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 영어공인인증시험
학원 계단에 앉아 집어 든 칼로리 밸런스 하나를 입에 넣고 곰곰이 생각해 본다. 바본가?
영어시험 점수를 내기 위해 치른 횟수가 8번이 넘어가고 있었다. 첫 시험에서 4.5가 나왔다. 아니 뭐 첫 시험이니까 했다. 2주마다 한 단계만 올라가도 그게 어디야? 그 당시에는 그렇게 희망적이었다. 두 번째 시험에서 5.5가 나오고 세 번째.. 네 번째도 5.5로 대학원 최소 합격기준인 7.0까지 갈 길이 멀었다.
IELTS가 다른 영어시험과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인터뷰를 본다는 것이다 마지막에 작문이 끝나고 나면 면접관들이 짧게 시사문제 혹은 여러 가지 화두를 두고 지문에 관련된 질문을 하게 된다. 손바닥에 땀범벅이 되어서 시험장에 들어가면 말문이 막혀 소처럼 눈만 끔뻑거리다 나오는 나는 그 자리에서 뺨을 쳐대고 싶을 정도로 긴장을 했다. 무슨 말을 지껄이다 나왔는지 전혀, 하나도 생각이 나지 않았다.
고질병이었던 인터뷰 PART 다음으로 작문은 호러무비를 방불케 했다. 아니 나는 쓸 내용이 없었다. 그 많은 지문과 답에 대해서 외워도 희한하게 시험 당일이 되면 한 번도 다루어 보지 않은 주제가 나왔다. 설령 나왔다고 해도 어쩜 한 바닥 채우기가 쉽지 않은 건지. 이런 고민은 나만 하는 것 같이 옆에 사람은 슥슥 잘만 써 내려갔다. 나는 점점 '점'이 되어갔다.
노력이 부족해서 일거야. 하며 스스로를 다독거리기를 어언 7개월째, 학원에서도 눈치가 보여 있기가 힘들었다. 같이 들어온 동기(?)들은 원하는 점수를 받아 나가기 시작했다. 11번째 치른 시험이 가까스로 6.5를 가리키고 있었다. 정말 이제는 번 아웃되기 일보직전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GRE시험공부도 병행하며 준비 중인데 나는 하염없이 시험만 쳐대고 있으니 시험 응시 비만 200만 원이 넘어가고 있었다. 인터뷰를 준비하느라 전화 영어도 신청해서 하고 있는데 그 점수가 그렇게 밑에서 끌어당기는 듯이 올라가지 않았다. 그냥 바보임을 인정하는 것이 훨씬 빠를 것 같은데. 그 마저도 쉽지가 않았다.
이제는 포기다. 됐다. 이만하면 됐다. 안 하련다. 이제는 더는 못한다. 200만 원? 구찌 가방이나 살걸!
9개월째 들어서서 이제는 마지막 시험이다 하고 친 시험. 7.0.
화장실에서 입을 틀어막고 소리를 질렀다.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남들은 잘도 받아가는 그 점수가 나에게는 9개월 3일이 걸렸고 눈을 감으면 섹션별 지문이 주마등처럼 흘러갈 정도가 되었을 때 나는 겨우 겨우 그렇게 첫 번째 관문을 지나갈 수 있었다.
여담이지만 나에겐 '민감성 대장 증후군'이 내 살처럼 들러붙어 아주 조금이라도 긴장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기가 막히게 화장실을 찾곤 한다. 이 비루한 몸뚱이는 특히 시험 당일날 대단히 예민해지는데 그때는 증후군이 몸과 마음을 지배해 버린다. 이는 불가항력인 힘으로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실전도 약하고 연습도 약하던 나는 그렇게 원하는 점수를 얻고 나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허허.. 이거 참내.. 나도 했는데.. 다른 아줌마들은 정말 잘하겠는데?"
GMAT(Graduate Management Admision Test)도 마찬가지였다. 영어시험 점수를 내는 데 시간이 너무 많이 흘러버린 탓에 준비기간이 부족했다. 흔히 6~12개월이 필요하다고 하는 그 맹렬하고도 지독한 과정을 다시 어떻게 버틸 것인지는 그냥 그때 가서 생각하기로 했다. 원하는 영어점수를 얻은 나는 그저 아이를 품에 안고 발 뻗고 코를 골았다.