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rocco Diary _ Rabat
한국으로 돌아가려다 잠시 멈추었다. 결국 티켓을 포기한 것이다. 아, 어쩌면 그것이었을까. 요 며칠간 답답했던 이유가. 목을 옥죄어오던 단추 하나를 풀러 버리니 그제야 막혀있던 것들이 순리대로 흘러가는 기분이 들었다.
지난 3개월. 나는 그 무거운 배낭과 함께 여전히 많은 것들을 짊어지고 있었다. 한국에서 따라온 욕심이나 미련 같은. 그렇게 모든 걸 내려놓은 척, 하지만 아무것도 내려놓지 못한 채 여전히 스스로를 짓누르고 있었다. 그것을 해소하지 못한 채 다시 돌아가야 한다니, 말 그대로 뒤를 닦지 않은 기분 혹은 이제 막 신이 나려던 차에 롤러코스터는 야속하게 도착지점을 향해 달려가는 듯한 아쉬움이 컸었다.
티켓을 포기하는 데에는 많은 용기가 필요했다. 하지만 이 나라를, 사람들을 아직 제대로 알지 못한다는 아쉬움과 아직 나를 온전히 내려놓지 못했다는 자책감 같은 것들이 내 발목을 잡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집으로 돌아가길 포기하고 이곳에서의 날들이 길어질수록 현실적인 그것들과는 자연히 멀어지고 있었다. 아니, 그것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드디어 가볍지만, 스스로 느낄 수 있을 정도의 변화가 온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계기로, 어떤 변화가, 얼마만큼 생긴 건지는 정확치 않았지만 확실한 두 가진 알 수 있었다. 나를 짓누르던 그것을 일순간에 내려놓을 수 있게 되었다는 것. 그리고 그즈음 잘 웃지 않던 내가 웃음이 많아졌다는 것이었다.
나야 그러했지만 어디 한국에 있는 가족들이 나와 같은 마음 일리가 있겠는가. 이곳에서는 인터넷과 전화가 쉽지 않았다. 때문에 죄송하게도 집에는 그저 생사확인 정도로만 연락을 드리고 있었고 때로는 친구가 이메일로 엄마가 소식 궁금해하시니 전화를 드려보라는 메시지를 남겨놓기도 했었다. 걱정하실 걸 알면서도 전화를 드리면 더 걱정을 하시니 그 목소리 듣기가 죄송해서 더 연락을 드리기가 힘들었다. 그리고 이번에도 죄송한 마음으로 수화기를 들었다.
"여보세요. 엄마?"
"아이고, 니는 죽었나 살았나~?"
오래간만에 한국에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엄마에겐 죄송하게도 좀 더 머물러야겠다는 말을 전해야 했다. 며칠 뒤에는 월세로 집을 구했다. 남은 날들을 지내게 될 나의 집은 우다야의 바닷가가 내려다 보이는, 말그대로 작은 옥탑방이다.
행복과 불행.
위안과 불안.
소유와 소멸.
이들은 늘 함께 온다.
불규칙적 시간차가 있을 뿐.
03.14
*
2013년 여름, 엄마는 새벽에 갑자기 응급실로 실려가셨고. 다시 일어나지는 못하셨다. 엄마의 목소리는 점점 가물 해지지만, 큰 배낭을 메고 6개월 만에 한국으로 돌아온 딸을 맞이하던 엄마의 얼굴은 잊을 수가 없다. 한 달만 다녀온다던 막내딸의 여행이 길어질수록 엄마는 얼마나 불안하셨을까. 겉으로는 역정 한 번 내지 않고 응원해주셨지만 속으로는 안절부절못하고 계셨을 테지. 이제 기억 속에 계시지만, 엄마는 여전히 방황하면서, 하지만 옳은 길이라 믿는 곳으로 꿋꿋이 걸어가고 있는 이 막내딸을 어디에선가 응원해주고 계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