롱베케이션이 나에게 남긴
올해 설날에는 그냥 자취방에 있었다. 그리고 1996년, 일본에서 방영된 드라마 <롱베케이션>을 보았다. 일본의 잘생긴 배우로 유명한 기무라 타쿠야가 나오는 드라마이다.
이 드라마는 나에게 의미가 깊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 사람인지, 어떤 것에 아름다움을 느끼고, 자꾸만 눈길이 가는지 알려준 드라마랄까. 20대 후반이 된 지금도 ‘단지 멋있어 보이는 것’에 현혹될 때가 있는데, 그럴 때면 이 드라마를 생각한다. 그리고 내가 진짜 좋아하는 것에 어떻게 반응했는지, 그 마음을 떠올린다.
나의 가정환경도 한몫했을 테지만, 20대에는 좋은 레퍼런스를 어떻게든 찾아 나서곤 했었다. 그래야만 했다. 빨리 나를 알고, 성취하고 싶은 마음에 막연히 주변을 쫓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가장 멋있어 보이는 친구를 따라 했고, 검색하면 나오는 인플루언서를 따라 했다.
친한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가 하는 건 뭐든 멋지고 힙해 보였다. 친구는 미드를 좋아했다. 그마저도 멋져 보였다. 나는 그녀를 따라 <프렌즈>를 켰다. 마침 방탄소년단 RM도 <프렌즈>를 즐겨봤단다. 이 드라마를 완주하면 영어도 잘할 것 같았다. 열심히 보려 했지만 시즌 1을 넘기지 못했다.
일로써 성공한 디자이너님이 계셨다. 나는 나이를 먹는다면 그처럼 늙고 싶었다. 자신의 일을 사랑하는 태도가 멋있어 보였다. 그런 그는 젊은 시절, <시네마천국>을 가장 감명 깊게 봤다고 했다. 일에 관한 태도를 세워준 영화라고 했다. 그처럼 되고 싶었던 나는, 방에 홀로 앉아 <시네마천국>을 켰다. 그리고 열심히 봤다. 왠지 그 디자이너님처럼 일에 대한 막연한 마음을 느낀 것도- 같았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타인을 동경하고, 부러워하는 나.
다른 사람으로부터 지나치게 레퍼런스를 찾는 사람은 자기 자신에 대한 자신감이 부족하기 때문이란다. 나는 그랬었던 것 같다. 그래서 내 안에서 올라오는 ‘좋아하는 마음’은 꼬깃 욱여넣고, 주변에서 있어 보이는 것을 찾았다.
그런 나는 올해, <롱베케이션>을 보며 느꼈다. ‘아.. 나는 이게 좋구나’
러닝타임 1시간, 11부작 일본 드라마를 아껴가며 한 편 한 편 봤다. 매화 끝나면 아쉬워하는 마음으로 다음 편 버튼을 눌렀다. 무언가를 이해하고, 좋아하는 척과 전혀 다른 감정을 느꼈다.
드라마가 끝날 무렵, 나는 무수히 많은, 내가 20대에 되고자 했던 모습들이 결코 내 것이 될 수 없었음을 인정하게 되었다. 그냥 이 드라마가 그걸 알려줬다.
그렇다면 나는 <롱베케이션>이 왜 좋았는가. 롱베케이션은 자연스러웠다. 그 안에 흘러가는 것들이. 기교가 없는 키스신. 아름답게 보여주려는 욕심 없는 연출. 지금 막 이유를 찾아서 붙여보려는데 솔직히 말하면 자연스럽고, 예뻤다. 세나쿤의 용안도, 미나미의 뽀짝 한 사랑스러움도.
그러니까 나는 왠지 영어를 잘하고 싶고, 그러니 힙하게 미드를 본 김에 영어에도 익숙해지는 1타 쌍피를 꿈꿨었다.
그런데 현실의 나는 그냥.. 이런 딱히 교훈 없는, 아름답고 내추럴한 무언가를 좋아하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이 모든 걸 알아버린 지금, 더 이상 흉내 내질 않으니 다행이라 해야 할까.
일본 드라마 한 편 다 보고 느꼈다.
좋아하는 것은 설명할 필요가 없다는 걸.
이미 마음이 말해주고 있으니까.
정신 차려보면 다음 편 보기를 누르고 있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