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천국의 계단(2)

부제: GMAT 그리고 교수 추천서

by Root Scent

미국 대학원 입학을 위한 조건으로 공인 영어점수 말고도 GMAT 혹은 GRE 시험을 치러야 한다. 나는 오히려 IELTS보다 심적으로 모두들 지랄 같다는 이 시험 준비(시험시간만 약 4시간)를 조금 더 수월하게 했다. (아마 거의 모든 걸 내려놓은 상태여서 그랬으리라.) 대학원에 붙을 확률이 거의 없어 보였기 때문에 근처 GMAT속성 반 등록 후 일주일 정도 프린트물만 쌓아놓고 들여다볼 생각을 안 했다. (정말 지문이 토 쏠리는 기분.)


그러다가 함께 준비하는 친구가 한마디 했다. '그건 굵고 짧게 미친 듯이 3달 만에 끝내는 논리력 시험'이라고. 결과 제출도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서 그건 또 무슨 소리고. 하며 주야장천 문제만 풀던 나는 뭔가 잘못됐다는 것을 깨달았다. 점수가 600 초반에서 머물러 올라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혹자는 중등 수학 문제의 모습을 한 추론 문제라는 데 나는 그저 문제를 외우는 데에만 급급했던 것이다. (공인 영어성적은 이 방법이 통했다.) 매번 달라지는 문제들 사이에서 나는 갈피를 잡지 못하다가 컨디션 회복에 최선을 다한 후 , 언어에 집중 후 수리는 운에 맞기 기로 했다. (보통의 경우 반대로 하는 것이 보편적이다.)


모두들 지옥 같다던 GMAT를 8번(시험 응시비 1회, 약$250) 치르며 (풀다가 찍고, 가끔 울고, 가끔 오렌지주스에 럼을 타서 마시고, 가끔 포도주스에 와인 섞어마시고, 점수 안 나오고, 다시 울고, 다시 풀고) 겨우겨우 700점대를 턱걸이할 수 있었다.




그렇게 나는 온몸의 면역체계가 무너져 대상포진을 친구 삼아 걸어 다녔다. 오랜만에 친정에 가니 허우대 으라차차 한 170 넘는 장정 같은 딸내미가 반쪼가리가 되어 나타나니, 엄마도 내가 죽을까 겁이 났던 건지 어디서 손바닥보다 큰 전복을 사 오셨다. 공부를 시작한 이후로 시험 응시만 15번이 넘어갔고, 그때마다 턱걸이도 못하는 점수에서 허우적거리며 죽는소리를 해댔기 때문에 다들 저러다 말겠지 했다고 한다.


그날 저녁 전복 회를 먹었다.


먹다 먹다 죽어도 모를 만큼 맛있게 먹다가 정말 죽어나갈 뻔했다. 바이러스였는지 밤새 구토와 설사에 시달리다가 결국 응급실에 실려가고야 말았다. 차가운 화장실 바닥에 쓰러져 있던 나를 아이가 발견하고 할머니 할아버지 곁으로 가 울었다고 한다. 엄마가 죽었다고. 나이가 더 있었으면 그대로 비명횡사했을 거라는 의사 선생님의 말을 듣고 어이없게도, '죽어도 여한이 없네'라는 생각을 했다.


아이가 있는 엄마가 할 소리는 아니라는 것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그만큼 지옥같이 점수도 안 나오는 시험에 목을 매며 공부하던 그 순간 나는 ' 더 이상 못하겠다'라는 생각을 수도 없이 던졌다.


그래서 행복했다.

더 이상 할 수 없을 만큼 쏟아서 내 안에 남아있는 건 없었다.

합격? 이제는 안 해도 그만이었다. 솔직히 되는 게 이상했으니까.

그렇게 나는 죽음의 문턱(?)에 서서 황홀경을 경험했다.


미국 대학원님께서는 교수님 추천서가 필요하단다. 나 원 참내... 별... 혀를 차며 아쉬운 건 본인이기에 어렵사리 학교 홈페이지에서 교수님 내선번호를 확인했다.

교수님께 추천서 받으러 가는 길.

앞서 적었지만, 대학원까지 졸업하면 나는 뭐라도 되어 있을 줄 알았다. 적어도 내가 전공했던 분야에서 많이는 아니더라도 밥벌이는 하면서 아이를 키우는 워킹맘 정도 되어 있을 줄 알았다. 훌륭한 사람은 아니더라도, 빛나지는 않더라도 떨어지는 별 같지 않기를 바랐다. 현실은 나이 마흔도 안되었는데 희끗희끗 보이는 흰머리에 툭 튀어나온 머핀 살 그리고 눈가에 찍힌 까마귀 발자국은 누가 봐도 중년의 문턱을 넘어가는 아줌마였다. 겨울에 대한민국 아이 엄마 90%는 입고 있을 검은색 패딩으로 몸을 칭칭 감은채 교수님을 만나러 가는 길이 왜 그리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 건지...


교수님을 뵙는 내내 굉장히 의아해하셨다. 도대체 왜 유학생활을 시작하려 하는지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마음으로는 뜯어말리고 싶으셨던 것 인지. 미국 유학생활 경험이 있으셨던 교수님은 참 차근차근하게도 넘어야 할 산에 대하여 설명해 주셨다. 내가 생각하는 "Overwhelmed" 그 이상일 거라 말씀하시는 교수님의 입모양은 '너 미쳤니 애 데리고 둘이 무슨 미친 짓을 하려고'였다.


나이 먹어 가는 유학생들이 영주권 없이 졸업 후, 콧대 높은 천조국 현지에서 취업을 하게 되는 건 꿈도 꾸지 마시게 하는 마음의 소리가 여기까지 들렸다.


나는 차마 그 앞에서 '교수님... 뭘 해도 지금 보다는 나을 거예요'라는 말은 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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