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기대되는 인생
이번 달 말에 태국 방콕으로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친구는 외국에서 지내고 있기 때문에 인스타 dm으로 대화하며 숙소를 찾고 있었다. 숙박에 큰돈을 쓰는 것이 아까웠던 나는 주로 가성비 숙소를 찾아 보냈다. 반면 친구가 보낸 숙소는 내가 보낸 숙소보다는 가격대가 있었다. 나는 생각했다. 가성비 숙소를 택할 것인가, 비싸지만 삐까뻔쩍한 숙소를 선택한 것인가.
고민을 하다 친구가 보낸 숙소 중, 가격대는 있지만 태국스러운 디자인이 마음에 드는 숙소를 골랐다. 사진으로만 봐도 흡족한 4성급 호텔이었다.
예약을 하고 나니 호텔과 그곳에서 먹을 조식이 벌써부터 기대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생각했다.
아, 미래가 기대되는 선택을 해야 하는구나.
내 나이는 곧 서른이다. 한국 나이로 29살이다. 내게 서른은 상징적인 느낌이 있다. 달라질 수 있는 마지막 기회 같으면서도, 안정적인 어떤 것을 마침내 획득해야 할 것 만 같다.
그래서인지 아이러니하게도 무언가를 시작하면 안 될 것 같다. 일을 벌이면 안 될 것 같고, 지금 있는 자리에서 발전과 도전보다는 현상유지를 겨우 해나가야 할 것 같다. 아무도 내게 그렇게 하라고 하진 않았지만, 혼자서 만든 마음의 감옥일 테다.
최근에는 이런 생각을 했다. ‘이제는 전처럼 되고 싶은 나도, 하고 싶은 일도 많지 않네. 이렇게 하고 싶은 일이 없어도 되는 것일까?’ 그런 생각을 할 때면, 사는 게 제법 막막해졌다. 무엇을 낙으로 사나. 마음의 동력 없이.
그래서 4성급 호텔처럼, 미래가 기대되는 선택을 아주 작게라도 삶에 추가해 보기로 했다. 일집일집 반복하며 변화 없이 살지 말고 기대될 무언가를 선택해 보자.
바로 할 수 있는 가장 쉬운 선택은 새로운 카페에 가는 것이었다. 매번 갔던 곳에서 한 발짝 벗어나 보는 거다.
보통은 낙성대역 쪽에 있는 카페에 갔다. 서울대 근처여서 사람도 많고, 주말 오후 3시쯤 되면 2층 자리가 없는 곳. 서로 간격도 좁은데 에너지가 후끈 올라오는 곳. 그곳에서 공부를 하거나 작업을 하면, 왠지 집중이 더 잘되는 것 같았다.
오늘은 대신 신대방삼거리역 근처에 있는 새로운 카페에 왔다. 사진으로 본 것보다 실물이 훨씬 괜찮은 곳이었다. 넓고, 사람도 많지 않고, 노래도 재즈만 잔잔하게 흐르는 곳이다. 창문 너머로 보이는 나무도 마음에 든다. 한 마디로 내 취향이다.
이렇게 멀지 않은 곳에 좋은 공간이 있는데 그간 너무 한 곳만 고집했던 건 아니었을까 싶어진다. 제법 거슬리는 게 있었지만 다른 선택지 따윈 없는 것처럼. 사실 다른 선택을 해도 되는데. 사람 많은 곳에서 자리가 없어 돌아섰던 기억, 어쩔 수 없이 원하지 않는 자리에 앉았던 기억들이 떠오른다.
새로운 곳에 앉아있으니, 기분이 좋아진다. 그리고 갑자기 하고 싶은 게 생긴다. 어디에 집중하고 싶은지 여러 가지 상들이 떠오른다. 다음에 어떤 카페에서 이런 영감을 얻을지 역시 기대된다. 이렇게 쉬운 일, 아무것도 아닌 일을 왜 해보지 않았을까?
집에 가는 길에 생각했다.
미래가 기대되는 선택을
삶에 조금씩 더해가야겠다고.
그게 서른을 앞둔 나의 몫일 것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