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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꿀별 Mar 03. 2024

가장 화려한 복수

잘 잊어라, 그게 최고의 복수다



잘 살아라
그게 최고의 복수다



고등학교 3학년 때인가. 수능을 앞두고 이런저런 자극 글귀를 모았다. 그중 이런 말을 많이 접했다. 잘 사는 것이 최고의 복수라는. 글의 출처는 꼭 삼수를 한 서울대 합격생이었다.




고작 28년 살았지만,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돌이켜 보면 좋은 사람들은 소수였고, 지나갈 사람들은 대부분이었다. 그리고 좋지 못했던 인연이 또 소수 있었다.


세월이 약이라고, 좋지 못했던 인연도 시간이 지나니 이해가 되었다. 여행을 함께 떠나 다투었던 인연도, 쌓이는 마음을 제때 정리하지 못해 끝냈던 인연도, 우리 둘 다 그게 최선이었음을 인정하게 되었다.


그러는 와중 여전히 이해할 수 없는 관계도 있었다. 무거운 시간의 힘조차 이겨, 마음속에 남아 한 번씩 회자되는 사람. 자기 전, 당장이라도 시공을 초월해 날아가 따지고 싶게 만드는 사람. ‘아, 이때 이렇게 말했어야 했어’ 하며 이불 발차기를 하게 만드는 사람.


익숙한 얼굴들이 떠오를 때면 뒤늦게 복수하고 싶었다. 이제와 내가 할 수 있는 건 인스타그램에 ‘내가 가장 행복해 보이는 사진’을 골라 올리는 일이었다. 당신이 이해하지 못했던 내가, 다른 관계에선 이토록 인정받고, 사랑받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증명하듯이.


가장 잘 사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 그게 내가 배웠던 최고의 복수 아니었던가.


무의미한 사진과 글들이 어느 정도 채워졌을 때쯤, 뒤늦은 복수는 완성되는 듯했다. 하지만 멀쩡히 살아가는 타인을 마주하며 알게 되었다. 복수를 명목으로 타인을 신경 쓰는 한, 나는 가장 괴로운 사람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마음의 영역을 내어주는 것 자체가 나의 손해였다. 여전히 내게 영향을 줄 수 있는 존재로 허락하는 일이었다. 나 홀로 시위는 그렇게 끝났다.




강철 멘탈이라고 불리는 친구가 있다. 그 친구는 시간이 지나면 참 잘 까먹는다. 고통도, 슬픔도. 그래서 막강하다.


하루는 그녀에게 옛날일을 이야기했다. 우리가 함께 당했던 억울한 일이었다. 내 말에 친구는 되물었다.


‘그런 일이 있었어?’


친구는 아무리 기억을 해보려고 해도 생각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그리고 이내 ‘아- 맞다!’하며 웃었다. 그녀를 보며 나도 웃었다. 친구의 표정엔 그저 이걸 생각해 냈다는, 놀라움 정도만 깃들여있었다.


다 잊자


최고의 복수란 무엇일까?


이젠 이렇게 말하고 싶다. 그 사람보다 내가 연봉을 얼마 더 받고, 능력 좋은 타인을 만난다거나, 많은 친구를 사귀는 일은 아닐 거라고.


그저 ‘아 맞다! 그런 일이 있었지' 할 수 있는 것. 미소를 지을 순 없을지라도, 그걸 잊고 살만큼 현재에 충실했을  것.


그러니까 최고의 복수란

어쩌면 잘 잊어버리는 것일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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