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지박약을 탈출하는 유일한 방법
의지보다 중요한 건 무조건 환경
결심을 되게 많이 하시네요.
대학교 때 전공수업을 같이 듣는 오빠가 했던 말이다. 꽤나 어색한 사이였던 그가 이런 말을 할 정도라면 나도 어지간히 결심을 하긴 했나 보다.
저는 의지박약입니다.
생각해보면 나는 매일 결심했다. 수업 끝나면 오늘 들었던 내용 복습하기부터 미드 보면서 영어 쉐도잉 하기, 저녁엔 채소 위주의 샐러드 섭취 등. 나는 누구보다 나의 부족한 점을 잘 알고 있었고, 이루고자 하는 바가 많았다. 당시 내가 가장 먼저 할 수 있는 건 결심이었다. 이번엔 기필코 해내겠다는. 하지만 그 불타는 결심은 빈번히 바람과 함께 사라졌다.
밀가루는 못참지다이어트를 결심한 날 밤에는 어김없이 룸메와 치킨을 시켜먹었고, 공부를 하겠다는 날은 친구랑 부평에 있는 큰 지하상가를 돌아다니며 놀았다. 때때로 수치심을 느끼며, 복수심에 이를 갈며 했던 결심 역시 허공으로 흩어졌다. 점점 결심은 하나의 습관이 되었고, 나중에는 죄책감조차 느끼지 않는 상태에 이르렀다. 그냥 나는 스스로를 정의 내렸다. '그래요. 저 의지박약입니다.'
접근금지: 진짜 결심했다. 각오했다. 두고 봐라.
결심과 실패를 반복하던 어느 날, 나는 또 이놈의 결심을 했다. 이제는 내가 원하는 걸 진정으로 이루겠다 말이다. 그리고 내가 왜 지금껏 다짐들을 지키지 못했는지 분석했다.
'그래 이건 다 저 인간들 때문이야.'
밤마다 야식을 유혹했던 룸메이트, 재밌는 영화가 나왔다며 나가 놀자던 친구, 갑작스럽게 과제를 양껏 내준 교수님 등. 모두 내 결심의 방해자들이었다. 그땐 그들 때문에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을 못 이룬 것이라 생각했다. 방해자들만 없다면 나는 내가 생각하는 모든 일을 이룰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런 생각이 극에 달했을 때 나는 사람들로부터 도망쳤다. 그리고 온전히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세팅했다. 이곳에선 나를 자극할 사람이 한 명도 없었고, 나는 이제 진정으로 내 결심을 이룰 수 있다며 기뻐했다.
하지만 진심으로 다짐했던 결심마저 오래가지 않았다. 오히려 사람들의 자극이 없으니 세상 편안하게 침대에 누워있는 나를 발견했다. 여전히 나는 나와의 약속을 지키지 않았고, 오히려 더 게으른 동물이 됐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결과는 실패였다.
의지, 그 참을 수 없는 가벼움
그제야 알게 됐다. 의지란 잠깐의 바람으로도 꺼질 수 있는 것이라는 걸. 수치심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든, 부러움, 열등감에서 비롯된 것이든 결국 그 불타는 의지는 금방 사라지는 것이었다.
뒤늦게 내가 의지로 이룬 일들을 되짚었고 공통점을 발견했다. 바로 일을 지속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했다는 거다. 예를 들어, 친구랑 영상제에 참여해 수상한 적이 있다. 그냥 뿌듯한 에피소드였는데 생각해보니 당시 나는 매일 친구에게 포기하자고 했다. '더 좋은 공모전이 있을 거다.', '이건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등 여러 가지 이유를 대며 포기할 생각만 했다. 하지만 내가 그걸 끝까지 완성시킬 수 있었던 이유는 단 하나, 바로 실행력 죽이는 친구였다. 결국 나는, 그 친구에게 멱살 잡혀 쾌거를 얻은 것이다. 내가 혼자 시작했다면 진작에 때려치우고도 남았던 그런 일이었던 거다.
이 친구 참 독하더라..결국 의지보다 환경이다. 뭔가를 이루고 싶다면 단순히 나의 의지만 믿을 것이 아니라 그 의지를 관철시킬 수 있는 환경으로 찾아가야 한다. 이는 비싼 돈을 내고 학원을 가는 이유와 같다.
사실 오늘만 해도 저녁은 방울토마토로 해결하겠다는 결심을 했다. 그런데 정확히 저녁 9시 48분에 어제 구워놓은 크로플이 먹고 싶어서 아이스크림이랑 같이 먹었다. 굳은 의지로 다짐했던 저녁을 안 먹겠다는 결심은 산산조각이 났다. 나에게 진짜로 필요했던 건 결심이 아니라 크로플을 당장 갖다 버리는 일이었을 것이다.
혹시 나처럼 매일 결심과 실패를 반복하는, 의지박약러들이 있다면 말해주고 싶다. 의지란 본디 일시적인 것이라고. 그렇기에 의지를 믿지 말고, 당신의 결심을 달성할 수 있는 환경을 찾아가라고. 비싼 돈을 내든 지, 내가 공모전 때 경험했던 것처럼 실행력 갑인 친구를 사귀든지. 그리고 이 과정에서 결코 자기만, 오직 자기만 믿어버리는 그런 같은 실수는 반복하지 말라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