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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뿌리와날개 Apr 24. 2023

남편과 내연녀를 위해 집은 왜 비워줬을까?

이혼을 원하는 사람만이 가정을 지킬 수 있는 이유

미햐엘라와의 우정이 깊어지게 된 에피소드 영상에 달린 사람들의 의견을 봤어요. 저는 그런 일을 당했다는 의미보다는 그런 일이 있었다는 의미로 말을 한 건데, 보는 사람들, 특히 비슷한 과정으로 이혼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들은 충분히 그런 반응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일단 그 일은 2015년 6월, 제가 어린 아기와 남편 말고는 독일에 아무것도 없을 때, 직장도, 친구도, 언어도, 돈도, 자신감도 정말 아무것도 없이 가장 연약했을 때 벌어졌던 일이라는 걸 먼저 말씀드리고요. 지금은 그때로부터 8년이 지난 2023년이고 저의 상황도 그때와는 전혀 다릅니다.


그러니까 지금 같은 일이 벌어진다면, 저의 대응도 달라지겠죠. 하지만, 그 당시 제 입장에서는 남편과 남편의 내연녀를 피해서 아기와  쓰레기통 뒤에 몸을 숨기는 것이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었고, 지금도 그것이 옳은 선택이었다는 것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그 이야기를 해보려고 해요.








여러분, 여러분이 가정을 갖게 되시면, 그런데 그 가정이 어느 날 송두리째 흔들리게 되는 위기를 맞게 된다면 그 가정을 지킬 힘이 부부 두 사람 중에 누구에게 있을지 생각해 보셨습니까? 저는 결혼 전에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거든요.


당연하죠. 사회생활은 커녕 아직 대학도 졸업을 못한 어린 여자가, 곧 사랑하는 남자랑 유럽에서 알콩달콩 살 꿈에 부풀어 있는데 그런 현실적인 위기상황에 대해서 어떻게 이미 구체적인 계획을 갖고 있겠습니까!


지금 결혼해서 사시는 분들도 아마 거기까지는 미처 생각하지 못하신 분들이 많을 거예요. 이건 굉장히 철학적이고 인간관계 본질에 관한 질문이거든요. 저는 결혼하던 당시에 그저 막연하게, 살다 보면 언제가 위기가 닥칠 수도 있겠지만 우리의 사랑과 서로에 대한 믿음으로 우리가 이룬 이 소중한 가정을 잘 지켜나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내가 당연히 그렇듯이, 내 남편 될 사람도 그러할 거라고 믿었고, 내가 고른 이 남자가 앞으로 나를 물질적으로 얼마나 호강시켜 줄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를 사랑하고 지켜줄 마음만은 변하지 않을 거라는, 이 믿음이 확고했기 때문에 결혼을 결심한 거예요. 아무리 어렸어도.


실제로도 연애 2년, 결혼생활 3년 동안 그 사람은 제 곁을 항상 든든하게 지켜왔고요. 굉장히 안정감을 주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 5년 동안 저도 내적으로 많이 안정이 될 수 있었어요.








결혼생활의 위기는 천천히 조금씩 다가오기도 하지만, 저의 경우처럼 하루아침에 날벼락같이 떨어지기도 하죠. 그리고 그런 상황이 되면, 사람이 무척 당황스럽습니다. 예정에 없던 일이, 그런데 너무 엄청난 일이 내 인생에 벌어졌기 때문이에요.


그 당시에 저는 돌쟁이 아기를 데리고 한국으로 보내졌다가 영문도 모른 채 연락이 끊긴 남편을 두 달 만에 다시 만나서 사나흘 사이에 남편이 상사와 바람이 났다는 걸 갑자기 알게 된 상황이었어요.


이미 한국에 있는 두 달 동안 혼자서 가족 상담을 받으면서 마음의 준비를 하기는 했지만, 나의 아내로서의 부족한 역할과 남편의 번아웃을 의심했지 제삼자가 끼어 있을 거라는 생각은 전혀 못 했거든요.


그래서 5년 동안 자상했던 남편이 갑자기 내가 아닌 다른 여자를 사랑한다는 사실을 믿는 것도, 그래서 내가 곧 이혼이라는 걸 하게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데 3,4일은 굉장히 짧은 시간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일이 벌어졌던 날, 아직 모든 것이 불확실한 상황에서 저는 이 가정이 깨질 거라는 생각도 하지 않았고, 깨고 싶은 생각도 없었기 때문에 저는 그때까지는 제가 노력하면 지킬 수 있을 줄 알았거든요. 가정이라는 걸. 그래서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을 한 거예요.


가정을 지키는데 흥미가 없어 보이는 남편, 오직 이 가정을 박차고 나가는 데에만 온 신경을 쏟은 채로 매일같이 극도로 불안정한 상태에 있는 남편과 소중한 우리의 가정을 지키기 위해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남편보다 조금이라도 정서적으로 건강한 내가 가정을 깨려고 미쳐 날뛰는 남편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고 그 사람도 가정을 지키는데 협조하고 싶어 지도록 달래면서 시간을 버는 일뿐이라고 생각했어요.


현실이 그래요, 여러분. 흔들리는 가정을 지킬 수 있는 힘은, 그 권력은 절실하게 가정을 지키고자 하는 사람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해서든지 이 가정을 박차고 나가려고 하는 사람에게 전적으로 있습니다.


아이러니컬하죠? 결혼생활의 위기를 겪어보신 분들은 제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아실 거예요. 그래서 흔들리는 가정을 지킬 때에는, 더 간절한 사람이 모든 것을 다 일방적으로 참아내고 감내하는 비극적 결말이 필연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가정은 언제든지 아작 날 수 있는 거거든요.


그리고 가정을 지키고 싶어 하는 사람은 언제나 이혼으로 더 잃을 게 많은 사람입니다. 아직 배우자를 사랑하는 사람, 내 자녀가 이혼가정에서 자라기를 바라지 않는 사람, 배우자의 경제력에 의지해서 살아온 사람, 체면 때문에 불행한 결혼생활보다 이혼이 더 감당하기 힘든 사람들 같이 말이에요.


그래서 신의를 지킨 배우자가 바람피운 배우자 앞에게 숙이고 들어가야 하고, 자식을 더 아끼는 쪽이 자식이 어떻게 되건 말건 관심 없는 배우자에게 무릎을 꿇어야 조금이라도 가정을 지킬 힘을 얻을 수 있는 것. 이것이 흔들리는 가정이 유지되는 메커니즘의 본질입니다.








겪어보지 않은 사람들은 쉽게 말할 수 있죠.


멍청하게 왜 나갔냐!

버티지!

그 여자 머리끄덩이라도 잡았어야지!




그런데 여러분, 제가 무엇을 위해서 그랬어야 합니까? ’ 내 분풀이 말고 어떤 측면에서 그런 행동이 과연 우리 가정에 도움이 됐을까?‘ 하는 걸 보는 거예요.


내가 그 집에 버텨서 그 여자 머리끄덩이를 잡으면, 우리 아기가 행복했을까요? 생각을 해보세요. 어른 셋이 소리 지르고 싸우는 상황에서 아기는 그럼 누가 안고 있습니까? 제가 한 손으로 아기 안고 뭐 그 여자 머리끄덩이 잡아야 돼요?


아니죠. 그럼 그 조그마한 아기는 공포에 질려 가지고 얼굴이 시뻘게지게 울기밖에 더 했겠어요?


제 전남편은 다시 저에게 다시 돌아왔을까요? 안 그래도 벗어나고 싶은 여자가 내가 새로 마음이 가 있는 여자한테 악다구니 쓰는 걸 보면 그나마 있던 정도 떨어지지 않았겠습니까?


그럼 또 그 여자는 순순히 떠났을까요? 죄송한 말씀인데, 저보다 덩치가 두 배, 세 배는 더 크고 나이는 5살이나 많은 독일 여자, 자기도 동거하는 남자가 있으면서 가정 있는 아기 아빠인 자기 부하(직원)랑 당당하게 바람피우는 수준의 여자랑 제가 붙어서 어떤 긍정적인 결과를 얻을 수 있었을까요?


뺨따귀라도 후려갈겨 줬더라면 저는 그럼 속이 시원하고 즐거웠겠습니까? 그 여자 덩치랑 독일 여자들 기본값으로 깔고 있는 그 성깔로 봐서 제가 이렇게 한 대 때렸으면 더 많이 두들겨 맞았을 거 같거든요. 괜히 그 젊은 나이에 쟁쟁한 팀원들 데리고 팀장 하는 거 아닙니다. 아니면 폭행으로 소송당해서 제가 돈을 엄청 물어줘야 됐겠죠.


모든 걸 차치하고라도 여러분, 가정을 지킬 생각이 있다면 더더욱 그래서는 안됩니다. 그 지옥 같은 상황에서 제가 원하는 건 딱 한 가지였어요. 이 폭풍이 지나가고 우리 가정이 다시 온전해지는 것. 그래서 저는 아기랑 조용히 집을 나온 겁니다.


지금도 이 선택에는 후회가 없어요. 남편은 떠났지만, 적어도 저랑 아기에게 불필요했을 끔찍한 기억은 남지 않았잖아요. 그게 바로 여자라는 정체성을 넘어서서 내 자식의 안전과 안정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엄마라는 존재입니다.

  







저는 그 열흘동안 남편과 살아보려고 죽을힘을 다해서 나를 내려놓고 끝없이 겸손하게 나를 돌아보는 한 편, 제가 이전에 가져보지 못했던 인내심으로 남편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감싸려는 노력을 하면서 내적인 성숙의 새로운 경지에 도달해 봤어요.


살면서 진짜 그렇게 정신적으로 극한의 상황에서 나라는 사람의 자존심을 이렇게 내려놓고 나보다 내가 속한 공동체를 위해서 자기를 희생하는 경험을 할 일이 잘 없잖아요. 정말 수치스럽고 비참하거든요, 개인적으로는.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내려놓고, 우리가 함께 이룬 이 가정공동체를 위해서 나를 희생해 본 그 경험이 이혼 이후의 숱한 어려움들을 극복하게 해 준 자양분이 되기도 했고요.


무엇보다 지혜를 배웠습니다. 가정이 흔들릴 때 그 가정을 지킬 수 있는 힘은 그 가정을 지키려는 자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그 가정을 탈출하고 싶은 사람에게 오롯이 있다는 것, 그리고 가정을 지키고 싶은 사람과 깨고 싶은 사람의 차이는 가정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내가 더 얻을 것이 있는지, 없는지에 달려있더라는 것이죠.


결국 내가 가정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지켜내고 싶다면, 그만큼 가정 내에서 상대 배우자에게 이로운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가정 내에서 일단 내가 권력을 얻어야 하고, 그 권력이 기저에 깔려있어야만 가정을 평안하게 유지시킬 수 있습니다.


그게 제가 아직 결혼에 큰 흥미가 없는 이유이기도 해요. 저에게는 가정이 너무나 소중하기 때문에 제가 다시 가정을 이룬다면 그 가정을 꼭 지키고 싶지만, 그 가정을 지킬 수 있는 힘은 평소에는 50대 50처럼 보이지만, 어느 날 갑자기 가정을 깨버리고 싶어지는 사람이 생기면 그에게 완전히 넘어간다는 걸 체험했기 때문에.


그래서 가정이라는 것이 지키고 싶은 사람에 의해 지켜지는 게 아니라 오직 그 가정을 깨고 벗어나고 싶은 사람에게 전적으로 달려있다는 것을 배웠기 때문에, 저는 결혼제도의 본질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가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오히려 결혼제도와 혼인으로 맺어지는 법적인 계약관계에 몰두하는 거보다 내가 결혼이 하고 싶다면, 도대체 나는 이 결혼이라는 걸 통해서 과연 뭘 얻고 싶은 건지, 그 본질이 무엇인지, 그것이 정말 결혼이라는 제도를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해서 여전히 묻고 있고, 답을 찾아가고 있습니다.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하도록 하고, 다음 영상에서는 지난 10년 사이에 유럽에 살면서 독일남자랑 결혼과 이혼도 해보고 연애와 데이트도 꽤 해본 제가 바라보는 독일 남자에 대한 인상과 독일 사람들의 책임감, 또 한국 사람들이 생각하는 책임감의 차이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려고 합니다.


여러분께 도움이 되셨기를 바라고요, 여러분의 구독과 좋아요는 세상 모든 한부모 가정을 향한 자유입니다!

다음 영상에서 만나요! 안녕!




아래 링크를 클릭하시면 생생한 영상을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https://youtu.be/hfMPU6VmRV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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