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사는 모습을 보고 나도 사 => 네가 사는 모습을 보고 나도 살아
상담을 다녀와서 <독립은 여행>을 마저 읽었다. 우연히 알게 된 작가의 인스타 계정을 팔로우하고, 좀 더 자세히 보게 된 것은 아빠에 대한 이야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나처럼 아빠가 일찍 돌아가셨구나. 그 슬픔을 이렇게나 솔직하게 계정에 올리고 자연스럽게 대하고 있구나. 어느 날은 아빠 생각에 슬펐다가, 다른 날에는 재미있는 가슴 뛰는 일 이야기를 하는구나. 아무래도 그렇게 살고 싶었던 것 같다. 인스타그램을 하다 보면 이 판을 이끌어가는 듯 보이는 마케터들이 있다. 시장을 만들고 소비를 유도하는 데에 심지가 있고 이야기가 있는 몇몇의 유명한 마케터와 그 주변에 함께하는 사람들이 근사해 보인다. 그리고 그들이 파는 것은 사람들의 결국 욕망할 수밖에 없는 가치들이 포함되어 있다. 자유, 희망, 다양성, 도전과 주도성 등. 어떤 때는 나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단 생각을 했다. 물건에 큰 애정은 두지 않지만, 허툰 소비는 경계하며 하나를 살 때 까다롭게 보는 성정을 가졌으니. 종종 친구들이 나를 믿고 물건을 사고 만족했던 경험, 제품을 만들어 본 경험, 기획을 하는 지금의 직업을 보아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지금 책을 읽어 보니, 나는 그냥 이 작가의 삶의 흐름을 따라가고 싶었던 것 같다. 아니 저렇게밖에 흘러갈 수 없겠구나 예견하고 받아들이려 했던 것 같다. 그를 따라 밑미에서 음악 리추얼도 해보고, 그가 쓴 책도 읽으면서. 그가 하는 이야기를 다 들어보고 싶었다. 나도 그랬는데, 당신은 그렇게 흘러갔군요. 하고 힌트를 종종 얻으면서.
태어난 이상 나는 나로 살아야 한다. 그와 내가 분명히 다른 점이 있다는 것, 나는 결코 어느 누구도 따라갈 수는 없다는 것을 안다. 내가 느끼기에 그는 조금 더 돈과 가까운 업을 선택하고 흘러갔다. 시대에도 맞고 본인과도 맞는 길. 나는 하고 싶은 일을 선택하지 않았다. 아직은. 해보니 괜찮은 일이 지금의 직업이고. 그건 돈을 부르는 직업은 아니었다. 내가 나로 살기 위해 회사에 갇히지 않으려면 분명히 돈이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나는 아직 채워야 할 경험이 많다. 그도 수많은 회사를 다니며 쌓아 온 결과일 테니 조급해지지 않으려 한다.
'불안하다. 우울하다. 이 기분이 아주 오래갈 것만 같다.' 이런 생각들이 자연스럽다는 것을 안다. 아주 힘들지만 하루를 넘겨 보면 또 새로운 기분과 하루가 찾아온다는 것을 안다. 안다는 것이 중요하다. 전에는 몰랐다는 것이 다르다. 나는 계속 이렇게 마음이 가는 누군가가 사는 모습을 보고, 살아왔고 살아냈다.
'당신이 사는 걸 보고, 나도 산다.' 이게 인간의 정의 아닐까? 누군가는 내가 사는 모습을 보고 하루를 살기도 할 것이다. 소셜미디어의 방향은 이렇게 흘러가야 맞는 게 아닐까.
머릿속에 맴도는 몇 가지 하고 싶은 일이 있다.
1. 예민하고 불안도가 높은 내가 살아가는 모습을 나누고 싶다. 나도 진짜 불안하고 예민한데요. 이런 거 해봤어요. 괜찮던데요? 괜찮다는 경험을 많이 보여주고 나에게도 느끼게 하고 싶다.
2. 요가를 통해 임계점을 자주 도달해 보고 싶다.
며칠 전 요가원에서 수업이 끝난 후 자세 질문을 하다가, 선생님이 추가로 내게 해주신 이야기가 있다. 마음이 강해지려면 임계점을 자꾸 넘어야 해요. 이날 수업에서도 나는 더 갈 수 있는데, 멈춘다고 하셨다. 더 돌리고 더 가보라고. 더 갈 수 있는지도 몰랐다 나는. 내가 계속 내가 떠 놓은 주물에 누워 그 공간만을 뻣뻣하게 채우려 할 때, 선생님 같은 존재가 내 주물을 더 만져주고 빈 공간을 찾아주고 다른 주물로 이사도 시켜준다. 나는 본능적으로 그런 사람들을 찾아다니고, 따랐다. 함께 사는 Y언니가 그렇고, 요가 선생님, 상담 선생님, 학교 교수님, SNS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는 사람들. 아주 잘해왔다고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싶다. 앞으로도 그러면 돼. 혼자 해내야 할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답니다.
3. 까탈부리게 되어 가기 싫은 여행지를 눈 딱 감고 다녀와 보고 싶다. 지레 겁먹는 일들을 해보고 싶다.
4. 아이들을 정기후원할 것이다.
5. 그림을 꾸준히 연습해서 나의 이야기를 담을 것이다.
6. 글을 거창한 마음 없이 쓸 것이다. 친해지고 싶다. 상담을 하며 내가 감정에 이름 붙이기를 어려워하고, 어떤 상황에서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 읽어내는 것을 어려워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내 글에도 그런 점들이 부족함을 안다. 하지만 오늘 교수님이 칭찬해 주셨던 이상심리학 위클리페이퍼를 다시 읽어보았다. 교수님이 내 글을 좋다고 칭찬해 주셨던 글들. 특정 심리 장애에 관한 논의 주제에 내 생각을 정리하는 글이었고, 나름 근거를 찾고 창의적으로 문제에 접근하며 논리적으로 글을 써야 하는 페이퍼였다. 나는 그런 글에 강하다. 이건 되는데 저건 왜 안될까? 요리조리 생각해 보고 틈을 좁혀나가는 집요함에 강하다. 부족한 부분은 쓰다 보면 채워질 것이고, 퇴사하고 많은 것들을 경험하며 더 진해질 것이다. 오늘도 상담선생님이 요가선생님의 임계점 이야기를 들으시고는 내 글이나 내 주변과의 관계에서도 좀 더 들어가 보아도 좋을 것 같다고 하셨다. 나는 예열도 필요하고 자주 만나 친해지는 과정도 필요하다. 조급해하지 않고 꾸준히 친해지며 다양하게 시도해 볼 것이다. 어떤 날은 상담을 하면서 선생님의 질문이나 감정 언급에 괜히 더 조급함이 생기기도 한다. 나는 당장 그게 안되는데, 그렇다고 내가 안 하겠다는 건 아닌데. 그런데 확실히 아는 건 나는 그 이전으로 돌아가진 않을 거라는 것. 임계점을 조금씩 늘려갈 것이지만, 처음 자세로 돌아가진 않을 거라는 것이다.
7. 집을 더 사랑하고 우리의 생활 방식과 맞게 채워나갈 것이다. 침대를 없애는 것을 고려해 보아야겠다.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고 창작으로 채워나갈 공간이 분명히 필요하다.
8. 그렇게 나를 더 찾아 채워나가며 결혼도 우리스럽게 치를 것이다.
9. 삶의 목적을 찾을 것이 아니라, 이 삶자체를 즐기고 기대하며 살 것이다.
10. 빵도 만들고 카페도 열고, 미술학원도 열고, 아이들이 자유롭게 드나들고 직접 주문도 해보는 카페도 열어보고 싶다.
11. 영어로 이 정도의 내 마음을 나눌 수 있을 정도로 대화 실력을 키우고, 해외 경험도 해보고 싶다.
하고 싶은 거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