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Zakia의 단칸방

Morocco Diary / Fez

by 이인

조악한 스테인글라스 창을 뚫고 들어온 햇살에 눈이 부셔 눈을 떴다. 몇 개월만의 목욕 덕분인지 참으로 오래간만에 단잠을 잤다. 이미 조금 늦은 아침, 쫓겨 다녀야 할 스케줄 따윈 없는 내게 다시 하루가 주어졌다. 침대에서 뒹굴거리며 오늘은 무얼할까 생각하다가 어제 받아 둔 Zakia의 번호를 꺼냈다.


공중 전화를 찾아 Zakia와 통화를 했다. 워낙 방향감각이란 것이 제로인지라 그녀의 집을 찾아가는 건 일찌감치 포기하고 어제 그녀를 만난 그 함맘 앞에서 다시 만나기로 했다. 호텔에서 나와 소금 범벅인 감자튀김 몇 개를 사 먹고 또 그 옆의 리어카에서 잘생긴 귤 몇 개를 골라 함맘 쪽으로 향했다. 그리고 조금 뒤 Zakia와 함께 몇 번의 골목길을 돌아 조그만 집 앞에 도착했다.


“들어가자, 여기가 내가 사는 집이야”


그녀의 방은 작았다. 말 그대로 단칸방이었다.

그녀의 집에 들어서는 순간 나는 내심 아주 전통적이거나 현대적인 모로코 스타일의 집을 기대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무슨 속물적 근성이었을까. 아마 한국이었다면, 그리고 누군가를 초대한다는 건 어쩌면 자신이 집을 보여 줄만한 자신이 있기 때문이라는 때 묻은 생각이 여전히 남아 있었기 때문일 수도 있었겠다.


그녀의 방 한 구석엔 작은 화로가 있고 또 방 한구석에 옷장이 있었으며 또 방 한 구석엔 몇 가지 침구들이 정갈하게 개어져 있었다. Zakia의 두 딸은 미국에 있고 현재 양어머니와 문제가 있어 어쩔 수 없이 혼자 나와 살고 있다는 얘기를 들려주었다. 미국에서 8년 정도를 살아서 유창하게 영어를 할 수 있게 되었고 또 지금은 매일 이곳의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며 삶을 꿋꿋하게 이어가고 있다는 그녀였다.


부끄러웠다. 그녀의 이야기를 다 듣기도 전에 나도 모르게 그녀를 평가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부끄러웠다. 나라고 가진 게 뭐가 있는가. 여행을 떠나 오면서 절실히 느낀 한 가지가 있다면 나를 둘러싸고 있던 ‘사회적 관계’라는 것이 다 끊겨버린 나는 탯줄 끊긴 신생아와도 같다는 것이었다. 이 타국에서 나를 증명할 수 있는 건 회사의 이름도, 나의 직업도, 값비싼 장신구들도 아니다. 오직 나를 통해서, 그저 이 몸뚱이와 미소와 대화를 통해서 보여주는 수밖에 없었다. 그런 주제에 호의에 고마워하고 말 것이지 그것에 기대를 하고 또 내심 실망을 하다니. 그런 철없는 생각들은 어제 그 시꺼먼 먼지 때처럼 씻겨졌어야 했다.


아마 이곳을 여행하는 동안에 이런 일들은 종종 있을 것이다. 아마 또 속물적인 본성이 튀어나오는 날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어떤 깨달음이 뜨겁게 느껴졌으니 남은 여행 동안에는 오로지 감사한 마음만을 갖자고 되뇌었다. 그래서 내 속의 발가벗은 진심을 보여주고 또 당신의 마음속 깊은 곳 뭔가를 발견할 것이라고. 더 솔직한 눈으로 서로를 바라볼 수 있도록 할 것이다.


두런두런 얘기를 나누던 중에 그녀의 조카라는 꼬마 아가씨가 이야기를 끊고 집으로 들어왔다. 창 밖으로 노을이 지는지 벽면 한 곳의 소박한 창을 통해 들어온 다홍빛의 노을이 Zakia의 얼굴에 맺혔다. 그녀의 조카에게 영어를 가르칠 시간이 다 되어 나는 그만 그곳에서 일어났다. 나를 초대해주어 감사했고 또 처음 보는 내게 어떤 경계도 없이 솔직한 이야기를 들려주어서 고마웠다. 그리고 그녀는 찬장을 뒤적뒤적하더니 자기가 직접 만든 거라며 쿠키를 꺼내 주었다. 그녀가 들려준 이야기만큼이나 솔직하게 생긴 소박한 쿠키, 나는 그중 몇 개를 골라 쥐고 그곳을 나왔다. Zakia, 지금의 당신도 그때처럼 당당하길. 그래서 더 행복하길.


Zakia와 그녀의 조카 Nohr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