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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ot May 19. 2023

존엄한 공간

소록도 중앙공원


1934년에 지어진 검시실 건물이다. 얼마나 많은 무지의 희생자들이 여기서 사라져 갔을까.


주차장에서 소록도 중앙공원으로 가는 길은 화창한 날씨가 눈에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엄숙했다. 늘어선 소나무 중 몇몇은 섬을 벗어나려는 듯 바닷가를 향해 뻗어가고 있었다. 100년 전과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 같은 나무사이로 불어오는 바닷바람이 사그라질 때 즈음 국립소록도병원에 도착한다. 병원을 지나면 소록도 중앙공원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그리고 공원 풍경을 눈에 담기도 전에 검시실이라고 이름 붙은 건물이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건물 내부 한가운데 묵직하게 자리 잡은 검시대가 야속하게 햇살을 받고 있었다. 세월을 이겨낸 창틀의 노란색 페인트는 잔인함을 숨겨주는 듯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깨진 유리 사이로 불어 들어오는 바람이 포르말린 냄새를 진작에 날려 보냈겠지만 이상하게도 코와 눈이 계속 찡그려진다.

그리 크지 않은 공간이지만 한참을 머물게 되는 곳이다. 벽에 붙어있는 엄숙한 관람을 부탁하는 글을 몇 번이고 쳐다봤다. "한 많은 삶을 사신 분들의 육신이 마지막 머물다간 존엄한 공간"이라는 문장이 이곳의 아픔을 너무나 잘 묘사해 준다.


검시실을 나와 공원으로 들어가면 대천사 미카엘이 한센병 세균을 무찌르는 조형물이 있다. 그 밑에 새겨진 글귀가 다시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한센병은 낫는다"



국립소록도병원 중앙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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