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봉화군
기차역이라고 하기엔 초라하지만 어째서인지 단단해 보인다. 언뜻 보면 역 인지도 모를 정도. 이 역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담은 영화의 포스터가 밖에 붙어있지 않았다면 몰랐을 것이다. ‘양원역 대합실’이라고 적힌 나무로 된 현판은 나중에서야 눈에 들어왔다.
양원역을 찾으려면 겹겹이 놓인 산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높은 곳에서 보면 물의 흐름에 의한 침식 작용으로 생겨 났음을 한눈에 알 수 있는 계곡이 보인다. 계곡을 따라 흐르는 물은 낙동강이다. 기찻길이 강을 따라가다 가로지르다 하며 이어진다. 그렇게 경북 봉화를 지나는 이 기찻길은 일전에 글로 썼던 강원도 삼척의 ‘도경리역’까지 이어진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는 형태는 도경리역 보다 더 드라마틱하다. 과거에 사람들이 오가던 길을 따라서는 둘레길이 조성되어 있다. 고개를 들면 하늘이 세평 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둘레길 이름이 ‘낙동강세평하늘길’이다.
계곡 아래에 위치한 임시주차장에 차를 대고 5분 정도 걷다 보면 하얀색 페인트로 칠해진 작은 건물이 보인다. 양원역이다. 건물 곳곳엔 <영화 ‘기적’ 촬영지> 홍보 포스터가 붙어있다. 지붕은 빗소리가 좋은 것만이 유일한 장점인 슬레이트로 덮여 있다. 역사 앞 철길 건너 물소리가 쉴 새 없이 들려온다. 이따금 기차가 오면 디젤엔진 소리에 물소리가 묻힌다. 정차하는 기차에서는 사람이 거의 내리지 않는다. 일반여객열차와 관광열차가 오가는데 그나마 관광열차가 정차하면 사람들이 내려서 역사 구경을 좀 하다가 가는 편이다.(관광열차는 일반여객열차보다 더 오래 머문다.)
대합실 내부를 들어가면 작은 창문으로 빛이 새어 들어온다. 그 앞엔 얼마나 많은 이들이 앉았는지 반질반질 해진 의자가 놓여있다. 녹이 쓴 난로는 불을 때면 아직도 따뜻할 것 만 같다.
양원역은 우리나라 최초의 민자 역사라는 수식어가 항상 붙는다. 과거에 열차가 아니면 접근이 힘든 열악한 교통 환경 때문에 마을 주민들이 돈을 모아서 직접 역사를 지은 것이다. 처음 봤을 때 건물이 왠지 튼튼해 보였던 이유는 행여나 무너질까 봐 주민들이 진심을 다해서 지었기 때문이 아닐까. 몇백 년은 충분히 버틸 것처럼 보인다.
생계를 위해 짐보따리를 머리에 이고 가는 사람들은 이젠 거의 보이지 않는다. 등산가방을 멘 등산객들만 둘레길을 찾아와 잠시 쉬어 간다. 매미소리 가득한 골짜기 한가운데서 물소리와 기차 소리를 번갈아 들으며 역사에 앉아 나도 잠시 쉬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