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팀홀튼 해방일지
아침부터 출근을 해 커피바로 투입됐다. 아이스캡을 만들어 손님에게 줬는데 손님은 크림을 엑스트라로 넣었냐 물었다.
"응 넣었어"
"진짜? 근데 색이 왜 이래?"
‘뭐가 문제라는 거지?’싶은 마음에 다시 답했다.
“아니 내가 이미 엑스트라로 넣었다니까?”
고개를 갸우뚱했던 손님은 알겠다고 하며 이내 아이스캡을 손에 쥐고 가게를 나갔다. 손님이 나가자 옆에 있던 한국인 코워커가 말했다.
“오~ 이젠 손님이랑 영어로 싸움까지~~?”
띄워주는 코워커의 말을 듣고 낄낄 웃었다. 그러고보니 이젠 손님에게 내 의견을 전달할 정도는 된 것 같다. 잘은 아니더라도.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깨갱- 하며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다시 만들어줬었는데 말이지.
묘한 기분을 안고 팀홀튼 내부를 둘러봤다. 오늘은 팀홀튼을 그만두는 날이다.
(야호)
누군가 팀홀튼 일이 어땠냐고 묻는다면, ‘분노의 팀홀튼’이었다고 답할 것 같다. 나는 팀홀튼에서 자주 화가 났었다. 이유야 사실 너무 많았지만, 내가 팀홀튼을 그만두어야겠다고 생각했던 결정적인 이유는 두 가지가 있었다.
팀홀튼을 다니면서 가장 힘들었던 게 무엇이냐 묻는다면 ‘도넛을 참는 일’이었다. 나는 원래 도넛을 좋아하지 않았다. ‘대놓고 설탕 덩어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달콤한 걸 좋아해도 지나친 설탕은 안 당겨하는 편이었다. 그런데 팀홀튼에서 일하면서 매일 도넛에 노출됐다. 그리고 조금이라도 스트레스를 받으면 먹는 걸로 풀었던 폭식증이 재발했다. 다시 허구한 날 절제 없이 도넛을 먹기 시작했다. 팀홀튼에 출근했던 날이면 꼭 도넛과 당류가 가득 든 음료를 마셨다.
팀홀튼은 도넛을 파는 패스트푸드점이다. 1분 1초라도 빨리 쳐내야 했던 음식처럼, 내 몸과 마음은 하루하루 쳐내져 나갔다. 우버 기사가 음식이 늦게 나온다며 영어로 욕했던 순간, 분주하게 움직이다 커피를 쏟아 손이 데였던 순간, 손님에게 몹쓸 말을 들었던 코워커를 뒤로하고 주문을 받아야 했던 순간, 손님이 음식을 팽개치고 나갔던 순간도. 나는 경험하고도 못 들은 척, 못 본 척하며 시간을 넘겨야 했다.
짜증 나게 하고, 얄미운 코워커들도 있었다. 잘생긴 일본인 코워커에게만 잘해주는 코워커, 일하기 싫어 다른 짓을 코워커 등등 여러 종류의 사람을 볼 수 있었다. 허구한 날 화내는 코워커도 있었다. 그 친구의 화나는 모습을 보면 나 역시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저렇게 화낸다고 커피 주문하던 손님이 집에 가니?’, ‘엎질러진 커피가 컵에 담기니?’ 생각하곤 했다.
그 친구의 짜증에 너무 화가 나는 날에는 ‘으으으!!! 성격 진짜!!’하며 한국말로 중얼거리며 샌드위치를 만들었다. 다행히 인도 사람이라 못 알아먹었다. 하루는 “I didn’t do that!!ㅡㅡ”하며 반격도 했는데 내가 생각해도 하나도 안 무서웠다. 내 분노로 상대방을 무섭게 하느니, 등에 귀신 사진을 붙이는 게 빠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나중엔 그냥 무시했다.
그렇다고 사이가 안 좋았던 거냐 묻는다면, 사실 그건 아니었다. 매 순간 눈치를 봐야 했던 한인잡과 다르게 팀홀튼 코워커들은 무섭지가 않았다. 짜증이 났음에도 돌아서면 웃고, 장난을 치고 있었다.
아침에 출근하면 종종 부모님과 통화를 하고 있는 코워커들을 볼 수 있었다. 타국에서 온 애들이다 보니 통화로 가족과 떨어져 있는 시간들을 채우는 것 같았다. 코워커의 옆에 앉아 커피라도 마시고 있다 보면, 자연스럽게 나를 가족들에게 소개해줬다.
”엄마 얘는 내 친구 썸머야”
나는 인도, 필리핀에 계시는, 일 평생 말도 안 섞어 봤을 수 있는 사람들과 영상통화를 했다. 한 코워커의 사촌동생은 서툰 발음으로 ‘안녕하세요~’ 하며 한국에서 유행하는 손가락 하트를 날렸다. 그 모습이 신기해서 깔깔 웃었다.
한국에서 직장생활을 했을 때, 점심으로 샌드위치를 배달 주문 했던 적이 있다. 당시 샌드위치에 추가했던 치킨이 들어가 있지 않은 채로 배달이 왔는데 나는 무척 화가 났었다. 식욕 앞에서 예민해져 있기도 했고, 치킨이 더블로 들어가 통통한 샌드위치를 먹지 못한다는 게 아쉬웠다. 샌드위치를 만든 사장님이 미웠다. 그냥 없는 채로 먹긴 했지만, 당시 느꼈던 순간적인 짜증은 생각보다 깊었다.
그런데 팀홀튼에서 다시 서비스직을 경험하며, 모든 것은 결국 사람의 손을 거친다는 걸 새삼 알게 됐다. 그리고 치킨을 넣지 않았던 샌드위치 사장님의 실수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서비스직에서 일하는 사람을 한 번 보고 말지만, 그들은 무수히 많은 손님들을 만난다. 나는 그들을 마치 게임 속 NPC처럼 대하고, 내 요청을 빨리 건네고, 내 할 일에 집중하고 싶어 하곤 했지만, 그들은 사람이었다. 그들에게는 나보다 먼저 온 손님의 요청을 마무리하거나, 급하게 쏟은 커피가 다른 곳으로 새지 않게 막아야 하는 일이 있을 수도 있었다.
돈을 지불했기 때문에 요청한 오더를 정확히 받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다만 이제는 모든 것은 사람이 하는 일이라는 걸 먼저 인지하고 살아갈 것 같다.
전 날 걱정했던 것과 다르게 차분하고, 평온하게 하루가 흘렀다. 지금까지 내가 고생했던 걸 세상이 알아주기라도 하듯 나이스한 손님들만 가게에 왔다. 정말 귀여운 아기 천사도 아빠와 함께 왔었다. 귀가 뾰족해 요정 같았다. ‘세상에 이렇게 예쁜 아기가 있다고?’하며 눈에 하트가 된 채로 인사했다. 종종 팀홀튼에 아이와 함께 오는 부모님들을 보곤 했는데, 어릴 적 제대로 된 사랑 표현을 몰랐던 어른들과 살았어서 그런지, 그 눈빛을 보는 것만으로 내 마음이 채워지곤 했다.
코워커들은 같이 일해서 즐거웠고, 헤어지기 싫다며 아쉬워했다. 한 인도인 코워커는 어디서 배워온 건지 ‘가지 마’하며 한국말로 말했다. 나도 중간중간 감정이 동요해 일주일에 하루라도 할까 싶었지만, 가게 근처 놀이동산, 공포의 PNE가 개장하기 전에 빨리 그만두는 게 좋을 것 같아 그 말은 삼키기로 했다.
우리는 시간만 나면 사진을 찍어 인증샷을 남겼다. 내가 좋아하지 않는 필터도 중간중간 보며 요즘 애들은 이런 필터를 쓰는 군 생각했다. 그리고 냉큼 찍었다. 평소 잔소리가 심했던 리도 혹시 무슨 일 생기면 연락하라고 말하며 사진을 찍자고 했다. 자기가 나중에 볼 거라는 리의 모습에 리는 정말 알다가도 모를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다. 리에게는 좋은 감정, 서운한 감정, 짜증 나는 감정도 복합적으로 있었지만 떠날 때 격려해 주는 그 마음만 가져가기로 했다.
인도인 코워커가 쓰고 있던 터번도, 베지테리언들이 음식을 먹는 기발한 레시피도, 일본인 코워커와 블루베리 머핀을 먹는 할머니를 ‘블루베리 바짱’이라 불렀던 표현도. 이곳에 온 나를 충분히 상기시켜 줬던 팀홀튼의 Working!
아오!
저 드디어 탈출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