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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뿌리와날개 Jun 03. 2023

독일싱글맘, 여행 끝에 자신의 운명을 사랑하다!

여행 3부작 제3편 Amor fati

안녕하세요, 여러분! 함부르크 여행을 무사히 마치고 돌아온 뿌날입니다! 저와 함께한 카르페 디엠 어떠셨습니까? 즐거우셨나요? 뿌리와 날개의 솔로여행 3부작 1편 “메멘토 모리”, 2편 “카르페 디엠”에 이어서 오늘은 그 3편, “아모르 파티”입니다.


한국에서는 김연자 님의 노래제목으로 유명해졌죠. 저도 그분 노래를 통해 처음 이 문장을 알게 됐는데, 아모르라는 프랑스어에다가 잔치라는 뜻의 파티를 붙인 말인 줄 알았더니 라틴어더라고요. 파티도 그 파티가 아니고. 그런데 또 이 말을 처음 쓴 사람은 독일의 철학자 니체랍니다. 신은 죽었다고 말한 그 사람 있잖아요.


그래서 찾아보기 시작한 “아모르 파티”가 ‘너의 운명을 사랑하라!’는 뜻이었다는 걸 알았을 때 굉장히 놀랐습니다. 저는 그 힘들고 고통스러운 시간들을 몸소 거치며 마지막에 가서야 어렵게 깨닫게 된 그 사실을 니체는 이미 200년 전에 자기 책에 줄기차게 썼다잖아요. 유명한 사람은 괜히 유명한 게 아닙니다. 이래서 사람이 책을 읽고, 생각을 해야 되는 거 같아요.


제가 유튜브를 시작하고 세 번째로 올린 영상제목이 바로 <싱글맘으로 사는 거 마음에 드세요?>였습니다. 왜냐하면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저는, 싱글맘으로 살게 된 저의 삶이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사연을 보시면 알겠지만, 제 입장에서 저의 이혼은 정말 갑작스러웠습니다. 그래서 많이 황당했고, 이혼이 진행되는 내내 끝도 없는 무기력함을 느껴야 했습니다. 내가 이혼을 원하지 않는데도 이혼을 해야만 하는 이 갑작스러운 상황이 정말 받아들이기 어렵더라고요.


불공평하다는 생각도 컸습니다. 결혼의 언약을 깨고, 외도를 하고, 책임을 회피한 건 상대방인데 그 모든 상황이 오히려 그런 상대방에게 유리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게 정말 견디기 힘들었어요. 그래서 제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을 사용해 저는 나름의 방어책을 세웁니다. 바로 그 사람의 탓을 하는 거죠. 심리학에서는 이것을 방어기제의 일종인 투사라고 부릅니다.


그가 바람을 피웠고,

일방적으로 가정을 깼으며,

아이마저도 외면했다.



처음에 저는 이것이 남 탓이라는 것도 몰랐습니다. 다 사실이고, 제가 거짓말한 것이 없으니까요.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의 파경이 그의 도덕적 결함에 있다는 사실이 비참함에 빠져있던 저에게 큰 위로가 되기도 했습니다.


파경으로 치닫는 과정에서 내가 도덕적으로 잘못을 저지른 게 아니라는 그 일말의 고고함이 일방적인 이혼으로 인해 바닥으로 처박힌 제 마지막 자존심을 지켜줬어요. 그래서 정말 부지런히도 주변에 알리고 다녔습니다.


내 잘못이 아니라 그 인간 잘못이며, 나도 잘한 건 없지만 그렇다고 바람을 피우고 자식을 외면한 일에 비할 바는 아니라는 것을 말이죠. 그리고 그 사실을 말할 때마다 저는 괴로운 현실 속에서 잠깐이나마 마음이 편안해지는 걸 느꼈고, 도덕적 우월감에 뿌듯하기도 했습니다. 그것마저도 없었더라면 저는 첫 3년을 참 견디기 힘들었을 겁니다.








그런데 여러분, 모든 일에는 양면이 있습니다. 이러한 사고방식의 가장 큰 문제는, 사실 그 논리의 근간이 나의 주체성 상실에 있다는 점입니다. 쉽게 말해서, 나는 가정을 지키고 싶었지만 그 사람으로 인해서 어쩔 수 없이 이혼했다고 말하는 순간, 내 인생의 주인이 내가 아니라 그가 되어버린다는 거예요.


그래서 저는 나름 열심히 살면서, 작은 행복들도 느끼고 내적으로 단단하게 성장해 가면서도 항상 마음 한편에는 그런 억울한 마음이 있었어요. ‘나는 정말 좋은 아내, 좋은 엄마로 살고 싶었는데, 이혼 같은 거 정말 하고 싶지 않았는데 왜 내가 싱글맘으로 살아야 되지? 내가 어쩌다 이렇게 살게 된 걸까?’


특히 아이랑 부딪히거나 독일에서의 삶에 염증이 나거나 할 때면, 정말 이 꾸역꾸역 담아뒀던 억울한 감정이 하수구 역류하듯이 치고 올라오는 게 너무너무 힘이 든 거예요. 내가 왜, 뭣 때문에 지금 여기서 이 지랄을 하고 있어야 되나 싶어서.


그래서 그 끝에 열등감 영상이 나오게 되는 겁니다. 그리고 그 영상에서 말씀드렸듯이 작년 여름에 저는 내 지금의 이 현실이 모두 나의 주체적인 결정이었음을 스스로 깨닫게 됩니다.


물론 그가 바람을 피운 것이 내 결정이라는 말이 아니죠. 이걸 잘못 이해하시면 안돼요. 우리 모두는 우리 각자의 인생에 있어서 결정권이 있는 겁니다. 바꿔 말하면 부부 사이에도, 부모 자식 간에도 절대 누가 누구의 인생을 대신 결정해 줄 수 없다는 뜻이에요.


다만 문명화된 요즘 세상이기 때문에 만 18세 미만의 미성년에 한해서 부모가 그 권한을 일시적으로 대행할 수 있도록 사회적 장치가 마련되어 있는 겁니다. 하지만 정말 본질적으로 들어가 보면, 나를 제외한 다른 사람의 인생을 마음대로 할 권리는 그 누구에게도 원천적으로 불가능합니다.


그런 법 조차도 저 같은 사람들이 착각하고 주체성을 잃지 않도록 만 18세 이후면 성인이고, 스스로의 행동에 스스로 책임을 지라고 명시해두고 있죠. 그런데 저는 그걸 싱글맘이 되고서도 7년이나 지나서 깨달은 겁니다.


저는 그동안 제가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기 때문에 싱글맘의 삶으로 밀쳐진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사실은 그 상황에서 그것 말고도 수많은 옵션이 제 인생에 있었다는 사실을 작년에서야 깨닫습니다.


처자식과 헤어지고 다른 여자를 고른 것은 그 사람 인생에서 그 사람이 내린 결정이었지만, 그 상황에서 집에서 밥하고 빨래하고 청소하는 사람이라도 될 테니 버리지만 말아달라고 애원하거나 아기를 버리고 한국으로 혼자 돌아가버리는 대신 아기랑 맨몸으로 그 집을 나와서 보호소로 들어간 건 저의 결정이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리고 과거에 제가 선택하지 않았던 그 옵션들은 현재도 언제든 선택가능한 상태라는 것도 깨닫습니다. 싱글맘으로 사는 게 그렇게 지긋지긋하면, 지금이라도 빈이를 버리고 혼자 도망가면 된다는 말입니다. 자식 버려서 사형당하거나 감옥에 가는 사람은 없잖아요.


제가 싱글맘으로서의 삶이 싫은데도 어쩔 수 없이 이렇게 살고 있는 게 아니라 내가 내 자식을 사랑하기 때문에, 빈이가 없이는 나도 행복하게 살 수 없기 때문에 이렇게 살기로 내가 결정한 거였다는 그 사실을 깨닫는 순간, 그동안 제 발목에 채워져 있던 이 단단한 쇠사슬도 팍 하고 깨집니다.


그리고 일거양득이라는 말처럼, 이 사실을 깨달았을 때 제가 싱글맘으로 살면서 끝없이 싸워와야만 했던 아이를 향한 죄책감에서도 완벽하게 벗어나게 됩니다.


그동안은 살다가 힘들어지면, 엄마로서의 무게가 너무 무거워서 부담스러워질 때마다 ‘내가 정말 아이를 사랑하는 걸까, 아니면 그냥 책임감에 떠맡고 있는 걸까?’, ‘나는 정말 좋은 엄마일까?’ 하는 의문이 있었거든요.


그래서 저는 싱글맘들이 이 사실을 꼭 알았으면 좋겠어요. 지금 우리가 이렇게 살고 있는 건 어쩔 수 없이 떠밀렸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의 주체적인 결정이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래야 아이를 볼 때마다 올라오는 이 죄책감에서 자유로워지고 양육자로서의 자존감을 지킬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언제든지 아이와 양육자를 무너뜨릴 수 있는 게 이 죄책감이라는 감정이에요.








캐리비안의 해적이라는 영화에서 보면 세상의 끝으로 가기 위해서 사람들이 바다 한가운데에서 배를 뒤집습니다. 그래서 침몰한 배가 가라앉다 가라앉다 프레임의 위, 아래가 바뀌면서 거꾸로 가라앉던 배가 새로운 바다 위에서 이렇게 떠올라요. 또 다른 세상으로 간 거죠. 제가 정말 좋아하는 영화 연출이기도 한데.


저는 이혼할 때도 그런 느낌이었습니다. 제가 살던 세상이 뒤집어지는 그런 느낌. 그때는 배가 와장창 난파된 느낌이었어요. 그런데 작년에 그렇게 고민하고 좌절하면서 내 안의 심연으로 가라앉다 가라앉다 탁 깨닫는 그 순간, 꼭 그 영화 속에서처럼 지금까지 내가 살던 세상이 아니라 완전히 다른 세상의 바다 위에서 떠오르는 그런 느낌이었습니다.


그래서 18세 이후에 내가 걸어온 모든 삶의 행적이 사실은 나의 주체적인 결정이었다는 사실을 하나씩 체크하면서 확신을 하게 됐고, 그 결과 저는 ‘아, 그럼 나는 그냥 내가 살고 싶은 대로 살면 되는구나!’ 하는 결론에 도달하게 됩니다. 그 가장 큰 수확이 유튜브를 통해 여러분을 만나게 된 거죠.


여러분,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살아도 됩니다. 왜? 사람은 이미 누구나 다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하면서 살고 있거든요. 그게 인생의 본질이에요. 다만, 내 인생이 내가 원해서 만들어낸 인생이라는 걸 의식적으로 알고 살아가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채 떠밀려서 만들어진 대로 살아간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 뿐이죠.


그렇게 내가 살고 있는 지금 이 삶이 내가 원해서 만들어온 삶이라는 생각이 드니까 저의 삶이 너무나 소중하고, 감사한 거예요. 그리고 내가 원하지 않으면 언제든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하니까 더 이상 갑갑하지도 않겠죠. 그전에는 도망가고 싶어도 도망갈 수 없는 쇠사슬에 묶여있는 느낌이었거든요. 그렇게 저는 진정한 자유를 얻게 됩니다.


세례를 받을 때 아기의 경우에는 세례식 때 목사님께서 읽어주시는 성경구절을 부모님이 골라주십니다. 그런데 저는 다 커서 세례를 받으니까 제가 직접 원하는 성경구절을 고를 수 있었어요. 그래서 제가 고른 구절이 바로 요한복음 8장 32절이었습니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그게 제가 깨닫게 된 삶의 여러 가지 진리를 모두 아우를 수 있는 가장 상위 카테고리였습니다. 뭐 사람에 따라서 그 진리가 하나님의 사랑이든, 내 인생의 주체는 나라는 사실이든, 세상에 믿을 놈 하나도 없다는 말이든 다 달라질 수 있겠지만, Whatever!


저는 그렇게 깨달음을 얻어갈 때마다 뭔가 보이지 않는 삶의 속박 속에서 하나씩 올가미를 끊고 자유로워지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 정점이 신앙이었고. 그래서 그 이후로 저는 저의 삶에 적극적으로 감사하기 시작했고, 그것이 바로 이 아모르 파티, 자신의 운명을 사랑하라는 말과 이어지게 됩니다.


아무리 계획적이고 정돈된 사람이라도 삶에서 벌어지는 모든 변수를 다 예측하고 계획할 수는 없습니다. 그건 인간의 영역이 아니기 때문이죠.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벌어질 일은 벌어집니다.


그런데 여러분, 그걸로 이미 충분하지 않습니까? 내가 내 인생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까지 컨트롤할 수는 없지만, 그런 필연적인 운명 속에서조차도 나는 내가 원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거잖아요. 그렇죠?


즐거웠던 여행을 뒤로하고 저는 이제 다시 제 자리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제가 지금까지 만들어 온 이 삶을 이어나갈 겁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을 했었고, 예쁜 아기를 낳았고, 그 사람과의 인연이 다했을 때 우리 아기와 함께 작은 가족을 만들어 독립했죠. 그리고 저는 온라인으로 글을 쓰고, 책으로 엮고, 또 저의 생각들을 사람들과 나누며 살아가다가 지금은 이렇게 여러분과 만났습니다. 그것이 제가 만들어 온 사랑하는 저의 운명입니다.


누구도 여러분 인생에 이래라저래라 간섭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여러분도 지금까지 여러분께서 만들어오신 여러분만의 소중한 운명을 사랑하시고, 그 안에서 주체적으로 살아갈 수 있으시길 바랍니다!


이상 싱글맘의 여행 3부작 마지막 편, “아모르 파티”였습니다. 다음 영상에서 만나요, 그럼! 안녕!





아래 링크를 클릭하시면 생생한 영상을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https://youtu.be/DTBaxTcmmjg

https://youtu.be/Xz3y1hYiQJ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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