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고
해 질 무렵이 되면 운문사 범종루 2층에 빛이 비스듬히 들어온다. 비구니승이 하나둘 자리를 잡고, 잠시 후 둥둥거리는 법고 소리가 온 산에 울려 퍼진다. 방문객들이 마치 최면에 걸린 것처럼 가던 길을 멈춘다. 그리고 소리가 나는 곳으로 시선을 향한다. 주변의 시간과 공간이 멈춘 채 법고의 가죽이 진동시키는 공기의 떨림만이 느껴졌다. 유일하게 살아있는 심장 소리 같았다. 심장을 가진 생명의 삶을 표현한 듯한 북소리의 스토리텔링은 기승전결이 완벽했다. 약하게 시작한 심장소리는 점점 힘을 가지다가 마지막에 서서히 사그라든다. 멜로디가 없는 단일음 만으로 한 생명의 일생을 본 듯했다.
법고 소리가 끝나면 몇 번의 범종 소리가 긴 여운을 가지며 울려 퍼진다. 마지막에 울린 종소리의 끝이 길게 늘어지다가 아지랑이처럼 흐물거리며 사라졌다. 멈췄던 시간이 다시 흐른다. 사람들이 발을 끄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바람으로 인한 숲의 마찰음과 거기 어딘가에 있을 것 같은 새소리, 온갖 곤충들이 몸을 비비며 내는 소리도 주변에 울려 퍼진다. 원래부터 흐르고 있던 개울가의 물소리도 그제야 알게 됐다.
심장 소리를 들을 수 없었던 배아의 초음파 영상을 본 지 반년이 지났다. 문득 십수 년 전에 운문사에서 들었던 법고 소리가 생각이 났다. 생명을 가진 것이 들려주는 심장 소리와 비슷해서 그렇게 감동과 전율을 느꼈나 보다. 오래전 운문사에서 찍은 필름 사진을 뒤적이다 듣지 못했던 심장 소리를 상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