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사람이 전부지
내가 현재 지내고 있는 방은 캐나다의 베이스먼트이다. 베이스먼트는 한국의 반지하와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한국에서도 반지하는 최대한 피하며 살아왔는데 베이스먼트라니. 그래도 현재 지내는 방은 작은 창문이 있어 어느 정도의 환기가 가능하다. 다만 창문을 열면 캐나다 하우스의 벽돌뷰와 종종 옆집 사람들의 발을 구경할 수 있다.
이전 글에서 이야기했듯 밴쿠버의 집값은 살인적이다. 따뜻하고 귀여워 보이는 하우스의 베이스먼트를 보면, 행복해 보이는 캐나다도 결국 자본주의에 속해 있다는 걸 새삼 깨닫게 한다. 베이스먼트는 삶의 질은 떨어질 수 있지만 렌트값을 아낄 수 있다는 점에서 나쁘지 않다.
비록 베이스먼트에서 살고 있지만 이 집에 오길 잘했다고 생각한다. 가장 큰 이유는 함께 지내는 룸메이트들 덕이다. 나를 포함하여 무려 5명의 친구들이 함께 사는 베이스먼트의 생활은 생각보다 즐거우니까. 캐나다, 태국, 인도, 일본까지 출신 국적도 다양하다.
며칠 전에는 캐나다에서 온 사라, 태국에서 온 피비와 함께 하와이안 피자를 먹었다. 피자에 파인애플을 넣어 먹는 걸 우습게 보는 밈은 전 세계적으로 있는지 서로의 취향을 묻고 웃었다. 다행히 우리는 만장일치로 하와이안 피자를 좋아해 맛있게 먹었다.
태국에서 온 피비는 케첩을 피자에 발라 먹었다. 이미 토마토소스를 펴서 만든 게 피자인데 거기에 케첩을 뿌려먹는다고? 의아했지만, 태국 사람들은 피자에 케첩을 발라 먹곤 한다는 말을 들었다. 하긴 생각해 보면 한국도 순대에 초장을 찍어먹거나 소금을 찍어먹거나 하지.
여러 문화와 취향들이 있다는 걸 오늘도 배웠다. 세상은 살아갈수록 흥미로운 게 많다.
피자를 먹으며, 각자의 최애 노래까지 소개하고 난 후, 우리는 주방에 출처 불분명한 물건들을 버리기로 했다. 일명 ‘Dump out day’ 다 가져다 버리는 날이다. 2개의 냉장고, 부엌의 찬장들을 뒤적이며 '이거 누구 거야? 덤프아웃', '이건 누구 거야? 덤프아웃'을 반복했다. 전 룸메가 기부를 하고 간 듯한 누텔라와 녹차 티백은 유통기한이 지나 버리게 되었고, 그릇과 컵들을 공동 용품으로 사용하기로 했다.
그 후 최선의 공동생활을 위한 규칙들을 논의하고, 만들었다. 한참 방향성을 잡아주던 사라는 우리의 모습을 보더니 UN의 한 장면 같다며 웃었다. 나 역시 출생의 나라가 달라도 너무 다른 우리가 한 집에 모여 섞여 나가는 장면이 흥미롭게 느껴졌다.
정리가 끝날 무렵, 사라는 서로의 청소 날짜를 쉽게 확인할 수 있게 체크하는 달력을 냉장고 옆에 붙이고 싶어 했다. 피비까지 합세해 압정을 사야 하나 고민하고 있었다. 스프링 달력을 바라보던 나는 말했다. “달력을 찢어서 붙이면 되잖아!” 사라와 피비는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여러분 코리안 대표가 해냈습니다!"
내가 어쩌다 한국을 대표하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친구들의 반응에 기분이 좋아져 냅다 보이지 않는 카메라를 향해 브이를 날렸다.
달력의 위치까지 마무리하고, 몇 개의 조항 체결을 완료했다. UN도 뒤풀이를 하는 진 모르겠다만 뒤풀이 겸 버블티 집에 갔다. 룸메들의 추천으로 나는 밀크티에 펄이 아닌 블랙제리를 시도했다. 멀컹말랑한 게 내 스타일은 아니었다. 나는 조금 더 쫀득하게 씹히는 음식을 바랐기 때문이다. 허나 밀크티의 맛은 일품이었다.
의외로 나쁘지 않은 베이스먼트의 생활. 좋은 룸메이트들을 만난 덕일 것이다. 어디에 살고 있느냐보다는 누구와 함께하느냐가 더욱 중요한 것임을, 이 당연한 사실을 매해 배워가는 것 같다. 볕이 잘 들지 않을 뿐 반짝반짝 빛날 순간들을 보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