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개월 차 생존신고
캐나다에 온 지 5개월이 넘었다. 나는 분명 현장 체험 학습 느낌으로 떠났는데, 이 곳에는 생존과 현실만이 존재했다. 잘 생각해보면 1박 2일 현장 체험학습은 있어도 1년 패키지 현장 체험 학습은 없다. 1년은 생각보다 아주 긴 시간이란다 과거의 나야.
요즘 나를 즐겁게 해주는 것은 워홀 뒷담이다. 가끔 나처럼 청춘 낭만을 기대하며 냅다 외국살이에 온 ‘워홀러’들과 시간을 보낸다. 그들을 만나 불안정한 외국살이, 기상천외한 룸메나 커스터머를 이야기한다. 마지막으로는 한국에 돌아가고 싶다며 의외로 발견한 한국의 장점들을 늘어놓는다.
그렇게 한 참 욕하다 브런치라도 하나 먹으러 가면 여긴 진정 로컬이라며 외국 바이브는 남다르다 감탄한다. 우리가 이래서 아직도 한국에 못돌아간다며, 무슨 이런 나라가 다 있냐고 말한다. 행복한 표정을 가득 지으면서.
당장 일주일 후도 장담할 수 없었던 밴쿠버의 생활은 이제 안정기에 접어들었다. 여전히 더 좋은 직장을 구하고 싶다는 마음이 있지만, 대체로 하는 일에 익숙해졌고, 주기적으로 만나 근황을 나눌 친구들이 생겼다. 좋은 곳에 함께 가고, 생각을 나눌 관계가 생기니 나를 힘들게 했던 폭식증도 가라앉았다.
매일 우중충하고, 비만 왔던 겨울 역시 지났다. 원래도 우람했던 밴쿠버의 자연은 생명력까지 더해져 더욱 아름답고, 예뻐졌다. 사람들의 마당엔 다채로운 튤립들이 폈고, 가시만 남아있던 나무에는 찐한 핑크색 벚꽃도 폈다. 민소매만 입고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많아졌고, 드넓은 파크에서 사람들은 강아지와 함께 여유를 즐기고 있다.
처음 밴쿠버에 왔을 땐, 로컬 사람들을 가만히 바라보며 이 여유가 저 사람들에게는 삶이었겠구나 하는 생각에 괜히 부러워하곤 했다. 하지만 5개월 차가 되니 짬바가 생겼다. 저들 역시 더럽게 빡센 순간이 존재한다는 걸 이젠 알고 있다. 지금의 여유는 하나의 장면일 뿐, 저 사람들만 선택받은 사람처럼 느낄 필요가 없다는 걸 말이다.
외국 생활에 대한 환상이 사라졌다는 게 오히려 이곳에서의 삶을 편안히 즐길 수 있게 해준다. 자기의 취향을 가득 담을 수 있는 하우스에도 베이스먼트가 존재하고, 마냥 서로를 존중할 것 같은 로컬 현지잡에도 눈치와 고생이 존재하기에 나만 특별히 억울해할 필요 없어졌다.
팀홀튼에서 손님을 받을 때도 손님들의 피부색상이 아닌 ‘당신이 원하는게 뭐요?’가 더 중요해졌다. ‘저 사람이 하는 말을 내가 못알아먹으면 어떡하지?’ 같은 두려움도 ‘저 손님이 이따 또 딴소리하면 어떡하지?’ 로 변했다.
하루 내내 서서 일하면 다리가 아파 이 고생을 왜하고 있나 하는 회의감도, 이 시간에 어디가서 경력을 쌓아야하는데 같은 아쉬움도 사라졌다. 그저 와서 살아보고 싶었으니 살아가고 있다.
만개한 꽃들 사이에서 따뜻한 햇살을 듬뿍 맞으며 퇴근하는 길에는 이거 보려고 여기 왔구나 싶다. 코워커들과 한번씩 웃고, 장난치고, “안녕하세요”를 다른 나라의 언어로 들으며 말이다.
왠지 고생만 했던 겨울을 보내고, 아주 조금은 편안해진 봄을 보내고 있다보면 영원히 안좋은 계절과 나날은 없다는 걸 배운다. 동시에 ‘살아본다’는 건 좋은 계절과 나날만 보낼 수 없다는 것도. 산다는 건 그런거니까.
여전히 무슨 이런 곳이 있냐 욕하고,
한국 컴포즈 커피의 남다른 그립감이
그리울 때가 있지만 나는 살아가고 있다.
캐나다의 밴쿠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