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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뿌리와날개 Sep 25. 2023

집에서 아기 낳고 키우는 여자는 우스운가!

뿌날의 국제커플 연대기/ 국제이혼 번외편

안녕하세요! 독일 사는 싱글맘, 뿌리와 날개입니다. 국제연애, 국제결혼에 이어 어느덧 국제이혼까지 왔네요. 재미있게들 보고 계신가요? 여러분께서는 지금 한 커플의 흥망성쇠를 6주라는 짧은 시간 동안 평균 15분짜리 영상 12화로 빠르게 보고 계십니다.


연애와 결혼 기간만 계산해도 5년 43,800시간이고요, 싱글맘으로 살아온 8년의 시간까지 합치면 113,880시간의 분량입니다. 이걸 약 180분, 3시간 정도로 압축했으니 여러분께서 볼 수 없는 화면 밖의 113,877시간 동안에는 또 얼마나 많은 다른 이야기들이 있었겠습니까, 그렇죠?


제가 국제이혼을 하고, 이렇게 나름 특별한 이야기를 오픈하고 살아오다 보니까 제 글을 꾸준히 읽어오지 않으시거나 일부 영상만 보신 분들은 당연히 제가 국제연애나 국제결혼에 대해서 부정적이라고 믿거나 심지어 굉장히 적대적인 시각을 가졌을 거라고 기대하기도 합니다.


물론 막 일이 휘몰아치던 이혼 초기에는 그런 시절도 있었죠. 독일 남자와 이혼하기 1,2,3 편을 보시면 알겠지만 그때는 정말 저 혼자 감당하기 힘든, 이 모든 대환장 시추에이션을 다 그 독일 놈 탓으로 돌리고 싶었거든요.


제가 괜히 그런 결혼을 하고 이혼 뒤에 또 그런 개고생을 했겠습니까? 그만큼 세상을 보는 시야가 좁고, 어리석었으니까 그랬던 거죠. 그런데 이렇게 약 5년 정도에 걸쳐서 서서히 저를 향한 한 남자의 뜨거웠던 사랑이 어떻게 변해가는지를 지켜보면서 저는 사랑에 관해서 참 많은 것들을 배우고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사랑에 관한 한 이혼도 경력직이더군요. 이혼 뒤 연애를 하면서 저는 제가 이혼해 보기 전에는 몰랐던 새로운 시각을 갖게 되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바로 인간사에 대한 통찰력이죠. 달콤한 남녀 간의 사랑도 사랑이지만, 마치 한 국가의 흥망성쇠를 읽어내듯 사랑에 대해서도 전체적인 흐름을 조망할 수 있게 된 겁니다.








제가 아는 부부 중에 그런 국제커플이 있어요. 남자가 20대 중반, 여자가 30대 초반에 사랑에 빠져서 이 둘은 곧 가정을 이룹니다. 둘 다 이혼가정에서 편안하지 못하게 자랐어요. 그래서 여자는 심지어 고등교육도 받지 못했습니다.


결혼을 하고 여자는 남자를 따라 독일로 넘어와서 아이들을 낳죠. 그리고 독일어를 배우면서 전업주부로 아이들을 열심히 키웁니다. 남자는 아내 덕분에 안정적인 가정을 유지하면서도 공부를 잘 마칠 수 있었어요. 그렇게 자리를 잡아서 40대가 된 지금은 돈을 아주 잘 법니다.


10년 가까이 전업주부로 살았던 아내는 이제 아이들이 어느 정도 자란 뒤 남편의 경제력을 바탕으로 어릴 때 마치지 못한 학업을 잇기 위해 대학 공부를 시작했고, 여전히 엄마 손이 필요한 아이들을 데리고 본국과 독일을 오고 가며 학사를 마칩니다.


그리고 뒤늦게 서둘러 돈을 벌려는 아내를 이제 남편이 설득하죠. 내가 석사를 마칠 수 있도록 당신이 아이들을 키우며 30대를 헌신했으니 이제는 당신이 꿈을 이룰 차례라고. 내가 당신을 지원할 테니 더 큰 꿈을 꿔보라고요. 그래서 이 아내는 40대 후반의 나이인 지금 석사를 시작했습니다.


이 커플은 제가 굉장히 사랑하고 존경하는 제 주변의 여러 커플들 중 하나예요. 저는 이렇게 서로를 믿고 아끼며, 서로에게 헌신하는 아름다운 커플들을 적지 않게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을 통해 제가 이상적이라고 믿는 가정의 형태가 불가능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는 일은 저한테도 큰 기쁨이에요.


이 아내는 독일생활이 15년 가까이 됐지만 여전히 독일어를 유창하게는 못합니다. 하지만 남편 역시 아내 나라의 말을 비슷한 수준으로 배워서 양국에서 모두 혼자서도 생활이 가능합니다.


이 여자는 가정주부로 산 세월도 10년이었지만, 남편은 잊지 않았습니다. 본인이 가진 이 모든 것들이 자기 혼자만의 능력이 아니라 사랑하는 아내의 배려와 헌신 덕에 가능했다는 사실을요.








<어린 왕자>라는 책을 보면 장미 한 송이가 나옵니다. 어린 왕자는 막 피어난 이 장미를 나름 잘 보살펴 주려고 하는데 이 장미가 성격이 좀 괴팍해요. 그리고 자존심도 셉니다. 그래서 자꾸만 어린 왕자에게 상처를 주죠.


결국 어린 왕자는 자기 별을 떠나 여행을 시작하게 되는데, 지구별에 도착했더니 꽃밭이라는 게 있는 겁니다. 그 밭 한가득 핀 수천 송이의 장미들을 보면서 어린 왕자는 자기가 그렇게 소중하게 여겼던 장미가 사실은 그저 이렇게 흔하디 흔한 꽃 중의 하나였다는 사실에 실망을 합니다.


그런데 사막여우와의 대화를 통해서 다시금 깨닫게 됩니다. 세상에 아무리 아름다운 장미가 많다고 한들 내가 애정을 갖고 돌본 나의 장미는 고향에 있는 그 한 송이뿐이라는 사실을요. 괴팍하고 자존심만 센 그 장미가 바로 내가 사랑하는 단 한 송이의 장미였던 겁니다.


결혼할 상대로 너무 괜찮다 싶은 남자나 여자, 물론 좋죠. 그런데 어디다 내놔도 서로 갖고 싶어 할 만큼 탐나는 사람을 나도 같은 이유로 좋아하는 게 정말 사랑일까요? 그렇게 잘난 사람은 나 아니어도 사랑해 줄 사람이 수두룩합니다.


하지만 식구 먹여 살리느라 어느새 늙어서 배 나오고 머리 까진 남자를, 돈도 많이 못 벌어오면서도 또 큰소리는 치고 싶은 이 치졸한 속을 이해해 주고 어깨 피고 다니라고, 그래도 당신 멋있다고 해 줄 사람은 내 처 밖에 없습니다.


애 낳느라 망가진 몸매에 애 키운답시고 요즘같이 돈돈돈돈 하는 세상에 전업으로 사는 여자, 맞벌이한답시고 애들 맡길 데 없어서 종종거리고 다니면서도 일은 일대로, 살림은 살림대로, 애는 애대로 개판이라 나는 뭐 하나 제대로 하는 게 없다고 뻑하면 질질 짜는 나를, 그래도 당신 덕에 애들 잘 크고 우리 이만큼 사는 거 아니냐고, 지금도 예쁘다고 해 줄 사람은 내 남편 밖에 없는 거죠.


그가, 그녀가 누구나 탐낼만한 아름다운 장미이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설령 성격이 좀 괴팍하고 자존심을 부리더라도 그런 그, 그녀가 바로 여러분이 오랜 시간 보살펴 온 여러분만의 단 한 송이, 그 장미이기 때문에 여러분에게 의미 있는 것. 이런 게 진정한 사랑 아니겠습니까?








여기 결혼하신 분들 중에 나는 사랑 나부랭이 다 필요 없고, 조건보고 계산기 두드려서 결혼했다 하실 분 계십니까? 아마 다들 사랑해서 결혼했다고 하겠죠?


그런데 가끔 제 댓글들을 읽다 보면 성별 상관없이 아주 계산기가 부러질 듯이 두드려서 적잔지, 흑잔지, 똔똔인지 야무지게 계산해서 그런 자신을 심지어 자랑스럽게 생각하면서 결혼생활하는 걸 당당하게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어요.


뭐 사람마다 삶의 가치가 다 다르니까 그렇게 살면서 혼자 조용히 만족하면 상관이 없습니다. 하지만 본인과 다른 가치를 갖고 열심히 사는 사람들을 그럴듯한 말로 폄하한다면 말이 달라지죠.


그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의 가치관은 보통 여자가 집에서 출산과 양육하는 것에 대한 잠재적 의미와 미래적 가치는 전혀 고려하지 않고, 오로지 “돈”이라는 숫자에 포커스가 맞춰져 있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남자들이야 그렇다 쳐도 심지어 같은 여성이라는 사람이 더 앞장서서 육아와 출산에 대한 가치를 폄하하는 것을 보면, 출산과 양육의 주체가 되는 요즘 한국의 젊은 여성들이 왜 결혼과 출산에 부정적인지 알 수 있습니다.


물론 그러는 사람들의 입장도 일견 이해는 갑니다. 남과 비교해 도드라지는 본인에 대한 우월감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 이면에는 그러한 본인 삶에 대한 스스로의 열등감이 깔려있고, 또 더 들어가 보면 그간 여성으로서 가정과 직장을 양립하며 살아온 자신의 삶이 손해 봤다는, 어떤 피해의식이 있기 때문이겠죠.


그런데 사실 그럴 필요가 없거든요. 가정생활을 하면서도 남자 못지않게 열심히 돈을 잘 번 자신을 대견하다, 그냥 인정해 주면 되는 거지, 남을 짓밟고 우월감을 느껴야 할 만큼 그 삶이 억울한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집에서 살림한다고 주눅 들어 계신 여성분들도 그런 사람들 말에 상처받으실 필요 없습니다. 세상 어떤 자식이 부모의 헌신과 희생 없이 절로 큰 답니까? 지금 당장 수치로 손익을 따질 수 없다고 해서 그 가치가 사라지는 게 아니에요.


독일이나 스칸디나비아 같은 복지 선진국에서 괜히 양육수당을 빵빵하게 주고, 모성보호법으로 주양육자가 일정 기간 동안 가정보육을 할 수 있도록 법정장치를 마련하는 게 아니란 말입니다.


요즘 한국에서 정말 무시무시한 무차별 범죄가 자주 보도되지 않습니까? 연령대를 잘 보십시오. 한국 경제의 어떤 시기에 그들이 어떤 가정환경에서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보냈을지. 매주 금쪽같은 내 새끼에 나오는 가정들은 또 어떻습니까? 여러분은 그런 거 보면서 뭐 느끼시는 거 없습니까?


가정에서 부모가 아이들을 정서적으로 안정되게 잘 키운다는 게 이삼십 년 뒤에 사회적 자산으로써 얼마나 큰 가치를 갖게 되는지 우리는 정확하게 인지하고 있어야 돼요.


한 아이가 몸과 마음이 건강한 어른으로 자라고, 나아가 그런 아이들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그 사회의 미래도 함께 밝아지는 겁니다. 그리고 지금 한국사회에서 누가 그 역할을 하고 있는 건지 잘 아셔야 돼요.


지금 주변의 아기 키우는 젊은 부모들을 홀대하고, 임신과 출산을 병행하면서 직장 생활하는 젊은 여성분들을 못마땅하게 여기고, 전업으로 아기 키우는 엄마나 아빠를 무시하고 조롱하는 이런 사회적 풍조가 사라지지 않는 한 건강한 미래는커녕 전 세계가 주목하는 이 충격적인 출산율도 절대 올라가지 않습니다.


사회 제도적으로도, 국민정서로도, 본인의 배우자에게조차도 배려와 존중은커녕 같은 처지에 처한 사람들에게까지 멸시받는 이런 길을, 어떤 반푼이가 가려고 하겠습니까?








사실 결혼이라는 제도는 따져보면 남녀 간의 사랑을 불신하는데서 시작한다고 봅니다. 사랑이 영원하다면 왜 계약서를 쓰겠습니까? 서로 사랑하는 두 남녀가 만나서 이 사랑의 감정이 아직 남아있을 때 이것을 바탕으로 앞으로 시시각각 변해갈 서로의 마음을 묶어두자고 하는 거죠.


그리고 한번 맺은 이러한 계약은 해지하는 과정도 아주 복잡하고, 해지 후에는 서로에게 사회적인 불이익이 가도록 되어있습니다. 냉정하게 따져보면 이건 상당히 무모한 시도입니다.


수시로 변하는 마음을, 심지어 남녀 간의 서로 좋아하는 그 마음을 죽을 때까지 법으로 고정시켜 두겠다는 이 발상이 얼마나 어처구니가 없습니까? 그런데 우리는 왜 이런 짓거리를 왜 할까요? 뭐 좋은 게 있다고? 분명 그걸 상쇄하고도 남을만한 뭔가가 있기 때문이겠죠.


저는 이게 바로 이렇게 불완전하기 짝이 없는 너와 내가 한 팀이 되어 제도적 안정장치를 만들고 이 안에서 서로를 위해 헌신하겠다는 약속에 있다고 봅니다. 왜? 그거라도 없으면 이 길고 고독한 인생살이가 너무 녹록지 않기 때문이죠.


독립적이고 건강한 인간이 먼저 되는 거? 물론 중요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완벽히 독립적인 인간이 과연 존재하는 가도 의문이지만, 설사 그런 사람들끼리 만났다고 한들 배우자 사이에서도 너는 너, 나는 나대로 살아가는 게 이게 정말 독립입니까? 서로 돕고 베풀 줄 모른 채 혼자 잘났다고 서 있는 건 독립이 아니라 고립에 가깝습니다.


결혼제도라는 건요. 너는 너대로, 나는 나대로 악착같이 각자의 투자 대비 손익분기점을 넘기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거나 눈곱만큼도 손해를 보지 않기 위해서 한 발자국도 양보하지 않는 상태에서는 그 진정한 빛을 발하기 어렵습니다.


‘설사 살다가 우리 둘 중 누구 하나가 곤경에 빠지더라도 적어도 너는 내가 있고, 나는 네가 있으니 그렇게까지 두려워하며 살 필요 없다’는 것, 그래서 ‘이 거칠고 불안한 세상에서 적어도 내가 너 하나만큼은 믿고 내 모든 것을 내걸어 지킬 테니 너도 나에게 그런 사람이 되어 다오! 나는 너를 믿는다!’ 하는 다짐이자 기대이자 약속인 거죠.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으니까요.


그래서 아무리 바깥세상이 비바람 불고 거친 사막같이 메마르더라도 현관문만 열고 들어오면 나를 기다리고 있는 내 아내, 내 남편과 우리 아이들이 있는 이 집안만큼은 세상 포근하고 편안한 휴식처가 되는 곳. 그래서 다음날이면 다시 거친 세상 속으로 뛰어들 힘이 충전되는 곳.


저는 이 지점에 바로 결혼 제도와 가정의 진정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전에 언론인 김어준 씨가 그랬어요. 자기가 배낭여행을 처음 다니기 시작했을 때는 한국과 다른 그 모든 것들이 다 신기했대요. 그래서 “와, 세상은 넓고 이렇게 새로운 게 많구나!” 했답니다. 그런데 전 세계를 다 돌아보고 나니까 마지막에는 그런 생각이 들더래요. “근데 결국 사람 사는 건 다 거기서 거기구나!”


10여 년 동안 국제연애와 결혼을 거쳐 국제이혼까지 하고 독일 사는 싱글맘 9년 차가 되어보니 저 역시도 이제는 그런 생각을 합니다.


결국 사람 사는 건
독일이나 한국이나
다 똑같구나!



그런데 여러분, 열여덟 고등학생의 인생 뭐 별거 있냐는 말과 팔순 노인의 인생 뭐 별거 있냐는 말에 담긴 무게가 어떻게 같을 수 있겠습니까?


모든 창작물에는 창작자가 의도하는 바가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런 저의 의도를 잘 이해하시면서, 때로는 즐겁게 또 때로는 너그럽게 즐겨주시는 우리 구독자, 시청자 분들의 반응을 보는 것이 즐겁습니다.


물론 문화차이라는 것이 실제로 존재하고, 외국 생활이나 외국인 배우자에 대해서 정보와 이해가 부족한 한국분들이 혼인 중이든 이혼 중이든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게 사실입니다.


시작되면 족히 2-3년, 길게는 10년 가까이 끝나지 않는 이혼소송으로, 아니 이혼 소송이 끝나고도 전 배우자와의 원만하지 않은 공동양육으로 인해서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이 정말 많아요.


하지만 그런 분들이 아픔을 드러내고, 소통할 수 있는 통로는 여전히 많이 부족하죠. 그래서 우리 채널은 그런 분들께 실질적인 도움을 드리고자 하는 취지로 만들어진 거고 앞으로도 갈 길이 멉니다.


그런데 그와 동시에 또 저는 그간의 일들을 겪어오며 제가 깨달은 바를 바탕으로 살아간다는 것에 대한 본질적인 이야기도 하고 있습니다. 전자가 우리 채널만이 가진 특수성이라면 후자는 우리 채널의 보편성이라고 할 수 있겠죠.


그리고 그것이 특수성이든, 보편성이든 저라는 사람은 기본적으로 삶과 사람에 대해서 통합적이면서도 따뜻한 시선으로 그 본질에 닿고자 노력합니다.


그래서 제가 비록 국제커플의 그늘에 스포트라이트를 비추고 채널을 운영하는 사람인 것은 맞지만, 저는 그 아픔과 또 그것을 극복하고 치유해 나가는 본질이 “국제”에 있는 것이 아니라 결국 “나”라는 이 불완전한 존재가 이 세상 속에서 더불어 살아가며 “성숙”해 가는 “과정”에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여러분께서도 불안해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여러분이 외국인과 교제 중이거나 외국인 배우자를 두셨다고 한들, 여러분은 저와는 다른 사람이고, 여러분의 배우자도 제 배우자와 다를진대 어떻게 같은 이야기를 써내려 갈 수 있겠습니까? 그러니까 국제커플이신 분들! 여러분의 선택에 당당하시고, 각자의 삶을 사랑하시면서 자신만의 멋진 이야기를 써내려 가시기 바랍니다.


또 국제이혼을 앞두고 계신 분들이나 이미 한부모 가정으로 살고 계신 분들! 걱정하지 마십시오. 여러분, 지금 저한테 묻고 싶으시잖아요. 나 정말 잘 살 수 있는 거냐고, 살아보니 정말 괜찮아지더냐고. 우리 아이들 정말 잘 클 수 있냐고.


네, 잘 사실 겁니다. 지금 당장은 아니어도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괜찮아질 거고요, 또 더 많은 시간이 지나면 지금의 이 모든 것들이 결국 나를 성장하게 한 감사한 선물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실 겁니다.


아이들도 당연히 잘 자랍니다. 지금 아이들 곁에 여러분이 계시는 것만으로도 너무나 잘하고 계신 거고, 나머지는 살면서 하나씩 다 이뤄나가시게 될 거예요. 그러니까 걱정 마십시오. 제가 마음으로나마 여러분의 지친 몸과 마음을 꼭 안아드립니다.








살면서 겪게 되는 모든 어려운 일들은 있잖아요. 그걸 내가 어떻게 극복하고 해석해내느냐에 따라서 지울 수 없는 상처로 남아서 두고두고 욱신거리기도 하고, 아름다운 진주가 돼서 반짝반짝 빛나기도 합니다.


이런 아픔들을 잘 소화해내지 못하면, 굉장히 자기 방어적이고 편협한 사고를 가진 사람이 되기 쉬워요. 내 상처가 아직도 너무 크다 보니까 남의 아픔은 이런 내 고통에 비해서 하찮아 보이는 겁니다.


그런데 만약 이 아픔들을 잘 소화해 내서 다음 단계를 밟게 되잖아요? 그럼 새로운 세상이 펼쳐집니다. 어지간한 사람들의 상처가 다 보이기 때문에 어렵지 않게 어루만져 줄 수 있게 되고요, 그렇게 도움 받고 치유된 사람들이 다시 세상에 나아가서 또 그렇게 다른 이들의 상처를 어루만져 줍니다.


아름답죠? 제가 인생을 길게 산 것은 아니기 때문에 앞으로 또 어떤 많은 것들을 배우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지금까지 제가 배우고 깨달은 세상은 그렇습니다.


사랑이라는 게 내가 이 사람한테 받아서 단기간에 다시 이 사람에게 똑같이 돌려주는 방식으로 오고 가는 게 아니에요. A에서 B로, B에서 C로, C에서 또 D로 그렇게 세상 구석구석, 어둡고 외로운 곳곳을 밝히며 돌다가 언젠가 생각지도 못한 때에 생각지도 못한 방식으로 다시 A에게 다시 돌아와요. 아, 신기하죠!


그래서 아무리 어렵고 힘든 세상살이라 하더라도 살만 한 겁니다. 저는 이렇게 국제이혼을 통해서 제 삶이 얼마나 소중한 지를 배웠어요.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 한 명 한 명의 인생도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잘 압니다.


세상에는 절대 한심하거나 비루한 인생은 없어요. 그러니 지금 여러분의 인생그래프가 어떤 곡선을 그리고 있든 그건 그냥 긴 인생 안에서 돌고 도는 하나의 주기일 뿐이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는 것, 스스로 이미 충분히 잘 살고 계시다는 걸 여러분께서 꼭 아셨으면 좋겠어요.


저는 항상 이 자리에서 여러분의 삶을 응원하며 여러분을 따뜻하게 동반해 드릴 거예요. 그니까 언제든 놀러 오십시오!


오늘도 영상을 시청해 주셔서 감사드리고, 여러분의 구독과 좋아요는 자유, 세상 모든 한부모 가정을 향한 자유입니다. 그럼 다음 영상에서 봬요, 안녕!



https://youtu.be/-rWD9xRozqA?si=AO-EU6-UKN-Yyx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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