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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ot May 13. 2023

맥도날드

동인천역 앞

지금의 것이 아닌 것 같은 간판 디자인이었다. 검색해 보니 90년대 간판 그대로였다. 문이 생각보다 묵직하다. 온몸에 힘을 주며 어깨로 밀고 들어가니 차가운 색온도의 어둑한 조명과 특유의 비린 패티 냄새가 코로 들어온다. 들어가자마자 주문을 위해 두리번거렸지만 키오스크는 없고, 카운터에서 직원분이 인사를 한다. 오랜만에 기계가 아닌 사람에게 주문을 한다.

성격 때문인가. 어떤 매장을 가든지 카운터 앞에 서면 내 뒤에 아무도 없어도 오래 고민하면 죄짓는 기분이 든다. 다행히 맥도날드에서 먹는 점심은 메뉴를 볼 필요도 없다.

"빅맥 세트 하나 주세요"

잠시 후 나이 든 것처럼 살짝 휘어진 트레이 위에 버거세트를 받아 들고 음료컵이 넘어지지 않게 닌자 걸음으로 2층으로 올라갔다. 의외로 창가 자리는 만석이다. 두리번거리다 안쪽 벽을 등지고 바깥이 보이는 자리를 잡았다. 테이블 다리 한쪽이 떠있는지 약간 덜렁거린다. 발로 테이블 다리를 누르고 다리를 꼬니 안정적이다. 햄버거 포장지를 벗기고 손가락 네 개로 빵 위쪽을 누르며 타워가 무너지지 않게 고정시킨 동그란 종이를 올려 뺀다. 포장지로 다시 조심스레 감싼 후 손가락으로 양쪽 빵을 고정시켜 잡는다. 한 입 베어 물고 감자튀김을 미리 짜놓은 케첩에 찍어 먹는다. 고개를 드니 창밖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여름이 되면 창밖을 다 가릴 것 같은 플라타너스 나무와 그 뒤로 오래된 건물이 보인다. 댄스학원과 7080 라이브라는 간판이 컬러풀하게 각 층에 달려있다. 오랜만에 보이는 전당포라는 빨간 글씨가 시선을 강탈하고 그 옆에는 비뇨기과가 장사가 잘되는지 건물을 독차지하고 있다. 레트로 한 분위기를 깨는 신축건물이 오히려 눈에 거슬린다. 90년 대에 멈춘 듯한 흔적들이 곳곳에 보인다. 언젠가 이 동네도 바뀌겠지만 여기 맥도날드 만큼을 그대로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빵 사이로 삐져나온 소스 때문에 손이 끈적인다. 손가락을 한 번 쪽 빨고 휴지로 대충 닦는다. 트레이 위에 담긴 쓰레기들을 휴지통에 밀어 넣고 밖으로 나와서 다시 한번 간판을 올려본다. 간판 아래로 동인천역이 보인다. 플라타너스 잎이 가득 찰 때 다시 와봐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걸음을 옮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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