뺄수록 깊어지는 전달력

카피를 키운다고 강조되는 게 아닙니다

by 꿀별

광고를 디자인할 땐 글자인 '카피'를 넣는다. 주로 메인 카피를 강조해 고객의 시선을 끄는 게 중요하다. 나는 작업하면서 메인 카피의 사이즈를 키우는 방식으로 카피를 강조하곤 했다.


그런데 어느 날 단톡방에서 대표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다.


카피를 키운다고 강조는 아닙니다.


커다란 카피보다 적절한 사이즈, 한눈에 들어오는 카피가 더욱 강조할 수 있다는 말이었다. 문득 이것은 우리의 실제 소통과 참 닮아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잘 읽히는데요?




크레센도

어릴 적 명절을 생각하면, 가족들끼리 자기 말만 하던 장면이 생각난다. 상대의 의견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이기보다는 자신의 말이 왜 맞고, 너는 왜 틀렸는지 집요하게 따지던 모습들 말이다. 목소리는 점점 높아졌고, 말은 더 많아졌지만, 그 끝에 뭐가 남았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돌이켜보면 나 역시 이런 방식으로 소통하곤 했다. 이따금씩 화가 나면 상대방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집요하게 기억하고, 파고들어 큰소리로 따지는 게 중요하다 생각했다. 그렇게 하는 것만이 내 의견을 전달하고 갈등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인 줄 알았다.




데- 크레센도

자신의 감정을 큰 목소리로 전달하는데 기를 썼던 어른들 사이에서 기술 가정 선생님은 여전히 기억 남는 분이다.


필통을 다 만들고 선생님께 제출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나는 빨리 제출하고 놀고 싶다는 생각에 교과서 한쪽을 찢어 이름과 번호를 대충 적은 후 선생님께 제출했다. 선생님은 나의 필통에 달린 꼬깃한 종이와 삐뚤한 글자를 보며 곱고 예쁜 포스트잇 한 장을 뜯었다. 그리고 말했다.


"꿀별아 앞으로 이런 숙제를 제출할 때는 깔끔한 종이에 써서 내야 해. 예쁘게. 알았지?"


나긋나긋한 선생님의 목소리를 들으며 했던 생각은 ‘아 내가 잘못했구나’. 그녀의 목소리는 크지도 강압적이지도 않았지만 나는 뜻을 이해할 수 있었다.


지금의 회사에도 평소 말수가 적고, 나긋나긋한 팀원분이 계신다. 그분은 자신의 의견을 말할 때 조용한 목소리로 필요한 말씀만 하신다. 충분히 숙고한 입에서 나오는 말은 목소리가 큰 것도, 화려한 수식어가 붙은 것도 아니지만 회사에서 들은 그 어떤 말보다 설득력 있다.

반해버림




침묵이라는 언어

디자인 이미지에서 폰트를 키운다고 강조되는 것이 아니듯 목소리를 키운다고 상대방에게 잘 전달되는 것이 아니다. 때론 은은한 말들 속에서 더 큰 감동과 깨달음을 전할 수 있다. 상대방에게 잘 전달하기 위해서는 덧셈보다 뺄셈이 더 현명한 선택일 수 있다.


웹툰 작법책에서도 비슷한 내용을 봤다. 멀리 떨어져 있다 극적으로 보게된 부부가 나오는 장면이었다. 처음에 작가님은 남편의 대사를 당신을 못 봐서 얼마나 힘들었고, 지금이라도 보게 돼서 얼마나 기쁜지 위주로 적었다. 하지만 후에 그냥 "여보.."라는 단어로 수정했다. 긴 문장에서 고작 '여보'라는 단어로 수정됐는데 오히려 남편의 감정이 더욱 선명히 전달되는 듯했다.


빼기도 전달하는 데 중요한 영역임을 점점 알아간다. 또한 침묵 역시 하나의 언어임을. 그렇기에 상대를 설득하기 위해 조급한 마음을 가지고 무작정 채워나갈 필요는 없다. 때론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이 더 큰 진정성으로 다가오곤 하니까.


더 이야기하고 싶은데 오늘은 여기까지 써야겠다.

뺄셈의 미학에 관한 글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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