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rocco Diary / Hyriad
한국행 티켓을 포기하면서 공교롭게도 경비마저 똑 떨어졌다. 하긴, 배낭을 메고 나오며 '엄마, 한 달만 다녀올게' 했던 여행이 세 달에 가까워지고 있으니 돈이 없는 게 당연했다. 한국에 전화해 손을 벌리기에도 염치가 없었기에 며칠간 이런저런 방법을 찾다가, 특별히 돈 들 일이 없는 요가 강습을 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에서 꽤 오랜 시간 연습을 해왔고 또 이곳에는 동양에서 온 이방인의 어드벤티지도 있으니, 잘만하면 통할 거라는 생각이었다. 그 결심이 서자 말자, '요가 강습 시작할 것'이라고 포스트잇에 적어 휑한 벽에 붙여두었다.
그 포스트잇에 부적 같은 힘이 있었던 걸까, 다음날 저녁거리를 사러 간 시장에서 우연히 쿵후 사진을 보고 있는 남자를 보게 되었다. 정확히 말하면, 쿵후 사진이 있는 이미지를 포토샵 화면으로 보고 있던 아저씨였다. 이 곳 사람이 쿵후 사진을 그리 유심히 보는 것도, 포토샵 화면으로 작업을 하는 것도 전에 없던 장면이라, 이 사람은 필시 운동과 관련된 사람일 거라는 걸 육감으로 확신했다.
용기 내어 말을 걸었던 내게 친절히 답해준 그는 자신을 라밧에 체육관을 오픈할 예정인 체육관 관장이라고 소개했고 나는 그에게 프로페셔널한 척 요가 수업에 대한 계획을 차근차근 설명했다. 그는 반갑게 '아, 꼬리 요가 티처 (Corée Yoga Teacher)!'라고 부르며 구상 중인 커리큘럼을 가지고 오면 자신의 체육관에 반을 개설해줄 수도 있다는 솔깃한 제안을 해왔다.
그 날 이후, 얼마 남지 않은 체육관의 오픈일에 맞추어 하나하나 준비를 해나가기 시작했다. 느리디 느린 인터넷에 접속하여 요가 관련 파일을 밤새 찾아보았고, 그간의 경험을 더해 요가와 필라테스를 접목한 나만의 커리큘럼을 완성했다. 내 사정을 알게 된 친구들은 고맙게도 자신들의 피앙세나 여동생을 소개해주기도 했고, 몇몇은 그녀들을 위해 미리 수업료를 쥐어주며 내게 강습을 부탁하기도 했다.
며칠 뒤, 체육관에서 테스트 겸, 한 번의 요가 수업을 가졌지만 대부분이 무슬림 남자 학생이고 나는 외국인이라 해도 여자이다 보니 요가의 몇가지 특성상 이슬람 율법에 어긋날 수 있다고 판단했던 것 같다*. 관장 아저씨는 여자 학생들로 채워지기 전까지 수업 개설에는 시간이 걸릴 것 같다는 대답을 해왔다. 그래서 나는 개인 강습을 더 확장하는 쪽으로 노선을 변경했다. 우선 가장 저렴한 휴대폰을 장만했고 대학생 때 배웠던 기억을 더듬어 포토샵으로 전단지를 만들었고 친구들에게 물어 인쇄소를 찾아갔고 그렇게 내 전단지를 완성했다. 그리고 친구와 상의하여 다음과 같은 시스템으로 학생들을 받기로 했다.
1. 수업에 관심이 있으면, 내 번호로 SMS를 보낸다
2. 친구가 수신된 번호로 전화하여 수업을 확정한다
3. 집으로 찾아가 개인 수업을 진행한다
백여 장 찍어낸 이 전단지를 들고 온 동네 함맘(Hammam - 목욕탕)을 찾아다녔고 아그달, 하이야리드 같은 부유한 동네까지 찾아가 우편통에 전단지를 하나하나 꽂아 놓고 돌아오기도 했다. 사실 후에도 학생은 크게 늘지 않았다. 아마 요가라는 것이 낯설었을 테고 집에 낯선 이를 들이는 것 또한 불편했을 거라는 것이 친구들의 짐작이었다.
자격증은 없었다. 때문에 수업이 완벽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곳은 여자들에겐 편하게 운동할 수 있는 장소가 충분치 않았고 때문에 한 시간 반 가량 편한 복장으로 진행된 깊은 복식 호흡, 그리고 간단한 동작들만으로도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수업을 함께한 친구들의 피앙세들과 친구들의 여동생들은 말해주었다.
나는 그때 처음으로 히잡**을 풀어 드러낸 곱슬곱슬한 머리카락과 질레바*** 속에 감춰져 있던 편안한 트레이닝복 차림의 무슬림 여자들을 보았다. 대부분 어렸고, 때문에 그 면면들이 더 순수하고 아름다워 보였다. 한 시간 반 동안의 수업에 500DH(약 5천 원)의 돈을 받았던 수업이라 생활비에는 큰 도움이 되진 않았지만 그렇게 마음을 써준 친구들에게 감사했고, 수다가 반이긴 했지만 함께해준 그녀들에게 감사했다. 또한 전화 한 통으로 쉽게 여비를 마련하는 쪽 보다는 어떻게든 자력으로 해결해 나가고 있는 내 모습이 훨씬 멋지다는 생각을 했다. 아마, 그런 잡초 같은 힘은 한국행 티켓을 포기함과 동시에 생긴 책임감의 무게와 비례했던 것이었을 테다.
인생의 순간순간 마주치는 절묘한 타이밍의 힌트.
때문에 비극은 희극으로의 반전을 갖게 되기도 한다.
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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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에서는 남녀를 불문하고 모든 무슬림들은 이성을 성적으로 유혹할 수 있는 모든 언행을 삼가 해야 한다. 때문에 이슬람 국가에 거주하는 무슬림들은 국가의 문화나 법에 따라 다양한 방법으로 스스로를 보호하는데, 모로코 사람들의 경우 대부분
**히잡 (머리를 둘러 감는 형태의 천으로 머리카락과 가슴부위까지 가릴 수 있음) ,
*** 질레바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모로코 사람들이 많이 입는 긴 치마 형태의 한벌짜리 의상)등을 착용한다. (직접 기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