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아래 빌라가 다닥다닥 붙어있던 동네 골목길을 지나는 중이었습니다. 배가 어찌나 고팠는지 고양이 한 마리가 음식물 쓰레기 통에 머리를 집어넣고 있었습니다. 머리를 좌우로 흔들어 대며 음식물을 꽁꽁 싸맨 비닐봉지를 쥐어뜯었죠. 옆에 사람이 지나가도 경계심이 전혀 없었습니다. 배가 너무 고파서 정신이 없어 보였습니다. 심지어 맞은편에 덩치 큰 개가 쳐다보는데도 전혀 모르고 있었습니다. 알아도 도망칠 기운조차 없었겠죠. 개조차도 그 고양이가 안쓰러웠는지 그냥 한번 보고 지나치더군요.
털은 전날 내린 비 탓인지 며칠을 안감은 머리카락처럼 덕지덕지 엉켜 있었습니다. 몸 여기저기에는 상처와 핏자국이 보였습니다. 약육강식의 싸움에서 패배한 듯 보였습니다. 고양이는 음식물 쓰레기통에 한참을 머리를 박고 있다가 자동차 엔진 소리를 듣고 그때서야 자리를 떴습니다. 나중에 보니 음식물을 싸맨 비닐봉지가 꽤 견고해 보여서 배를 채운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게다가 먹지 못하는 음식이 대부분이었을 겁니다.
며칠 뒤에 백화점 앞을 지나다가 또 다른 고양이를 만났습니다. 그 녀석은 백화점 주변에 조성된 사람 허리 높이 정도 되는 화단을 영역 삼아 가끔 명품 광고판 앞에 내려와서 휴식을 취하는 것 같았습니다. 오가는 사람들이 쓰다듬어주고 사진도 찍어주며 먹을 것도 주는 것 같았습니다. 화단 구석엔 누군가 가져다주는 것 같은 사료 그릇이 있었습니다. 털은 미용실에 다녀온 것처럼 매끄러웠습니다. 눈빛도 여유롭고 당당해 보였습니다. 유동인구가 많은 곳임에도 불구하고 경계심이 전혀 없었죠. 바로 앞은 차량 통행이 많은 도로임에도 그 고양이는 교육이라도 받은 것처럼 건물에 최대한 붙어 있었고 도로 근처엔 얼씬도 하지 않았습니다. 백화점 벽 앞에 가만히 앉아 있으면 사람들이 와서 이뻐해 줍니다. 누가 봐도 이 고양이는 관심과 사랑을 받고 있었습니다.
사람이든 고양이든 관심을 받는 것은 중요합니다. 사는 환경이 달라서 두 고양이가 서로 다른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환경보다는 관심이 삶에 더 큰 영향을 줍니다. 백화점 앞의 고양이는 그 앞을 지나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관심과 사랑을 받고 있었습니다.(심지어 관심받는 법을 알고 있는 듯이 보였습니다.) 그것이 백화점 앞의 고양이가 더 건강하고 잘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입니다.
우리는 서로에게 관심을 주지 못하는 것이 환경 탓이라고 생각하는 건 아닐까요. 환경이 좋고 여유가 있어야 많은 관심을 줄 수 있는 거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맞는 말처럼 들립니다. 하지만 '환경'이 '관심'으로 이어지는 인과관계를 성립시키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반대로 관심이 환경을 바꿀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 더 맞는 말이겠지요.
일전에 인적 드문 산속 공원에서 사는 두 마리의 고양이를 만난 적이 있었습니다. 누군가 빗질해 준 것처럼 털이 깨끗했습니다. 주변에 밥그릇도 놓여 있었습니다. 길 한복판에 누워있다가 제가 다가가니 누워서 배를 보여 줍니다. 사람에게 관심과 사랑을 받았고 저에게도 관심을 보이는 것 이겠죠. 상처를 입고 음식물 쓰레기통에 머리를 박고 있던 저 고양이가 관심과 사랑을 받는다면, (더 넓고, 안전하고, 자유로운 환경에서) 분명 도심 한복판의 백화점 명품 간판 앞의 고양이 보다 더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