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펀드 뉴스레터 '에디터가 쓰다'
소규모 농장에서 농장 일을 거들며 농부가 되어볼 수 있는 WWOOF. 세계 곳곳에 농부회원들이 있기 때문에 어느 곳을 가더라도 농장에 머무르며 리얼 현지인이 되어 먹고 자고 생활할 수 있지요. 그리운 추억들을 하나하나 꺼내보고 싶습니다. 이 여행이 제가 농부를 흠모하게 된 데에 큰 역할을 했거든요. 이탈리아의 농부와 농촌 이야기를 들려드릴게요.
<소스보다 면, 반찬보다 밥, 토핑보다 도우>
여러 품종의 채소와 과일을 재배하는 Oasi di galbusera 농장은, 매주 수요일 점심마다 피자데이가 펼쳐집니다. 농장에서 나오는 다양한 재료로 주인아저씨가 만든 토핑 그리고 Manda 언니가 만든 통밀 도우로 피자를 구워 먹는 날이었지요. 물론 와인도 빠질 수 없습니다. 일하는 사람이 많고 채소가 워낙 다양하다 보니, 한번 만들 때마다 피자 종류가 6가지가 넘습니다. 감자와 치즈, 토마소스와 파, 붉은 양파와 발사믹 등등 토핑 조합이 너무 다양하고 독특해서, 궁금하다고 한 조각씩 맛보다가는 빵빵해진 배 때문에 오후 농장 일을 못 할 정도였죠. 미국인 우퍼 Levi와 저는 수요일만 되면 피자 먹을 생각에 왠지 신이 났습니다.
드디어 수요일입니다. 아침부터 땀 흘려 일하고 나니 맛있는 피자 생각이 더 간절해졌지요. 접시에 한 조각씩 담아 연신 ‘buona!’를 외치며 먹던 중, 옆자리 Levi의 접시를 슬쩍 보게 되었습니다. 피자 도우 끝부분만 수북하게 쌓아두었더군요. Levi가 얄미웠지요. "야, 이건 너무 하다" "왜? 난 맛있는 가운데 부분만 먹을 거야" "이기적인 넘" 헤헤 웃으며 말하니 미워할 수도 없는 Levi. 정성 들여 만든 피자 도우가 음식물 쓰레기가 되는 것이 그저 안타까웠지요.
질 좋은 파스타 국수는 소금, 후추와 올리브오일에만 버무려도 맛있습니다. 도정한지 오래된 쌀로 지은 밥에 진수성찬 반찬을 차리면 그건 맛있는 밥상일까요? 우동, 라면, 메밀국수의 면, 햄버거, 샌드위치의 빵, 국밥이나 한식 밥상의 밥, 그리고 치킨의 닭고기. 주인공이 되는 재료이지만 우리가 쉽게 포기해버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기본의 맛을 즐기는 것은 원래의 맛을 찾는 일입니다. 다른 건 몰라도, 밥은 꼭 품질 좋은 쌀로 맛있게 지어 드셨으면 좋겠습니다. 도정일로부터 오래되지 않은 쌀로 촉촉하고 구수하게 밥만 잘 지어도 특별한 반찬이 필요 없으니까요. 피자 꼬투리를 남겼던 Levi도 직접 피자를 만들어보고 고유한 맛을 음미하다보면, 피자의 모든 부분이 소중하고 맛있다고 생각하지 않을까요?
2018년 7월 20일
요즘은 그 어떤 반찬보다 맛있는 밥이 좋은, 장시내 에디터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