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탄ㅣ인맥과 스펙
사회복지 분야로 방향을 틀면서 제가 어떻게 구직을 했는지 아세요? 제가 그동안 다녔던 모든 기관과 단체, 관공서들을 뒤지기 시작해요. 제가 그동안 도움을 받아온 모든 기관이 전부 사회복지 관련 단체잖아요. 복지국가 독일답게 여기는 그런 직업들이 널려있습니다.
그런데 힘든 게 뭐냐면, 일단 어떻게 해서든지 그 분야에 한 번 발을 담그게 되면, 그걸 발판으로 몇 년에 걸쳐서 조금씩 영역을 넓히고 바이터빌둥 같은 걸로 그때그때 필요한 스펙을 업그레이드해 가면서 확장해 나가면 되는데 우리 같은 외국인들, 특히 관련 전공조차 없는 경우면 그 발을 한 번 담그기가 그렇게 어려운 거예요.
왜냐하면 독일에서는 그럴 때 보통 인맥으로 시작을 하거든요. 한국에서 뭐 낙하산이네, 인맥이네 욕 많이 하잖아요. 그런데 제가 8년을 살면서 경험해 본 바로는 독일은 오히려 보통 지원서류보다 인맥을 더 신뢰합니다.
어디 부서에 자리가 하나 비잖아요? 그럼 같은 분야 동료들한테 일단 먼저 물어봐요, 이 자리에 적임자 어디 없냐고. 오빠 딸내미, 친구 동생 그런 인맥이 아니라 자기네 분야 내에서 이미 실력이 검증된, 사회복지 분야는 특히 서류나 자격증보다 인간성, 사람 자체가 괜찮은지가 굉장히 중요하기 때문에 그런 적합할만한 사람들을 그렇게 믿을만한 동료들에게 추천받아서 먼저 그 자리를 채우고, 그래도 사람이 없으면 그때 구직사이트에 올리는 거예요.
그래서 그런 추천해 줄 사람이 없는 사람들은 이 프락티쿰 증명서가 그렇게 중요한 거예요. 내 실무능력과 인간성에 대한 전문가의 보증이니까. 또 독일 사람들은 사람 잘 안 믿는다고 했잖아요. 얘네들은 일단 기본이 “불신”이에요. 굉장히 비판적으로 깔고 들어가기 때문에 친해지는데 오래 걸리고.
인사 관련해서도 그런 경향이 나타나는 거 같아요. 내가 믿을 수 있는 사람이 보증하는 믿을만한 사람을 선호하는 거죠. 그래서 제 친구들 중에도 비정규직으로 사는 애들은 다 그런 식으로 같은 분야에서 일하는 지인들을 통해서 전해 전해 정보 받고 구직하고 그래요. 저도 몇 번 덕 좀 봤어요.
또 저는 볼 일 보러 다니면 실례가 안 되는 선에서 항상 물어보거든요. 지금 당신이 앉은자리 직함이 정확히 뭔지, 공무원인지 아닌지, 나 같은 사람도 지원할 수 있는지. 그래서 리스트는 머릿속에 충분히 있었어요. 그래서 그걸 쫙 뽑아서 다 보내는 거죠, 제 이력서를.
그런 와중에 마음이 불안하고 나 자신이 초라해서 오그라드는 것 같을 때마다 저는 제 이력서를 보면서 그런 생각을 많이 했어요.
내가 진짜 모자라고 찌질한 사람인가?
기업이, 회사가 또 채용자가
나를 그 한 자리에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나 자신까지도 나의 인생을, 나라는 사람 자체를
쓸모없는 사람으로 치부해야만 하는 일인가?
나 같은 장기 구직자는,
자기 자신을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안 되는 걸까?
그런 생각들이 드는 거예요. 저는 돈만 못 벌었다 뿐이지, 또 고용주가 시키는 일을 하지 않았을 뿐이지, 되게 열심히 일하면서 살았거든요. 그냥 제가 알아서. 제 코가 석자인 와중에도 이타주의적인 마음, 휴머니즘을 갖고 제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최선을 다하며 나름 열심히 일을 했는데 왜 내가 이렇게 내가 살아온 이력에 대해서 초라하게 느껴야 하는 걸까?
그런 근원적인 물음 같은 게 내 안에 있었어요. 그러면서 한쪽으로는 여전히 번듯한 직장에 대한 욕심이 남아있는 거죠. 그러다가 제가 한 친구와의 대화로 제 그간의 모든 심적 고통과 괴로움이 모두 저의 열등감에서 비롯된 거라는 걸 깨닫게 됩니다.
제게 수익창출을 안겨 준 바로 그 영상이죠. 그 영상을 보시면 드라마틱한 심경 변화가 잘 나타나 있어요. 상단에 링크 걸어놓을게요!
그런 사유의 과정을 거치면서 동시에 거기에서 벗어나게 되니까 삶이 너무나 자유로운 거예요. 제가 제 자신을 지금 있는 그대로 소중하게 여겨도 된다는 허가가 떨어진 거 같았달까? 이게 자기 합리화도 아니고 정신승리도 아니고 정말로 지금 저의 삶이 이미 이 자체로 만족스럽다는 걸 깨닫게 돼요.
그러고 나니까 감사한 일들이 점점 보이기 시작하더라고요. 물론 그전에도 감사하며 살기는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미처 깨닫지 못했던 감사한 것들이 정말 많은 거예요. 그런데 그런 것들을 적극적으로 인지하기 시작해요.
무엇보다 내가 이 나이 먹도록 직장이 없었는데도 어려서는 부모님 덕에, 결혼하고는 남편 덕에, 이혼하고는 복지제도 덕에 안 굶고 사는 것에 대해서 처음으로 감사하게 됩니다. 그전에는 제가 부끄러웠어요.
이 나이 먹도록 사람 구실 못하고 사는 거 같아서 정말 제 자신이 한심할 때가 많았거든요. 그래서 그렇게 남의 덕 보고 사는 것을 감사한다는 거 자체가 낯짝이 두꺼운 거 같은 거예요. 그래서 방어기제로 오히려 부끄럽고 원망스러워하고 그랬죠. 그런데, 제가 말씀드렸죠. 자격이 안되면 얄짤 없는 게 독일복지제도라고.
사람이 자기 자신의 현실에 감사하지 못하고 더 가져야 한다고 여기고, 그래서 자꾸 그 부족한 점을 메꾸려고 발버둥을 치다 보면 쉽게 빠지는 문제가 바로 열등감이에요. 스스로가 작고 초라해 보이거든요.
그런데 이런 시간이 길어지면 그게 객관적인 현실이라고 착각을 하게 되죠. 작고 초라한 자기 자신이 객관적인 실체라고 믿게 되는 거예요. 물론 그런 열등감을 성장의 원동력으로 써서 발전하고 성공을 향해 내달리는 사람들도 꽤 있지만, 대부분은 그렇게 성공을 해도 늘 마음이 허하고 불안하고 그렇죠.
무엇보다 그렇게 자신감이 떨어지면 일이 잘 안 풀려요. 되는 일이 없다고 하죠. 조그마한 아이스크림 가게 같은데 취직을 할래도 사람이 당당하고 건강한 에너지를 뿜어야 그 사람이랑 같이 일하고 싶고 그렇지 면접 보는 사람이 내가 생계 때문에 발 동동 구르느라 얼굴이 죽상인지, 맨날 핸드폰 보고 빈둥거리다 새벽에 자느라 다크서클이 여기까지 내려왔는지, 그냥 심사가 베베 꼬여서 저 모양인지 알게 뭐예요.
그냥 면접 보러 딱 방에 들어올 때 그 사람만의 아우라가 있는 거예요. 본능적으로. 그래서 자기 현실에 불만족하는 사람은 절대 기분 좋은 에너지를 풍길 수가 없어요. 제가 두 가지 모드로 다 살아보니까 그렇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그 열등감을 버리면서 그때부터 저와 아이가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고, 희망을 잃지 않고 사람답게 살 수 있도록 여건이 갖춰진 상태로 살 수 있음에 적극적으로 감사하기 시작했습니다.
무엇보다 저와 아이가 건강하고, 아이가 제 곁에 있다는 사실이 가장 감사했어요. 애초에 제가 열심히 직장을 찾고, 대학을 간 이유가 아이와 잘 먹고 잘 살기 위해서였잖아요. 그런데 가만히 보니까 저희는 이미 너무 잘 먹고, 잘 자고, 잘 살고 있는 거예요.
제가 미래에 대한 불안과 걱정, 과거에 대한 후회와 미련으로 덜덜 떠느라 정작 현재의 나는 아무 문제 없이 잘 살고 있다는 걸 몰랐는데, 저희는 이미 너무 잘 지내고 있더라고요.
그런데 저의 감정상태는 아직도 7년 전에 남편한테 버려져서 길바닥에 나앉았을 때 그 정서에 머물러서 불안해하고 살아온 거죠. 우리 현실은 이미 애초에 달라졌는데, 정신상태 업그레이드를 미처 못 한 거예요. 미래가 불안하니까.
그래서 현재 길바닥에 나 앉지 않고 따뜻한 집에서 따뜻한 밥 먹는 거, 그것부터 매일 감사하기 시작합니다. 그 와중에 법륜스님의 즉문즉설을 만나게 되면서 제가 지난 8년간 경험으로 깨쳐왔던 이런 점 같았던 깨달음들이 구슬 꿰듯이 하나로 엮이면서 하나의 완성된 목걸이가 돼요.
그래서 저는 이렇게 감사한 삶을 주신 절대자를 찾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게 바로 하나님이라는 존재였고요. 물론 그전에도 신앙이 자라기까지 무수히 많은 질문과 그에 대한 회의, 반론, 검증 등 몇 년에 걸친 긴 과정들이 있었지만, 결정적으로 법륜스님을 통해서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가로막고 있던 그 마지막 벽이 탁 깨져요.
그래서 30대 중반에 처음으로 두 손을 모으고 기도를 하게 되는 거예요. 감사하다고요.
제가 놀라웠던 건 열등감을 버리고, 번듯한 직장을 갖겠다는 욕심도 내려놓은 뒤에 이미 가진 것에 의식적으로 감사를 하기 시작하니까 그전에는 안 보이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하는 거예요.
제가 외국에서 아이랑 먹고살겠다고 그 발버둥을 치면서 정말 많은 후회를 하고 또 스스로를 원망하면서 살아왔는데 그중 가장 원망스러웠던 게 제가 타고난 재주였습니다. 제가 타고난 것 중에 어릴 때부터 두각을 나타냈던 유일한 게 글 쓰는 재주였는데요.
잘하는 나라 말이 한국말 밖에 없고, 잘할 줄 아는 게 한국어 글쓰기뿐인 사람으로 독일에서 산다는 게 정말 너무너무 쓸모가 없는 거예요. 그림을 잘 그리거나, 춤을 잘 추거나, 손재주가 좋으면 그런 건 말을 안 해도 만국 공통이잖아요?
머리가 이공계로만 트였어도 B1 정도 수준의 독일어로도 충분히 먹고살 수 있었겠죠. 그런데 이 빌어먹을 한국어 글쓰기는 내가 사는 나라에서 돈 버는데 1도 도움이 안 되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가진 재주가 그렇게 비루할 수가 없었어요. 그렇다고 제가 무슨 대문호 같은 글을 쓰는 수준도 아니고. 그래서 항상 한탄만 하고 그랬거든요. 그런데 그러면서도 글은 계속 썼어요, 좋으니까.
그런데 감사를 하기 시작하니까 저에게 그나마 요만한 글 쓰는 재주라도 있다는 사실도 고맙고, 어쨌거나 7년 동안 글 쓰고 수많은 사람들이랑 교류하고 국제가정, 국제이혼사례를 접하면서 국제커플의 양면성에 대해서 해박한 지식을 갖게 됐잖아요. 이런 사람이 몇이나 되겠어요? 그것도 감사하고.
또 보니까 제가 참 세상을 긍정적으로 보는 사람이더라고요. 이게 재주라는 걸 그동안은 몰랐어요. 제가 제 자신을 초라하게 느끼니까 저의 긍정적인 성격도 뭐랄까, 자기 합리화 같고 정신승리 같은 거예요. 아세요, 이런 기분?
그래서 제 이 긍정적인 성격의 가치를 오랫동안 몰랐어요. 제 친구들이 저를 좋아하는 이유도 그거 거든요. 제 옆에 있으면 힘이 난다고. 너는 어떤 상황에서도 웃는 포인트를 찾아낸다고 대단하대요. 어쩜 그렇게 긍정적으로 생각하냐고. 친구들이 서럽게 울다 말고 웃어요, 저랑 대화를 하면. 그런 것들을 떠올리면서 제 재주에 감사를 하게 되니까 이게 나의 축복받은 능력이라는 걸 깨닫게 돼요.
그리고 제가 또 잘하는 게 뭡니까! 위기 극복이죠. 대단합니다. 독일에서 아기랑 살기 시작한 순간부터 제 인생은 사는 게 매 순간순간 위기였잖아요. 그런데 그 많은 위기를 지나면서 물론 엉망진창인 적도 많았고, 울고 그런 적도 많지만 결국 제가 넘지 못한 벽은 없었습니다.
여러분 중에서는 제가 뭐 별로 대단한 것도 없는데 왜 근거 없이 자신감이 넘치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죠? 제가 넘치려고 넘치는 게 아니라, 그냥 이렇게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오면서 저 자신에 대한 확신이 있는 거예요, 나 자신에 대한 확신이에요.
저는 서른 살까지 저 자신을 인정해 준 적이 별로 없어요. 내세울 것도 없고 그냥 하찮다고만 생각했던 저인데, 그렇잖아요. 한국에서는 항상 나를 모자란 사람, 부족한 사람이라고 상정해 놓고 업그레이드하기 위해서 열심히 사니까, 언제나. 만족이 없죠, 한국에서의 삶은.
그런데 독일에서 수많은 고비를 거치면서 결국 현장에서, 현실에서 매일매일 저와 제가 사랑하는 아기를 구해내고 지켜낸 건 엄마아빠도 아니었고, 저희를 도와주셨던 시이모님도 아니었고, 믿었던 친구들이나 댓글창에 응원을 주신 여러분도 아니었어요.
저 자신을 제외한 주변의 모든 도움들은 저를 물가로 끌고 갈수만 있을 뿐이지 그 물을 마셔야 되는 건 결국 저인 거예요, 그렇죠? 그렇게 많은 도움을 받고 살면서도 제가 살고 싶은 의욕도 없이 맨날 질질 짜기나 하고 뻑하면 죽을 생각이나 하고 그랬으면 지금의 제가 여기 있었겠어요? 아니죠.
지난 시간 동안 저는 늘 별 거 아니라고 생각했던 저 자신의 도움으로 위기를 헤쳐 나올 수 있었던 거예요. 그렇다 보니까 제가 어떻게 저 자신을 홀대할 수 있겠습니까! 너무나 고맙고, 대견하죠. 저뿐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다 그래요.
결국 인생이라는 최전선에서 스스로를 지켜내야 하는 건 자기 자신뿐인 거예요. 그러니까 여러분도 여러분 자신을 홀대하지 마세요. 지금까지 여러분이 누구 덕을 보고 어떻게 살아왔든 그 한 목숨 안 죽고 버텨온 건 여러분 자신이 여러분을 놓지 않았기 때문인 거예요. 스스로를 대견하게 여겨주세요.
무엇보다 저는 지난 7년 동안 이렇게 살아오면서 내적으로 정말 엄청난 성숙을 했어요. 제 <독일남자와 이혼하기> 책들을 보시면 알겠지만, 2015년까지 저는 정말 세상 물정 모르는 어린애였어요.
이렇게 파란만장하게 살아오면서 내적인 성숙이 결여되기도 쉽지 않습니다, 여러분. 그러니 세상에 반드시 좋은 것만 있는 것도 아니고 또 나쁜 것만 있는 것도 아니에요. 저는 그 고된 여정덕에 이렇게 과거의 저보다 훨씬 성숙한 사람이 되어서 더 넓은 시야로 세상을 볼 수 있게 됐으니까요. 시야가 넓어지면 누구보다 자기 자신이 사는 게 편안해집니다.
이렇게 매일 같이 새벽 4시 반에 일어나 감사기도로 하루를 시작하고 3주가 지나니까 제가 새로운 날개를 달았다는 걸 깨닫게 돼요. 이렇게 천천히 제가 갇혀있던 두꺼운 알에서 깨어나 10월 한 달을 보내고 나니까 날개가 나온 거예요.
그동안에는 둥지에 앉아서 어떻게 하면 제시간에 째깍째깍 모이줄 사람을 찾을 수 있을까 두리번거렸다면, 이제는 날개가 생겼잖아요. 그냥 앉은자리에서 날개를 펴고 날면 되는 거예요. 사방천지가 다 먹을 것 투성이죠. 먹고 싶은 거 주워 먹으면 됩니다.
다행히 제가 사는 이 독일은 사회복지시스템 덕에 사시사철 봄이라 먹이 찾다 얼어 죽을 일은 없습니다. 내용이 자꾸 길어지는 게 여러분들이 힘드실 거 같아서 조금 더 짧게 잘라보려고 해요. 나머지 뒷부분은 다음 영상으로 넘기겠습니다.
다음 영상에서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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