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 모래를 털어내며

Morocco Diary /Rabat

by 이인

오랜만에 담요를 들고 나와 집 근처 우다야 해변을 찾았다. 담요를 깔고 모래사장에 앉아 스르르 눈을 감으니 제법 따스해진 햇살이 눈꺼풀 위를 흘러 온 몸을 적셨다. 그리고 잠시간 그간 걸었던 골목골목과 만났던 사람들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이곳에서의 3개월. 이 집에서의 3주. 귀국까지 10여일전. 제법 많은 곳을 걷고 많은 이들을 만나고 새로운 것들을 경험했던 시간들. 그런 낯선 설렘과 함께 교차하며 찾아왔던 피곤함도 이 여정의 일부였건만 이제는 이 라밧에서의 생활이 더 이상의 설렘이 없는, 말 그대로 생활이 되어 버린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이곳에서의 일도 순조롭지만은 않았다. 지금 함께 지내고 있는 고약한 집주인이 나의 존재를 알게된 뒤부터 이곳 친구들에게 저 아이가 안 나가면 너희들을 쫓아낼 것이라고 협박을 하고 있었고 그와 동시에 한국에서의 커리에도 나는 여전히 불안해하고 있었다. 내 경쟁자들은 이 시간에도 수많은 밤샘과 열정으로 포트폴리오를 늘리고 있겠지, 나는 돌아가면 또 어떻게 일을 시작해야 할까...

이렇듯 수천만 리 떨어진 곳에서도 일에 대한 조급증은 틈만나면 나를 괴롭히며 따라다니고 있었다.


다른 장기 여행자들은 그것이 어떻게 가능한지 모르겠지만, 나로서는 그것이 쉽게 놓아지지 않았다. 등잔 밑이 어두운 건 사람도 마찬가지 인 것인지 앞으로는 지금의 날들이, 이 경험들이 더 없이 소중한 경험되어줄 테지만 그보다는 현재의 내게 불리한 상황만이 더 부각되어 보였다. 기세 좋게 현실이라는 곳을 이탈하여 이곳으로 잠시 떠나왔지만, 내가 한국으로 돌아가더라도 달라질 것은 없을 것이다. 아니 오히려 돌아갔을 때에 떠났던, 뚝 끊겨버렸던 그 지점에서 다시 치열하게 투쟁하고 이제는 그저 직진만을 해야만 할 것이다.


그렇다면, 생에 다시 없을 이 여정의 일분일초를, 하루를 이렇게 의미 없이 보내지는 말자. 내 삶의 의미는 과거도 미래도 아닌 지금 현재에 있는 것이 아닌가. 거기까지 생각이 닿았다. 그리고 나는 잠시 바닷가를 바라보다 담요에 묻은 모래를 툭툭 털어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3개월. 비자가 만료되기 전에 빨리 연장해야겠다.'라는 아주 즉흥적인 결심과 함께.



Standing in Fog. Rabat Oudaya beach
파도가 씻어 내리자
어린아이의 얼굴로
까르르 솟아오르는 사람들.

생각을 털고 일어나려던 즈음
해무가 서서히 해변에 드리운다.

저 멀리 솟은 등대의 위엄은
부윰해진 하늘빛에 가리어진다.

흥미로운 실루엣들이 모여
단 한장의 순간을 그려낸다.

02.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