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잘러 그 이상의 여정
네가 만든 이미지가 성과를 냈어.
제품과 상황을 보여주는 배치와
어그로를 강조한 디자인
너의 기획 의도는 대박이야!
콘텐츠 회의 시간.
내가 제작한 이미지를 꽤나 만족스럽다는 듯 바라보던 대표님이 해주신 말이다. 그런 대표님을 은은한 미소를 띠며 바라보았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외쳤다.
"대표님!!!!! 이거 다 그~짓말 입니다!"
퍼포먼스 디자인
'퍼포먼스'라는 이름답게 매일 성과가 책정되고 있다. 내가 만든 이미지는 '구매 전환율'이라는 결괏값으로 짧은 시간 내에 생명이 결정된다. 한 주간 제작되는 100장 이상의 이미지는 고객의 열등감을 자극하고, 판매까지 이어져야 한다.
그러다 보니 어떻게 하면 내 콘텐츠가 성과를 낼 수 있는지 고민한다. '조금 더 어그로를 끌 수 있는 카피가 필요할까?', '고객님의 정곡을 찌르는 이미지가 필요할까?'
그런데 사실 성과를 내는 것에 왕도가 있었다면, 이 글을 쓰지 않았을 거다. 내 경험상 그딴 건 없기 때문이다!
내가 만든 콘텐츠가 성과를 내면 기쁨보다는 당혹스러움이 많다. 꽤나 힘주고 제작한 건 아무런 반응이 없어 예쁜 쓰레기로 전락해버리고, 일단 수량이라도 채워보겠다는 마음으로 타성에 젖어 제작한 콘텐츠는 고객을 유혹해버렸다. 정답도, 왕도도 없는 이곳에서 어찌어찌 성과가 난 이미지를 바라보자니, 이번 주는 떳떳하게 회사를 다니겠다 싶으면서도 허무하다.
분명한 건, 우리네 인생처럼 성과는 사실 얻어걸린 게 많다는 거다. 전략적이고 데이터에 기반한 성과를 냈다면 정말 멋졌겠지만, 그냥 만들었는데 고객님을 유혹해버린 게 많다. 마치 100개 정도 공을 던지면 그중 5개는 무조건 골에 들어가는 것처럼. 그렇기에 내 성과에는 이럴싸한 근거도, 기준도 없다.
흥미롭게도 성과가 나면 그럴싸한 의도가 붙는다. 명확히 기획된 카피, 디자인 배치가 되어버린다. 딱히 의도 없는 이미지는 수치적 결과로 이어지는 순간, 서사가 붙는다. 의도가 성과를 만들어주긴 어렵지만, 성과는 멋진 의도를 만든다.
그렇다면 성과를 낼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걸까? 다행히 그건 아니다. 회사에서 배운 어마 무시한 비법을 공개하겠다.
최근 한 팀원분이 이미지로 소위 대박을 터뜨렸다. 어마어마한 매출을 냈다고 들었다. 점심시간에 그녀가 어떻게 성과를 냈는지 들었는데, 없던 존경심이 생길 지경이었다.
그건 바로 50장 만들면 될 이미지를 150장 이상 만드는 거였다. 그럴 필요 없는데 그렇게까지 일해버렸다. 시도를 많이 하니 당연히 터질 이미지들은 터져버린다. 절대적 수량이 많으니 얻어걸릴 것도 많아지는 것이다.(물론 그녀의 노력이 얻어걸린 것은 아닐 거다)
금요일 저녁 퇴근하려는데 그 어마 무시한 성과를 낸 팀원분은 또 어떤 성과를 내고 싶은 것인지 야근을 하셨다. 그녀보다 훨씬 돈 못 벌어다 주는 귀여운 신입사원은, 월요일로 업무를 미뤄버리고 칼퇴해버렸다.
디자인 일을 시작한 지 어느덧 3개월 차다. 어떤 날엔 디자인에 자신감이 붙어 영감에 찬 예술가처럼 이것저것 제작했다가도, 또 어떤 날엔 머리가 리셋되어 내가 알던 일이 아니게 된다. 자신감이 찼다가 안찼다가, 흥에 겨웠다가 빠졌다가. 성과를 냈다가 못 냈다가.
도대체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한복판에서 내일도 성과를 내기 위한 여정이 이어질 거다. 그리고 딱히 의도도 정답의 길도 없지만 일단 포토샵의 하얀 배경을 채워갈 것이다. 알 수 없는 성과의 길. 인센티브의 길을 향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