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할 수 없는 통근을 즐길 수 있을까
선배 춥지 않아요?
왜 이렇게 얇은 패딩을 입고 다녀요.
인턴 하면서 선배한테 물었다. 한 겨울, 얇디얇은 패딩을 입고 다닌 선배는 말하곤 했다.
“지하철을 타면 너무 갑갑해서 어쩔 수 없어요”
그의 출퇴근 시간은 왕복 4시간이 넘었다.
그의 말을 이해하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나 역시 프로 통근러가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버스와 지하철을 합쳐 무려 왕복 3시간이 넘는 시간을 출퇴근 중이다. 날씨와 조건에 따라 바뀌는 변덕쟁이 버스 시간을 고려했을 때 3시간이라 쓰고, 3시간 30분이라 읽는다.
본디 갓생 사는 MZ세대니 출퇴근길을 활용해서 양질의 독서를 하려 했다. 그리고 분명 첫 주엔 실제로 행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한 달이 지나간 지금, 유행 지난 노래를 반복하며 듣는 나.. 갓생인가요?
아침 일찍 지하철에 도착하면 깨닫는 게 있다. 한국인들은 망할 수가 없다. 몇 시에 나오든 이미 새벽같이 일어나 움직이는 사람들이 있다. 서늘한 아침 공기를 맡으며 빽빽한 머리들을 보자니 지하철은 아직 타지도 않았는데 기에 짓눌리는 기분이 들곤 한다.
이 글을 빌려 지하철 앉아서 가는 사람들에게 부탁한다. 어디서 내릴 건지 써서 이마에 붙여놔 달라고. 평등한 지하철의 세계에선 빨리 내리는 사람 앞에 서는 자가 일류니까.
하지만 그럴 일은 결코 없다. 그러니 지하철을 타자마자 눈치게임이 시작된다. 누가 가장 빨리 내릴 것 같은지 빠르게 스캔하고 그 사람 앞에 서야 한다. 지금까지 쌓인 데이터에 의하면 이어폰 끼고 딥슬립 하는 사람 앞은 절대 안 된다. 그런 사람들은 마음 편히 꿈나라에 들 정도로 멀리 가야 하는 사람들이다.
그럼 누구 앞에 서야 하는가? 내릴 정류장을 힐끔힐끔 확인하는 사람들 앞이 좋다. 그들은 내려야 하는 정류장이 얼마 남지 않아서 확인하는 것일 테니까. 그래서 핸드폰을 하다 말고 열심히 정류장을 확인하는 언니님 앞에 선다. 이제 그분이 내릴 때까지 존버 하면 된다.
근데 젠장. 몇 정거장 안 갔는데 이어폰 끼고 꿀잠 자던 아저씨가 뛰쳐 내린다. 그리고 정작 역을 열심히 확인했던 언니님은 여전히 내리질 않는다. 아저씨 자리로 급히 달려갈까 했지만 그 자리는 이미 일류가 차지했다.
어쩔 수 없이 서서 간다. 서서 가다 보면 참으로 많은 생각이 든다. 출퇴근을 언제까지 할 수 있을까부터 시작해서 이 직업을 언제까지 할 수 있을까로 확장한다. 별안간 쓸데없는 생각으로 머리를 채우고, 종종 1호선에서 보게 되는 이상한 싸움 구경하다 보면 어느덧 회사 역에 도착해있다.
학교를 다닐 때는 기숙사에서만, 인턴을 할 때는 셰어하우스에서만 지냈던 터라 이렇게 통근을 하게 될진 몰랐다. 통근을 하면서 깨달은 게 있다면 서울에서 사는 사람이 최고 부럽다는 거다. 체감하는 수준을 넘어섰다. 종종 회사에서 본가가 회사 역 근처인 사람들을 보면 부럽다는 말하기도 이젠 입 아프다.
평일에 즐겁게 퇴근하고 집에 와도, 몇 시간 후면 출근해야 하는 이 현실. 피할 순 없으니 노래로 즐기고 있다만 가성비가 부족하다. 재택근무, 주 4일제 도입이 시급하다.
지금 소원을 들어주는 램프가 있다면 다음과 같은 소원을 빌겠다.
1. 내일 눈 안 오게 해 주세요.
2. 내일 눈치게임 성공하게 해 주세..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