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뿌리와날개 May 17. 2023

이렇게까지 제게 기회를 주시는 이유가 뭡니까?

11탄ㅣ기회의 문

10탄에 이어서 가겠습니다. 그분과 연락처를 교환하고 며칠 뒤에 저에게 제안해 주신 그 일자리에 대한 정보를 이메일로 받았습니다. 그 일에 대한 자세한 설명과 더불어서  제가 그 일에 대해서 한눈에 조망할 수 있도록 관련 링크들을 일일이 다 첨부해 주신 것도 상당히 감명 깊었지만, 무엇보다 이메일 자체가 굉장히 다정한 거예요.


제가 여기서 그래도 10년 가까이 독일 사람들이랑 디렉트로 부대끼며 산 사람 아닙니까? 그래서 감이 오더라고요.


이 사람, 기본 인간성 자체가
되게 선한 사람이구나!

그리고 나랑 비슷한 과구나!



제가 항상 말씀드렸죠. 살면 살수록 나랑 말이 통하고, 인성까지 괜찮은 그런 케이스를 찾기가 힘듭니다. 그래서 그런 사람을 만나시면 반드시 꽉 잡으시라고 말씀을 드렸잖아요. 그런데 이 사람이 그런 사람인 거예요. 삘이 마구마구 오는! 참고로 이 분은 예쁜 아내와 자녀들이랑 안정적이고 다복하게 잘 살고 계시는, 연배가 좀 있으신 분입니다.


그래서 그날 바로 이력서랑 기타 서류들을 구비해서 제가 파악한 그 일자리 특성에 맞는 자소서까지 작성해 가지고 바로 이메일로 보내드렸습니다. 그리고 바로 면접 날짜 합의해서 며칠 뒤에 면접 날 시청으로 갔어요. 그분 말고 다른 두 명이 더 제 면접을 본다고 들었거든요. 그래서 어떻게 될지 몰라서 그분께 이메일로 보내드렸던 제 서류를 다시 프린트해서 손에 들고 갔죠.


그랬더니 놀라시는 거예요. 그렇게 어마어마한 일이 아닌데 이렇게 준비를 다 해왔냐면서 조금 당황하는 느낌? 그래서 ‘아, 내가 조금 오버했나?’ 싶었다가 그런데 또, 그렇잖아요. 면접 보기로 한 이상 내 일이 될 수도 있는데 내가 맡은 일에 크고 작은 게 어딨습니까!


뭐가 됐든 나한테 맡겨진 일이면 내 일이고 중요한 거죠. 몇 푼이 됐든 남의 돈 받는 일이면 최선을 다하는 게 맞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미 취업기 6탄에서 면접 보러 다니면서 작은 일자리라고 면접 갈 때 대충 하면 어떻게 되는지, 중요한 걸 배웠잖아요?


그래서 저는 그 뒤로 일단 제가 하기로 결정했으면 최선을 다합니다. 그래서 어마어마하지 않아도 내가 하려고 한 일이니까 난 항상 하던 대로 준비해 왔다고 했죠.


이 프로젝트가 아동복지국, 그러니까 유겐트암트(Jugendamt)죠. 거기랑 교육청, 그리고 일선 교사 이렇게 세 분야의 전문가들이 모여서 진행을 하는 거더라고요. 아동복지국이면 이 나라에서는 입김이 상당합니다. 하는 일이 많아요.


우리 이혼하면, 비양육자인 전 배우자가 따박따박 양육비 보내주는 이 엄청난 일도 유겐트암트에서 관리하는 거고, 임신과 출산 전반에 걸쳐서 가족을 지원하는 일부터 해서 청소년기 아이들의 복지 및 보호에 힘쓰는 일까지 하여간 만 18세 이전의 아이들의 인권과 관련된 모든 일을 도맡아 하기 때문에 독일에서 이 유겐트암트, 아동복지국은 엄청나게 중요합니다.


그런데 그런 아동복지국과 교육청, 그리고 교사까지 모여서 진행하는 프로젝트에 초대를 받은 거니까 제 입장에서는 정말 감사한 기회라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지금 면접 보는 사람들이 앞으로 제가 같이 일하게 될 수도 있는 사람들이잖아요. 여기 표현으로는 sympatisch 하다고 합니다. 기분 좋고 호감 가는 사람들이라는 표현인데 이 사람들이 그런 사람들이었습니다.


이 일의 문제는 근무시간이 너무 적어서 생업으로 삼기에 돈이 모자라다는 거였어요. 바꿔 말하면 이 일은 이 일대로 하면서 먹고살려면 또 다른 직업을 구해야 하는 거죠.


그 당시까지만 하더라도 저는 독일 사회에서 더 이상 머리 쓰는 직업을 갖기 위해서 발버둥 치지 않기로 했기 때문에 생업을 위해서 육체노동은 육체노동대로 하고 이 적은 돈을 벌자고 다시 독일어를 공부하고, 교육학 관련 공부도 하고, 연수 같은 것도 받으면서 정신노동을 해야 된다는 게  좀 많이 망설여졌습니다.


길이 여러 갈래면 에너지가 분산되잖아요. 그런데 또 그 와중에도 세 가지가 무척 마음에 들었습니다.








첫 번째는 제가 채용되면 저와 계약서를 쓰게 될 담당자가 이 분야의 종사자로서 추구하는 가치와 저의 인생 가치관이 비슷하다는 점이었어요.


이 일이 학교나 유치원, 그리고 다문화가정 사이에서 중간에 오작교 노릇을 하면서 독일어가 익숙하지 않은 다문화 가정의 부모들에게 자연스럽게 독일어를 가르쳐주고, 학교 및 유치원과의 사이에서 중재자 역할을 하는 거거든요.


그래서 이 사람들은 여러 가지 언어를 구사하고, 특히 다문화 배경을 가진 이민자인 제가 적합하다고 판단한 거예요. 그런데 이민자 가정에서 독일 사회에 녹아들기 위해 독일어를 배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본래 그들의 뿌리인 모국어도 잊어서는 안 되는 소중한 자산이라는 말을 하더라고요.


그래서 두 가지 언어를 쓰는 아이들이 둘 다 잘 배워나갈 수 있도록 우리가 지원을 하는 거라는데, 그게 바로 제가 빈이한테 한국어를 가르치는 이유이잖아요? 저는 제 자식이 어느 나라에서 자라던 제가 쓰는 모국어를 아이가 편안하게 할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쉽지 않은 환경에서도 항상 아이의 한국어를 신경 써왔던 거고. 그런데 제가 이렇게 소중하게 생각하고 지켜온 이 가치를 업으로 삼고 있는 상사라면 같이 일해볼 만하지 않습니까?


두 번째는 저의 복리후생에 신경을 써준다는 거였습니다.


사실 시급으로 따지자면 그동안 제가 받을 수 있었던 오퍼들에 비해서 훨씬 높지만 근무시간 자체가 워낙에 턱없이 적다 보니까 보수가 많지 않은 거거든요. 그런데 이 분 말씀이 비록 근무시간은 적어도 지금까지 자기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최저 시급을 올려줄 수 있는 한 최대한 높게 올려줘 왔고, 또 지금은 파트타임으로밖에 이 자리에 사람을 채용할 수 없어서 어쩔 수 없이 그러고 있지만 풀타임으로 자리가 고정될 수 있는 제도가 마련되는 대로 바로 일자리의 안정성을 보장해 줄 거라고 하더라고요.


공무원이니까 거짓말할 리는 없겠죠. 그러면서 이 일만으로 생계가 유지되기 어려운 고충을 잘 알기 때문에 다른 일과 콤비네이션 할 수 있도록 비슷한 분야의 다른 일도 알아봐 주겠다고 하더라고요.


그리고 저를 이 자리에 소개해주신 분이 교사라고 했잖아요. 그분도 이 얘기를 들으시더니 자기 학교에도 자리를 알아봐 주겠다고 하는 거예요. 이 분과의 이야기는 아직도 많이 남았습니다.


아무튼, 그래서 저를 채용하고 부리는 것뿐만 아니라 복리후생까지도 세심하게 신경 써준다는 부분에서 같이 일해볼 만한 사람들이라고 느꼈어요.


세 번째는 두 가지 가능성입니다. 하나는 이 프로젝트 파이가 커질 것에 대한 기대이고, 또 다른 가능성은 지금 제안받은 이 일 자체가 아니라 이 자리가 가진 잠재력이에요.


프로젝트 내용을 들어보니까 이제 막 도입이 돼서 조금씩 퍼지고 있는 단계 같더라고요. 그래서 일손이 부족하다 보니까 초반인 진입장벽이 낮은 거죠. 원래 사업이라는 게 초반에는 다 볼품없습니다. 유튜브도 초반에는 아무도 안 하다가 너도나도 뛰어드는 지금은 레드오션이라고 하는 것처럼 이 프로젝트도 그런 거예요.


지금이야 아직 파이가 작으니까 메리트가 별로 없어서 할까 말까 망설이는 일이지만, 다문화가정에 대한 지원은 한국에서도 꾸준히 늘어나고 있는 것처럼 여기 독일에서도 더 확대되면 확대됐지 줄어들지는 않을 분야거든요.


이 넘쳐나는 이민자들이 여기에 와서 다문화 가정과 이 독일의 교육시스템 간의 불협화음, 그로 인한 이민자 가정 아이들의 학력 저하는 이미 이 나라에서도 고질적 문제입니다. 그렇게 예측을 해보자면, 제가 여기서 3-4년 자리를 잡아가는 동안 이 프로젝트도 꾸준히 성장을 해서 나중에는 너도나도 하려는 사람이 늘어나지 않겠습니까?


그럼 이제 진입장벽도 높아지겠죠? 그 사이 저는 이미 여기서 열심히 일하면서 경력을 쌓았을 거고. 평직원에서 팀장으로 지위가 올라갈지 또 누가 압니까? 시급은 이미 높은 편이니까 나중에 파이가 커지면 근무시간이 늘어남에 따라 수입도 자연히 늘어나게 되겠죠.


또 일단 이 일을 하게 되면, 저는 그 자체로 이미 경력이 생깁니다. 다음 구직 때에는 이 경력을 바탕으로 조금 더 조건의 일로 바꿀 수 있겠죠. 또 투입되기 전에 교육을 받습니다. 교육계에 종사하는 것의 장점이 그런 거예요.


독일은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Weiterbildung이나 Fortbildung이라고 해서 계속해서 재교육을 받거든요. 한국은 연수받는다고 하죠. 교육계는 특히 이런 게 상당히 잘 되어 있어서, 그런 거 할 때마다 그게 다 제 이력이 되는 거거든요. 게다가 유급으로 그런 교육을 받는 겁니다. 그러니까 ‘꿩 먹고 알 먹고’ 죠.


무엇보다 교육청, 아동복지국, 학교 이렇게 세 군데와 함께 일을 한다고 했잖아요. 뭔가 느껴지지 않으십니까? 이 삼각형 뒤에 숨겨져 있는 이 어마어마한 인적 네트워크가! 저 이미 이번 주에도 워크숍에 초대받아서 참가하고 왔거든요.


앞으로 제가 이 일을 통해서 알게 될 이 분야의 무수히 많은 새로운 인맥들 중에서 누가, 언제, 어떻게 또 이렇게 저에게 기회의 문을 열어줄지는 아무도 모르는 거죠. 이게 정말 엄청난 겁니다.


나 걔랑 일해봤는데, 걔 일 잘해!
걔 한번 써봐!

그 자리 비었어?
걔 괜찮아!


뭐 이렇게 입소문을 타는 거. 그래서 저는 이 잠재력이 정말 매력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취업기를 처음 시작했을 때까지만 해도 몇 달 뒤에 일이 이렇게 흘러갈 줄은 전혀 몰랐어요. 취업기 1, 2, 3편을 보시면 알겠지만. 저에게 이 일자리를 소개해주신 그분과 그 뒤로도 두 번 더 만나서 많은 대화를 나눴고, 그분이 또 정말 놀라운 제안을 주셨거든요. 이 이야기는 취업기 12탄에서 나오겠죠?


아무튼 제가 너무 고맙기도 하고 놀랍기도 해서 그분께 대놓고 물었습니다. 아니 저를 안 지 얼마 되지도 않았고, 두세 시간 정도 대화가 전부인데 도대체 저의 어떤 점을 보고 남일에 이렇게까지 하시는 거냐고. 그랬더니 그분이 세 가지를 말씀하셨어요.


가장 먼저 꼽으셨던 게 제가 세상을 향한 호기심이 가득하고, 또 인텔리겐트한 면이 인상 깊었다는 거예요. 그리고 제가 사람을 대하는 데 있어서 굉장한 오픈마인드를 갖고 있다고 하셨고요. 그게 많이 놀랍다고 하시더라고요.


독일 사람들이 원체 좀 자기를 숨기고 닫혀있어서 상대적으로 제가 두드러지기도 했겠지만, 저도 또 이제 나름 큰 일을 겪은 사람이잖아요. 그래서 이 부분은 저를 실제로 만나본 사람들이면 백이면 백, 다 놀라는 부분이기는 해요. 예상과 다르게 너무 밝아서!


그래서 그런 과거를 지나고도 이렇게까지 마음이 열려있을 수 있다는 게 사람이 참 단단해 보였대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engagiert, 그러니까 제가 관심 있는 일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어서 참여한다는 거죠. 제가 유튜브를 하고, 글을 쓰고, 저와 비슷한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을 위해서 꾸준히 이런 활동을 해왔다는 것을 높게 평가하시더라고요.


그분의 이런 말씀들이 감사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두 달 전까지는 생판 남이었던 저의 가치를 그분이 이렇게 알아봐 주고 이렇게까지 마음을 써주신다는 게 너무 감동적이었습니다. 저한테는 큰 의미였어요.


왜냐하면 저는 오랫동안 가정주부로, 외국인 실업자로 이렇게 집에 있으면서 많이 힘든 시간을 보냈거든요. 이 사회에서 너는 쓸모없는 인간이다라는 평가를 매일같이 받는 기분으로 7년 넘게 살아왔고, 그러면서도 막상 일터로 뛰어들어서 사람들과 부대끼며 돈을 벌 자신은 없었고요.


그런데 사실 누구도 나에게 그런 꼬리표를 붙여준 적은 없잖아요. 그냥 혼자 붙이고 앉아서 이렇게 울었던 거죠. 그런 세월들을 지나서 스스로 그 꼬리표를 떼 버린지 반년 만에, 그것도 어차피 이렇게 된 거 자아실현은 온라인에서 실컷 하고 현실에서는 그냥저냥 입에 풀칠이나 하면서 살아야겠다 했던 차에 이렇게 작으나마 기회의 문이 열렸다는 사실이 정말 기쁩니다.


아니 기회의 문은 그렇게 울고 다닐 때나 좀 열리지, 왜 항상 다 포기하고 멋대로 살아야지 싶을 때 열리는 걸까요? 저는 이런 경험이 정말 많거든요? 될 대로 돼라! 아우, 인생아! 너는 내가 계획한 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고, 그냥 니 멋대로 굴러가는구나! 이럴 거면 계획은 뭐 하려 하냐?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오늘만 살면 되는 거야?


이런 거. 저는 나이 먹으면 먹을수록 더 많이 경험하거든요. 참 알다가도 모르겠는 인생사 같습니다. 이 기회가 결국 저한테 복이었는지 독이었는지는 뭐 지나 봐야 알겠지만, 현재로서는 열심히 해보려고 해요. 일이 이런 식으로 흘러간다는 게 좀 신기하기도 하고, 저를 스스로 찾아온 이 일이 그런데 재미있을 것 같거든요. 좀 떨리기는 하는데 잘할 거 같습니다.


유튜브를 시작하기 전까지는 제가 영상제작이라는 것을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저는 상상해 본 적이 없어요. 그런데 유튜버 반년 만에 어? 이거 독학 계속하면 편집자 부업도 할 수 있겠는데? 싶을 정도로 영상제작이 적성에 맞고 재미있습니다. 유튜브 안 했더라면 저한테 이런 가능성이 있는 줄 죽을 때까지 몰랐겠죠?


그리고 저는 제가 빈이 아빠랑 결혼하기 전까지도 제가 언젠가 독일 말을 하고 독일땅에 살게 될 거라는 생각도 해본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지금 그렇게 살고 있죠. 그것처럼 새로운 일은 항상 성공과 실패의 여부를 떠나서 제 안에 언제나 있었지만 그동안 써보지 않았던 어떤 다른 면을 꺼내서 쓰게 해 줍니다.


그게 새로운 일에 도전할 때의 매력이거든요. 그래서 지금도 기대가 많이 되고요. 이 일을 통해서 저는 또 얼마나 많이 부딪히고, 깨지고 그러면서 또 배우고, 성장하게 될지, 어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게 될지 마음이 두근두근합니다.


그럼 이렇게 취업기 11탄을 마치기로 하고, 그분의 놀라운 제안은 12탄에서 이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어요. 11년 무경력 외국인 싱글맘 장기구직자인 저에게 그분은 또 어떤 제안을 하셨을지 궁금하시죠? 그럼 다음 영상에서 봬요! 안녕!





아래 링크를 클릭하시면 생생한 영상을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https://youtu.be/v7P5CsBOlOc







매거진의 이전글 기회의 문은 왜 항상 다 포기하면 열릴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