. 이게 한 학기, 그니까 반년에 한 번씩 시험을 봐서 통과도 해야 되고 아우스빌둥이랑 똑같단 말이에요. 빡세요.


그니까 돈을 공짜로 대준다고 하는데도 다시 공부를 한다는 생각만으로도 토가 나올 거 같은 거예요. 그리고 살짝만 봐도 제가 하고 싶은 분야도 없었고요. 아이 상태를 봤을 때도 그게 현명한 판단이 아니라 제 욕심 같았고.


그렇게 고민을 하면서 잡 아카데미를 통해서 이력서를 계속 보완해 나가고 채용공고 살펴보면서 지원하고 싶은 회사마다 들어가서 그 회사가 원하는 인재상 읽어보고 원하는 거 따다가 자기소개서 쓰고. 그런 작업을 가을까지 계속했어요.








이력서를 쓰는데 시간이 굉장히 많이 들어가는 거 아세요? 정말 토씨 하나도 안 틀리게, 여백, 줄, 들여쓰기까지도 다 맞춰서 정말 완벽에 완벽을 거듭하도록 끝없이 수정을 시키더라고요. 물론 제 첫 이력서가 엉망이었기 때문에 처음부터 다시 시작을 하기도 했고.


거기다 워낙 제가 경력이 없으니까 대학 다닐 때 했던 외국인 학생 대상으로 했던 한국어 과외나 학보사 활동 했던 그런 대외활동도 다 끼워 넣고, 취업센터 담당자가 영어 할 줄 아냐고 해서 농담 식으로 예스, 아이 캔 스픽 잉글리시, 이프 아이 해브 투.라고 했더니 B1이라고 쓰라는 거예요.


아니 자격증도 없이 막 그런 걸 쓰냐니까 된대요 독일은. 어학증명서가 중요한 게 아니라 실제로 프리토킹이 되면 된다는 거예요. 아니 그런데 그때도 진짜 허망했던 게 제가 대학 4년을, 그리고 어학연수 1년을 해서 도합 5년을 대학 공부를 하고 10년을 까맣게 잊고 살다가 결국 남은 게 6주 미친 듯이 공부해서 급조로 딴 중국어 C1 자격증이잖아요?


근데 B1을 예스 아이 캔 스픽 잉글리시 한 문장으로 딴 거 아니에요, 지금? 이런 식이면 니 하오마? 니 츠판러마? 뭐 이런 거 쫌 하는 애들도 중국어 B1이라 할 거 아니에요.


그리고 컴퓨터 활용능력도 MS워드 기본 된다고 쓰래요. 그래서 나 그런 거 딴 적 없다 그랬더니 네가 지금 이력서, 자소서 쓰는 프로그램이 MS워드라면서 너 그걸로 이미 작업하고 있으니까 할 줄 아는 거래요. 아니, 명색이 취업지원센터 전문가들인데 막 이래도 되냐니까 된다는 거예요.


어쩐지 제 전남편이 옛날에 이력서를 쓸 때 한국어 기초, 중국어 중급 정도 할 줄 안다고 항상 쓰더라고요. 아니 한국어는 아룡하쎄요, 콤싸합니다, 된장찌개 더 주세요 밖에 모르면서 이력서에 그런 걸 쓰냐고 제가 막 머라 했었는데…. 그거로 심지어 가산점 받아서 취직을 잘만 하길래 놀랬거든요.


그니까 이게 되는 거예요, 독일은. 그렇게 서류의 나라라고 하면서 어학능력은 그냥 그런 식… 유럽 애들이 왜 다들 4개 국어, 5개 국어씩 한다고 하는지… 아시겠죠? 배짱인 거죠 그냥.








그렇게 두 달 정도 지원과 동시에 이력서를 계속 수정해 나가면서 저도 이제 조금씩 현실이 와닿기 시작하는 거예요. 독일 기업이 원하는 인재상에 대해서. 한국에서 받은 학위는 여기 독일에서 인정을 다시 받으래요. 한국이랑 독일은 서로 학위 인정이 돼요. 그래서 따로 안 받아도 되거든요.


독일에서 학위 인정받기 전에 필요한 작업인지 아닌지 검토해 보는 정식사이트도 있어요. 거기에 제가 졸업한 대학과 학과를 넣었더니 독일 어디든지 바로 취직할 수 있다면서 채용 분야도 뜨고 그랬거든요, 물론 실생활에서는 다 뜬구름 잡는 얘기지만.


근데도 다시 인증절차를 받으라는 거예요. 이게 기간도 오래 걸리고 돈 200유로 넘게 드는데 무엇보다 수능성적표, 고등학교 졸업장, 대학성적표랑 대학졸업장을 전부 한국어로 제출하라고 하더라고요. 제가 7년 전에 대학 가려고 알아봤을 때는 영어로 받으라 해서 한국에서 동생이 직접 찾아가서 전부 영어로 떼다 주고 그랬었거든요? 근데 이제는 한국어로 하라니까.


그리고 제가 독일에서 대학을 중도 포기한 사실을 넣지 말래요. 기업에서 성실성에 의문을 가질 테니까. 그리고 싱글맘인 것도 쓰지 말래요. 안 그래도 핸디캡이 많은데 애까지 있으면 면접까지 가보지도 못하고 서류 탈락하니까.


물론 기업에서 이런 것들을 대놓고 말하지는 않죠. 차별이니까. 그런데 현실적으로는 독일에서도 싱글맘은 대단한 경력자가 아닌 다음에야 기업에서 기피대상이고, 서류상으로도 항상 아래 순위예요.


제가 그동안 독일에서 애 키우고 살면서 한 게 뭐겠어요. 만나는 독일 애 엄마들마다 붙잡고 직장 어디 다니냐, 직업 교육 뭐 받았냐, 어떤 경로로 취직했냐, 직장생활 어떠냐 이런 거 아니겠어요?


정말 스쳐 지나가는 인연이라도 통성명만 했다 하면 실례가 안 되는 선에서 항상 직장 어디 다니는지, 아기 키우면서 근무환경 어떤지, 독일 직장에서 엄마들에 대한 실제 처우가 어떤 건지 항상 물어봤거든요. 그래야 사회 돌아가는 분위기를 파악하니까요.


그래서 한국만큼은 아니더라도 그래도 독일도 애 키우는 엄마가, 특히 싱글맘들은 직장생활에서도 애로사항이 많고 저처럼 아예 일자리에 발도 못 담가 본 와중에 싱글맘인 사람들은 더더욱 힘들다는 거 익히 들어 알고는 있었지만, 그래도 이력서 쓰면서 체험해 보니까 정말 잔인하더라고요.


적자생존 그 자체예요. 기업에 취직해서 돈을 번다는 건.


그런데 프락티쿰 했던 건 적으래요. 그리고 제가 브런치에 글 쓰던 거랑 개인상담 했던 내용은 빼라고 하더라고요. 그거로 돈을 번 게 아니기 때문에 경력에 들어가면 안 된다는 거예요. 이게 무슨 상황인지 머릿속에 그려지세요? 그러니까 제 이력서에는 대학을 졸업한 이후로 공식적인 기록이 아무것도 없는 거예요.


대학을 졸업하고 바로 독일 넘어와서 살림하고, 애 낳고, 지난 7년 동안 애 키우면서 독일어 기초부터 C1까지 올려서 대학 들어가서 피 터지게 대학 공부하고, 그 와중에, 글도 쓰고 책도 엮고, 사람들 상담도 하고, 독어로 편지 쓸 거 있으면 써주고, 소송 내용 읽고 해석해 주고, 독일어 못하는 내담자들이 필요할 때마다 독일인 담당자랑 통역해주고 했던 그 모든 저의 활동들이 없는 일이 된 거죠.


저는 그냥 한국에 어디 독일사람들은 듣도 보도 못한 이상한 대학 이상한 학과 졸업하고서 독일 살면서 그냥 무직, 아무것도 안 한 여자, 독일어 좀 배워서 그것도 기업이랑 뭐 관련 있는 인턴쉽도 아니고 생뚱맞게 유치원, 특수학교 이런 데서 애 조금 본 거 말고는 한 게 없는 그런 내일모레 마흔의 외국인 구직자가 된 거죠.


그때도 정말 현타가 세게 왔어요. 내가 기업을 가겠다고, 아니 취직이라는 게 당연히 기업을 들어가는 거라고 그때까지는 생각을 했었는데…


너무 속이 상한 와중에도 근데 제가 브런치는 진짜 못 빼겠다고 했어요. 아니 내가 지난 7년 동안 그렇게 열정을 갖고 아무리 힘들어도 놓지 않고 이어온 게 두 가지가 있다면 자식 키우는 일이랑 글 쓰는 일인데… 그 두 가지를 다 빼야 한다는 게 너무 서러운 거예요.


그래서 고집을 부려서 그걸 안 뺐어요. 말도 안 되는 고집인 거 아는데, 그것까지 지워버리면 정말 내가 지난 10년 동안 아무것도 안 한 사람이 돼버리니까, 그게 비록 서류상일지라도 너무너무 서글프고, 허무하고 그런 거예요.


그런데 저라고 왜 모르겠어요. 기업이 원하는 지원자 스펙이 채용공고마다 빼곡하게 뜨는데… 회계 관련 자격증, 컴퓨터 활용능력도 요즘은 엄청 다양해요. 전자상거래 관련 어쩌고 해 가지고 자격증도 수준이 있고, 그 수준 따라 지원할 수 있는 직위도 달라지고, 완벽한 영어랑 독일어는 기본에 출장도 막 가라 그러고, 팀에서 막 프레젠테이션도 해야 되고, 난 아직도 무대공포증에서 완벽하게 벗어난 게 아닌데…


솔직히 말하면 그렇게 덜컥 채용이 돼도 정말 주어진 업무를 해내야 되는 게 겁이 나는 그런 상황이었어요. 나는 사실할 줄 아는 게 아무것도 없으니까. 근데 먹고는 살아야 되니까 그렇게 미친 척 내 현실 다 무시하고, 이력서를 돌린 건데…


그래서 그런 복잡한 심경 속에서 결국은 브런치에서 글을 써온 활동들도 이력서에서 다 지웠죠. 기업이 원하는 건 이런 게 아니니까. 그러면서 점점 더 제가 느끼기에 차가운 현실과 가까워져 가면서, 내가 누구인지 내가 지금 어떤 위치이고 또 어떤 능력이 있는지, 이런 능력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는지를 점점 알아가게 되는 거예요.


그래서 마지막에 그 질문에까지 도달하게 된 거죠. 내가 과연, 똥 묻은 휴지를 평생 치우면서 아이에게 짐이 안되고 독일에서 늙어갈 수 있을까?








제 객관적인 스펙을 보시면 알겠지만, 저는 독일에서 회사에 쉽게 취직이 될 만큼 대단한 사람이 아니에요. 진짜로 능력이 있는지 없는지는 일을 안 해봐서 솔직히 모른다에 가깝지만 기업에서 요구하는 업무스킬은 전무하고요. 기업에서 원하는 경력도 전혀 없습니다.


제가 설마 이런 저를 여러분한테 자랑하자고 이렇게 공개적으로 유튜브 채널에 내놓고 취직한다고 동네방네 막 떠들겠습니까? 자기 잘난 거, 멋있는 거 보여주고 싶고 후진 건 감추고 싶은 거, 사람 마음은 다 똑같아요. 저도 그래요.


그런데도 제가 이렇게 저의 스펙을 내놓는 건 딱 하나, 제가 여러분에게 애정이 있기 때문이에요. 자기 자신이 초라하다고 느끼는 사람들, 찌그러진 인생 같다고 느끼는 사람들, 너무 늙었다고, 너무 늦었다고 후회하고 회한이 가득한 사람들, 그런 여러분들을 위해서요.


유튜브에는 정말 대단한 능력자들도 많고, 화려한 사람들도 많아서 대리만족을 하기에는 참 좋은데, 실제로 그런 멋진 걸 내 삶에도 끌어오고 싶어지면 괴리감이 참 크거든요.


그런데 반면에, 저하고 비슷한 능력치를 가진 사람들이 비슷한 고민을 하고, 비슷한 시행착오를 거쳐서 꼭 원하던 것이 아니더라도 어떤 식으로든 조금씩 뭔가를 배우고 성취해 나가는 걸 보면 그럴 때 사람은 용기가 생기고 자신감이 붙거든요. 그래야 또 뭔가를 해보고 싶은 마음도 생기고요.


저는 기본적으로 한부모 가정, 주로 현재 싱글맘들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라면서 글을 쓰고 영상을 제작하지만, 어차피 사람 사는 건 다 거기서 거기라 인생의 단계가 비슷하면 생각하고 느끼는 것도 비슷비슷해요.


싱글맘이 아니더라도 외국 남자랑 해외에 살면서 전업주부이신 분들이 아직도 정말 많아요. 신혼의 기쁨도 하루이틀이지, 주부 생활 3년, 5년 넘어가기 시작하면 점점 심심해지고, 불안해지고 애들은 자라서 점점 손도 덜 가고 그러는데 나는 10년, 15년 막 이렇게 집에서 살림만 해오면서 그렇다고 아직 그 나라 말이 유창한 것도 아니고.


나이는 먹어가는데 사는 게 재미도 없고 의미도 없고… 너무 오래 집에 있어서 나이 먹고 이제 와서 나가기는 더 두렵고, 뭘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그런 사람이 여러분 말고도 정말 많이 있어요.


여러분이 아무렇지 않은 척 사시면서 남들한테 그런 속내를 안 터놓듯이 남들도 안 꺼내놔서 그렇지 비슷비슷해요. 저는 8년 동안 많이 만나봤잖아요. 그러니까 혹시라도 일 하고 싶으시다면 지레 겁먹고 쫄지 마세요.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 없어요.


여러분이 지금은 스스로 초라해 보일지 몰라도 그 자리에 있기까지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온 삶의 궤적이 또 있으실 거 아니에요. 여러분이 모자라서 그런 게 아니라 남들 커리어 쌓고 지금 회사에 앉아 있을 때 여러분이 가정이라는 분야에서 쌓아오신 다른 커리어를 못 보셔서 그렇게 느끼시는 거예요.


제가 그것도 차차 보여드릴 테니까 저를 보면서 용기 내세요. 누워서 숨만 쉬고 산 게 아니라면 누구나 다들 나이를 먹은 만큼 쌓아놓은 업적이 있어요. 그걸 몰라서 그렇지.


또 한국 남자랑 한국에서 살고 있는 주부들도 마찬가지예요. 살림만 하던 사람이 직장을 구한다는 건 정말 말도 못 하게 엄청난 용기를 필요로 하는 거거든요. 저도 제가 가장이니까 이렇게 용감하게 다니는 거지, 남편 있었으면 제 성격에 굳이 그러지 않았을 거예요.


그래서 잠깐 직장 생활했다가 못 견디고 다시 남편 그늘로 돌아가는 분들도 많고요. 또 이런 주부가 아니더라도 생계를 걸고 구직활동 하면서 고민하고, 좌절하고, 매일매일이 불안하신 분들도 분명 있을 거란 말이에요.


이런 다양한 상황에서 구직 중이신 여러분들을 위해서 제가 이렇게 보여드리는 거예요. 저보다 뭐라도 하나 나은 게 있으시다면 용기를 내기도 더 쉬울 거고, 나은 게 없더라도 어쨌거나 제 스펙이 이 고용시장에서 여러모로 난감한 건 맞잖아요, 그죠?


그런 거 보면서 자기 위안도 되고, 또 그렇게 내면의 부족했던 자신감을 조금씩 채우다 보면 한번 해볼까 싶어지기도 할 거고요. 저는 저대로 여기서, 여러분은 여러분이 계신 곳에서 또 여러분대로 따로 또 같이 지원하고, 또 같이 떨어지고, 붙을 때까지 같이 계속 도전해 보는 거죠, 뭐.


이 시리즈는 언제 끝날 지 몰라요. 지금 한 5탄, 6탄 정도까지는 스토리가 모여있고 그 이후부터는 제 인생이 흘러가는 거에 따라서 시시 때때로 또 필요할 때 후속 영상들을 계속 만들겠죠?


제가 봤을 때, 저는 결국 어디 취직해서 근사하고 깔끔하게 영상을 마무리하고 그런 건 없을 거 같아요. 일을 하더라도 투잡, 쓰리잡을 할 거 같고, 취직을 한다고 쳐도 어차피 정규직은 아닐 테니까 계속 일을 찾아 헤매겠죠, 유목민처럼?


그게 인생이에요. 마침표가 없어요, 죽을 때까지. 그냥 쉼표만 있는 거죠. 근데 요즘 세상이 그런 거 같지 않아요? 철밥통이 어딨어요. 한 치 앞도 모르는 게 인생 산데. 유연해야죠. 그러니까 우리는 오래 볼 사람들이에요, 여러분!


오늘도 구직자 여러분들 힘내시고, 응원합니다!!!! 여러분도 구독과 좋아요로 많이 응원해 주시고, 저로 인해서 용기를 내고 계시거나 또 도움이 되셨거나 한다면 댓글창에 남겨주세요! 그래야 저도 이런 쪽팔린 얘기 하는 보람도 있고 또 앞으로도 계속 영상을 제작해 나가죠.


댓글 많이 많이 부탁드려요! 그럼 다음 영상에서 또 뵙겠습니다.


안녕!




아래 링크를 클릭하시면 생생한 영상을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https://youtu.be/323d4Y_HHdc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