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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뿌리와날개 Jun 07. 2023

국제이혼은 같이 했는데 왜 나만 아플까?

국제결혼과 동서양 문화차이 제4탄

안녕하세요! 독일 사는 싱글맘, 뿌리와 날개입니다. 오늘은 문화심리학 자료들을 인용해 국제부부가가 헤어질 때 정서적 타격도의 차이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동서양 문화차이 1편 내용 기억나십니까? 잊어버리셨거나 모르시는 분들은 오른쪽 위에 링크 연결해 놨으니 보고 오세요. 동양의 상호 의존적 자아상과 서양의 독립적 자아상이 뭔지 알아야 앞으로의 내용을 진행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부터 보실 영상들에서는 시청자의 이해도를 높이고, 효율적 진행을 위해 상호 의존적 자아상과 독립적 자아상이라는 표현 대신 서양과 동양으로 대체하겠습니다. 영상에서 사용되는 자료의 출처는 설명란에 표시해 뒀고, 원 저작자인 Sebastian Bamberg 교수님께도 허락을 받아 사용하는 것임을 명시합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이 누구라고 생각하십니까? 잠깐 영상을 정지해 놓고 한번 대답해 보세요.


당신은

누굽니까?”








독일의 한 대학에서 이 질문을 했을 때, 동양 문화권에서 자란 학생들은 이런 대답이 가장 먼저 나왔습니다.


- 두 아이의 엄마예요.

- 집에서 장남입니다.

- 독일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는 국제학생이요.


반면 서양 문화권에서 자란 학생들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  여행과 그림을 좋아하는 대학생이에요.

- 금발의 곱슬머리이고, 회색빛이 도는 푸른 눈을 가진 여자입니다.

- 내 이름은 세바스찬이고, 영화를 좋아하는 20살의 남자예요.


어떤 차이가 있고, 이런 차이가 어디서 오는지 아시겠습니까?








다이어그램을 한번 보세요. 다이어그램이라는 건 서로 다른 집단끼리의 관계성을 보여주는 표거든요. 이건 한국을 비롯해 아시아 전역에 널리 퍼진 상호 의존적 자아상의 모습입니다.




여기 보시면 크게 외집단과 내집단, 그리고 중간에 Individual이 있죠. 외집단은 내가 모르는 사람들, 내 집단은 내 사람들, 그리고 중간에 인디비두알은 “나“의 정체성을 뜻하는 겁니다.


이 표를 이해하기 위해서 가장 먼저 알아두실 점은 점선과 실선입니다. 운전할 때 보면 넘어가면 안 되는 중앙성은 실선, 차선 변경이 가능한 곳은 점선으로 되어있죠? 여기서도 비슷하다고 보시면 됩니다. 실선은 막혀있어서 이동이 비교적 어렵다는 뜻이고, 점선은 자유롭게 오고 갈 수 있다는 뜻이에요.


이 동양의 자아상에서 두드러지는 건 바로 내집단과 외집단이 색깔로 확실하게 구분되어 있는 것을 넘어서 실선으로 단절되어 있다는 겁니다. 쉽게 말하자면, 내 사람과 내 사람이 아닌 사람들의 차이가 명확한 거예요.


반면에 중심의 나는 점선으로 되어있죠? 동양에서는 나를 중심으로 우리 엄마, 형제간, 친구들 그리고 안면이 있는 지인들까지 내 사람들의 범위로 봅니다. 그리고 이 사람들은 내 사람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서로의 경계가 점선으로 모호하기 때문에 서로의 정체성에 침범이 가능합니다.


여기 보시면 심지어 우리가 공유하고 있는 정체성 부분도 있죠. 그래서 부모가 다 큰 자식의 결혼을 반대하고, 자식이 부모의 재혼을 반대하기도 하며, 형제간이나 친구들이 내 결혼생활에 대해서 이혼을 해라 마라, 애를 더 낳아라 마라 왈가왈부할 수 있게 되는 겁니다.


직장 상사나 동료도 지인의 범주고 역시 점선이죠? 그래서 이 사람들도 때때로 은근슬쩍 다가와서 선을 넘는 겁니다. 그 바탕에 이런 상호 의존적 자아상이 깔려있기 때문이에요.








아, 그럼 이제 슬슬 서양의 독립적 자아상은 어떻게 다를지 궁금해지죠? 봅시다, 한번! 비교를 위해서 동시에 보면서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게 뭐죠? 네. 중심의 “나“라는 정체성이 다른 어떤 것에도 침범받지 않고 완벽한 실선의 원으로 차단되어 있다는 겁니다. 동양에서는 이 안과 밖을 나누는 실선이 내 사람들과 낯선 사람들을 나눌 때 최초로 등장하는 반면, 서양에서는 이미 나와 나 이외의 모든 사람들을 이렇게 실선으로 차단해서 구분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동양과는 다르게 내 사람들과 낯선 사람들 사이에 차이가 없어요. 생판 모르는 사람들이나 내 절친이나, 심지어 우리 엄마도 낯선 사람들과 별 차이가 없다는 말이에요. 내가 아니면, 그게 엄마든, 친구든, 생판 모르는 남이든 다 그냥 다 타인이라는 말입니다.


그럼 뭐가 다르냐! 사람들이 집단의 영역에서 같은 색깔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각자의 영역에서 개개인으로 존재하는 거예요. 엄마도 한 객체, 동생도 한 객체, 친구도 한 객체, 생판 모르는 남도 그냥 하나의 객체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서로의 정체성에 침범할 수 없어요. 그냥 각자가 속한 실선의 영역에서 주체적 개인으로서 존재하는 겁니다. 쉽게 말하면, 엄마는 엄마 인생 잘 살면 되는 거고 친구, 너는 니 인생이나 똑바로 살아! 나는 내 인생 내가 알아서 잘 살 테니까!라는 거예요.


물론 이들도 집단, 단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공동체를 위한다는 개념도 있어요. 점선도 선이니까요. 그렇다면 가족과 배우자, 지인, 완전한 남을 어떻게 구분하느냐? 바로 거리입니다. 멀고 가까운 것.


아무리 부모자식이라도 사이가 소원해지면 멀어지다 멀어지다 이렇게 낯선 이처럼 완전한 남이 될 수도 있는 거고요, 낯선 이였던 사람들도 가까워지고 가까워지다 보면 어느새 내 엄마처럼 나랑 딱 붙어있는 거예요.


바로 이런 독립적 자아상이 바탕이 되어있기 때문에 제 전남편은 자기 친자식임에도 불구하고 빈이와 교류를 끊을 수도 있는 거고, 제 전 남자 친구 맥주씨는 전 여자 친구인 제가 다른 남자와의 사이에서 낳은 자식인 빈이를 그렇게 예뻐할 수 있는 겁니다. 또 제가 제 시이모님과 모녀지간으로 지낼 수 있는 겁니다. 우리는 서로가 서로를 마음으로 낳은 딸, 독일에서 찾은 또 다른 엄마라고 생각하거든요.


처음 보는 사람들끼리도 눈이 마주치면 서양에서는 서로 인사를 하는 게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입니다. 서로 멀리 있다가도 눈이 마주치는 그 순간은 찰나지만 가까워지는 거죠.








자, 그럼 이제 이 서로 다른 자아상을 가진 두 사람이 헤어진다고 보자고요.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한국인인 우리가 서양인 배우자와 헤어지게 되면 일단 우리는 휘청하고 아플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여기 보이는 표처럼 나의 정체성의 일부를 그 사람과 공유하고 있었기 때문이에요.


여기에는 물론 시댁 식구들, 배우자의 형제자매 및 배우자의 친구들과 여러분이 그동안 맺고 쌓아온 정서적 관계들도 다 포함되어 있습니다. 서양인 배우자 쪽 사람이었던 사람들이 나와 멀어지면서 내가 지금까지 그들에게 내어주고 공유해 왔던 나의 정체성 일부를 그 사람들이 조금씩 다 찢어가기 때문에 내가 너덜너덜해지는 겁니다.


서양인 배우자와 국제이혼을 하면서 큰 충격을 받으신 분들이 계시다면 그 이유가 바로 여기 있는 거예요. 그래서 이제 배신감에 치를 떨다가, 정신적 충격을 크게 받고, 우울증, 공황 장애를 비롯해서 각종 육체적 질병까지 딸려 오기 시작하는 거죠.


게다가 내집단과 외집단이 이렇게 실선으로 닫혀있는 것처럼, 헤어지더라도 서양인 배우자는 나에게 완전한 남이 될 수 없습니다. 자녀가 있다면 내 자식의 생부, 생모니까 더더욱 그렇죠. 실선이라는 게 그런 거예요. 들어오기도 쉽지 않지만 나가기도 쉽지 않습니다.


그리고 시리즈 영상에서 하나씩 다 말씀드리겠지만, 서양인과의 이혼은 스피드전입니다. 속전속결이라서 나는 이혼 서류받고 멍 한데, 이미 배우자는 나가서 다른 사람하고 살림 차리고 있고, 다른 사람하고 애를 낳고 막 그래요.


그 와중에 이제 갑자기 우리가 남남이라고 하니까 이게 현실에서 흘러가는 과정이랑 내 머리가 이해하는 것, 그리고 내 마음이 받아들이는 것에 속도차가 엄청납니다. 그래서 정신을 못 차리는 거예요.


지난달에 우리 가족 여행하고 즐거웠는데 오늘부터 다른 집에 가서 다른 사람 짝이 돼서 새 남자, 새 여자가 데려온 애 부모노릇을 한다잖아요, 지 자식은 내팽개치고. 그런데 어떻게 우리가 칼같이 이 마음을 바로 끊어냅니까? 그렇죠?


반면에 여러분의 서양인 배우자는 같은 상황에서 심정이 어떨까요? 여러분이 그냥 친구였을 때에도, 배우자였을 때에도, 그리고 지금처럼 헤어질 때에도 여러분은 여러분의 배우자와 닿아있는 거리만 달라졌을 뿐이지 그 사람의 정체성 자체에는 큰 타격이 없습니다.


여러분의 서양인 배우자는 언제나 여러분과 분리되어 독립된 주체로서의 자신을 놓아본 적이 없기 때문에 그래요. 이 사람들이 슬프지 않다는 게 아닙니다. 슬픈데, 슬픈 건 슬픈 거고, 우리는 원래 각자 독립된 객체였으니까 여러분이 멀어진다고 해서 나의 정체성이 훼손되거나 사라지는 부분은 없는 거예요. 나는 여전히 온전한 나죠.


이런 독립적 자아상을 가진 서구권에서 자란 사람이 상호 의존적 자아상을 가진 동양 문화권에서 자란 사람에 비해 이혼으로 인한 심리적 충격이 현저히 덜한 것은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또 서양에서는 외집단과 내집단이 서로 점선으로 열려있기 때문에 더 이상 가족이 아닌 여러분을 낯선 이의 자리로 밀어내는 게 어렵지 않습니다. 여러분의 서양인 전 배우자의 옆자리는 곧 새로운 파트너가 메꿀 거고요, 전 배우자의 가족들도 그것에 대해서 큰 거부감이 없습니다.


심지어 새 파트너가 여러분과의 결혼생활 동안 전 배우자와 불륜으로 맺어진 관계라고 해도 하등 문제될 게 없습니다. 우리 모두는 자신의 삶을 스스로 선택하고 가꿔나가는 성인들이며, 개인의 선택을 존중하기 때문입니다.


이혼한 뒤에도 여전히 상간녀네, 불륜남이네 하는 표현을 쓰면서 비하하는 것도 한국이나 그렇지, 여기서는 별 상관없습니다. 바람피웠다는 말도 두 사람의 관계가 아직 유지될 때나 쓰는 말이지, 이미 헤어졌으면 그때부터는 그냥 그 사람의 새 파트너입니다. (참고로 독일에서는 나이 먹고 진지해질수록 여자친구, 남자친구보다 파트너라는 말을 많이 써요.)


주변 사람들도 아무도 이런 (과거의) 불륜관계에 대해서 색안경 끼고 보지 않습니다. 부부 사이의 문제는 당사자들의 일이지 주변에서 왈가왈부할 문제가 아니거든요. 여러분의 배우자가 여러분을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다고 확신하고 이 관계를 끝내겠다고 결심한 순간부터 여러분과의 불행한 부부 사이는 이미 끝난 것입니다.


때문에 여러분 서양 배우자의 주변 사람들이 “안 맞는 사람과의 불행했던 결혼 생활을 뒤로하고 진정한 짝을 만나 새로운 행복을 찾은 여러분 전 배우자의 결정을 존중하지 않을 이유가 없습니다.








여러분! 서로 다른 문화적 배경을 가진 두 사람의 이런 극명한 심리적 차이가 정말 자존감의 문제로 보이십니까? 이건 자존감의 문제가 아니에요. 인간관계를 독립된 두 개체 간의 측정거리로 보느냐, 서로 긴밀하게 연결된 유기체적 관점에서 보느냐의 차이에 더 가깝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혹시 지금 이 영상을 보면서 국제이혼하고 전 배우자는 저렇게 쿨한데 나는 이렇게 망가지는 게 비참하다 하시는 분, 그러실 필요 전혀 없습니다. 여러분이 지금 느끼시는 감정은 지극히 정상적이고 자연스러운 거예요.


대놓고 말을 안 해서 그렇지 정말 많은 사람들이, 심지어 해외생활을 수십 년씩 하시고, 서구권에서 직장 잘 다니고 문제없으셨던 분들도 막상 서양인 배우자와 이혼을 하게 되면 비슷비슷합니다.


머리로는 그들의 관습이고 문화라는 걸 알면서도 어릴 때 이미 자기가 속한 문화 속에서 형성된 보편적인 정서라는 게 있기 때문에 그래요. 그리고 그런 걸 바탕으로 받게 되는 심리적인 충격, 내 마음이 느끼는 온전한 감정의 데미지는 이 머리가 배웠다고 해서 의식적으로 컨트롤할 수 있는 게 아니죠.


그런데 여러분, 세상만사에는 다 양면이 있다고 했죠? 이혼할 때 여러분이 이렇게 더 아팠던 만큼 여러분이 인생 살면서 다시 돌려받는 부분도 많습니다. 걔네들이 덜 아플 수 있는 만큼 그네들 나름대로 또 인생에서 감당하고 살아가야 하는 부분이 있어요.


그러니까 지금의 일시적 상황에 너무 비참해하실 필요도 없고, 억울해하실 필요도 없습니다. 저희 채널 구독하시면 앞으로 이런 흥미로운 이야기들, 천천히 다 들을 수 있으실 거예요.


서로 다름을 인정하라는 말, 많이 듣잖아요. 이게 바로 그겁니다. 신발을 신고 집에 들어오는 문화가 미개하고, 방바닥을 물걸레질하는 문화가 우월한 게 아니에요. 중국인들은 국그릇을 내려놓고 고개를 숙여 국을 떠먹는 이런 식습관이 개가 개밥그릇에 밥을 먹는 것 같아서 싫다고 합니다.  한국인들은 밥그릇을 들어 입에 가져다 대고 젓가락으로 밀어 넣는 식습관이 거지가 구걸해서 먹는 밥 같아서 싫다고 해요.


그런 것처럼 문화에는 옳고 그름이 없습니다. 다만 왜 이런 문화가 생겨났는지에 대한 역사적, 지리적 맥락만 있을 뿐이죠. 그래서 누가 맞고 누가 틀리네, 이건 누가 이렇게 고쳐야 되네 하기 시작하면 국제커플과 문화차이에는 답이 없습니다.


우리가 이런 부분이 이렇게 달라서 이 사람이 이렇구나, 내가 이렇구나를 서로 이해하고 납득한 뒤에 그렇다면 우리가 이런 부분들을 어떻게 해석하고, 받아들이고, 배려하고, 서로 맞춰나갈지를 고민해야 하는 거예요.


그런데 재미있는 건 뭔지 아십니까? 같이 살 때는 이런 동서양의 자아상으로 인한 문화차이가 별로 느껴지지 않는다는 겁니다. 많은 국제커플들이,


와! 같은 한국말을 쓴다고
다 말이 통하는 게 아니었구나!

언어가 달라도
이렇게 말이 잘 통하다니!

이제야 나를 알아주는
내 짝을 만났구나!



이런 느낌이 들었을 때 “국제결혼”이라는 엄청난 허들을 뛰어넘게 되는 거거든요. 이런 근본적인 문화차이는 자식이 없으면 거의 느껴지지 않고요. 동거기간에 상관없이 자식을 낳으면 그때부터 조금씩 느끼게 됩니다. 만약 자식이 없다면 5년에서 8년에 걸쳐 서서히 느끼시게 될 거예요.


“아니에요! 저희 지금 신혼인데 벌써부터 부딪혀요!” 하시는 분들은, 살면서 부딪히는 지금 그 정도 수준은 그냥 빙산의 일각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같이 살 때는 그냥 동상이몽이에요. 서로 한 이불 덮고 다른 꿈 꾸면서도 그게 다른 꿈인 줄 모릅니다.


이 결혼생활이 유지되는 동안은 그 사람이 하는 말과 행동을 내 문화적 배경에 끼워 맞춰서 좋게 해석하고, 상대방은 또 상대방대로 내가 하는 말과 행동을 자신의 문화적 배경에 맞춰서 좋게 해석하며 사는 거예요.


국제결혼뿐만이 아닙니다. 같은 한국사람끼리 결혼해도 가풍이 다르다고 하고, 남자와 여자의 차이도 크다고 하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대화가 충분하지 않게 되면, 그런 것도 다 이런 식으로 동상이몽, 아전인수 격으로 알게 모르게 덮어지면서 어느 정도 보완되고 그러는 사이에 서로 맞춰가기고 하고 하면서 살아지는 거예요.


그렇다면, 진짜 문화차이는 언제 시작되는지 아십니까? 10년을 살았든, 20년을 살았든 서로 등 돌리고 이혼절차를 밟기 시작했을 때 그때 비로소 시작입니다!


그래서 그게 컬처쇼크가 되고, 국제이별이나 이혼이 트라우마로 남는 거거든요. <국제결혼과 동서양의 문화차이> 다음 편에서는 동서양의 생각이 어떻게 다른지 사고실험을 통해 분석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영상도 즐거우셨기를 바라고, 여러분의 구독과 좋아요는 세상 모든 한부모가정의 자유입니다! 다음 영상에서 봬요, 그럼! 안녕!





아래 링크를 클릭하시면 생생한 영상을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https://youtu.be/bgYdN92d0x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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