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뿌리와날개 Sep 28. 2023

바람난 독일남편과 상간녀에게 분탕질하면 어떻게 될까?

뿌날의 국제커플 연대기/ 국제싱글맘 상편

여러분이 흥미로워하실 만한 국제이혼의 하이라이트는 사실 한국으로 쫓기다시피 보내졌다가 두 달 뒤에 돌아와서 남편과 지내던 그 열흘사이에 다 일어납니다. 그러면서 일이 이렇게까지 커지기 전에 남편과 그 외도 상대인 남편의 직장상사, 그리고 저 사이에 있었던 일련의 사건들이 쭉 퍼즐처럼 끼워 맞춰지게 되는 거죠.


지금까지 꺼낸 얘기만으로도 이렇게 흥분들을 하시는데 여러분이 진짜 기절초풍하실 만한 이야기들은 아직 입도 뻥긋 안 했습니다. 사람이 어떤 행동을 하는 데에는 반드시 이유가 있잖아요. 어떤 식으로든 뭘 얻고 싶은 게 있으니까 그렇겠죠.


그런데 저는 이 전남편의 불륜과 외도 정황, 그리고 이혼 뒤에 더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이 사람의 형편없는 인격에 대해서 여러분과 상세히 공유해서 제가 뭘 얻을 수 있는지 모르겠어요.


톡 까놓고 말해서 그 사람이나 저나 수준이 똑같으니까 같이 산 거 아니겠습니까? 전처, 전남편의 허물은 곧 그 당시에 함께 살고 있던 자기 자신의 허물이나 마찬가지예요. 이건 왜 그런지 나중에 다른 영상을 통해서 또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저는 남편의 외도가 우리의 이혼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고 보지는 않거든요. 그래서 이 하이라이트 부분은 언젠가 제가 필요하다고 느껴질 때 공개할 수도 있고, 영원히 묻어둘 수도 있습니다.


더 높은 조회수나 유명세를 얻고 싶어질 때 비장의 카드로 쓸 수도 있고, 10만, 20만 구독자 기념으로 여러분께 썰을 풀 수도 있고요, 그 이야기들로 인해서 제가 다시 뭔가를 깨닫고 배운 게 있어서 여러분과 공유를 하고 싶어질 수도 있겠죠. 그런데 아직까지는 단물 빠질 때까지 씹고 버리는 가십 수준 이상의 필요성을 못 느낍니다.


그래서 국제이혼과 국제싱글맘 사이의 이야기가 궁금하신 분들은 브런치에서 가볍게 <움켜쥔 결혼, 그 끈을 놓았을 때> 1,2,3화를 참조하시거나 <독일 남자와 이혼하기 1, 2,3> 편을 천천히 정독하시기 바랍니다.








자! 독일어도 못하고, 직업도, 친정도, 친구나 일가친척도 없는 외국인 여자가 15개월짜리 아기를 데리고 무작정 남편 집에서 나왔습니다. 과연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요? 일단 살 집을 찾아야겠죠!


비가 부슬부슬 내리던 2015년 6월 23일, 저는 빈이를 태운 유모차 짐바구니에 기저귀랑 아기랑 제 옷 몇 가지를 챙겨서 친구 남편의 도움을 받아 보호소로 들어가게 됩니다.


독일어로 여기는 Frauenhaus에요. 직역하면 “여성의 집”이죠. 그런데 저는 한국어로 그곳을 항상 “보호소”라고 번역합니다. 왜냐하면, 제가 두 달간 경험했던 그곳은 사람이 사는 집이 아니라 “소”라는 시설에 더 적합했기 때문이에요. 여성의 집으로는 그 느낌이 전달이 안 되는 거죠.


빈이랑 거기 들어갔던 첫 날밤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그 좁은 싱글 침대에 지칠 대로 지친 몸을 누이고 근심이 가득해가지고 이제 잠든 아기 등을 이렇게 어루만지는데 와, 참 묘하대요? 그 조그만 아기 등짝이 얼마나 넓고 든든한 지….


그래서 손바닥으로 따뜻한 아기 등을 이렇게 쓰다듬고 있으니까, 마음 한편이 든든해지면서 저도 모르게 빙그레 웃음이 나는 거예요. 고 콩만 한 게 뭐라고 그렇게 큰 의지가 되더라고요. 그때 썼던 짧은 글을 읽어드리겠습니다.


그래, 지금 내 곁에 네가 있는데
내가 아쉬울 게 뭐가 있겠니!

돈도, 집도, 남편도,
그 영원할 줄 알았던 사랑마저도
있다가도 없어지는 게
지금 내 삶인데…

그래도 그 안에서
네가 나의 아기라는 사실과,
지금 내 곁에 잠들어 있다는 것.

그리고 너에 대한 변하지 않을
나의 사랑만큼은 그대로 인 것을…
그거면 됐지!

그는 모든 것을 가져가는 대신
나에게 우리 아기를 주고 갔다.

나는 더 바랄 게 없었다.”








다음날부터 제가 마주하게 되는 것은 매일같이 쏟아지는 수 십 장의 서류와 싸인이었습니다. 보호소 입소를 위한 서류절차를 시작으로 해서 생활비 달라고 정부에 신청서 작성해야 되죠, 생활비고 양육수당이고 이제 다 제 이름으로 나오니까 은행 계좌 개설해야 되죠, 남편하고 소송해야 되는데 돈 없으니까 정부에 변호사 비용 청구해야죠, 집을 구해도 이사 갈 돈, 가구 살 돈이 없으니까 그 돈도 달라고 신청해야 되죠, 남편 밑에 있던 보험도 따로 빼와야죠, 월세 계약서 써야 되죠, 보증금 지원해 달라고 신청해야죠, 인터넷 계약해야 되죠, 각종 고지서 같은 거 자동이체 시켜놔야죠, 병원이랑 보험 관련 서류들까지.


 와… 끝도 없이 쏟아지는데, 제 상태가 지금 어떻습니까? 다른 거 다 차치하고라도 독어가 안되잖아요. 아무것도 모르는 까막눈인데 대충 짐작만으로 이렇게 중요하고 어마어마한 계약들을 끊임없이, 매일같이 해대는 거예요.


하다 하다 나중에는 진짜 겁이 나더라고요. 물론 사회복지사들 관리감독 하에 하는 거지만, 내가 무슨 심신 미약이나 금치산자가 아닌 다음에야 결국 법적 책임은 다 저한테로 올 거 아닙니까? 그러니까 진짜 이래도 되는 건지 너무 무서우면서도 제 자신이 한심한 겁니다.


근데 어떡해요! 돌아가는 일상에 정지버튼 눌러놓고 좀 쉬다가 다시 플레이 버튼을 누를 수도 없는 노릇이고. 죽으나 사나 Learning by doing인 거죠.


그 짓을 막 땡볕에 아기 시간 맞춰 우유 먹이고, 이유식 먹이고, 기저귀 갈고, 울면 얼러가면서, 심심해하면 놀아줘 가면서, 책 읽어주고, 노래해 주고, 말 배운다고 종알거리면 반응해줘 가면서  하… 정말 너무너무 힘들었어요. 너무너무.


뭐 내 독어 수준이 어떻고, 내가 독일사회에 대해서 뭘 알건 모르건간에 어쨌거나 무조건 제가 다 선택하고 책임을 져야 되잖아요. 매일 같이 중요한 결정들을 해야 되는데 그게 또 다 얌전히나 넘어가집니까? 그중에 절반은 지나고 보니 잘못된 결정이었고, 옳은 결정이었다 하더라도 글을 모르니 실수연발이죠.


뻑하면 미비한 서류 다시 구비하러 가야 되죠, 잘못 신청한 거 취소하러 가야 되죠, 신청 절차마다 요구해 대는 산더미 같은 서류들 복사해야 되고, 스캔 떠야 되고, 나중에 발뺌하는 공무원들 틈에서 문제 생기지 않게 증거자료로 백업해 둬야 되고, 설득하는 편지 써야 되고! 그런 거 하는 과정에서 실수는 또 생기고.


그거 바로 잡는 게 독일 사람들한테는 메일 한 통, 전화 한 통이면 되지만 저는 못 알아듣잖아요. 사안이 중대할수록 어린 아기 유모차에 태워서 땡볕에 밀고 또 사무실까지 방문을 해서, 만나기는 또 그냥 만나줍니까? 초반에는 미리 전화나 이메일로 예약하고 가야 되는 건지도 몰라서 갔다 하면 문전박대당하기 일쑤죠!


예약을 미리 해도 한, 두 시간 기다리는 건 일도 아닙니다. 그때는 또 하필 시리아 난민들이 대거 유입될 때여가지고 시청이고, 잡센터고 사람은 미어터지는데 한여름이니까 공무원들 다 6주씩 휴가가잖아요. 환장하는 거죠.


만나서 이제 얘기 좀 할라치면 또 이 서류가 준비 안 됐으니 준비해서 다음 주에 다시오라 그러는데, A는 돈 받으려면 B에서 증명서류 떼 와야 된다 그러죠, B한테 가면 C에서 뭘 받아와야 증명서류를 떼준대요. 그래서 또 C한테 가잖아요? 그럼 A에서 돈을 받은 자료가 있어야 그걸 줄 수 있다고 합니다.


막 관공서끼리도 이 서류 모순이 끝도 없이 얽혀있는 거예요, 이렇게. 이게 서류의 나라 독일입니다. 하…. 진짜 매일같이 밀려드는 이런 일들 해결하느라 하루 종일 종종거리고 다니는 것도 바빠 죽겠는데 그렇게 해결하고 돌아서면요, 십중팔구는 뭔가가 잘못되어 있어요.


그렇게 녹초가 돼서 집에 오잖아요? 그럼 문 따기 전에 우편함을 확인해야 되는데 하…. 어느 순간부터는 이 우편함만 보면 막 심장이 쿵쾅거리는 거예요. 오늘은 또 어디서 누가 나를 또 잡아먹을라고 닦달할까! 내가 뭘 또 잘못했을까!


우편물이, 우편물이 많으면 하루에 7-8개씩도 오는데 뭐 하나 허투루 읽을 수 있는 게 없어요. 다 꼼꼼히 살펴야 되는 것들이에요. 전부다 돈 얘깁니다. 당장 돈을 내라던가, 며칠 안으로 돈을 내라던가, 돈을 못 준다던가, 저번에 받은 돈 토해내라던가! 진짜 그 우편물의 양과 처리해야 할 업무가 첫 3개월은 진짜 미치고 팔짝 뛸 만큼 인텐시브 했어요.


그러는 와중에 이사 들어가야 되는데, 이사는 뭐 몸만 들어갑니까? 세간을 갖춰야 될 거 아니에요! 근데 새 가구 살 돈이 어딨습니까? 긴급구조 명목으로 1, 500유로, 한국돈으로 200만 원 좀 넘게 돈을 받았는데, 그걸로 빈 집을 채워야 되는 거예요.


중고는 뭐 발 달려서 지가 직접 집으로 온답니까? 중고를 살래도 가격 대비 적절한 걸 골라야 하니 말도 못 하는데 중고 사이트 뒤져서 침대며, 소파며, 주방이며, 식탁이며 하나하나 일일이 사람들 연락해서 만날 약속 잡고, 뭐 보러 가는 건 또 쉽습니까? 차는 없고 유모차 끌고 가야 되는 돌쟁이 아기만 하나 있는데?


그럼 또 같이 가 줄 사람이랑 연락해서 판매자랑 그 중간 역할을 말도 못 하는 내가 다 해야 되는 거예요. 두 사람 스케줄을 맞춰가면서. 그 와중에도 같이 가 줄 사람이 있어서 정말 그거라도 황송해하면서 다녔지만… 아유 말도 마세요. 이사 들어가는 과정 얘기만 해도 시리즈 영상 10개는 나와요.


그때가 정말 제가 많이 울고 다녔을 때고 그때 주변에 한국 사람들하고 맘 상하는 일도 막 생기면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고. 참… 그때 외국사는 한인들과 그 커뮤니티, 그리고 인간의 심리라는 것에 대해서 많은 걸 배웠습니다. 정말 많이 배웠어요.


진짜…. 너무 힘들었어요. 너무너무… 이 모든 게 너무 서럽고, 힘들고, 몸은 고생스럽고, 마음은 고통스럽고, 근데 또 생때같은 자식은 또 24시간 딱 붙어서 엄마엄마 해요. 막 말 배울라 그러니까. 진짜 이거는 안 겪어보면 모릅니다! 이 기가 막힌 심정을.


전남편과 재산이나 가구 분할 없이 아기랑 저랑 몸만 나온 상태 아닙니까? 그러니까 일단 구조단체 도움으로 어찌어찌 이사는 들어갔는데, 뭐 자잘한 살림살이가 아무것도 없는 겁니다. 청소기도 없죠, 세탁기도 없죠, 식기세척기도 없죠, 건조대도 없죠, 이불도 없어요.


그나마 결혼할 때 친구가 사준 수저세트랑 포크, 나이프, 접시, 냄비 같은 건 들고 나왔는데 그것도 6인용 세트잖아요? 아기랑 나랑 둘이 나온다고 전부 두 세트씩만 가지고 나온 거예요. 웃기죠? 제가 이혼당할 때 그렇게 어린애 같았습니다.


그래서 빨래는 큰 여행가방에 넣어서 일주일에 한 번씩 한 손으로 유모차, 한 손으로 그거 끌면서 걸어 걸어, 버스를 타고 몇 킬로 떨어진 빨래방에 가서 빨아다 말려오고, 그럼 이제 거기 아기랑 몇 시간 죽치고 앉아 있는 거예요. 빨래 누가 훔쳐갈까 봐!


청소기가 없으니까 맨날 기어 다니면서 걸레질을 하는데 막 이사를 들어왔는데 인부들이 바닥재를 깔았으니 시멘트며 먼지가 얼마나 지저분했겠어요! 아무리 걸레질을 해도 모래가 사라지지를 않아요. 정말 저는 청소기가 그렇게 감사한 가전인 줄 저는 그때 처음 알았습니다.









이사하고 얼마 안돼서 한국에서 드디어 엄마가 옵니다. 엄마가 오니까 이제 좀 살만 한 거예요. 아기 신경 안 써도 되고, 엄마가 차려준 따순 밥을 먹고, 잠도 좀 잘 수 있으니까. 그러면서 제가 하루 종일 시내 돌아다니면서 업무를 보고 다니는 동안 엄마가 살림을 하나씩 정리해 주시는 거예요.


그러면서 엄마가 하나씩 물어봅니다.


엄마가 결혼할 때 사준 이불 어디 갔어?

엄마가 보내준 아기 옷들 어디 갔어?

이거는 어딨어?

저거는 어딨어?



전남편이 돈에 결핍이 있다고 했잖아요. 그래서 독일에서는 다 너무 비싸다고 아기 태어난 뒤로는 저한테 팬티 한 장을 못 사게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뭐가 힘들다고 하면 엄마가 “이런 거, 이런 거 사! 이런 거, 이런 거 독일 거 좋대! 이런 거 쓰면 되잖아!” 해요.


그러면 저는 “엄마! 독일은 그런 거 너무 비싸서 독일 사람들은 그런 거 없이 그냥 산대. 여기 사람들 되게 검소해.” 하고 얘기를 하는 거예요. 엄마 입장에서는 안쓰럽잖아요. 그러니까 한국에서 사서 막 보내주는 거죠, 몇 푼 안 하니까 사실!


그니까 엄마가 우리 집 살림을 거의 다 아는 거예요. 적어도 엄마가 사서 보내준 것들에 대해서는. 특히 엄마가 아기용품을 많이 보내줬거든요. 우리 아기는 10개월까지도 신발이나 외출복 없이 데엠에서 파는 발 달린 내복 있잖아요. 아기 클 때마다 치수 별로 그런 거 서너 벌이랑 양말만 신고 살았습니다.


제가 아기를 혼자 키우는 데다 잘 나가지도 않으니까 밖에 나갈 때 아기 외출복을 입혀야 된다는 것도 몰랐고요. 또 저는 원래 옷 같은 것에 별 관심이 없다고 했잖아요. 또 남편이 사도 된다거나 사라는 말을 안 하니까 그냥 산 거예요.


근데 엄마랑 영상 통화를 하면 아기가 맨날 콧물 흘리고 있는데, 겨울 접어들면서 또 제가 맨날 춥다고 그러니까 털 달린 우주복도 사주고, 털조끼도 사서 보내주고, 걷다 넘어지지 말라고 미끄럼방지 털신도 사주고 막 그런 거죠.


근데 그런 게 하나도 없는 거예요. 그러니까 저는 6월 23일에 집 나와서 9월이 되도록 중요한 일처리 하고 다니느라 전혀 눈치를 못 챘는데, 그 때사 깨닫게 되는 겁니다.


어머, 세상에!!!

내 물건 다 어디 갔어???

우리 아기 물건들 하나도 없네!!!



자세한 내막은 브런치에서 <독일남자와 이혼하기 1,2,3> 편을 보시면 됩니다. 여기서 간단히 결론만 말씀드리자면 전남편이 우리 한국 보내놓고 연락을 끊었다고 했잖아요. 그러면서 아기 유모차, 아기 식탁, 아기 욕조, 엄마가 사준 그 좋은 아기 옷들 이런 건 이제 쓸만하니까 다 중고 사이트에 판 거예요.


그런데 한국 갈 때마다 제가 사다 모은 한 200권 가까이 되는 한국 책들, 결혼 선물로 받은 극세사 이불이랑 뭐 5유로짜리 H&M에서 사 온 제 옷, 이런 것들은 가치가 없잖아요. 신발도 10유로짜리 신고 다니니까. 그러니까 그런 건 싹 다 버린 겁니다.


아기 태어날 때 아는 언니가 2014년도 은화를 또 해준 게 있어요. 그것도 사는 게 바빠서 진짜 몇 년 지난 뒤에야 떠올립니다. 그런 거고 뭐고 하나도, 하나도 없습니다. 그나마 제가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게, 남편한테 받은 것 중에 아기 사진이에요. 남편이 그 하드를 가지고 있었거든요.


그거 돌려받는데도 몇 달 걸렸는데 진짜 그것도 버렸을까 봐 심장이 벌렁벌렁벌렁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기 태어났을 때부터 돌까지 사진 건진 것만으로도 너무나 감사하고. 그런데 제 물건들은 하나도 없는 거죠. 아무것도!


그걸 예전에 옆집 살았던 이웃 할아버지를 우연히 시내에서 만나서 다 전해 듣게 됩니다. 그러면서 이제 4월, 5월, 6월, 7월, 8월, 9월 그리고 10월까지 반년 간 쌓이고 쌓이고 쌓였던 그 간의 분노가 폭발을 하게 돼요.


<독일남자와 이혼하기 1,2,3> 편의 내용들을 이 7, 8월 두 달에  다 겪는 거 아닙니까? 그러면서 마지막에는 제가 정신줄을 거의 놓거든요. 그 <이혼한 싱글맘에게 아빠란?>이란 영상에 나왔었던. 화면 상단에 링크 첨부해 드릴게요.


그래서 정신이 회까닥 하는 그 경계선에서 왔다 갔다 하다가 ‘엄마가 올 때까지만 이를 악물고 버텨보자!’해서 간신히 버텨내고, 엄마를 만난 거거든요. 그런 차에 그 할아버지 입에서 우리 엄마아빠가 결혼한다고 해준 그 이불을 쓰레기통에 버렸다는 말이 나오니까 와…


이 모든 거지 같은 상황과 그간의 개고생이 너무나 분하고 억울한 거예요. 이 개새끼는 이 모든 미친 짓거리를 벌여놓고도 어린애가 3일을 열이 끓어서 밤낮으로 우는데 보호소에서 해줄 수 있는 게 없어가지고 내가 아기를 끌어안고 그렇게, 그렇게 전화를 해도 다 무시를 하고!!


인스타에서는 인플루언서라고 발리 여행 조식에, 고급 호텔방에 쇼핑한 구두 사진을 매일 같이 올려대는데 왜 책임감 있게 내 자식을 건사하고 있는 나는, 왜! 왜 나는, 왜!!! 이 모든 치욕과 고통을 견뎌내고 감당해야 되는지!  


그러면서도 이리승냥이 같은 것들이 매일 같이! 눈만 뜨면 매일 같이 죽어라! 죽어라! 내 목을 물어뜯어 대니까 정말 미쳐버리겠는 겁니다, 정말!


그래서 저는 시내에 남편이 근무하는 브랜드 옷가게로 갑니다. 남편은 사무실 근무니까 다른 동네에 있는 본사에서 일을 하지만, 매장은 우리 동네 시내에도 있거든요. 거기서 한 달에 한두 번 남편이랑 바람난 그 여자상사가 관리차 일을 했어요. 그래서 남편이 저랑 사는 동안에도 그 여자 보러 우리 식구 데리고 가고 그랬었거든요.


마음은 정말 그 옷가게 건물에 불이라도 질러버리고 싶은데 소심해가지고 그 여자 있는 토요일에는 차마 가지도 못하고, 없는 평일에 가서 미친년으로 보이면 안 되니까 나름 차분하게 남편의 직장동료인 평직원에게 내 남편이랑 너네 상사랑 바람나서 우리를 길거리로 내쫓고 우리 물건도 다 팔고 버렸다! 하는 얘기를 합니다.


그러니까 그 여자가 되게 안타까운 얼굴로 자기 명함을 주면서 자기가 도울 수 있는 일은 돕겠다고 자기한테 연락을 하래요. 그런데 그 짓을 하고 있는 그 순간에도 그런 제 자신이 참 어이가 없긴 했지만, 그때는 저의 그 반년 가까이 쌓인 분노가 너무나 컸었고.


또 제가 독일 사회에 대한 이해도도 높지 않았기 때문에 남편과 바람난 그 상간녀한테 그 정도 망신은 줄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안 그러면 정말 이, 피가 거꾸로 솟아가지고 내가 죽어 버릴 거 같아서.


그렇게 소심하고 어설픈 폭로를 해놓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아무리 나 자신을 합리화하려고 해도 영 찝찝한 겁니다. 막 심장이 벌렁벌렁거리고, 식은땀이 나면서 너무너무 마음이 불안한 거예요.


조강지처랑 자식을 버리고
바람이 난 건 두 치들인데

내가 못할 말을 한 것도 아니고,
조곤조곤 그냥 둘이 바람났다고
얘기했을 뿐인데

근데 왜 이렇게 찝찝하지?



그리고 며칠 뒤에 저는 흥분해 길길이 날뛰는 제 변호사로부터 남편에 대한 접근금지명령 서류를 받습니다. 다음 영상도 궁금하시죠? 여러분은 지금 독일 법원에서 전남편에 대한 접근금지명령까지 받아 본 미친 여자의 채널을 시청하고 계십니다.


벌써부터 또 ‘유럽에서 그거 미친 짓인 거 진짜 몰랐냐, 내가 당신 남편이래도 무서워서 못 살았겠다!’ 같은 댓글 달리는 소리가 막 들리네요. 아우, 귀 따가워요.


무서우면 얼른 도망가세요! 그럼 저는 다음 영상에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안녕!



https://youtu.be/196v14iAQFI?si=J5eMZcdQELKpcWdc





매거진의 이전글 집에서 아기 낳고 키우는 여자는 우스운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