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이루지 못해도

괜찮아?

by 꿀별
"무엇이 되어야 할까?"


현생을 사는 사람이라면 한번쯤은 품을 의문이다.


어릴 때부터 유독 현실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나는 이 질문을 오랫동안 품어왔다. 이 의문은 참으로 가성비 없었다. 아무리 헤매어도 제대로 된 답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런 와중에 종종 생각했다. 가진 게 없는 내가 꿈까지 이루지 못한다면, 내 삶은 진정으로 무쓸모 한 것이라고. 그래서 명확한 목표가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꿈을 이루지 못한 내 모습을 못 견딜거라고.




꿈 연대기

돌이켜보면 참 많은 꿈을 가졌는데, 어릴 때 가장 강렬했던 꿈은 배우나 디자이너였다.


첫 번째 꿈인 배우는 사람들 앞에 서는 것을 좋아하고, 감정이입을 잘하는 스스로의 특성을 고려한 거였다. 주변 사람들은 그런 내게 어린 날의 호기심이라 생각했지만, 당시까지만 해도 꽤나 진심이었다. 혼자 몰래 배우 아카데미도 신청하고, 이와 관련해 업계 사람을 만나 상담도 받았으니 말이다.


그런데 나름 열정 있다 자부했던 이 꿈은 심플하게 접혔다. 이유는 업계 사람이 내게 했던 말 때문이다.


머리가 커서 배우는 못될 거예요.


눈에 쌍꺼풀이 없거나 코가 낮은 거라면 어떻게든 고쳐볼 텐데, 머리통은 줄일 수 없다. 두개골을 어떻게 건드리겠어요. 그렇게 어린 시절부터 상상만으로 나를 충족시켰던 진로는 생각보다 간단히 없어졌다.

두개골은 못참지



두 번째 꿈인 디자이너는 그림 그리기와 만드는 것을 좋아한다는 것이 이유였다. 하지만 이것도 결국 접혔다. 그 이유는 두 가지인데 첫 번째는 우리 집은 미술학원을 보내줄 돈이 없었고, 두 번째는 내가 공부가 하기 싫은 것인지, 미술이 하고 싶은 것인지 명확히 확신할 수 없었다.


결국 고등학교 때는 새로운 꿈으로 이어졌다.


꿈이고 나발이고 대학만 가자




낡은 꿈은 버리고 새로운 꿈으로

적성과 전혀 상관없는 행정학과에 입학한 후에 웹툰 작가가 되고 싶었다. 재미없는 전공책엔 결코 완성해본 적 없는 구성안들이 그려지곤 했다.


세 번째 꿈은 이전과 다르게 직접 시도할 현실적 기회가 있었다. 웹툰을 그려 네이버 도전 만화, 인스타에 연재해보고, 공모전도 참여했다. 공모전은 입선이라는 나름 가치 있는 결과로 이어지기도 했다. USB를 상품으로 받았고, 내 스토리가 재밌다는 개인적인 dm도 받았다. 지금 생각해도 참 행복했던 경험이다.


하지만 매 순간 나의 재능을 확인해야 했기에 고통스러웠다. 동시에 나는 내 꿈에 목숨 걸 만큼의 열정이 없었다. 품은 꿈을 어떻게든 밀고 나갈 만큼의 추진력 역시 없었다. 지금의 스토리가 맞다는 생각으로 연재하는 자기 확신, 마이웨이 정신, 곤조도 부족했다.


무엇보다 꿈에 집착할수록 나 자신이 싫어졌다. 웹툰을 시도해보겠다며 서툰 그림실력, 덜떨어진 원고를 마주할 때마다 어딘가 갇힌 기분이 들었다. 꿈이 미워졌다. 나를 이렇게 불행하게 만드는 꿈이 싫어졌다.


그래서 회사에 입사했다. 나는 내가 되고 웹툰 작가가 되지 못했다.


꿈을 이루지 못했다.




교집합

적당히 타협해 '디자이너'의 일을 하게 됐다. 한 때 꿨던 세 개의 꿈 중 하나이자 만드는 것을 좋아해 괜찮았지만, 웹툰 작가라는 꿈을 이루지 못한 채 선택한 업이기에 씁쓸한 마음도 있었다.


그런데 일을 하면할 수록 의외의 것을 발견했다. 이전에 꿨던 배우와 웹툰 작가라는 꿈, 그걸 이루기 위해 익혔던 기술과 내공이 디자인 일에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동시에 디자이너의 일이지만 배우와 웹툰 작가가 된 듯한 기분이 드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마주했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은 광고와 상세페이지를 제작해야 한다. 광고의 경우 고객을 이해해야 하고 공감의 영역이 상당히 중요하다. 그리고 이는 내가 품었던 배우라는 꿈과 맞닿아 있다. 배우가 캐릭터의 감정에 이입해서 상대의 감정을 건들 수 있어야 하는 것처럼, 광고 역시 상품이 필요한 그 사람의 입장에 이입해서 구매를 자극할 수 있어야 한다.

아니 너가 울면 안되지


상세페이지는 스토리텔링이 중요하다. 이는 웹툰 작가가 한 회를 그리면서 구성안을 짜는 것과 맞닿아 있다. 웹툰 한편에 상대를 놀라게 하는 후킹, 떡밥을 정교하게 표현해야 하는 것처럼 상페 안에도 상대가 이 제품의 매력을 느끼게 만드는 여러 장치와 요소를 체계적으로 심어놔야 한다.


이루지 못한 꿈들을 이루기 위해 노력했던 시간들은 딱히 예상하지 못했던 부분에서 계속 빛을 발하고 있다. 또 현재 가진 직업의 영역에서 다른 업의 자질이 필요하기도 하다. 그렇기에 나는 꿈을 이루지 못한 동시에 꿈을 이루었다.


선으로 철저히 분리해놨던 업들은 들여다보니 비슷한 맥락을 공유하고 있었고, 그것은 어쩐지 특정 꿈이 아니면 아무것도 아닐 거라는 내 오랜 불안을 해결해주었다.






자신만만하게 적었지만 이렇게 살다가 새로운 꿈을 만나, 그것이 아니면 안 된다고 집착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스스로의 쓸모를 운운하며 그 꿈에 매달릴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놈의 세계는 복잡미묘하니까 유사한 맥락을 발견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꿈을 이루고자 쓰는 막연한 시간들이

이루지 못하면 사라질 수도 있다는 불안에서 벗어나

사랑의 눈으로 바라볼 수 있을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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