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걸 틀려버린다고?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영화 <스즈메의 문단속>을 보러 시네플렉스로 향했다. 캐나다에서 한국어 자막은 볼 수 없어 영어 자막으로 영화를 보게 됐다.
화려한 영상미와 음악을 감탄하며 영화에 빠져 보고 있는데 응? 내가 방금 잘못 봤나. 영어 자막이 틀려있었다. 처음엔 내가 모르는 영어 단어가 나온 줄 알았다가 다음에 스펠링이 틀린 자막을 또 발견하곤, 와 영화 자막을 틀려버린다고? 싶었다. 한국에서 이런 일이 일어났다면 온라인이 떠들썩했을 것이다. 진짜 이 나라 사람들은 여러모로 쿨하단 말이지.
여기서 살면 내가 완벽이라며 세웠던 기준과 거리가 있는 것들을 자주 보게 된다. 내가 다녔던 회사였다면 분명히 반려 당했을 것 같은 광고 포스터, 어딘가 허전한 카페 인테리어, 과한 옷이나 장신구.
이런 것들과 비교해서일까. 가끔 나 자신을 생각하면 스스로를 완벽을 향해 몰아왔다는 걸 인정하게 된다. 지금 하고 있는 일도 완벽히 잘 해냈으면 좋겠고, 밴쿠버 워킹홀리데이도 완벽했으면 좋겠다. 가끔은 멀쩡히 유지되는 관계도 몇 번 어그러졌던 순간을 떠올리면, 다시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조금 더 완벽하게.
완벽을 향한 집착은 자주 몸을 향하곤 했다. 튀어나온 뱃살, 통통한 팔뚝살, 조금만 다리 살을 집으면 보였던 셀룰라이트. 나는 구체적으로 완벽하지 않은 부분을 발견해 못내 아쉬워했다. 내게 만족했던 기억보다 완벽한 어떤 모습이 되지 못해 마음이 타들어갔던 기억이 더 많다.
여름이 온 후 잉글리시 베이에 가 앉아 있는 시간이 늘었다. 잉글리시 베이는 밴쿠버에 있는 비치인데, 바다 옆에 있음에도 큰 바람이 불지 않아 피크닉을 즐기기 제격이다. 돗자리를 펴고, 사람들을 가만히 관찰하고 있다 보면 확실히 밴쿠버의 여름은 천국처럼 느껴진다. 비치를 즐기고 있는 사람들이 모두 행복해 보인다.
허벅지와 엉덩이가 큰 여자가 레깅스를 입고 뛰어 나니는 모습, 할아버지가 뱃살을 내고 타이트한 수영바지를 입고 돌아다니는 모습, 비키니를 입은 여자가 뱃살이 접힌 채 친구들과 이야기하는 모습.
나이나 출렁이는 살, 몸에 크게 진 흉터에 전혀 개의치 않고 자연과 어우러진 사람들의 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다 보면 나 역시 아무 생각이 없어진다. 그냥 몸이 있고, 즐길 수 있는 자연과 행복한 표정이 있을 뿐이다.
그리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충분히 아름답지’ 같은, 상투적으로 들렸던 말들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그러니까 이제는 뭐랄까. <스즈메>의 영화 자막처럼 가끔은 대충 살아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완벽하지 못한 나를 자책하며 보냈던 시간들은 '그런 생각을 했기에 지금의 내가 있지'로 이어지기보다는 그저 아쉽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사실 잘 생각해보면, 어차피 몇 개 틀려 먹어도 즐거움과 감동은 충분히 느낄 수 있기도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