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root Jun 10. 2023

소심한 사진가

인천대교 아래

팔미도 촬영을 하고 되돌아오는 길이다. 일몰이 인천대교 뒤로 펼쳐질 거라는 기대에 유람선 후미에 자리를 잡았다. 배가 지나간 흔적으로 파도가 생기고, 반사된 햇빛이 일렁거리며 눈을 찡그리게 했다. 행여나 바다에 빠뜨릴까 두려워 카메라를 손아귀에 꽉 쥐고 어깨엔 힘이 잔뜩 들어가 있었다. 실제로 어떤 사진작가가 배 후미에서 사진을 찍다가 카메라를 바다에 빠뜨린 에피소드를 들었던 적이 있어 더 신경이 쓰였다.


문득 옆에서 시선이 느껴져 고개들 돌렸더니 챙모자에 보잉선글라스를 쓴 할아버지께서 신기한 듯 내 카메라를 쳐다보고 계셨다. 그리고 눈이 마주치는 동시에 우려하던 일이 발생했다. 이야기를 시작한 것이다. 감정은 없지만 티는 나지 않게 웃으며 대답했다. 듣고 있지만 들리지 않았다. 동행한 에디터에게 '너까지 휘말릴 수 있으니 얼른 자리를 피해'라는 눈빛을 보내며 턱을 살짝 치켜올렸다. 먼저 선실로 들어가라는 체스처였다. 그녀는 눈치를 보더니 뒷걸음질로 선실로 들어갔고, 나는 남겨졌다.


지금에 와서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전반적은 대화(?) 내용은 어르신께서 전국 각지를 여행한 후기였던 것 같다. 어디 어디를 가봤고 나에게 어디를 가보라며 추천도 해주셨던 것 같다. 난 뷰파인더를 보면서 "네, 하하, 네, 네, 하하하" 하는 리액션만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반대편 옆에서 듣고 계시던 또 다른 어르신께서 맞장구를 치신다. 구세주가 등장한 것이다. 이내 두 분의 대화가 이어지고 난 타깃오디언스(target audience)에서 벗어났다. 내적평화를 느끼며 페인트가 두툼하게 칠해진(소금기에 의한 부식을 막기 위해서 인 것 같다) 난간에 팔꿈치를 기댔다. 구름 때문에 사라진 일몰의 잔상을 아쉽게 쳐다보며 셔터 누르는 걸 멈췄다.


'극소심'한 성격이라 모르는 사람과의 대화가 쉽지 않다. 할 말이 없어 침묵이 1초만 흘러도 눈꺼풀이 떨리고 손으로 얼굴을 만지기 시작한다. 제발 이 순간이 빨리 지나갔으면 한 게 한두 번이 아니다.

거부에 대한 두려움과 무시하는 듯한 시선은 나를 더욱 주눅 들게 했다. 물론 사람들이 나를 그렇게 대하지 않는 건 알고 있다. 하지만 착각이 생각을 지배하는 법.

적극적이지 못한 행동이 마치 소심한 자들의 특권 같다는 생각마저 든다. 요즘엔 소심한 자들의 존재가 알려지니 마음이 조금은 편해진다. 택시를 타면 기사님이 제발 말 좀 안 걸었으면 하는 생각을 한 게 20년 전인데 나만 그런 게 아니었나 보다.



작가의 이전글 흔적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