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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뿌리와날개 Jul 08. 2024

독일에서 12년 걸린 게 한국서는 단 5주?

12년 만의 영구귀국, 은행 앞에서 울컥한 이유

원래는 이번 주에 여러분이 가장 보고 싶어 하셨던, 하빈이의 학교생활 적응기를 좀 전해드리려고 했어요. 그런데, 마음이 바뀌었습니다.


지금 이 원고를 작성하고 있는 시간 기준 한국에 온 지 어제부로 딱 세 달인데 사고 나고 11,12월은 아파서 누워있었고, 1,2,3월은 귀국 준비하면서 벌어진 일 수습하느라 바빴고, 또 한국에 와서 4,5,6월은 적응하느라 정신이 없었어요.


그래서 이제 다시 일을 시작하려고 보니까 제 삶의 루틴이 무너지고 난 뒤에 거의 한 8개월 가까이 저의 마음을 잔잔하게 들여다보지 못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기껏 써놓은 원고들을 모두 뒤로하고, 과감하게 제 마음이 하고 싶어 하는 이야기를 먼저 해볼까 해요.


한국에 처음 도착했을 때 제가 느꼈던 가장 큰 감정은 “안도감”이었습니다. 그게 어떤 안도감이냐 하면, ‘나 이제 진짜 왔구나! 정말로 다시 돌아갈 필요 없구나!’하는 그런 안도감이었어요. 지난 12년 동안 코로나 시기 빼고는 매년 한국을 다녀갔고, 때로는 3개월씩 있다 가기도 했는데 그때는 전혀 느끼지 못했던 그런 감정이었습니다.


그동안에도 한국에 오면 잘 놀고, 잘 먹고, 푹 쉬다 갔거든요? 만약 독일에서의 삶이 그렇게 부담스러웠다면 진작에 들어왔겠죠. 그런데 저는 독일에서의 삶도 그것대로 좋았고, 한국에 오면 또 한국에서의 휴식도 그것대로 좋았기 때문에 부족함 같은 걸 못 느꼈어요.


그런데 저도 몰랐던 마음속의 어떤 보따리가 있었던 걸까요? 한국과 독일을 오고 가면서 늘 싸고 풀었던 여행가방들처럼 제 마음속에도 그런 보따리가 있었던 거 같습니다.


그래서 이제 더 이상 독일로 돌아갈 필요가 없어졌다고 생각하니까 마음속에 있던 그 보따리의 매듭이 스르륵 풀어지면서, 그 안에 있던 것들도 순식간에 사르륵하고 사라지는 거 같더라고요. 그게 제가 귀국하던 날 공항에서 집에 오는 길에 차 안에서 바람을 쐬며 느꼈던 첫 감정이었습니다. 아주 커다란 안도감!








한국에 온 지 5주 정도 됐을 때, 아이랑 저의 예적금 통장을 만들었어요. 독일에서는 계좌를 만들면 세 달에 한 번씩 Gebühr라고 해서 계좌이용료를 내야 됩니다. 만원 조금 넘는 금액인데, 그 돈이 아까워서 계좌를 못 만들었어요.


또 늘 복지제도를 끼고 살다 보니까 계좌가 많다는 말은 제가 증명하고, 제출해야 할 서류가 많아진다는 뜻이었거든요. 그래서 제 계좌랑 아이 앞으로 계좌 하나 말고는 은행거래가 없었습니다. 그런 걸 챙기고 살 능력도, 여력도 없었어요.


그런데 제가 항상 그렇게 부담스러워하고, 어려워했던 은행 업무들을 한국에 오니까 한 5주 정도 사이에 아이랑 제 앞으로 예금, 적금 통장을 만들고, 꼼꼼하게 보험들을 체크하고, 수입과 항목별 지출에 맞게 계좌를 트고, 이체 날짜를 지정하고 이런 모든 것들이 너무나 손쉽게 되는 거예요.


독일에 사는 동안은 늘 긴장을 해야 됐어요. 언제, 어디서, 어떤 식으로 예상치 못한 일들이, 특히 금전 관련해서 터지면 대처를 해야 되니까 굉장히 조심스러웠거든요.


그리고 저는 성격상, 늘 대책이 필요한 사람이에요. 항상 플랜 B를 염두에 두고 움직이는데 독일에서는 그 플랜 B라는 걸 갖기가 참 어려웠습니다. 늘 최후의 보루를 갖고 사는 느낌이라고 해야 되나?


그래서 든든하게 쌓아둔 게 없이 그냥 그날 벌어 그날 사는 것 같았고, 조금 모아도 언제 곳간이 털릴지 모르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이었는데 한국에 오니까 내가 굳이 뭘 주섬주섬 모아서 쌓지 않아도 뭔가가 단단한 거예요.


특히 전화로 공적인 업무를 볼 때 그런 걸 많이 느꼈습니다. 독일에서는 어디서 전화가 오면 항상 메모할 걸 챙기고 혹시 놓치는 게 없는지 바짝 긴장하고 귀를 쫑긋해서 듣고, 여러 번 다시 체크하고 그랬거든요.


그런데 한국에서는 그런 전화받으면서도 두 손을 자유롭게 쓰고, 그러면서도 다 이해가 되고, 할 말 다 할 수 있고 모르는 건 하나부터 열까지 다 물어볼 수 있으니까 정말 너무너무 편하더라고요. 그래서 그때도 또 느꼈죠.


와… 이게 모국어로 소통한다는 게 정말 편한 거구나!
에너지가 거의 십 분의 일 정도밖에 안 드는구나!








그동안은 한국을 다녀가면서도 휴대폰 번호 없이 와이파이로만 지낼 때도 많았고, 금융거래도 거의 안 했습니다. 어딜 가든 다 현금 쓰고 다녔고, 필요할 때는 가족이나 친구들이 도와줬어요. 독일에서 그런 공적인 업무 보고 다니는데 질려서 적어도 한국에 있는 동안만큼은 인증서고 뭐고, 아무런 귀찮은 일도 하고 싶지 않았거든요.


그랬기 때문에 귀국하고 처음 한 3주 정도는 모든 걸 다 새로 배워야 했습니다. 근데 3주가 지나니까 키오스크로 주문하는 것도 익숙해지고, 카카오 택시도 부를 줄 알고, 네이버나 쿠팡으로 택배도 시키고 금방 익숙해지더라고요.


아까 한국에 온 지 5주 정도 됐을 때 예적금 통장을 만들었다고 했잖아요. 그때 은행업무 보러 가기 전에 횡단보도에 서서 손에 쥔 통장을 만지작만지작 거리면서 ‘아, 벌써 한국에 온 지 5주나 지났네! 그동안 일처리를 얼마나 하고 다녔지? 이제 뭘 더 해야 되지?’ 하면서 이렇게 그동안 해온 일들을 되새겨보는데, 문득 울컥하는 거예요.


아니, 내가 지난 12년 동안 기를 쓰고 바등바등 노력하며 겨우 일궈냈던 독일에서의 삶의 수준이 한국에 오니까 그 5주 사이에 전부 다져져 있더라고요. 딱히 바등바등한 것도 없는데 그냥, 되게 자연스럽게, 할 거 하면서 쉴 거 다 쉬면서 설렁설렁했는데도, 심지어 어떤 면에서는 한국에서 5주 동안 이룬 게 독일에서의 12년 성과보다 더 효율적이고 탄탄하니까…


참, 뭐라 그래야 되지? 좀 허탈하기도 하면서, 그렇다고 해서 독일에서의 삶을 후회하거나 부정적인 그런 건 아니고요. 뭐랄까? 저는 항상 제가 독일에서 비로소 어른이 됐다고 말을 하거든요.


그 12년이라는 시간 동안 제가 독일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서 노력하고, 겪어왔던 그 수많은 일들이 머릿속을 스침과 동시에 지금 이 한국의 횡단보도에 서서 내가 느끼고 있는 이 거대한 안정감이 가슴속을 확 파고들면서 만감이 교차하는 그런 느낌? 그래서 순간 코 끝이 찡해지더라고요.


아, 나 참 고생 많았구나!
그리고 이제야 비로소 내 자리를 찾았구나!


여러분께서는 제가 독일이 그리운지, 그립다면 얼마나 그리운지 좀 궁금하실 거 같아요. 그런데 그립다, 안 그립다! 얼마나 많이 그리운가! 뭐 이런 표현으로는 다 할 수가 없고요. 정확히 말씀을 드리자면, ‘내가 언제 한국을 떠난 적이 있었던가?’라는 표현이 맞을 것 같아요.


이건 뭐 좋다 싫다 같은 흑백의 감정이 아니라 그냥 그래요 ‘. 내가 정말 한국을 떠나서 유럽에서 12년을 살았었다고? 그랬나?’ 싶은 그런 느낌이에요. 뭐 아직 세 달 밖에 안돼서 더 지나면 어떨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지금까지는 그렇습니다.








조금 재미있는 건, 제가 독일에 살 때 항상 한국의 해가 쨍한 날씨를 굉장히 그리워했잖아요. 독일 날씨 맨날 우중충하다고!


그런데 한국에 와서 해가 쨍쨍 내리쬐는 걸 세 달째 겪으니까 어느 순간부터는 죽을 거 같은 거예요. 태양 볕에 막 내가 녹아내릴 거 같고. 특히 6월 들어서 가는 곳마다 에어컨을 트니까 실내에 들어가면 에어컨 바람에 살이 에이고, 밖에 나오면 살이 타들어가는 거 같아서 진짜 죽겠더라고요.


그러다가 어느 날 아침에 창문을 열었는데 밤새 비가 와서 세상 만물이 축축한 거예요. 하늘을 보니까 웬일로 해도 없이 하늘이 회색빛이에요. 그런데 그 순간 저도 모르게 마음이 놓이면서 편안한 겁니다. ‘아… 오늘은 좀 살만하겠네!’


그래서 제가 그때 느꼈죠! ‘아, 이게 몸이 기억을 하는구나! 나도 모르게 어느새 독일의 기후에 적응이 됐었구나!’


한국에 매년 오기는 했지만, 코로나 전까지는 아이가 어렸기 때문에 항상 성수기를 피해서 티켓이 저렴할 때 왔어요. 그래서 주로 이른 봄이나 가을같이 애매할 때 왔기 때문에 한국의 한여름, 땡볕은 지난 12년 통틀어 작년이 처음이었거든요.


그래서 올해처럼 이렇게 봄부터 여름을 온몸으로 맞아본 것도 저희는 처음입니다. 그러다 보니까 독일에서 몸이 곯아온 건 많이 회복이 됐는데, 이제는 한국의 풍토에 적응하느라 아파요.


그동안 간간히 말씀드렸지만, 빈이도 그래서 6월에는 거의 주 1-2회 꼴로 조퇴나 결석을 하고 있고요. 병원에 가도 별다른 수가 없답니다. 그냥 견디고 적응하는 수밖에 없대요. 그래서 그런 걸 볼 때 또 묘한 감정이 들죠.


12년의 시간이 결코 짧은 게 아니구나…
내가 안다고 생각했던,
나에게 맞는 날씨라고 생각했던
한국의 기후가  맞지 않을 정도로 긴 시간을
나는 밖에 있었구나.








고대 그리스 시인인 호메로스가 쓴 <오디세이>라고 아십니까? 트로이 전쟁이라고 들어보셨죠? 오디세우스라는 영웅이 그 전쟁을 마친 뒤에 고향으로 돌아가기까지의 여정을 담은 내용인데요.


이 오디세우스가 신들의 노여움을 사는 바람에 온갖 풍파와 난관을 겪고 마침내 집으로 돌아가기까지 무려 10년이라는 시간이 걸립니다. 10년! 그래서 저는 돌아올 때부터 저의 영구귀국이 꼭 오디세우스의 귀향 여정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좀 했어요.


또 10이라는 숫자가 동서양을 막론하고 의미하는 게 뭔가 가득 찬, 완전한, 완성된, 만족하는 이런 거잖아요. 그래서 하늘과 음양오행의 기운을 상징하는 십간이 있고, 십장생도 있고, 성경에는 십계명도 있는 거고요.


그렇다 보니까 이런 갑작스러운 귀국을 결정하게 된 계기는 물론 우연한 사고 때문이었지만, 결과적으로 빈이가 태어나서 딱 10년을 채운 열 번째 생일날 우리가 독일을 떠나는 비행기를 타게 된 게 저 개인적으로는 굉장히 상징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모든 것들이 무의식적으로 저 자신에게 그런 안도감도 주는 것 같아요.


할 만큼 했다!
이만하면 충분하다!


사람들은 참 이분법적인 사고를 좋아하는 것 같아요. 이쪽인지, 저쪽인지! 깔끔하고 군더더기가 없잖아요. 내 편인지 아닌지 구분하기도 쉽고! 그런데 저는 저의 삶에 대해서 그렇게 간단하게 말을 할 수가 없습니다.


제 전남편이 나쁜 사람이었는지 좋은 사람이었는지, 우리가 겪었던 그 많은 어려움들이 정말 인종차별이었는지 아니었는지, 또 독일이 살기 좋은지 한국이 살기 좋은지….


저는 이런 것들에 대해서 한 가지 답이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다만 이 모든 것들이 혼재되어 있어서 내가 어디 서 있느냐에 따라서 보이는 풍경만 달라질 뿐이지 풍경 그 자체는 그대로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독일이 살기 좋으냐, 한국이 살기 좋으냐 물으신다면, 저는 독일에 사는 동안 독일살이의 장점을 충분히 누렸고요, 행복하고 재미있었습니다. 하지만 누리는 것이 큰 만큼 결코 녹록지 않은 삶이었던 것도 분명하고요.


그리고 이제 독일에서 10년을 자란 아이와 먼 길을 돌아 한국에서 싱글맘의 삶을 시작한 지금은 또 홈그라운드의 이점을 또 충분히 누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세상에 대가 없는 일이 없듯이 한국에 살기 때문에 감당해야 하는 것들을 또 겸허한 마음으로 받아들여가고 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귀국한 이래로 아직까지 단 한 번도 저의 영구귀국에 대한 결정을 후회해 본 적이 없고요, 앞으로도 그럴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이민을 간 적이 없기 때문이에요. 갑자기 들으시는 분들은 이게 무슨 말인가 싶으시겠지만, 농담이 아니라 진짭니다.


제 영상을 비롯해서 브런치 모든 글들을 정독해 보시면 알겠지만, 저는 지난 10년 동안 저 자신을 “이민자”라고 표현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습니다. 저도 제가 이민 간 적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지 얼마 안 됐고, 이걸 깨달았을 때 식스센스 반전 부분 저리 가라 할 정도로 소름이 끼쳤습니다.


이 부분에 관해서는 또 차차 말씀드리도록 할게요. 참! 그리고 다음 시간에는 여러분을 위한 귀한 선물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어떤 선물인지 궁금하시죠? 정성스럽게 준비했으니까 많이들 와서 받아가시기 바랍니다!


그럼 오늘도 영상이 즐거우셨기를 바라고, 여러분의 구독과 좋아요는 자유, 세상 모든 한부모 가정을 향한 자유입니다! 다음 영상에서 봬요! 안녕!



* 아래 링크를 클릭하시면 생생한 영상으로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https://youtu.be/xTtwCIPWeKg?si=CZnb-RWGeJwn68a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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