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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뿌리와날개 May 29. 2023

독일싱글맘, 함부르크에서 죽음을 기억하다!

여행 3부작 제1편 Memento mori

안녕하세요, 여러분! 오늘은 제가 사는 동네가 아닌 함부르크에서 이렇게 인사를 드립니다. 새롭고 좋죠! 보시다시피 저는 지금 여행 중입니다. 빈이는 어디 갔냐고요? 3박 4일 수련회에 갔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에는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수련회를 갔었는데, 독일은 초등학교가 4학년까지 밖에 없어서 그런 건지 1학년만 돼도 수련회를 가더라고요. 저 때는 고등학생이 되어도 항상 2박 3일이었는데 여기는 초등학교 3학년이 벌써 3박 4일 수련회를 갑니다.


다른 초등학교들은 원래 4박 5일 정도 간데요. 주중에 쭉 여행을 하는 거죠. 고등학생정도 되면 영국이나 프랑스, 이탈리아같이 근처 유럽으로 수련회를 갑니다.


제가 처음 아이 없이 여행을 해본 건 2017년 여름이었어요. 빈이가 만 3세 때였는데, 그 “외국사는 싱글맘의 세 가지 장점”이라는 영상에서 언급했던 스웨덴 친구 기억나십니까? 우리 인생에서 사랑이 빠지면 어떻게 사냐고, 연애 많이 하고 살라고 말해줬던 그 친구.


그 친구가 빈이를 이틀 동안 봐줘서 제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혼자서 2박 3일 여행을 했습니다. 저는 원래 여행을 그렇게 좋아하지도 않았고요. 혼자서 다닐 줄도 모르던 사람이에요. 그래서 그게 제 인생 첫 솔로여행이었습니다. 완벽한 혼자!


그때 정말 말로 표현 못할 어마어마한 자유를 느꼈습니다. 2014년에 아기 낳고 첫 일 년은 젖 먹인다고 집에만 있었고, 그 뒤 2년은 아시다시피 뭐. 그래서 그 여행은 제 개인의 여행역사에서 엄청난 터닝포인트가 됩니다.


저나 빈이나 워낙 독립적이기도 하고, 보셨다시피 우리 시이모님도 저희랑 각별하시잖아요. 자주는 못 봐도 항상 통화하고, 소포랑 편지도 자주 보내주시고, 못해도 한두 달에 한 번은 만난단 말이에요.


그래서 아이가 만 5세가 넘어가면서부터 이 정도면 슬슬 아이를 이모님 댁에서 혼자 재워도 되겠다 싶더라고요. 그때는 아이가 입학하기 전이었기 때문에 그냥 이모님 여름휴가 때 일주일 정도 아이 맡기고 각자 시간을 보내는 정도였어요. 그렇게 시작 돼서 이제는 연례행사가 된 뿌리와 날개의 솔로여행입니다.


작년부터는 수련회가 추가돼서 저는 이제 이모님의 여름휴가 때 한번, 아이 수련회 때 한번 해서 적어도 일 년에 두 번, 솔로여행의 기회가 있습니다. 아이가 자랄수록 이런 게 참 좋은 것 같아요.


싱글맘이라고 해도 이 정도면 괜찮지 않습니까? 한국에서는 남편한테 어린 아기 맡기고 며칠씩 혼자 여행 가는 엄마들이 흔하지 않잖아요. 독일도 비슷비슷합니다. 배우자가 있으면 가족여행을 주로 가고, 아이만 양가부모님께 맡기고 부부가 둘이 여행을 갑니다.


그런데 아무리 사랑해도 자기만의 시간도 또 필요한 법이거든요. 혼자서 여행할 때만 느낄 수 있는 그런 감정과 경험이 또 따로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렇게 혼자인 시간이 생기면 무조건 짐을 쌉니다.


돈이 있건 없건, 여유가 있건 없건, 아이 없는 시간이 주어지면 최선을 다해서 혼자만의 시간을 누립니다. 이제는 여러분도 저와 함께 그런 시간들을 나누시겠죠? 환영합니다!


그래서 이번 주에는, 싱글맘의 애 없는 여행 3부작 기념영상을 기획해 봤습니다. 오늘은 그 첫 번째 시간, 바로 “메멘토 모리”입니다.









메멘토 모리는 “죽는다는 것을 기억하라”,  “죽음을 잊지 마라 “ 등으로 번역되는 라틴어 문구예요. 즐겁게 여행 와서 갑자기 왜 죽는다는 이야기를 하나 싶으시죠? 저에게 있어서 삶이란, 바로 죽음의 또 다른 이름이기 때문입니다.


고대 로마에서는 승리를 거두고 개선하는 장군이 시가행진을 할 때 노예를 시켜서 행렬 뒤에서 이 문구를 크게 외치게 했다고 해요. ‘오늘은 네가 전쟁에서 이겨서 이렇게 금의환향하지만, 내일 전쟁에서는 죽을 수도 있으니 기고만장하지 말아라!’ 하는 뜻으로 말이죠.


그런데 저는 이 말을 비슷하지만 조금 다르게 간직하고 있습니다. 바로 우리의 삶이 유한하기 때문에, 오늘 내가 이렇게 살아 숨 쉰다고 내일도 삶을 기약할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지금 이 순간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는 뜻으로요.


제가 처음으로 죽음을 사색했던 것은 초등학교 6학년 때였습니다. 처음 키우던 강아지가 죽었을 때인데, 그때까지 전혀 죽음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제가 아끼고 사랑하던 생명이 스러지는 것을 보면서 큰 충격을 받았고, 모든 것이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처음 깨닫게 됩니다.


그때 느꼈던 감정과 깨달음을 바탕으로 중학교 1학년 때 글을 써서 1,2,3학년 전교생을 모두 제치고 글짓기 대회에서 장원을 했어요. 그 강아지의 죽음이 저에게 얼마나 충격적이었는지 느낌이 오시죠?


그러다가 나이를 먹고, 자식을 낳게 되면서 저는 여느 부모가 그렇듯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를 얻게 됩니다. 공교롭게도 빈이가 태어나던 해에는 세월호 참사가 있었어요. 3월 생인 빈이를 안고 한창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던 저에게 4월에 터진 세월호 사건은 제 평생 육아의 방향을 결정해 버릴 정도로 엄청난 일이었습니다.


희생자의 대다수가 고등학교 아이들이었잖아요. 저는 그때 갓난아기 빈이를 품에 안고 소아과로 첫 검진을 가는 길에 그 뉴스들을 보며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작고 소중한 아기를 17년 동안 키워서 어느 날 이 아이가 하루아침에 사고를 당해 죽는다면, 그래서 내가 더 이상 내 자식을 품에 안을 수 없다면, 이 따뜻한 온기를 느낄 수 없다면….


그때 저는 명백하게 깨닫게 됩니다. 삶과 죽음이 따로, 서로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동전처럼 한 몸에 붙어있다는 사실을 말이죠. 지금 이렇게 내 품에 잠들어 있는 아기, 창 밖으로 보이는 이 푸르른 녹음과 꽃나무들,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 생명력 넘쳐흐르는 이런 삶의 또 다른 이름이 바로 죽음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그게 제가 언제, 어느 때 누구를 만나도 너무나 반갑게 싱글벙글 인사를 하는 이유고, 우리 집에 찾아온 손님이 돌아갈 때면 언제나 창 가에 서서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드는 이유입니다.








우리는 너무나 아무렇지 않게 누군가와 헤어지고 당연히 나중에 다시 만날 거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정말 그럴까요? 조금만 생각해 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침에 학교에 간 아이가 오후에 다시 집에 돌아와 무사히 내 품에 안긴다는 것은 기적입니다. 작년에 한국 갔을 때 만났던 내 부모, 내 형제, 내 친구들을 올해도 다시 만날 수 있다는 것은 기적입니다.


작년 크리스마스를 함께 보냈던 빈이의 증조할머니께서 한 달 반 뒤에 돌아가신 것처럼, 어떤 부부의 좋은 친구였던 이가 오십도 안된 나이에 돌연사를 하는 것처럼, 20대 건장한 청년이 하루아침에 목숨을 잃는 것처럼, 자살이던 타살이던 사고사던 자연사던 죽음은 늘 우리 곁에 있습니다.


저처럼 싱글맘이거나 싱글대디인 사람들은 내가 죽으면 혼자 남겨질 아이들을 걱정합니다. 큰 병에 걸린 사람들이나 연세가 많이 드신 분들은 본인이 언제 세상을 떠날지 몰라서 두려워하시죠. 주변인들도 내 죽음이 아닌 그들의 죽음을 걱정합니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요? 죽음은 누구에게나 불시에 찾아옵니다, 여러분! 제가 처음에 싱글맘이 되었을 때 매년 1월 1일에 유서를 썼어요. 혼자 남겨질 빈이가 걱정돼서요. 그러다 문득 깨달았습니다. 내가 엄마이고 이 아이가 자식이라고 해서 반드시 나보다 오래 살란 법이 있을까?


엄마가 암에 걸려서 투병을 시작했을 때, 죽음의 공포에 압도된 엄마를 보면서도 생각했습니다. 수치로만 보자면 나이도, 건강상태도 빈이가 우리 셋 중에 오래 살 확률이 가장 높겠죠? 하지만 실제로도 정말 그럴까요?


오는 덴 순서 있어도 가는 덴 순서 없다고 하죠. 그게 삶의 진리입니다. 우리는 평생 살 것처럼 늘 내일을 걱정하고, 또 영원히 보고 살 것처럼 가까운 이들과 서로 미워하고 싸웁니다. 그런데 저는 매 순간 그 사실을 기억해요. 이 싸움이 우리의 마지막일 수도 있고, 이 안녕이 우리의 마지막일 수도 있다고요.


실제로 2월에 그랬죠. 집에 가는 길에, 혹시 몰라서 한 번 더 들려서 인사를 드리고 가자고 이모님의 핸들을 돌려서 할머님을 한 번 더 보고 왔는데 그게 우리의 마지막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절대 싸움으로 전화를 끊거나 헤어지지 않아요. 상대가 화가 난 거라면 내버려 둬야겠지만 그런 상황에서조차도 저는 절대 그 사람이 이 전화를 끊고 난 뒤에, 그리고 저랑 헤어진 뒤에 어떤 변고를 당하더라도 후회할 짓은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빈이가 5살 때 그런 적이 있어요. 아침에 학교 가기 싫다고 울고 떼를 쓰는 거예요. 다른 집 엄마가 곧 있으면 스쿨버스 오는 시간에 맞춰서 애를 데리러 오는데 아무리 달래도 말을 안 듣고 울더라고요. 그래서 그냥 우는 아이를 밀어서 내보내고 현관문을 닫았습니다.


그러고 애가 다른 집 엄마 손을 잡고 골목길을 벗어나는 걸 창가에서 보는데 제가 문을 닫았을 때 얼굴에 울음이 가득해가지고 눈물이 그렁그렁해서 그 슬픈 빈이 표정이 잊히지가 않는 거예요. 그렇게 나가서 스쿨버스가 전복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죠. 그날 학교에 불이 나서 아이가 빠져나오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사고는 늘 그렇게 나는 거니까요.


거기까지 생각이 미쳤을 때 저는 허겁지겁 신발을 주워 신기 시작했습니다. 빗질도 못한 머리를 산발한 채로 달려 나갔어요. 스쿨버스가 아직 도착하지 않았기를 바라면서 전력을 다해 뛰었습니다.


다행히 아직 버스가 오지 않았더라고요. 찻길을 건너자마자 눈물범벅이 돼서 아이를 끌어안고 미안하다고 했습니다. 아침에 너를 그렇게 내보내서 엄마가 마음이 너무 아팠다고, 엄마가 너무너무 사랑한다고, 미안하다고 그랬어요.


다른 학부형들은 막 어리둥절하죠. 그런데 저는 다 상관없었어요. 지금 이 순간, 내 아이를 품에 안을 수 있다는 게 그렇게 감사할 수가 없더라고요. 그날 아침의 그 감정을 저는 잊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 아침에 그렇게 세상 슬픈 얼굴을 하고 현관문 밖으로 쫓겨났던 빈이는 환하게 웃으면서 스쿨버스에 탔고, 그날도 무사히 집에 잘 돌아왔습니다.


저는 이렇게 늘 죽음을 기억하고 사는 사람이지만, 그래서 언제 죽을지 몰라 발을 동동 구르며 살지는 않습니다. 내 자식이 언제, 어떻게 될지 몰라서 어디 내놓기 불안해하지도 않습니다.


그 대신에 우리에게 주어진 하루가 당연한 것이 아님을 알기에, 지금 이 순간 내가 살아있고 또 내 자식이 살아있는 것이 너무나 감사한 선물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지금을 소중하게 여깁니다.


그런 생각들을 하고 이 세상을 보잖아요? 감사해서 눈물이 납니다. 햇살이 눈부신 것에도 감동해서 눈물이 나고,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를 봐도 행복해서 마음이 몽글몽글해집니다. 지금 이 상태로 모든 것이, 내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더할 나위 없이 충분하고 아름답습니다.


불치병이 낫는 것만 기적이 아니에요. 우리 곁에 있는 이 모든 것들이 사실은 기적입니다. 이렇게 여행을 하면서 혼자만의 시간을 실컷 즐기고 돌아가서 빈이랑 다시 만나면 얼마나 반갑고, 감사하고 또 행복한지 아십니까?


사람이란 모름지기 이렇게 어리석어서 깨닫고, 잊어버리기고 또 깨닫고, 잊어버리기를 반복합니다. 그래서 이렇게 한집에 사는 사랑하는 사람들끼리도 여행이나 외박 등으로 한 번씩 떨어져 줘야 그 빈자리를 통해서 다시금 서로의 가치를 되새기게 돼요.


그래서 빈이 없는 시간들이 즐거웠던 만큼 다시 만난 빈이가 반갑고, 그 에너지로 다시 다음 1년 육아가 거뜬해지는 겁니다. 그게 싱글맘인 제가 틈만 나면 부지런히 솔로 여행을 떠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어쩔 수 없는 엄마이다 보니까 길을 걷다 보면 빈이 또래 남자아이들만 귀신같이 눈에 들어와요. 그러면 빈이가 막 보고 싶고 그렇거든요? 그런 감정들, 맨날 옆에 붙어있으면 느낄 일이 잘 없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하루 안 봤다고, 그런 감정이 극대화되는 게 참 신기하고 놀라워요.


오늘도 재미있으셨기를 바라고, 함부르크에서의 여행 3부작, 그 두 번째 이야기도 기대해 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구독과 좋아요는 세상 모든 한부모가정을 향한 자유입니다! 그럼 다음 영상에서 또 봬요. 안녕!





아래 링크를 클릭하시면 생생한 영상을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https://youtu.be/0m3nqmemYX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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