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에 온 지 4개월 만에 K-pop을 들었더니

Music is my life 니까

by 꿀별

캐나다에 온 지 4개월이 갓 넘었을 때였다. 어느 때와 같이 버스에서 일찍 내려 노래를 들으며 팀홀튼으로 향하고 있었다. 나는 밴쿠버에 온 후 영어공부를 명목으로 팝송만 듣고 있었다. 한국어 노래를 직접 틀어서 들은 적이 한 번도 없는 상태였다. 캐나다까지 와서 한국어의 노래를 듣는다는 건 나의 마지막 자존심을 내려놓는 것과 같았다.


한국 음악 없이 4개월간 잘 지내왔다. 가끔 길가에서 들리는 반가운 K-pop은 캐나다인들도 한국 노래를 즐겨 듣는다는 걸 상기시켜 줬지만 개인적으로 듣는 계기가 되진 못했다. 그런데 그날의 출근길은 유독 하늘도 너무 맑고 예뻐 K-pop의 Feel이 절실했다. 그렇게 나는 4개월간 꾹 참았던 마음을 벗어던져 아이콘의 ‘리듬타’를 틀었다.


차선책은 세미 팝송


재생버튼을 누르니 사이렌도 울고 갈 위윙 위윙이 들린다. 에어팟 프로의 노이즈 캔슬링 덕에 귓속은 음악으로만 채워졌다. 오랜만에 듣게 된 반가운 노래. 온몸의 세포들이 반응하기 시작했다. 조용한 캐나다 자연 속 출근길과 달리, 뇌 속의 나는 춤추고 난리 났다. 둠칫둠칫- 이건 그냥 노래니까 리듬 타고 있다.


오랫동안 참아왔던 도넛을 한 입 먹으면, 모든 도넛을 먹게 되듯이, 나는 노래가 끝나자마자 아이브의 ‘일레븐’을 틀었다. 띵가띵가~ 타잔 옷 입고 숲 속에서 춤추는 모습을 연상시키는 저세상 바이브. 이것이 K-pop의 힘인가. 4개월 간 이 노래를 참은 나 자신이 대단하게 느껴질 정도다. 그 후로 무슨 노래를 더 들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뮤직 이스 마이 라이프인 건 알겠다.


음악이라는 판도라를 연 후, 나는 한국말 콘텐츠를 적극적으로 탐닉하고 있다. 한국말 노래를 들고, 책을 읽고, 유튜브를 본다. 영어권 나라에 살고 있음에도 한국말만 접하고, 잘해도 생존 쌉가능!


이젠 한국말이 너무 좋은, 캐나다에 사는 한국인이 되었다. 워홀에 왔던 한 달까지는 그래도 영어를 공부했던 것 같은데. 유튜브 속 빨간 모자를 쓴 선생님으로부터 배우고, 길가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써먹어보기도 했던 나의 적극성은 어디로 증발한 것일까?




사실 나는 한국 살 때, 캐나다에 가면 영어는 절로 따라올 거라 생각했다. 막연히 환경에 나를 던지면 어떻게든 배워 나갈 줄 알았다. 그런데 막상 와서 살아보니 대충 알아먹는 눈치와 몸으로 말하는 꼼수만 늘어나고 있는 듯하다. 한국에 살 때 열심히 안 했던 영어공부를 여기 와서 갑자기 불태우듯 할 리가 없고, 영어 실력이 승승장구 늘리 없다. 한국의 나는 캐나다에 왔을 뿐, 다른 사람이 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이와 비슷한 생각으로 캐나다의 여유를 즐기겠다는 마음도 없어진 지 오래다. 한국 살 때는 막연히 20대의 한 번뿐인 자유를 다른 나라로 떠나면 즐길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한국에서 그러했듯, 자유란 돈이 많을 때 이룰 수 있는 것임을 그저 배웠다. 그때의 고민들에서 환경만 변형됐을 뿐 상황은 여전하다. 다만 한국에서 월세를 낼 땐 눈물이 나는 것 같았다면, 밴쿠버에서 월세를 낼 땐 피눈물이 나는 것 같다.


12시간 비행기를 타고 지구 반대편에 착륙해도 손톱을 물어뜯는 습관은 그대로이고, 나라는 사람은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영어 공부는 굳이 해야 하나 싶을 때가 많고, 쉬는 날엔 혹여 더 좋은 일자리가 있을까 싶어 이직 준비를 한다. 나를 둘러싼 사람들의 머리색과 언어는 조금씩 변화했을지라도, 여전히 삶은 삶이고, 나는 나다.


워킹홀리데이 1년의 비자가 나에게 추가된 +1의 나이를 의미하지 않는다. 생활환경의 변화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나는 2023년 속 ‘나의 삶’을 계속 살고 있다. 새로운 환경의 들뜸이 가라앉은 지금은 점점 ‘워킹홀리데이에 온 나의 삶’보다 ‘나라는 사람 자체의 삶’을 생각하게 되는 것 같다.


한국에서나 캐나다에서나 Life is life.


이왕 이렇게 된 거 뉴진스의 새 앨범도 들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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