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비자 에똥드(Visa étendre)

Rabat

by 이인

주머니보다는 시간이 두둑한 장기 여행자의 날들이라 그런지 시간 개념이 흐릿해졌던 모양이다. 아무 생각 없이 탁자 위의 여권을 뒤적여보니 비자가 만료되기 겨우 이틀 전이었다. 무비자 여행 국가인 이곳에서 여행이 가능한 유효 기간은 3개월. 비자를 연장하려면 어떤 곳을 찾아가야 할지, 무어라고 말을 해야 할지 막막했다. 나는 여권과 얼마간의 현금을 챙겨 들고 함께 살았던 친구들이 있는 곳의 문을 두드렸다.


‘비자 에똥드. 비자 에똥드’


수업이 비는 시간이라 마침 집에 있던 Ardwan(아르드완)이 이곳의 공공기관에서는 보통 불어를 사용한다고 했다. 이런 민원을 처리한다는 구청의 위치를 알려주며, '비자 에똥드'라고 하면 아마 그들도 알아들을 거라고 했다. 나는 시킨 대로 '비자 연장 (비자 에똥드)'이라는 말만 되뇌며 그가 알려준 건물로 향했다.


다행히 친절한 여직원이 내 업무를 담당해 주었고, 여권을 보여주며 계속 반복했던 비자 에똥드라는 말을 바로 이해한 것인지 비자 연장은 생각보다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십여분 지난 뒤에 나타난 그 여직원은 불어로 쓰인 종이 한 장을 내게 주었고, 나는 그녀와 미소를 교환하며 그곳에서 나왔다. 지금까지의 날들을 돌아보면 너무 순조롭게 해결된 게 오히려 의심이 들기도 했지만, 시간이 지나자 그 의심은 곧 무뎌졌다. 일주일 즈음 지났을까, 나는 친구들의 식사 초대에 기분 좋게 방문해서 그간 밀린 수다를 떨고 있었다. 내게 '비자 에똥드'라는 단어를 알려줬던, 하지만 부끄러움이 많아 무뚝뚝한 편이었던 Ardwan(아르드완)이 내게 오더니 혹시 재발급받은 서류는 어떻게 생겼는지 볼 수 있냐고 묻길래 나는 덕분에 잘 해결했다며 일기장 사이에 접어 놓은 그 서류를 흔쾌히 넘겨주고는 다시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런데 Ardwan(아르드완)이 내 어깨를 툭툭 치며 말했다.


"켄자, 이건 비자 연장 서류가 아니야"


"뭐? 그럼 이건 뭔데?"

라고 물으니 생각하지도 못했던 대답이 돌아왔다


"무범죄 확인서 같은 거야,

너에게 범죄 기록이 없다는 증명서."


"이런 … 그럼 난 지금 불법 체류자인거네..."


다음 날, Ardwan(아르드완)이 동행해주어 다행히 제대로 된 관할 부서를 찾았지만 한 번 꼬인 일이라, 게다가 법을 어긴 체류자의 신분이라 해결까지 과정은 꽤나 복잡했다. 한국 대사관을 몇 번이나 찾아가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설명해야 했고 관련 부서에 협조를 요청하기 위한 이메일 작성 및 서류 작성을 해야만 했다. 그렇게 불법 체류자로 2주일이 지났고 대사관이 내게 내린 처방은 비자 만료 후 기간이 너무 많이 지났으니, 모로코에 더 머물고 싶다면 내일이라도 당장 다른 나라로 출국했다가 다시 들어와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면 당연히 체류 기간을 3개월 더 갱신할 수 있으니까.


그렇게 계획에도 없던 스페인에 갈 일이 생겨버렸다. 이번 일로 알게 된 것이었지만, 모로코의 가장 북쪽의 항구 도시인 *탕제(Tánger)에서 배를 타고 30여분이면 스페인을 갈 수 있었다.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그것이 유일한 방법이었다. 여느 때 같으면 유럽 땅을 밟는 일정에 그저 쾌재를 불렀겠지만, 체류 기간이 늘어 난 탓에 쪼개어 쓰고 있던 경비에 대한 걱정이 먼저 앞섰다. 내 마음을 읽었는지 가장 친절한 친구인 Norman(노먼)은 탕제 근처에 있는 도시, Asilah (아실라)에 친한 친구가 있으니 연락 해두겠다며 안심시켜주었다. 내일은 아침이 밝는 대로 스페인으로 갈 예정이다. 난 지금, 불법 체류자니까.


함께 생활한 9명의 고마운 친구들 (아르드완은 내 뒤 아이보리색 니트를 입은 친구)
비자 연장 서류로 착각한 무범죄 확인서


*Tánger

아프리카 대륙의 북서단 지브롤터 해협에 면한 항구도시이다. (모로코 북부의 지명. [다른 이름] 탄자 Tanja · Tanjah(아랍), 탕제 Tanger(프랑스), 탕게르 Tanger(독일), 탕헤르 Tánger(스페인), 탕지르스 Tangiers.). 현지 친구들의 발음은 '탕제'에 가까워 모두 '탕제'로 표기하였다. Ferry를 타고 (약 220DH) 지브롤터 해협을 건너 15km 남짓 거리를 항해하면 유럽 최남단 이베리아 반도의 끝에 있는 스페인 항구도시 Tarifa (따리파)로 갈 수 있다. 이때, 탕제에서 흥미롭게 본 것이 엑스포 유치를 위한 광고판들이었는데 모로코 혹은 탕제를 그저 북아프리카의 낙후된 아랍 국가 혹은 도시로 보는 시선들도 있겠지만, 탕제는 당시 여수와 함께 접전을 벌이던 천혜의 환경을 가진 도시임을 알 수 있다.

** 비자

모로코는 우리나라와 사증 면제 협정(1993.9.1)이 체결되어 있어 무비자 입국 3개월간 체류가 가능하다. 본래 현지 투자나 취업 및 사업 등으로 3개월 이상 장기 체류를 하려면 사전에 주한 모로코 대사관에서 장기 체류 비자를 발급 받아야 하지만 2012년 기준 현재 주한 모로코 대사관에서는 비자관련 업무를 원활히 진행하지 않고 대부분 모로코 선입국 후 모로코내 체류증 발급 또는 3개월 무비자 체류가 이루어지고있는 상황이다. 현지에서 일정 자격이 갖추어질 경우 장기 체류 비자 또는 거주증 신청이 가능하며 부득이 현지에서 장기 체류 시는 3개월마다 인근 모로코 북부 스페인령(세우타, 멜리야)에 출국했다 들어오면서 국경에서 비자에 스탬프를 다시 받으면 현지 체재에는 문제가 없다.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