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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도하지 않은 사진

부안 변산반도 솔섬

by root


원하는 데로 되는 게 하나도 없다. 이날도 그랬다. 얼마 남지 않은 마감을 앞두고 최대한 좋은 날을 골라 부안 변산반도로 향했다. 솔섬이 보이는 해안에 도착한 건 밤 10시가 넘어서다. ‘맑음’이라는 예보와 달리 멀리 수평선에서부터 구름이 끼기 시작했다.

갯벌은 드러나 있었다. 마감에 쫓겨 물때까지 체크할 여유는 없었다. 아쉬움은 그냥 묻어두고 구름이 더 오기 전에 촬영을 서둘렀다.

인공광도 심했다. 가로등과 등대가 내뿜는 불빛이 별빛을 가리고 있었다. 저 멀리 바다 위에 떠있는 고기잡이 배들의 빛도 분명 별을 찍는데 방해가 될 것 같았다.

은하수가 안 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솔섬 앞에서 고개를 들어 몇 초간 하늘을 응시했다. 은하수는 보이지 않았지만 별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나마 다행이었다. 어릴 적 가로등 하나 없던 시골길에서 고개들 들었더니 펼쳐진 은하수가 아직도 생생하다. 이제는 시골에서도 은하수를 맨눈으로 보기가 힘든 것 같다.


과연 카메라에는 잡힐 수 있을지. 스마트폰 앱을 이용해 은하수의 방향을 확인한 뒤, 카메라 렌즈를 그쪽으로 맞췄다. 10초의 셔터가 끊어지고 액정에 사진이 나타났다. 흐렸지만 분명 은하수가 찍혀 있었다.

의도치 않게 구름과 은하수가 잘 어울렸다. 각기 다른 인공광들이 먹구름에 다양하게 색을 입히고, 거기서 은하수가 갈라져 나온 것 같았다. 간조 때문에 드러난 거친 바닥은 별과 조화를 이뤘다. 방해가 될 거라 생각했던 등대 불빛은 솔섬 옆에 포인트를 준 듯했다. 별처럼 빛나는 바다 위 고기잡이 배들은 구름 낀 수평선을 심심하지 않게 만들었다.


뜻 대로 되는 일 하나 없는 그런 세상이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게 나쁘게만 흘러가는 건 아니다. 이날처럼 방해요소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예상치 못하게 내게 도움이 되기도 한다. 억지로 뭘 하려고 하지 말아야겠다. 그냥 흘러가는 데로 살아보자. 어떻게든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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