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킹홀리데이 중간 점검이라 읽는다
최근 여러 개의 힘든 일이 겹쳤다. 아우 스트레스. 일단 이번 달 말에 집을 나갈 예정인데, 새로운 집을 구할 생각을 하니 벌써 막막해졌다. 룸렌트 비용 역시 작년과 비교하면 더욱 올랐다. 창문 없고, 창고방인 덴도 800불을 넘어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나는 여기 더 남는 이유가 있을까?’하는 의문을 가지게 되었다. 적응이 되어 웃으며 지낼 수 있다는 사실이 돈을 몽땅 쓰는 오늘을 합리화할 수 있는 건 아니니까. 집 구하면 잡 구하고, 잡 구하면 집 구하고, 계속해서 일을 하면서 몸과 마음이 조금 지쳐있기도 했다.
회의감을 안고, 여기서 버티는 게 아집인가 싶은 생각을 친구에게 전했다. 친구는 일단 하루라도 잠깐 여행을 다녀올 것을 권했다. 혼자 생각을 정리해 보라고.
그렇게 밴쿠버에 오기 전부터 가고 싶었던 빅토리아 당일치기 여행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극강의 P답게 출발 전 날 밤, 침대에 누워 사람들이 많이 가는 곳들을 정리했다.
빅토리아는 밴쿠버 근처에 있는 섬이다. 캐나다의 노인들이 은퇴 후 많이들 간다고 한다. 지금처럼 한 숨 돌리고 싶을 때 가기 딱 좋은 곳이다. 그래 이번 홀리데이는 힘을 빼고, 내면의 소리를 듣는 여행이다!!
다음날 오전 6시 20분에 기상했다. 응? 힘을 뺀다더니 이게 맞아? 싶지만 섬으로 들어가는 페리 시간을 맞추려면 어쩔 수 없었다. 일단 부랴부랴 준비하고 집을 나섰다.
빅토리아에서 사용할 버스 승차권은 현금 5불(5,000원)이 필요하다. 보다 큰 단위의 돈만 있던 나는 커피를 구매해 5불을 얻을 계획이었다. 여유 있게 팀홀튼에 도착해 오트밀크까지 추가해 커피를 손에 넣었다. 쪼롭 마시면서 버스정류장으로 향하는데 젠장! 생각해 보니 카드로 쿨거를 해버렸다. 큰 단위 돈은 여전히 지갑에 있는 상태였다. 결국 스타벅스에 들려 바닐라 크림 스콘을 샀다. 다행히 5불은 손안에 넣을 수 있었다.
가는 길부터 험난치 않은 빅토리아 여정은 다음과 같다.
버스와 스카이트레인, 페리까지 갈아탈 일은 많았지만, 페리를 타기 위한 버스를 탈 때부터 편안한 마음을 가질 수 있었다. 나는 이미 성공적인 여행하는 법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부터 앞사람만 잘 따라가면 된다. 동일한 목적지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 껴, 앞만 보고 갈 때의 편안함이란.
페리에 탑승하곤 다이어리를 쓰고, 예전에 썼던 글들도 찾아봤다. 나는 왜 워킹홀리데이에 왔더라? 와서 제대로 열어보지 않았던 워홀 버킷리스트가 보였다. 6개월 전에 적었던 ‘빅토리아 여행’에 짝대기 표시를 그었다. 몰랐는데 ‘부자들이 다니는 학교 UBC 가기’도 있었다. 여기도 예전에 갔다 온 적이 있으므로 짝대기를 그었다.
페리에서 내리고, 빅토리아에 도착했다. 후~ 그런데 또다시 버스를 탔다. 다운타운은 빅토리아의 내부의 내부에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또 1시간을 버스를 타고 다운타운으로 향했다.
버스 안에 앉아서 밖을 보니 은퇴자의 도시답게 노인들이 많이 보였다. 외국의 노인들은 뭐랄까. 자기한테 어울리는 옷이 뭔지 아는 것 같다는 느낌을 줄 때가 많다. 예쁘고 힙한 옷들을 많이 입는다.
자전거를 타고 공원을 달리는 사람, 귀여운 마당들을 구경했다. 나는 이렇게 사람들이 사는 모습을 구경하는 걸 좋아한다. ‘세상에나 이런 구석에도 사람이 사는구나’, ‘어머어머 구석의 구석에도 사람이 사는구나’. 그게 신기하다. 가끔 마당에서 미끄럼틀이나 그네라도 발견하면, ‘아이도 키우나 봐. 애들 교육은 어떡하지?’하며 학구열까지 걱정한다. 그러다 보면 어느덧 빅토리아에 도착해 있다.
빅토리아도 식후경이니 브런치를 먹으러 갔다. 검색해서 바로 나온 맛집도 좋지만, 너무 뻔한 곳은 또 가기가 싫은 청개구리 같은 마음이 등장했다. 구글 평점이 높지만 검색했을 때 못 봤던 Shanzee’s Biscuit이라는 카페에 갔다. 별 기대 없이 들어갔는데 꺄악! 완전 로컬이야.
손으로만 그려진 메뉴판, 아기자기한 소품들 속에서 머리가 백발인 백인 할머니 두 명이 열심히 브런치를 만들고 있었다. 내 또래의 동양인 여자애가 주문을 받았고, 백인 할아버지가 느긋하게 서빙을 했다. 그들이 입은 카페 유니폼 티셔츠가 사랑스러웠다. 어떻게 이런 곳을 찾은 거야 나 자신!! 하며 추천해 주는 비스킷을 먹었다.
브런치를 먹고, 주변 빈티지 샵도 구경하다 아트갤러리에 들렸다. 아트 갤러리에는 박테리아와 버섯의 생명력에서 착안한 예술품들이 있었다. 대충 우린 모두 더불어 사는 것으로 이해했다.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타기 전 시간이 남아 스타벅스로 향했다. 스타벅스에 앉아 주변을 둘러볼 여유를 가졌다. 빅토리아는 밴쿠버와 비교했을 때 동양인이 거의 없다는 걸 느꼈다. 빅토리아에 오기 전 들렸던 스타벅스에는 동양인들밖에 없었는데, 여기는 백인 밖에 없다.
내가 만약 빅토리아로 워킹홀리데이를 왔다면 영어를 더 많이 사용했으려나? 하지만 이방인이라는 느낌을 더 많이 받았을지도 모르겠다. 나한테는 밴쿠버가 더 맞았을 거라는 결론을 내리고 다이어리를 폈다.
밴쿠버에 도착했던 첫날 구매한 빨간색 다이어리는 어느덧 마지막 페이지 언저리에 왔다. 정신없이 살았는데 이 하루하루를 한 줄로라도 남겨 다행이었다. 지난 글들을 다시 읽어보고, 여기 와서 했던 것들, 아쉬운 것들, 앞으로 하고 싶은 것들을 새로 채웠다.
새삼 느끼는 거지만 밴쿠버에 온 이후로 썼던 글에는 대부분 오늘로 가득하다. ‘같이 일한 코워커의 표정이 너무 웃겼다’, ‘날씨가 좋아 행복했다, ‘최저 받고 살아서 서글프다.’. 후회 가득한 과거에 사는 것도, 기대되지 않은 미래에 사는 것도 아니다. 그저 오늘 하루하루에 일희일비하면서 살고 있다.
불과 몇 년 전 만 해도 내 일기장에는 온통 과거로 가득했는데 말이지. 그런 의미에서 현재의 기록들은 내게 의미가 있다. 지금의 내가 좋다.
스타벅스를 나와 버스를 타고, 다시 패리를 탔다. 짧은 여행을 끝내고 집으로 가는 길은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았다. 출발할 때와 비슷한 감정 상태였다.
의자에 몸을 기대 아빠다리를 하고 있자니, 얼마 전 팀홀튼에서 코워커와 했던 대화가 생각났다. 당시 샌드위치를 만들다 코워커에게 푸념했다. 나는 워홀 생활 힘들다고. 좋은 것도 있지만 지치는 일도 많다고.
코워커는 내게 말했다.
그렇지만 한국 갈 땐
내면이 변해있을걸?
그 말이 뭐랄까. 위로가 되었다. 생각해 보니 지난날의 나와 지금의 나는 또 다르다. 나는 이걸 보고 싶었던 것 아니었던가?
한 번의 여행을 한 나는 똑같지만, 지난 6개월 정도의 시간들은 나를 변하게 했다. 어떤 형태로라고 말하긴 아직 어렵다. 이건 아마 시간이 말해줄 것 같다.
페리 위에서 본 노을 진 바다가 아름다웠다.
생각 정리를 하겠다고 떠났지만
사실 밴쿠버 생활을 청산할 계획은 없었던 것 같다.
다시 일상을 묵묵히 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